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1일]
이날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다. 국회도, 경찰도, 보통시민들도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평화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차가운 시선이 있었다.
“이봐 아프수, 그런 눈길로 저들을 쳐다본다고 저들이 우리를 알아줄 것 같아?” 마그마 티아마트가 과거 세계를-이들에게는 과거- 내려다보던 라바 아프수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바이스에서도 우리들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어. 우여곡절 끝에 바이서가 되는 건 성공했지만 그것도 그 인자성이라는 녀석 때문에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꼴이 되었다고. 며칠 전에 그 녀석을 봤을 때 ‘그 때 그 녀석’이라는 걸 눈치 챘어야 되는 건데… 엉뚱한 애들이 능력을 쓰는 바람에 그 꼬맹이들 상대하느라 없던 힘까지 다 써버리고, 되는 일이 없어!!! 짜증나!!!”
이들과 인자성간의 질긴 인연은 7775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인자성은 템푸스 디펜도의 떠오르는 샛별이었고, 불칸 브라더스는 바이서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지던 때였다. 이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 세 사람이 처음으로 조우한 것은 7775년 9월에 있었던 “마르스 대지진”때였다. 이때 인류는 이미 전 우주로 퍼져나가 살고 있었고, 화성과 금성, 타이탄 행성, 심지어는 목성과 토성에까지 테라포밍 작업을 실시해 우리은하계에 인류가 만든 식민지만 159개에 달했고 인류는 전 우주에 퍼져서 살고 있었다. 테라포밍이 완료된 화성에서는 2억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었고, 지구와는 다른 사회체계를 만들어 자급자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평화로운 화성을 덮친 것은 수 억 년 만에 일어난 대지진이었다. 진도 9.4의 강진은 화성 남반부를 습격해 수 천 명을 다치게 만들었다. 이 지진은 ‘악’의 명령을 받은 바이서들이 저지른 짓이었다.
그들은 불칸 브라더스였다.
“이~하!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 티아마트?”
“아무래도 올림푸스 화산이 좋겠지? 거기가 빵-!하고 터지면 동쪽의 ‘선’의 식민지를 모두 부셔버릴 수 있으니까!”
“그럼 Let's party time!”
“파티타임 좋아하시네!” 한 남자가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 올라서서 소리쳤다.
“넌 또 뭐냐?”
“긴 말할 필요 없고, 이거나 먹으시지!”
순간 밝은 빛이 그를 감쌌다.
“흐앗!” 불칸 브라더스는 강렬한 빛에 눈을 뜨지 못했다.
“내 능력은 조금 눈부실 거다!”
그는 바로 인자성이었다.
“누가 너희들한테 이곳에서 깝치고 다닐 권리를 줬지?”
“왜? 지금 보니까 템푸스 디펜도도 별 거 아니구만!”
“그러셔? 우리가 진짜 별 게 아닐 정도가 되는지 맛 봐라!”
“그딴 유니폼이나 맞춰 입고는 유치해서 정말… 못 봐주겠다.” 불칸 브라더스는 좀 더 신나는 전투를 위해 상대방을 예열(?)시키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냐?”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몰골이라고 말할까?”
인자성은 본부와의 통신에 들어갔다. 커다란 규모의 전투가 일어날 때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시에는 반드시 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이노치 소멸허가를 신청합니다.”
이노치 소멸허가(INOCHI 消滅許可). 그것은 곧 “죽여도 괜찮다”는 일종의 암호였다. ‘이노치’는 이미 사멸한 일본어 단어로서 ‘생명’이란 뜻을 갖고 있다. 템푸스 디펜도는 적들의 기밀 해방 작전-암호 해독- 을 방해하기 위해 사멸한 언어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라틴어가 템푸스 디펜도의 주요 구문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이아 성-지구- 본부와의 통신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본부의 극 초(極 超) 슈퍼컴퓨터가 해당 상황에 대한 판별을 완료하고 그에 해당하는 해결 법안을 송신하게 된다. 이 과정에는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본부에서 알림. 해당 상황은 선의 인민에게 극히 위험한 상황으로 판별 되었으므로 이에 해결 법안으로 이노치 소멸허가 진행 허가.”
“이노치 소멸허가는 너무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조금 아프더라도 참아줘. 알았지?”
“뭐, 뭔 개소리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쉽게 당해줄 줄 알아!”
“잘 들어, 너희에겐 이미 12번의 이노치 소멸허가가 공항 마일리지처럼 적립되어있어. 하지만 그걸 또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바람에 지금까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너희들은 오늘부로 죽.는.거.다.”
인자성은 팔목에 달린 Hyper Cradle을 가동시켰다. 이 포안은 골프공 크기의 에너지 탄환을 발사하는 데, 상대방을 산산조각 낼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히페르 크라들레, 악투오수숨!” 외침과 동시에 탄환이 시속 215km로 발사되었다. 누구도 이 공을 피할 수 없다. 오직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걸 지켜봐야만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상황에 끼어들었다.
“Mega Escutcheon!”
“쿵!”
큰 폭발이 일어나 모두가 저 멀리로 날아갔다.
쿵― “크억!” 인자성은 그대로 5m나 날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은 완전히 날아간 듯 보였다.
“무, 무슨 일이지? 누가 날 막았어!”
“그 누가는 바로 이 몸이시다.” 인자성은 자욱한 연기를 헤치며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봤다. 그는 일어설 만한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기절직전에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로 다가와 얘기하는 것을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겨우 보았다. 그는 그 후 기절했는데, 그때 그 남자-남자라고 생각된다.- 가 얘기했던 말은…
“이 몸의 이름은 로트실트 폰 베를리니아다. 너나 ‘선’ 인간들은 아직 우리 위대한 ‘악’을 이기기에는 실력이 한참 딸린다는 것을 알려주러 친히 강림했다. 그럼 이만. 너는 거기서 편히 주무시지, 영원히.”
[다시 2005년, 루시타니아의 비밀기지 ‘운터베르크’]
베를리니아는 때마침 인자성과의 첫 대면을 루시퍼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죠?” 얘기를 듣고 의문이 생긴 루시퍼였다.
“불칸 브라더스를 혼내주고 나서 그들을 알파 센타우리b로 쫓아 보냈지. 그들은 잘못하면 우리 바이스의 식민지까지 파괴할 뻔했어. 하여튼, 불칸 브라더스가 그곳에서 타임워프를 어떤 식으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기운이 여기에서 느껴진다고요?”
“그래,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만약 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나의 세계 정복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지요. 지금 7월 1일 바이러스 사망자가 어느 정도 되죠?”
“바이러스 출현 11일째, 총 사망자는 278만 명으로 집계됐다.” 베를리니아가 페이퍼 모니터-접히는 LCD-를 들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말했다.
“아니야, 속도가 너무 느려….”
“뭐? 지금 이 정도가 최고 속도야! 바이러스는 이 이상으로 속도를 높이지 못해! 자가 증식이 불가능하니까!”
“그럼 또 다른 인구과밀지역에 뿌리면 되겠네요.”
“설마….”
“설마(雪馬)는 눈 내린 말이고, 그 설마가 사람을 잡습니다. 그런 속담이 이 나라에 있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이렇게 루시타니아에 의한 음모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을 무렵, 영국에선 타이타닉 함대 주둔 기지가 설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날이 바로 주둔 기지가 모두 완공되어 활동을 시작하게 된 날이었다.
[2005년 7월 11일, 영국 리버풀]
사정상 참석을 못하는 훈과 수연은 화상통신으로나마 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이 훈아! 격려사정도는 해줘야지. 네가 이 함대의 총사령관인데 목소리라도 나가야 될 것 아니냐, 응?” 인자성이 화상통신으로 현장을 보던 이들을 보고 말했다. 하지만 훈의 시선은 모니터에 꽂혀있었다. 정신은 이미 리버풀에 있는 듯 했다.
“얘가 지금 긴장을 해서 정신이 없어요. 근데 그 격려사라는 거 안 하면 안 되나요?” 모니터를 보던 수연이 말했다.
“갑자기 왜? 얘 원래 나서는 거 싫어해?”
“부끄럽대요.”
“뭐?!”
“얘가 이래 뵈도 소심하기론 전 세계 0인자라고요.”
“오오… 그랬구나, 난 또 그것도 모르고.”
“듣자듣자 하니까 정말! 누구 개망신시킬 일 있어?!” 옆에서 듣다 못한 훈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드, 듣고… 있었어?!”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이 세상 사람들 다 듣겠다.”
“보니까 다 듣는 것 같은데?” 인자성이 손가락으로 모니터 위를 가리켰다. 모니터 위에는 약간 크고 조그만 구멍이 두 개가 있었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럼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이…”
“리버풀 기지에 방송되고 있단 얘기지.”
훈은 말없이 그대로 엎드렸다. 훈은 엎드린 채로 말을 꺼냈다.
“오늘이 내가 이 세상에 나온 날이야. 그런데 이런 망신을 생일 선물로 받다니… 대원들이 나를 뭐로 생각하겠어? 응?!” 훈은 울먹이고 있었다. 수연도 훈의 생일은 알고 있었지만 기지 완공식과 앞으로 있을 여름 방학에 정신이 팔려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게다가 울먹이는 훈의 얼굴은 수연에게 미안함만 남겼다.
“미,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 마….”
“괜찮아, 이런 일에는 익숙하니까. 너도 내 초등학교 때 모습은 아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훈은 촉촉히 젖은 눈가를 닦았다.
“….”
기지의 완공식은 훈의 소심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뻔했던 날이었다. 사실 그날 리버풀 기지에서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그때 리버풀 지역의 인터넷이 갑자기 끊어져서 그랬다고(소문에 의하면 라우터가 부서진 모양이었다.). 하늘이 훈을 도운 듯 싶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훈의 생일이 지나가고, 타이타닉은 타이타닉대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대한민국은 광복 이래 전 한반도에 걸친 투표를 시행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2005년 7월 16일, 서울 세종로]
이날 서울 광장과 세종로는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모두가 통일헌법 제정 투표를 하기위해서 모인 것이었다. 말이 통일헌법 제정이지 이 투표는 사실상의 통일한국의 탄생을 알리는 투표였다.
다음날, 투표 결과가 공개되었다.
“이번 투표는 남한, 북한에서 모두 평균 98.44%의 투표율을 기록, 이는 광복 이래 최초이자 최대의 규모입니다. 모두가 통일 조국의 탄생을 노래합시다!” 대통령이 직접 세종로에 설치된 단상으로 나아서 말했다.
“통일 헌법 만세! 통일 조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
거리의 시민들은 너도나도 통일 조국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탄했다. 세계에서도 축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국은 통일 관련 뉴스와 정보를 내보냈다.
“이번 한국의 통일에 의해 동북아시아 정세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국토가 분단된 티모르섬의 주민들도 이번 한국의 통일에 감명을 받아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인 서티모르의 통일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일한 스탈린주의 국가로서 남아있던 북한이 역사 속으로 사라짐에 따라 중국도 공산당 정권이 위협을 받기 시작해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통일 이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백두산 별장에서 한국 드라마를 12시간씩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하며…”
통일 헌법 제정 직후, 국민들은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만주와 우리 민족의 터전인 간도를 되찾기를 희망했다. 때마침 “대(對) 중화 협상론”에 의거해 열린 회의의 결과물이 통일 3일 뒤에 발표되었다.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에게 전쟁 보상금 3000만 위안(약 66억)과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대한민국에 영구 양도하기로 하였으며….”
간도되찾기운동본부의 숙원인 간도 찾기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값진 희생이 뒤 따른 후에 온 결과물이라 모두가 씁쓸해했다.
[다음날, 청와대]
“자네가 날 보자고 하는 게 몇 달 만이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훈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길게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각하, 이번에 얻은 영토 중에 돈화(敦化)와 그 주변의 땅을 타이타닉이 얻었으면 합니다.”
“무슨 이유로?”
“저번 전쟁은 저희가 아니었으면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저희도 그에 달하는 희생을 당했기에, 얼마 안 되는 보상금 대신 땅을 얻고자하는 것 입니다.”
“흠….”
“이번 보상금으로는 모든 피해를 보상해내지 못합니다. 청랑의 피해금액도 만만치 않습니다. 각하, 부탁드립니다.”
“어떤 식으로?”
“?”
“타이타닉에서 원하는 대로 땅을 주려고 하면 분명히 여론이 들고 일어날 텐데, 어떤 식으로 감출 생각인가?”
“그 말씀은… 땅을 할양하겠다는 의사 표현…!”
“이 나라가 자네들 덕분에 살았으니, 어떻게든 보상은 해야지.”
“가, 감사합니다, 각하!”
희대의 영토 할양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간도는 양강도와 함경북도, 동간도부로 나뉘어 졌고, 우후린 강의 서부는 모두 타이타닉 함대가 직접 관할하는 땅이 되었다. 브리타니아 함대의 포클랜드 제도이래 함대가 직접 관할하는 영토가 생긴, 두 번째 사례였던 것이었다.
TITANIC - INFINITATI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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