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물을 커피포트에 적당히 담아 스위치를 올려놓은 뒤 커피 믹스 2포를 뜯어 각각의 잔에 넣는다. 원래 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왕 타는 김에 내 것까지 같이 만들어야지.
물은 금방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했고, 다 끓자마자 조금이라도 식기 전에 재빨리 커피포트를 들어 올린다.
역시 커피의 생명은 물의 양이라고 할 수 있지. 약 100~120mL를 완벽하게 붓는 것은 라면 물 조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다. 10mL 차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을 흐려놓기도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붓기 시작했다. 좋았어! 내가 생각해도 완벽했다. 아마 자판기보다도 더 완벽했을 것이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커피 두 잔을 들고 선미의 방으로 향한다.
"고마워."
무뚝뚝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든 그녀는 입가에 잔을 가져댄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잔을 내려놓는다.
뭐, 뭐가 잘못된 거지?
"뭐야? 이거 설마 커피 믹스야?"
"응? 으응."
선미는 믿을 수 없는 듯,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왜 저러지?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잠시 후, 그 애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오빠. 지금 제정신이야?"
"뭐, 뭐가!?"
아니,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 커피 믹스로 만들어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건가?
그 애가 이어서 한 말은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내가 핸드 드립 커피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 걸 알면서도 이런 설탕물을 타왔단 말이지?"
"해, 핸드 드립!?"
아니, 그거야말로 무슨 말도 안 되는 드립이란 말인가? 언제부터 네가 그런 걸 마셨다고? 그런 건 사회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나 마시는 것 아니었던가!
나로서는 황당할 뿐이었지만, 취향이 급변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니만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이 애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해서 엉뚱한 행동만 하는 내가 황당해 보일 뿐이겠지.
"미, 미안. 갑자기 타는 법을 까먹어서…."
"……."
"그, 그리고 너한테 빨리 전해 주고 싶어서 급하게 타느라 어쩔 수가 없었어. 다음부턴 제대로 할게."
선미는 내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흥. 하는 수 없지. 그냥 마셔줄게."
휴우.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치 이런 건 배수구에 쏟아버리고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할 것만 같았기에….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선 억울하기만 하다고. 어휴. 알지도 못했던 핸드 드립 기술까지 배워야 하는 건가.
애당초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는데 헷갈리게 커피 믹스가 왜 있느냐는 말이다.
어쨌든 내 입맛에는 딱 맞는 맛이었지만, 무표정인 채 말없이 홀짝거리기만 하는 선미를 보니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때? 맛은? 괜찮아?"
그 애는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흥. 쓸데없이 달기만 할 뿐이거든?"
으음. 역시 선미에게는 안 맞는 건가?
"정말이지. 내 전용 바리스타로 일할 자격을 부여받았으면 책임감을 갖고 일하라고."
바, 바리스타? 내가? 그것도 무려 전용? 정말 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던 모양이군.
어쨌든 끊임없이 홀짝이며 마시는 것을 보면 그래도 마실 만하다는 뜻이겠지?
"오빠."
절반 정도 마신 선미는 잔을 내려놓고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으, 응?"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인가. 어쩐지 이번 선미는 위압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다 마신 뒤에, 나한테 공부를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을 주겠어."
"고,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시험을 칠 때마다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는 몸이다. 선미에 대해선 직접 성적표를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가끔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제법 상위권에 속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 차이가 많다면 모를까 고작 한 살 차이일 뿐이니, 선미가 나를 가르친다면 모를까 그 반대의 상황은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응.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하, 하지만, 난 공부 못하는데? 아마 네가 혼자 자습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걸?"
분명히 말하는데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가르쳐 주고 싶을 정도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시간 낭비인 일을 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해인 것이다.
그렇지만, 선미는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한 번 배운 거니까 어느 정도는 알 거 아냐? 나도 오빠가 다 풀 거라는 기대 같은 건 하지도 않으니까."
"아니, 어느 정도도 무리야. 내 성적을 보면 너도 이해할 수 있을걸?"
"아, 정말!"
그 애는 갑자기 화를 내고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외친다.
"오빠 같은 건 그냥 응. 알았어. 하고 가르치면 되는 거야! 모르는 건 그때 가서 볼 일이지, 시작하기도 전에 왜 그렇게 포기부터 하는 거야!?"
"아, 알았어."
기백에 밀린 나는 얼떨결에 대답한다.
하긴.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모르면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모른다고 욕먹을 거도 아닌데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건 한심한 일이다. 선미가 나보다 낫군.
선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얌전하게 커피를 마신다.
"알면 됐어."
내가 곧바로 인정해서 그런지 금방 마음이 풀어진 듯했다. 으윽. 오빠로서 면목이 없다.
딱히 내가 삐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뒤로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동안 서로 아무 말 없이 뜨거운 커피만 홀짝이다가, 선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아깐 내가 좀 심했어."
"응?"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물었다.
"그…오빠 같은 거라고 말했던 거. 진심은 아니었으니까…."
그 애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미안해서인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니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괜찮아. 신경 안 쓰니까."
실제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야 누구나 순간적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고, 정말로 비난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을 테니까.
"…흥."
선미는 잔을 높이 들어 올린다. 잔에 얼굴이 가려져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라? 가만있어봐. 커피니 뭐니 하며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사이좋은 것 같지 않아? 우리들?
적당히 다투기도 하고, 부탁도 하거나 하면서 말이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는 얼굴 한 번 보인 적 없는 사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으음. 단 두 번의 상황을 바꿨을 뿐인데, 이 정도면 내가 바랐었던 현실과 상당히 근접한 상황이 아닌가. 정말이지 흰 돌의 힘은 위대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LT] 여동생 만들기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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