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 흘렀다.
어느세 태양이 바다 아래로 내려가, 오렌지 색의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드는 와중에도, 미약 하게 들려오는 파도의 소리를 비롯해 갈매기 울음소리와 사람들이 노는 소리가 귀로 들려와도 우리 두사람은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단 말 한마디 조차.
모모는 그저 침대위에서 무릎을 양손으로 모은 체 가만히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일이 생길지 알고 있어서 그런가. 그 어머니라 불리우는 자로 인해 전장에 끌려가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아니면....
"배는 어때 모모?"
간신히 말 한마디를 꺼내었다. 처음에는 아무말도, 반응 조차 없던 모모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퉁퉁 부어오른, 여전히 양 눈에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나는 미소를 지은 뒤 모모의 옆에 앉아 핑크빛이 감도는 주황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너...그렇지?"
"..."
"우리 아이를 벤거."
손으로 전해져오는 모모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으로 전달 되어왔다. 여전히 아무말도 없던 모모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고개가 내 몸에 기대었다.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네가 잘못한거 없으니까. 그냥 오히려..."
모모의 양손을 잡아주면서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그에 반응하듯 그녀에게서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려왔고.
"기쁘기만 한데?"
"기쁘시다고요?"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겨났잖아. 나하고 모모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것만으로도 너무 기쁜데?"
모모에게서 헤에-하는 작은 웃는소리가 들려왔다.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는 자신의 입술로 내 볼을 맞추었고, 나또한 그녀를 양손으로 더욱 더 끌어안았다.
"저 무서워요."
내 몸을 잡은 그녀의 갸날픈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이상한 사람들로 부터 끌려가겠죠. 전장터로 끌려가는것도 무섭지만 사실 가장 두려워 하는것은 도련님이랑...태철씨가 더이상 내 곁에 있지 않을것이라는거에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아침이 밝아오는 데로 모모는 그대로 삼안에 끌려가서 기업들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될것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터에 강제로 끌려가는것도 물론, 원하지도 않는 살인을 저지르겠지. 기업들의, 어른들의 강제로 인해. 이것이 정의다 라고 강조 받으면서.
"일단 먼저 바람 쉘까?"
나는 모모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여전히 자신의 배를 양손으로 감싸는 모모를.
"바깥 공기 마시면 좀 기운이 날꺼야. 여기에만 있지 말고."
"...네 도련님."
우리 두사람은 옥상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나와보니, 마치 우리 두사람을 환영 하듯 시원한 바람이 우리 두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바람에 의해 머리카락이 휘말리는 주황색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잡으면서 그녀는 기분이 좀 낫아졌는지 옅은 미소를 그렸다.
전망을 바라보니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두사람 앞에 펼쳐졌고.
"태철씨..."
"응?"
전망을 바라보면서 내 몸을 기댄 모모에게서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어릴적 제가 태철씨에게 얘기 했던거 기억나시나요? 오래전 또다른 모모 개체의 공연을 본 뒤 햄버거 먹으면서 했던 얘기요."
"대체 모모 그거 말하는거지? 조그만한 상처만 있어도 그대로 다른 모모로 대체되는거."
"사실 제가 말 안한것이 더 있어요."
모모는 그대로 한숨 푹 쉬었다. 더이상 숨겨보았자 뭐해 라고 말하듯.
"덴센츠의 회사 좌우명 일단 뭔지 아시죠?"
"실제보다 더 실제 답게?"
"저희들의 운명은 태어났을때 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덴세츠가 짜놓은 각본대로 우리의 시간, 즉 살아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요. 어떻게해서 짠-하고 무대위에 등장하고 또 어떻게 퇴장할것인지, 우리들의 삶은 각본에 이미 적혀져 있는걸요."
잠시동안 말이 끊긴 뒤 눈을 감은 모모. 많이 지쳤는지 눈은 피로함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모모는 다시 눈을 뜨면서 말을 이어갔다.
"인간 배우분들은 목숨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죠. 하지만 바이오 로이드들은 달라요. 바이오 로이드들은 애초부터 인간분들을 섬기기 위해 태어났고, 각본의 저희 역활이 끝나면 다음 개체로 대체 하면 그만이니까요. 네 태철씨. 저 또한 정해져 있었어요. 비록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의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그 모모 배역을 맡은 저의 죽음도 정해져 있었고요."
묵묵히 모모의 얘기를 들으면서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어릴적의 나 같으면은 아마 두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였을것이다. 하나는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혼잡해 하거나 혹은 왜 여태까지 나한테 숨긴거야? 라고 화내는 나.
하지만 지금은...그때 C구역에서 보았던 모모의 실제 촬영 모습을 본 뒤 전혀 놀랍지도 않았었다. 오히려 이해하고 있었다. 왜 이리 숨기고 싶어했는지. 그녀가 가진 상처는 생각보다 깊다는것을.
"제가 그때 제 대체 개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것은 단순히 더이상 마법 소녀에서 은퇴했던것이 아니었어요. 아아 이젠 저 아이의 차례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저 아이에게 앞으로 닥쳐올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
"태철씨. 우시나요 지금?"
"응? 나?"
모모는 한손을 들어서 내 뺨에 흐르는 물 한줄기를 검지 손가락으로 받아냈다. 받아낸 물 방울을 몇초동안 바라 본 뒤 그 손가락을 입에다 넣었다. 씨익 웃으면서.
"어떻게 보면 태철씨가 저를 꺼내주신거에요. 각본속에 갇혀있던 저를 말이에요. 그래서 더이상 만들어진 이야기속에서 죽을 필요 없게되면서 동시에 다른 모모 개체들, 다른 마법 소녀들하고 마왕 군단장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것들을 가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곧 이어서 모모에게서도 나오고 있었다. 한 방울에서 부터 시작해서 두방울, 세방울, 네방울, 다섯 방울...이젠 셀수도 없는 숫자만큼의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족이란게 생겼어요. 콘스탄챠 언니하고 바닐라 언니. 인간분들이 즐기시는 취미도 해보았어요. 영화관 가기, 오락실 가기, TCG 게임. 맛있는것도 먹어보았어요. 분식집에서 파는 순대, 떡볶이, 튀김, 피카츄 돈까스. 사랑도 해보았어요. 저의 매직 젠틀맨이신 태철씨하고요. 그리고..."
말을 끝내기도 전, 모모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뚜욱 뚜욱.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요. 그것도 제가 사랑하는 도련님의 아이를요."
"...모모."
"결국 이 모든것도 내일이면 끝나겠죠. 마치 하나의 꿈처럼......아니 마치 덴센츠때 처럼요. 행복했던 모모의 이야기가 끝나면서 결국 전장터로 끌려가 매직 젠틀맨이랑 영원한 이별을 맞이했다. 그뒤 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렇게요."
지금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가지 깨달은게 있었다.
작품속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의 이야기는 늘 행복하게 끝난다. 뽀끄루 마왕 군단이 어떠한 비열한 수단을 써도,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모든것을 극복해서 결국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는것을.
하지만 현실속의 모모는?
어떻게 되든 배드 엔딩으로 끝난다는것이다.
배우로 있었어도 결국 정해진 각본대로 죽을 운명이었고, 그날 퍼레이드 때 테러리스트 습격 이후 내가 그녀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레드 아레나나 C구역으로 끌려갈 운명이었을것이다.
하지만...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설사 어머니가 더이상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결국 모모는 배드 엔딩을 맞이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을 동안 모모를 지켜주겠지만, 나이를 들어 늙어 죽으면? 모모 혼자 남게 되면? 나는 모모와 달리 인간인 이상 그녀랑 영원히 같이 있지 못할것이다. 바이오 로이드인 모모는 시간이 흘러도 현재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겠지만 나는 서서히 늙어갈테고.
당장 멀리 볼것도 없이, 내가 모모랑 만났을때는 모모의 크기의 반도 되지 않는 어린애 였지만, 서서히 키가 커지면서 외모도 변해가는 반면 모모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10대 중후반의 외모 그대로, 늙어가는 티 조차도 없이.
이건 정말로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한 풀리질 않을 기적이다. 모모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세요 같은 마법을. 나와 같이 해피엔딩을 맞이해 주세요 같은. 애초부터 마법 따위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 그런것이 불가능했고.
"......모모."
나는 모모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여전히 울고 있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마음을 진정 시키기 위해 숨을 길게 마시니 모모에게서 향기가 느껴졌다. 어릴적부터 맡아온 그녀만의 향기로운 향기가.
"우리 떠나자."
"네?"
한참동안 울고 있던 모모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 무슨 소리 하신거에요? 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모모에게.
"말그대로야. 떠나자고. 우리 둘...아니."
나는 한손으로 모모의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셋이서."
제주도 호텔 고급 식당
"여기 해산물 요리는 정말 최고라니까."
접시에 놓여진 랍스터 한마리를 허겁 지겁 먹고 있었다.
이 큰것을 혼자서 먹는 중년 여성은 옆에 있던 메이드 바이오로이드가 따라준 와인을 물 마시듯 벌컥 벌컥 마시면서 집게의 살을 쏙 먹고 있었고.
"아들 건은 이걸로 해결되었어."
모든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처음에 아들 녀석이 감히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서 사생활 공개를 다해서 잠시 움찔 했지만 결국 돈만 내주더니 재판장이건 시티가드던 뭐든 알아서 설설 기었다.
"하늘나라로 간 집사람에게 다음 제사 올릴때 최고급 음식을 줘야겠네. 그이가 남긴 돈 덕분에 순조롭게 흘러갔다고. 동시에..."
이제는 가재의 몸채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메이드 바이오 로이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마치 개처럼 먹는 중년 여성을 바라보았다. 같이온 아이들도 무서워 할정도로.
"그 마법 소녀로 가장한 바이오 로이드년도 이젠 영원히 바이 바이고. 이젠 아들도 내말만 듣겠지. 하여간 그러길래 왜 내말을 안들어가지고 내가 이 수단까지 쓰게 만들어."
꾸우우울꺼어억-
"요즘 애들은 너무 말을 안 듣는다니-"
바깥에서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높은곳에서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사람이 떨어졌다!!!
누구 앰뷸런스 불러!!!
사람들의 아우성은 중년 여성이 먹던 가재를 내려 놓게 만들었다. 무언가의 싸늘한 기분이 전신을 스쳐 지나가면서.
-최근 제주도에 있는 Ocean Suite Jeju Hotel 옥상에서 한 20대 남성이 옥상에서 소유 바이오 로이드랑 같이 투신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신원 조사 결과, 남성은 조선 웨스틴 호텔 전 총지배인의 후계자로 밝혀졌으며, 의료팀이 오기도 전에 이미 떨어져 사망한걸로 밝혀졌습니다. 시티가드의 조사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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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낙화(落花)편이 끝나고 엔딩 파트로 넘어갈겁니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시간내서 저의 부족한 소설 봐주신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애초부터 모모하고 도련님에게는 끝에는 불행해질 예정이었음...어느 루트로 가든간에 말이죠...
이제 진혼곡을 연주하러 와주는 누군가가... 시라유리는 이렇게될거라 예상하지 않았을까싶네요. 그래서 별 이유없이 보내준거같고.
아마도요? 아니면 아닐수도 있고요. 일단 확실한것은 시라유리가 도련님에게 향한 마음은 연기나 그런게 아닌 진심이었다는겁니다. 도련님이 만약에 사령관이었다면 정실인 모모를 이어서 시라유리를 두번째 부인으로 맞이했을 가능성이 큼.
떠나자는게 어쨰서 거기야 ㅠㅠ
더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모모가 내일이면 전장터로 끌려가, 설마 여기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해도 이미 회사에게 찍힌 모모를 잡기위해 회사가 가만있지를 않을것이고, 상속도 엄마가 뇌물줘서 못 물려받아,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도 없어, 엄마와 고모였던 콘스탄챠도 바닐라도 없어, 남은 가족이란것은 사실상 모모만 남은 상태였으니 도련님 입장으로서는 몰릴데로 몰린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