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7월이 재앙의 달이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와 동시에 인류의 약점인 무기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이서 넘쳐나는 온갖 불길한 소식들 중에 희소식은 한국이 마침내 통일체제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2005년 8월 1일, 마침내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이루어졌다. 나라 이름은 그대로 대한민국으로 하지만 국기는 한반도기로 바뀌었고, 북한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선거로 선출된 민주 정부가 북녘을 임시로 통치하게 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이 극구 반대했음에도 대통령은 1국가 2정부체제, 즉 연방제(聯邦制)를 실시하게 된 것이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주의자-수구꼴통이라고도 불렸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들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오늘을 기점으로 2015년 8월 1일까지 통일의 최종 단계를 시행하는데 1994년부터 11년간이 문화의 통합이었다면, 다음 10년은 정치, 경제, 군사와 궁극의 정부통합이 시행될 것이었다.
한국이 예상외로 간도를 차지하면서 남아있던 한족과 한국정부간의 충돌은 더욱더 심화되었다. 그들은 테러조직을 만들어 한국정부와 북한정부에 무장투쟁을 시작하였는데, 이름은 “중화간도 수복단”이었다. 이 단체의 설립과 운영에는 중화함대의 입김이 강력히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불어서 타이타닉 함대도 간도 구역 관할 조직을 만들어 치안을 유지했다.
지금까지 타이타닉 함대의 관리는 인자성이 대신해오고 있었다. 훈이 나이가 어린 관계로 조금 더 사회를 경험해 본 사람이 관리가 더 수월하겠다 싶어서 자기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함대의 체계는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여기에 최고급 간부란 의미의 ‘탑 브레스’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체계정리 작업은 완료되었다.
타이타닉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을 무렵, 루시타니아 함대도 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사람의 일을 대신할 로봇 L-Android, 란드로이드-01호를 100대 한정 생산해내어 장차 개발할 란드로이드 시리즈의 프로토 타입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몇 주 후, 란드로이드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루시타니아는 돈이 들어가는 대원들을 운용하는 대신, 무일푼으로도 24시간 운용할 수 있는 로봇을 택한 것이다. 후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거대한 란드로이드 군대를 만들어 세계정복을 하려 했다는 구상까지 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란드로이드의 생김새는 2족 보행을 하는 신장 1m 72cm의 휴머노이드 형태였고, 소형 양자 발전 장치로 구동되는 나노 두뇌와 강화 합금으로 구성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아이 로봇”에서 나오는 NS-5기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한때 아이로봇 제작진이 란드로이드를 모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8월 5일, 자욱한 안개가 도시를 뒤덮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안개라는 거대한 자연이 만든 방음제가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바쁘게 돌아가던 도시는 침묵에 휩싸였다.
이 침묵 속을 걸어가는 두 남자가 있었다.
“에잇, 젠장할. 기분도 꿀꿀해 죽겠는데 오늘 날씨는 또 왜 이래?!”
“참아라,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다. 몇 분을 더 걸어가야 돼.”
“짜증나, 오늘 만큼은 진짜로 하기 싫다고 했잖아!”
“네가 이런 날씨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우리의 복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어! 저번에 그 꼬맹이들과 다시 한 번 겨뤄서 우리의 체면을 살려야 해!”
“하, 형님 혼자서 알아서하십시오… 저는 이만 가보렵니다, 기운이 다 빠져서 싸울 맛이 안 나네요….” 일행 중 한 명이 뒤돌아 가려고 했다.
“야, 어디가!?”
자욱한 안개에 수도권 일대에는 안개주의보가 내렸다. 곳곳에서 앞을 보지 못한 차들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교통지옥은 진짜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비행기 두 대가 활주로에서 서로 충돌할 뻔 하다가 겨우 대형 참사를 막은 일이 있었다. 이 일로 공항은 마비되었다. 엄청난 사람들로 혼잡한 상황에서 기자들까지 들이닥치는 바람에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시각, 훈은 이 상황을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1977년과 같은 일이 벌어질 뻔 했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참.” 1977년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에서 KLM기와 팬암기가 이륙도중 대충돌을 일으켜 583명이 사망한 대 참사가 일어났다. 원인은 자욱한 안개와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안개는 대체 뭐지?! 어제 분명히 오늘 날씨는 맑을 거라고 했는데?” 예보 빗맞히기 기술로는 세계 정상급인 한국의 기상청이라고는 하지만 이정도로는 틀릴 리가 없다. 게다가 훈은 어제 달무리를 본 상태였다.
“수상쩍은 점이 많은데, 회장님한테나 전화 해봐야겠다.” 훈은 얼마 전부터 인자성을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수연도 마찬가지였다.
-청랑 코퍼레이션 대표 인자성
회장 비서실 Tel. 031)792-6872, 1588-6872
훈은 인자성이 건네주었던 명함을 꺼내들었다.
[청랑 Corp. 타워]
“회장님, ‘그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하다니 의외인걸. 3번 라인으로 넣어봐.”
-딸깍
“여보세요? 청랑 코퍼레이션 회장 인자성입니다.”
“저인걸 아시면서도 그렇게까지 구는 걸 보면, 뭔가 찔리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이 녀석이! 나는 그런 일 같은 건 만든 적도 없고, 만들 생각도 없어. 근데 무슨 일이냐? 평소에는 전화도 안 하던 녀석이.”
“회장님, 오늘 아침 뉴스는 보셨나요?”
“나야 이 세상의 모든 물정을 알기위해서 매일 일어나자마자 하는 게 신문 보기와 뉴스 시청이지.”
“그럼 인천 공항에서 있었던 사고도 알고 계시겠네요?”
“물론이지.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더구나. 근데 그 일은 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요.”
“뭔데?”
“기상청에서 오늘 날씨는 맑을 거라고 했고, 어제 달무리도 없어서 날씨가 좋을 걸로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어요.”
“그러냐? 그건 네가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데?”
“네?!”
“생각해봐라. 이 정도 안개는 아침이면 흔히 발생하고, 또 달무리로 내일 있을 안개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그런… 가요?”
“그래, 네가 너무 기상변화에 민감한가 보구나.”
“그렇잖아도 매일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위성사진을 보고 있어요. 혹시 빙하기를 만들 거대한 태풍이 다시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서요.”
“영화를 보고 그러는 거냐? 그건 걱정마라. 그런 태풍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네에….”
“그나저나 너랑 수연이랑 다시 한 번 와줘야겠다.”
“네? 그건 왜요?”
“본사 타워에 설치된 CCTV에 수상한 사람들이 잡혔어. 간단한 모습만 봐서는… 아마도 전번에 그 사람들인 것 같다.”
“그 사람들이라면, 불칸 브라더스?!”
“아마도 저번 일의 복수를 하려는 모양이겠지.”
“이런 구도라면…”
“뭐라고?”
“보통 소설이나 만화에서 이런 구도로 얘기가 진행되면, 악당은 반드시 지게 돼요.”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 그럼 너희들이 이긴다는 소리 아니냐?”
“저희는 반드시 이길 거 에요. 벌서 팀 이름도 정해 놓았는걸요.”
“그 이름은 뭔데?”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때 보세요. 당장 그리로 갈게요!”
-뚝, 뚜뚜뚜뚜…
‘얘들아 빨리 와라, 놈들은 벌써 정문이야!’
[신장초등학교 사거리]
수연은 친구들과 쇼핑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여-나!!!”
“?!”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수-연-아!!!”
“어? 훈이?”
“빨리! 뛰어!”
훈은 수연 옆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무, 무슨 일이야? 왜 안절부절 못해?”
“우리가 전에 싸웠던 놈들 있잖아!”
“아… 그 불칸 뭐시기 하는 사람들? 근데 왜?”
“그 놈들이 지금 청랑 타워 쪽으로 가고 있대!”
“뭐라고?!”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뛰어!”
[청랑 Corp. 타워]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우선 정문 폭파다!”
두 남자는 육중한 정문을 향해 거대한 화염기둥을 날려 보냈다.
-쿠웅!!!
“이 정도면 재산 피해액이 한 1천 달러쯤 되려나?”
“아주 싼 값이네! 큭큭큭… 모든 것을 아주 날려버리자고! 다음은 저 건물이다!”
한 사람이 청랑 타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간다앗!”
“멈춰!”
“후훗,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셨군, 타이타닉.”
“우리는 너희 바이서들을 없애려고 방학 숙제도 팽개치고 왔다고!” 수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 너 쇼핑하고 오는 길 아니었어?” 훈이 수연 손에 들려있던 쇼핑백을 보면서 말했다.
“…….” 솔직히 이 사람도 할 말은 없었다.
“뭐야, 저 꼬맹이들은. 저 정도면 오늘의 우리들은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거다.”
“뭐라고?”
“한 달 동안 기운을 충전하면서 파워는 더욱더 강력해졌다! 안개도 짜증나는데 싸우자!”
“그 대결 요청,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시작이다!!!”
* * *
짙은 안개속의 대 결투. 화산 변동 능력자와 수류·화염 능력자간의 결투는 이 지대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가시거리 0.5m- 안개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것들이 저번보다 한 술 더 뜨네?!” 아프수가 소리쳤다. 이 괴물들은 뭐냐?! 전보다 더 강력해진 것 같잖아!
“우리가 좀 그렇지, 그렇다면 한번 우리의 힘을 시험해 볼까!”
“싸우자아아!!!!”
-쿠와앙…!
커다란 폭발음이 청랑 타워를 뒤흔들었다.
“시작됐다!”
1층 로비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인자성은 정장을 벗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었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들고 뛰어나왔다. 밖은 안개와 연기가 뒤섞여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저 멀리서 -퍽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자성은 한달음에 그 곳으로 달려갔다.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서로 간에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드러났다.
“수연아, 조심해!”
“뭐?!”수연의 뒤쪽에서 라바 아프수가 날아올랐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이미 늦었다. “이거나 먹어라앗!”
-쿠왕!… 쿵!
“수연아!”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지금!” 화가 잔뜩 난 마그마 티아마트가 훈에게 달려들었다.
-쿠웅!!!
“크아악!!!” 티아마트와 정면으로 부딪힌 훈은 저 멀리 튕겨져 나갔다.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다. 저 하늘 높이 솟아오른 바벨탑이여, 그대는 오반과 방자로 인해 무너지게 될 지나니!”
“그 소리랑 이번 일이 무슨 상관이야?!”
“그냥 하는 소리야, 어쨌든 타워는 바벨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거니까! 날아가라, 라바볼!!!”
아프수가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켜 라바볼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훈과 수연이 날아왔다.
“그렇게는 안 되지!”
-쿠우웅!!!
“뭐, 뭐지 저 몸놀림은! 센서의 저런 반응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건데?!” 노트북으로 수치측정을 하던 인자성이 당황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초(超) 능력의 발동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주먹이 그들의 싸대기를 갈겼다.
“으와아악!!!”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불칸 브라더스는,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그 능력이 사라지는 것으로 이노치 소멸허가는 종료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던 인자성은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역시 인간이 자연을 모두 알기에는 무리가 있구나….”
불칸 브라더스는 이제 평범한 민간인,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인자성과 훈, 수연에게 거듭 사죄를 하고 난 뒤 그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정식-하지만 비공식- 교육절차를 밟게 되었다.
몇 시간 후, 온 나라를 뒤덮었던 안개는 완전히 사라지고, 여객선 한 척이 부산항으로 입항했다.
불행히도, 이 배의 승객들 중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담긴 병을 들고 내리는 외국인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기 때문에 간단한 검문 절차만 거치고 그를 그냥 부산 시내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부산일대는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뉴스에서는 또 똑같은 말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산에서 일명 ‘7월 1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습니다. 부산과 김해 시내 곳곳에 살포된 이 바이러스에 의해 현재까지 사망자는 5천 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TITANIC - INFINITATI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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