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어느덧 8월 중순을 넘기고 있었다. ‘7월 1일 바이러스’는 19일에 정점에 오르면서 그 전파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바이러스로 1,000만 명의 무고한 생명이 잔혹하게 희생되었다. 루시타니아의 백신 공급시작에 이어 청랑과 바이엘도 백신 배포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내었다.
[2005년 8월 23일]
이날은 하남 시내의 모든 학교들이 개학하는 날이었다. 이 순간에 가장 몸조심을 해야 할 지도부급인 훈과 수연이 나란히 등교 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개학이로구나~!” 훈이 들뜬 듯이 말했다.
“넌 학교가 그렇게 좋아?” 수연이 언짢은 듯이 물었다.
“별로 좋지는 않지만, 집안에 틀어박혀서 썩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 말은 세계의 모든 백수들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런가? 나는 귀찮기만 하던데….”
“아 참! 너 이번에 나랑 같이 영화 같이 보러가자고 했잖아. 왜 안 나온 거야?” 훈이 어이가 없었다는 듯 말했다.
“그때 집안일이 있어서 못나간다고 말했잖아.”
“그런 기억은 나지 않는데요?! 불과 한 달 전 일인데?!” 훈은 자신의 기억력을 꽤 믿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그리고 난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 숙제를…어?!” 수연이 갑자기 멈춰 섰다.
“갑자기 왜 그래?”
“숙제를…!”
‘안 했나보구나’ 하고 생각한 훈은 가던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
“너…도?!”
“그렇다면…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 훈이 말했다.
“그 소리는…달려!!!” 수연은 냅다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훈은 빠른 속도로 수연을 앞지르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너, 너무 빨라!”
“전광석화다!!!! 으다다다다다다다다다앗!!!”
숙제를 가져오지 못해 슬픈 이 영혼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이 세계에 온지 얼마 안 된 새로운 바이서였다. (벌레 먹은 남자;;)
“저치들이 능력을 다룰 줄 안단 말이지, 미개인 주제에.” 그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제대로 밟아주겠어. 기다려라, 벌레들아!”
[청랑타워]
같은 시각, 인자성은 미약하게나마 바이서의 기운을 느꼈다.
“이번엔 어떤 놈이냐….”
그때 비서가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회,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 소란인가?”
“바, 바티칸이…!”
“뭐?”
[2005년 8월 2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를 이루는 7개의 언덕들, 그 언덕들 이외에도 또 다른 언덕이 있다. 신의 언덕, 바티칸. 신도들과 관광객들로 봄비는 이 곳 하늘에 루시퍼가 떠있었다.
“다들 죽어버려라!!!” 루시퍼는 오른팔을 위로 쭉 뻗더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삿대질을 가했다.
-쿠오… 콰아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 힘없이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건물 안에 있던 관광객들과 천주성교청 관계자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신 따위 믿는 것들, 다 죽어버리라지!!!”
진정한 증오의 힘이었다.
몇몇 관광객의 카메라에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검은 빛이 찍혔으나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이 포착된 것’이다, ‘곤충이 찍힌 것이다’라는 등 말이 많았다.
비서로부터 얘기를 들은 인자성은 곧장 TV를 켰다.
“마, 말도 안….” 인자성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교황성하께서는 붕괴 3시간 전에 바티칸을 떠서 지금은 프랑스에 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훈과 수연도 그 안에 섞여있었다.
“오늘 숙제 안 가져 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안 그래?” 훈이 수연을 보면서 말했다.
“오늘 담임이 폭주하는 거 방학전보다 강도가 더 세진 거 같지 않아? 난 그렇게 느꼈는데.”
“그래도 잘하는 애들한테는 잘 해주고, 못하는 애들은 죽어라 괴롭히니까.”
“얼씨구, 좋으시겠어요! 잘하는 애들 축에 껴서.” 수연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너도 잘하면 될 것 아냐. 어렵지 않은데. 넌 솔직히 지각만 안하면 될 것 같은데?”
“싫~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다 뭘.” 수연은 그대로 걸어 나가고 훈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저런 걸 뭐라고 하지? 자유인? 보헤미안이었던가?’ 훈은 사소한 것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충격파를 듣지 못했다.
-쿠아아앙!
“뭐야?!” 수연은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어떤 남자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남자가 훈을 노린다는 것을 알아챈 수연은 훈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어냈다. 다른 사람들은 수상해 보이는 그 남자를 보고 서둘러 피하고 있었다.
“엎드려!” 수연이 소리쳤을 때 훈은 이미 넉다운된 자세로 바닥에 뻗어있었다. ‘내가 너무 세게 끌어당겼나?’
당황하는 수연을 본 그 남자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호오, 네가 타이타닉 함대의 부총사령관인가? 그리고 거기 기절해 있는 건 총사령관일테고. 역시 소문으로 듣던 거랑 별 차이가 없군.”
“넌 누구지?” 수연이 말했다.
“뭐라고 해야지 알아들을까, 내가 바이서라는 거는 진작에 알고 있겠지?”
“생김새로 보나 너는 바이서가 확실해.”
“무슨 증거로? 논리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게 설명을 해봐!”
“이…내 앞에서 논리란 말 꺼내지 마!” 수연은 펜던트를 꺼내들었다.
‘나보다 강한 능력자인가…!’
“그보다, 넌 누구지?”
“아하, 내 소개를 잊을 뻔 했네. 나로 말하자면, 바이서계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베를리니아와 대등한 라이벌! Irregular다!”
“베를리니아를 알아?!” 수연은 당황해 했다.
“너희도 그를 알고 있는 모양이지?”
“당연하지, 누가 그 더러운 썩소를 잊어?!” 수연은 분한 듯 소리쳤다.
“그치가 그런 걸 좀 잘하기는 하지. 그나저나 뭐하나, 안 싸울 텐가?”
“때마침 할 참이었거든!” 수연은 펜던트를 대각선 방향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주무기인 ‘Saint Lance'가 튀어나왔다.
“오오, 이게 말로만 듣던 초(超) 능력자의 레벨인가!” 이레귤러가 중얼거렸다.
“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설마 너희들의 세계에선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아 아니… 초능력이란 용어가 워낙에 한정된 의미가 있어서… 뭐 숟가락 구부리기라던가, 아니면 하늘에 둥둥 뜨는 것?”
이레귤러는 순간 자신이 가혹한 수련을 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숟가락 구부리기나 공중 부양 등은 모두 밑바닥 시절인 어렸을 때 다 해봤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템푸스 디펜도 놈들의 능력까지는 못 따라 잡은 것 같군. 보나마나 너희들의 대장은 프로핏이겠지?”
“아니. 진짜 대장은 여기 쓰러져있고, 프로핏은 저기 저 청랑 타워에 있어.”
“오호, 너희 조직에는 비밀이란 게 없는 모양이지?”
“조직이 아니라, 함대야!”
“먼저 간 프로핏과 바이서가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보군. 낙제의 F, Fleet…. 어떤가, 너희들도 낙제점수를 받고 이 인생을 끝낼 텐가?”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누군가가 이레귤러를 향해 보도블럭을 빼서 던졌다. 보도블럭은 이레귤러의 주먹에 맞으면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수연은 곧장 뒤를 돌아봤다.
그 자리에는 훈이 버티고 서있었다. 훈은 일어나자마자 수연과 다투기 시작했다.
“야! 끌어당기면 당기는 거지 그렇게 세게 당기는 게 어딨냐?!”
“어머! 넌 지금 생명의 은인한테 그게 할 소리야? 기껏 걱정해서 구해줬더니만!”
“그래도 너무 아팠다고!”
“내 힘은 널 기절시킬 정도로 세지 않아!”
“그만, 그만, 제발 그만해!” 소리 친 사람은 이레귤러였다.
“저건 또 뭐야?” 상황을 모르는 훈이 소리쳤다.
“보면 몰라? 바이서잖아!”
“저 머리 길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난 아저씨가?”
“맞아! 난 바이서야! 바이서 맞다고! 왜 아무도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이레귤러는 억울한 듯이 소리쳤다.
“그래? 바이서면 우리의 적이고, 우리의 적이면 쓰러뜨려야 하는 게 정상이지!” 훈도 펜던트를 휘둘렀다.
“또…!!!” 이레귤러는 경악했다. 조그마한 펜던트들이 어느새 커다란 대량살상무기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술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레귤러는 굴복하지 않았다.
“훗, 창과 칼이라. 그런 걸로 이 몸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엄청난 오판을 한 거야, 너희 둘은.”
“웃기는 소리 작작해라!!!” 훈과 수연은 빠른 속도로 이레귤러를 향해 날아왔다.
-카아아앙! 엄청난 소리가 났지만 무기들은 쉴드를 뚫지 못했다.
“?!” 둘은 매우 당황했다.
“하하, 그런 걸로 나의 이 강철 쉴드를 부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하하하하!!! 그럼, 이번에는 내가 간다!” 이레귤러는 두 손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어…”
두 사람은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시민들을 지켜!” 훈이 소리쳤다.
“그 다음은 청랑 타워고?!” 수연이 물었다.
“그래! 전에도 말했지만 회장님, 아니 우리 시대의 프로핏은 우리가 지킨다!!!” 다른 때와 다르게 훈의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날이었다. 그때, 이레귤러가 힘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 멸망해 버려라!!!”
“오프셋 플레어(Offset Flare)!” 수연이 창을 날렸다.
“뭐냐!!!”
이레귤러의 힘은 창 앞에서 상쇄되었다.
“이, 이건….” 이레귤러는 입을 닫지 못하였다.
“오늘은 조금 약했지마는, 할 건 해야 되니까!”
“?”
두 사람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요호, 이것이 그 ‘최종 필살기’라 이 말이지?” 이레귤러는 반죽음을 눈앞에 두고 중얼거렸다.
“군소리 필요 없고, 바로 필살기 들어간다!” 하는 외침과 함께 이레귤러의 얼굴에는 훈과 수연의 주먹이 동시에 꽂혔다.
“으우와아왁!!!” 아마도 하관이 박살났을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먹 내다꽂기로 싸움은 마무리 되었다.
훈과 수연은 해롱해롱하고 쓰러져있는 이레귤러를 끌고 기지로 내려왔다.
인자성은 바이서를 끌고 내려오는 그들을 보고 놀랐다.
“너희들이 해치운 거냐? 바이서의 반응이 높게나온다 싶더니, 역시나….”
“그나저나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아직 정신도 못 차리고, 깨어나면….”
“지금 상태를 봐선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다.” 인자성은 경악을 하면서 말했다.
하여튼 이날의 소동도 마무리되고, 훈과 수연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비하면 이것은 약과라고 할까나…. 타이타닉과 세계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2005년 9월이…
[2005년 9월 11일]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한 교황은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세계무역센터 부지)에서 연설을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도로서 참혹한 테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계속 해나갈 것이며…(이하 생략)”
그리고 몇 시간 후, 교황의 비행기는 JFK공항을 이륙해 많이 복구된 히드로 공항으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제4회 주둔 함대 투표가 영국 전역에서 실시되기 D-4일 째였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TITANIC - INFINITATIS FABULOSUM HIS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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