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신께서는 모든 사람의 목숨을 거두라 하셨다. 그것이 내가 들은 전부다. -체포된 바이러스 살포범의 진술 중』
[2005년 7월 4일]
이른바 ‘7월 1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는 전 세계에서 10만 명의 수치를 넘기고 있었다. 이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다시는 뛰지 않을 심장을 부여잡고 운명을 달리하였다. 이 심장마비는 강심제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아 전 세계의 약국과 제약회사의 강심제가 동이 났지만, 곧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는 다시금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강심제 : 약하거나 불완전한 심장의 기능을 정상으로 돌이키는 데 쓰이는 약. 이 약은 심장의 근육과 중추신경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함으로서 심장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만들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괴사하는 심장을 살릴 수는 없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자신들의 연구결과 이 바이러스는 추위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전 세계의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7월 1일 바이러스는 추위에 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영하 1도의 비교적 추운 환경에서 실험을 한 결과, 바이러스의 97.45%가 활동성이 현저히 낮아졌고 5분 뒤에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자가 증식을 하지 못하니까, 추운 환경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사멸한다는 소리군요.”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강심제를 써버리는 바람에 더 큰일이 발생했습니다.”
“뭐라고요? 강심제는 효과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죠. 하지만 몇몇 바이러스 개체가 이 항생제를 적으로 인식하고 변이를 시작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증식이 아니라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화?!”
“이 변이된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에서 먼저 발병했으며 해상교통과 육상, 항공로를 타고 급속히 번지고 있습니다.”
“지금 청랑과 바이엘에서 만들고 있는 백신이 배포되고, 그 후에 내성이 생긴다면… 상황은 치명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라… 인류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겁니까?”
“인공심장을 가진 사람들과 동물들을 빼면, 심근이 있는 동물들은 모두 죽게 됩니다.”
“맙소사….”
“바이러스가 퍼지는 지역을 춥게 만들 수는 있습니까?”
“한랭한 기단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 합니다.”
과학자들은 침묵에 잠겼다. 이제 백신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쿠우웅… 쉬우우! 고막을 찢는 듯 한 소리가 창문너머로부터 들려왔다.
“뭔 소리지?” 하고 사람들이 창가 쪽으로 돌아보는 순간, 미사일이 창을 깨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겁을 하면서 도망갔다. 하지만 미사일은 폭발하지 않았다.
“이게 뭐지?” 호기심 많던 직원이 겁 없이 기어나가 미사일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미사일 표면에 써져있는 글자들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 글자가 한글이었음은 몇 년 후에 밝혀지게 되었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을 읽어 내려가던 직원은 맨 아래의 익숙한 알파벳을 발견하고 즉시 읽기 시작했다.
“Ave Victory Lusitania?!” 순간 문구의 가운데가 벌어지며 타이머가 나왔다.
“폭탄 타이머다!!!” 외침과 함께 이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건물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미사일 내부에서 나오는 듯 한 열이 점점 올라가고, 이 열의 온도는 화재 경보 시스템의 작동을 유발하였다.
-키이잉!- 전 건물의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는 방화벽으로 봉쇄되었고, 딱 이 시점서부터 미사일의 온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Virus Sprinkler, operate.- 딱딱한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렸고, 미사일에서는 작은 노즐이 나와 무슨 액체를 분사하기 시작했다. 오도 가도 못하던 사람들은 이 공기 중에 뿌려지는 죽음의 향기를 맡고 운명 직전의 평화를 만끽하였다. 그리고 화려한 폭죽놀이가 모든 흔적을 없애버렸다.
바이러스 확산 저지를 위해 모든 계획을 전두지휘하던 WHO가 정체불명의 폭탄 테러를 당하자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제 테러리스트가 이 일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충분해졌다. 테러 직후, CNN에 테러리스트들의 요구 조건 사항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전달되었다.
“이는 전쟁을 원하는 자들을 징벌하기를 원하시는 신의 심판일 뿐이다. 세계는 우리 앞에 백신을 갈구하면서 무릎 꿇을 필요가 없다. 진심으로 신을 믿고 문에 십자가를 붙여놓으면, 악마의 바이러스는 그대들의 집을 지나치리라.”
이 황당한 소리에 인류는 이들에게조차 대비책(백신)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인류는 진정한 패닉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최초 살포 후 4일 동안 25개국 15만 5000여명을 지옥으로 몰고 갔으며, 1초당 3명이 바이러스에 희생되어갔다. 그리고 그 속도는 줄면 줄었지 그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항공사들에 모든 국제 항공선을 폐쇄하라 명령하고, 꼭 필요한 입국자만 입국을 허용시켰고 나머지는 돌려보냈다.
세계가 이지경이 되었는데도 타이타닉 함대의 훈과 수연은 학교에서 편안하게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곧 방학이 시작될 것 이었으니 수업시간은 단축되고, 중학생들한테는 제대로 놀아볼 절호의 찬스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학교는 기말고사 시험 중이었다. 이 당시에는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아서, 시험이라는 것을 치러 각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였다.(물론 지금은 강제적, 비 인륜적인 시험이 모두 사라졌지만 말이다.)
훈은 모두 풀은 자의 여유를, 수연은 모두 찍고 자는 자의 여유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난 후 가채점을 해본결과 훈은 쓰러졌으며, 수연은 웃었다. 그 이유는….
“못해도 70점 이상은 나와야 되는데 왜 65점이냐고! 이번 시험 망했어!!!” 훈은 말 그대로 절망의 늪에 빠졌다. 적어도 이번 시험 평균이 73점은 나와야 했지만, 이 점수라면 70점 데드라인도 못 넘기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시험에 얽매이지 말자는 신념이 이럴 때는 참으로 불리하기도 했다.
“찍었는데 65점이야!” 시험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던 수연은 이 점수를 받고나서 기뻐했다. 대개 찍고 먼저 자는 학생들의 경우 3~40점대가 보통이지만, 수연은 일명 찍신(찍기의 신)의 경지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희비가 교차하던 두 사람은 시끌벅적한 교실 앞에서 만나 시험에 대한 불만사항을 토로했다.
“이번 시험 잘 봤어?” 수연이 훈에게 물었다. 이는 대개 ‘나 시험 잘 봤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니 이런 개 같은 날의 오후 같으니라고. 내 박식한 머리에서 이런 점수가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야!” 훈은 억울한 듯 소리쳤다.
“난 시험 시작 때부터 모조리 찍고 잤는데 60점대야.” 이걸 또 자랑이라고 말하고 앉아있는 수연이었다.
“타이타닉 함대 총사령관의 시험 성적 평균이 70점대도 안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날 비웃겠어… 어?! 찍었는데 60점대라고? 너 몇 점인데?” 훈은 역시 쓸모없는 걱정을 먼저 하고 있었다.
“65점. 너는?”
“65점. 점수가 똑같네?”
“되게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시험은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야. 난 공부가 달리고 너는… 찍기 실력이…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찍기 실력좀 전수해 주면 안 되겠냐?”
“그거야 어렵지는 않지만, 일단 모르는 건 3번이고, 한번 찍은 답은 다시는 바꿔선 안 돼. 맨 먼저 찍은 답이 정답일 확률이 75%라는 걸 TV에서 봤어.”
“아아아, 나 답 6개 바꿨는데 다 틀렸어! 바꾸지 말걸 그랬나?” 훈은 아까운 듯 소리쳤다.
“어차피 지나간 거, 얘기하지 말자. 내일이 드디어 시험 마지막이니까. 이제 그 뒤면 방학이다!”
“난 지금도 타이타닉 함대의 체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골이 빠지도록 고생하고 있어. 결과물이 거의 다 됐는데 보여줄게.” 훈은 시험지를 꺼내들었다.
“맙소사, 이게 뭐야?” 수연은 시험지 뒷면에 빼곡히 적혀있는 훈의 구상을 보고 놀랐다.
“타이타닉 함대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바로 대원들이야. 대원들이 없으면 그 함대는 이미 함대가 아니게 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 위로는 타이타닉 함대의 모든 것을 총 관장하는 ‘위원회(The Council)’이 있어. 위원회에서는 함대의 모든 사항들을 결정해. 예를 들면, 대원간의 충돌 방지, 무기 관리, 심지어는 해명까지도 해야 돼.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 함대의 핵심이 되는 집단이 있는데, 바로 우리들이야. 그런데 말이야, 간부들의 집단에 걸맞는 약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뭐가 좋을까?”
“―음, ‘간부모임’은 어떨까?”
“무슨 계모임이냐…. 그것보다 간부라…, 아!”
“뭔데? 뭐 좋은 단어라도 떠올랐어?”
“우리는 최고급 간부니까 ‘TOP BRASS’가 좋겠네! 너는 뭐 좋은 단어 떠오른 거 있어?”
“음… 모르겠어, 더 이상 좋은 단어가 안 떠올라.”
“흠… 그럼 그냥 이대로 가는 걸로 하지. 이의 없지?”
“물론!”
“그리고 수연아, 우리가 타이타닉 함대에 ‘탑 브레스’라는 건 너와 나 둘만의 비밀이야. 이 지구위에서 더 이상 우리들의 비밀을 숨길 수 없을 때면 그때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겠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이중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때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가, 사건이 일어나면 자신들의 능력을 백배로 발휘하는 전사들….
[며칠 뒤, 10일 밤]
청랑타워는 어두운 하남의 하늘 속으로 솟아있었다. 이 빌딩의 꼭대기에 위치하는 인자성의 집무실에 제약부문 부장이 급히 뛰어들어 왔다.
“회, 회장님!”
“무슨 일인가, 자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 그게 아니라, 백신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백신으로 실험을 해보니까, 바이러스를 투여한 모르모트들이 다시 살아났어요!”
“그게 정말인가?”
“예, 백신의 효과를 입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우리 회사는!”
“이것이 모두다 회장님의 공로입니다.” 부장은 90도 각도로 회장에게 인사했다.
“아닐세, 괜찮아. 그리고 이 소문을 전 세계의 주요 증권거래소에 퍼뜨려서 일단 제약 관련 종목의 주가를 상승시키도록 해.”
“왜 갑자기 그런 무리수를 두시려고 합니까, 회장님?”
“잔말 말고 시킨 일이나 열심히 하게!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면 자네도 승진의 기회를 주도록 하지.”
“정말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부장은 그 길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인자성은 주식 생각과 함께 마음이 착잡해졌다. ‘함대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려면 이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 얘들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무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 당장 돈이 필요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돈을 훔쳐가는 무장 강도의 짓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을 놓고 내가 너무 경솔하게 행동했었다. 아직도 그 일을 정말로 후회 한다….』인자성의 자서전 중에서
TITANIC - INFINITATI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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