한강은 세계적으로 봐도 강폭이 꽤 넓은 강에 속하고 실제로 한강의 최대 강폭은 1km에 달할 정도로 강폭이 상당히 넓은 편임.
이렇게 한강의 강폭이 넓기 때문에 왜 화물선 급의큰 배가 한강에 들어오지 못하는지 한두번 쯤은궁금한 사람들이 있을텐데, 한강에 화물선 급의 큰 배가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다 있음.
본래 한강은 지금처럼 강폭이 넓지 않은 강이었음. 한강은 여름에 장마로 인하여 강물이 범람하면 주변의 침수 피해와 함께 물길이 수시로 바뀌는 매우 불안정한 강이었음. 그리고 강의 크기에 비해서 수심이 깊은 편이 아니었고.
지금의 한강은 다이너마이트와 중장비를 동원하여 강변에 있는 모래사장과 자갈들을 제거하여 강폭을 인위적으로 넓히고나서 2개의 수중보를 설치하여 물길을 안정적으로 재정비한 강임. 즉, 한강은 인위적으로 물을 가둬두고 물량을 조절하는 인공적인 호수나 다름이 없음.
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한강은 강의 수량이 일정하지 않고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의 장마철에만 수심이 깊어지는 대단히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강이라서 장마철이 아닐 때는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강임.
그 때문에 2개의 수중보로 물을 가둬뒀음에도 평균적인 한강의 수심은 2.5m나 3m 미만인지라 화물선 급의 체급이 큰 배들이 한강에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음.
보통 큰 배들이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을 정도의 수심이 되려면 최소 수심이 15m는 확보가 되어야 하는데, 한강은 10m의 수심은 커녕 5m도 안되는 수심의 강인지라 화물선 급의 큰 배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강이 되어버린 거임. 즉, 큰 배들이 드나들기에는 한강이 빚 좋은 개살구와 마찬가지인 강이었다는 거지.
인천이 명색이 항구도시임에도 갯벌이나 수심이 얕은 문제로 인해서 15미터의 수심 확보를 위해서 꽤나 고생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서울이 강폭이 넓은 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항구 도시가 되지 못한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그니까 15m가 될때까지 다 파버리고 나머지는 간척에 쓰자는거지?
한강에 대형배가 들어왔으면 크루즈 여행선도 들어오고 좀 이색적이었겠네
그것도 있지만, 한강 하구는 거의 북한하고 접경지대 수준 아님?
좋아쓰 한강에 항모를 띄울때까지 파내자
예산;;;
수도에 항모를 왜 띄워여;;;
그게 서울이 항구도시 기능 상실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는 한데 어차피 큰배가 지날수없는건 똑같으비 철도나 도로로 대체될것은 똑같다는 얘기라는거지
한강에 대형배가 들어왔으면 크루즈 여행선도 들어오고 좀 이색적이었겠네
그니까 15m가 될때까지 다 파버리고 나머지는 간척에 쓰자는거지?
페즈나
예산;;;
페즈나
좋아쓰 한강에 항모를 띄울때까지 파내자
더 큰 문제는 한강다리임.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간격이나 크기가 아님
복슬복슬성애자
수도에 항모를 왜 띄워여;;;
그...비슷한 아이디어 내신분이 10년전쯤 있긴했던듯
국경에 군대 주둔시키는건 말이 되고?
군대를 국경에 주둔시키지 그럼 어디에 보냄? (발광하는 옆나라 반응을 이해못하며
핵미사일 운반해야지
멋있으려면 수도를 항모위에 올리는게 훨씬 ㅈ간지 아님??
크으으 내가 걸판력이 부족했네 서울함 가자!!!
옛날에 한강 파서 그걸로 아파트 지음. 그때 올림픽 전에 한강에 유람선 띄운다고 한강 파가지고 고수부지 만들고 올림픽대로도 놓고 그랬음. 한강 모래다 퍼다가 아파트 지었지.
그것도 있지만, 한강 하구는 거의 북한하고 접경지대 수준 아님?
외국 배들이 들락거리면 오히려 억제기능을 하겠네
낯익은세상
그게 서울이 항구도시 기능 상실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는 한데 어차피 큰배가 지날수없는건 똑같으비 철도나 도로로 대체될것은 똑같다는 얘기라는거지
한강에 물류 들여 왔으면 지금보다 더 개판이였겠지?
밀입국 + 곤충,쥐 검역 + 물류보관창고... 으악
돼지 -> 되지
누리에서 으뜸가는 우리 겨레의 말과 글을 잘 지키는 사람이로군
안 그래도 기능이건 시설이건 쏠려 있는데 항만도 기능했으면 볼만했을듯...
조선시대만 해도 롯데월드에 한강이 흘렀으니
석촌호수가 송파강 자리였죠.
원래 돼지는 못 해
애초에 한강을 항구로 만든다고 해도 물류 기반시설 지을 땅부터 확보해야...
철도 항공 다 깔려있는데 굳이 해상로를 만들 필요도 이유도 없긴 하지
그래도 조운선 정도는 들어왔지.
사실상 조선시대 물류운송의 전반이 서해한강 루트였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이걸 간파하고 한강입구 틀막해서 물류대란 일어났었음..
거기다 조선시대에도 한강 하구와 강화도 인근은 해류 지랄맞기로 유명한 해역이었음. 그것밖에 없어서 교통로로 쓴 거지 조건이 좋아서 쓴 것이 아님
'마포 나루' 가 유명했던 것 처럼 조선시대까진 서울(한양)까지 수운이 들어왔음. 그 때 인천에서 짐 내린 후에 서울로 실어온 거 아님. 조선의 상업 발달이 미진해서 한강의 수운이 잘 발달하지 않았을 뿐, 만약 상업이 활발했다면 마포나루 혹은 좀 더 하류에 더 큰 항구가 형성되지 못할 것도 없지.
만약 남북 분단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한강 하구가 항구로 재개발됐을 가능성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함. 한강 하구는 준설 안한 상태에서도 충분히 넓고 수심도 상당한 편인데다가, 개성과 서울로 바로 이어지는 위치라는 장점도 있고, 개성공단을 포함해서 그 주변의 지형도 배후지 개발에 유리함.
추가로 조선 후기 이후 개항기까지 한강하구가 개발되지 않았던 건 서해에서 한강으로 바로 들어오는 물길은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일부러 외면했던 것도 있음. 조선 후기에 안보 최요충지는 강화도였고 강화도 주변 물길은 외국 배가 절대로 못들어오게 막아야했음. 그래서 제물포나 이런 데가 우선 개발된거. 단순히 뱃길만 보면 서해에서 한강하류로 들어오는게 당연히 더 경제적이지.
경인운하 만들었는데 채산성이 없어서 접음
경인운하는 지금의 ‘경인아라뱃길’, ‘아라천’ 그리고 옛 굴포천방수로이다.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 인근 아라 한강갑문에서 시작해 김포시, 인천시 계양구, 인천시 서구를 지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경인운하는 본래 민자사업으로 추진되었다가 2008년 공공사업으로 전환된 후 한국수자원공사가 사업 시행자가 되어 2009년 착공됐다. 공사는 2011년에 끝났다. 경인운하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이전에도 운하 건설의 시도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흔적이 원통이고개 설화다. 1970년대에도 운하 건설 구상은 있었지만 경제성이 없어 백지화 됐다. 경인운하 건설 계획이 다시 등장한 건 1980년대 말이다. 1987년에 있었던 홍수가 논의를 촉발시켰다. 1980년대까지 굴포천 유역은 빈번하게 범람해서 주변 지역에 피해를 줬다. 1987년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존 수준을 뛰어넘는 강풍과 폭우가 내려 곳곳에 피해를 남겼다. 태풍 셀마의 여파였다. 굴포천 역시 집중호우를 버티지 못하고 범람했다. 많은 가옥이 침수되고 이재민이 생겼다. 이후 1989년 6월 26일, 정부는 경인운하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을 기점으로 해서 인천시 북구 백석동을 연결하는 16㎞ 직선구간에 전장 21㎞로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너비 100m, 깊이 3m 규모로 조성해 소형 화물선, 바지선, 관광유람선 등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도 확정했다. 그리고 한강에서 굴포천까지 5㎞는 기존 굴포천을 준설해서 연결하기로 했다. 이 계획은 수년간 타당성 논란에 휩싸이다가 1992년 12월 12일, 경인운하 건설의 전단계인 굴포천 방수로 공사가 일단 먼저 착공됐다. 경인운하 건설 결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방수로 개설 구간은 동양동, 검암동, 백석동에 걸친 15.2㎞ 구간이었다. 출처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http://www.incheonin.com)
그래서 땅을파서 배가 다니게하자는 놈이 있었던거 같은데
한강철교 트러스가 절반만 있는 이유 예전에는 거기만 다리였기 때문에
오호.. 올라가서 보니 정말 그러네. 중간에 섬 있는데 까지만 트러스가 있구나.. 잠실에 석촌호수도 예전엔 한강이 이리저리 범람하던 물길 중 하나였다던데
3일짜리 아이디로 뭔 개똥철학을 싸지름 한강하구가 북한이랑 반갈이 해서 못 하는거고 60년대 부터 시작한 한강 개발할 당시 일부러 북한 잠수정 침투 못 하게 하려고 깊게 안 판 거지 못한거랑 안한거랑 구별좀 하자
돼지 (꿀꿀)
안보때문에 그런거 아닌가?
막연하게 북한때문이겠지 싶었는데 한강이 수심이 얕은 편이구나 폭만 넓은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