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이 숙청당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일단 그 가문인 청송 심씨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심온의 아버지 심덕부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더불어
고려말 가장 유명한 전투인 진포해전의 최고 지휘관
100척의 전함으로 500여척의 왜선 격멸
여기서 탈주한 병사들과 지상에 흩어져있던 왜군들이 합쳐져 저항한게 황산대첩
이후에도
위화도 회군파로서
조민수,이성계를 이은 무려 군벌3위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옹립한 흥국사 9공신 중 한 명
조선 건국 후 회군공신 1등
경복궁과 종묘 건립을 지휘하고 최종적으로 좌의정까지 오름
한마디로 단순히 명성만 높은 가문의 일원이 아니라
실적까지 확실한 거물급 인사
공양왕과 이성계 사이에서 대놓고 줄타기하며 간까지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 때문에 3개월 유배로 그치고
조선개국후 이성계와 사돈관계로 회유.
거기에 심덕부의 동생 심원부
한국 성리학의 중흥조이자 신진사대부의 사상적 시조라 불리우는 이재현의 제자
그리고 심원부의 삼남 심천식이 정몽주의 제자
즉 심덕부의 군부 인맥뿐만 아니라 + 신진사대부 인맥등
군부와 정계, 권문세족과 신흥 유신, 온건파와 급진파를 아울러 폭넓게 포진
또한 심덕부의 아들들
장남 심인봉 군부 1인자인 의흥삼군부 도총제 직을 역임
4남 심징이 경창부윤,
5남 심온은 의흥삼군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6남 심종이 이성계의 부마,
이처럼 단순한 일개 왕자의 사돈으로서는
( 장남과 차남의 사돈들은
한미한 가문에 믿을만한 이방원의 동기 가문이다)
왕실의 든든하기 그지없는 인척이었지만
이게 갑자기 외척이 되어버리면서
걷잡을수 없게됌
( 이성계와 이방원도 컨트롤하기 힘들었던 가문이
외척까지?!)
무엇보다
권력에 초탈한 모습을 보였던 기존의 심온 이미지와는 달리..
어느정도 권력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충녕을 적극적으로 세자로 밀어주었으며
아들들을 자중시켰던 민제와 달리 심온은 형제들을 전혀 자제시키지 않았다한다....
결국은...
물론 그래도 심온 본인에게 죽을죄까지는 없는것은 맞다.
태종 이방원에서도 이러한것을 묘사했는데..
자기가 왜 죽어야하는지 이유를 묻는 심온에게
형문을 주도한 박은마저 말하기를...
본인도 잘모르겠지만 아마 이유가 있다면
청송 심씨 가문이 너무 큰 가문이라 그런것 같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뿌리깊은나무에서 심온대감을 지칭할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했던게 기억남
왕권강화에 목을 맨 태종 입장에서는 반드시 숙청을 해야 하긴 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