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박세호.”
2-4반 교실에 들어선 세호는 자신을 부르는 안경잡이 소년 성훈을 발견했다. 그는 그의 친구인 현모와 함께 책상에 앉은 채 미소로써 세호를 반기고 있었다. 세호는 피식 웃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래, 너네들 어제 뛰었다는 레이드 어떻게 됐냐?”
성훈과 현모는 세호가 초등학생 때 같이 만난 친구들이다. 우선 안경잡이 성훈은 여러 가지 게임을 섭렵한 흔히 말하는 오타쿠라고 볼 수 있다. 현모 역시 성훈처럼 게임을 좋아하지만 성훈이보다 실력이 딸리기 때문에 성훈에게 자주 구박을 받아오고 있었다.
세호 역시 두 사람의 영향으로 같이 게임에 빠졌고, 시간이 나면 두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
“뭘 당연한 걸, 내가 캐리했지. 안 그래? 남들 다 피하는 보스 스킬 맞고 죽은 현모야?”
성훈은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현모를 바라보았다. 현모는 당황하며 항변했다.
“야, 난 억울해. 솔직히 거기서 몇 대 더 쳐도 잡혔잖아. 그래서.......”
현모가 얼굴까지 붉히며 항변했지만 성훈은 오히려 현모를 놀려댔다.
“응~ 뭐라고? 보스 막타 치려고 욕심 부리다가 죽은 트롤이라서 잘 안 들리는데?”
“으윽, 이걸 그냥...!”성훈은 현모가 발끈하면서 부글거리는 모습이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세호 역시 두 사람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웃어댔다.
“야, 야. 쌤 왔다. 조용히 해봐라.”
그 때, 국어 교사이자 2-4반 담임 교사를 맡고 있는 고은영 선생이 교실에 들어왔다. 세호를 비롯한 학생들은 그제야 자기네 자리로 돌아갔고 교실을 가득 메웠던 수다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교실이 조용해지자 은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지각한 사람........ 없군. 너희들한테 몇 가지만 전해줄 테니까 지금 잘 듣고 나중에 못 들었다고 징징대지 마라.”
그녀가 전해 준 내용은 다음 주에 모의고사가 있으니까 틈틈이 공부하라는 내용, 요새 학교 화단에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오늘부터 쓰레기 버리다가 걸리면 일주일 동안 봉사 활동을 시키겠다는 내용, 어제 독서실에서 휴대폰을 발견했는데 잃어버린 사람 있으면 교무실로 가라는 내용, 그리고 오늘 5교시 시간에 응급 처치 교육이 있을 거라는 내용 등이었다.
“다음 4번째, 요즘 학교에서 연애하는 사람들 제법 보이던데.”
이 얘기를 꺼낼 때부터 은영의 눈빛이 점점 도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뭐, 학교에서 연애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인정해. 그래도 말이야. 학교 시설에서 서로 끌어안기, 키스하기 등 지나친 애정 행각은 절대 금지야. 학교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은영은 내뱉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절대로 내가 너희들 꽁냥꽁냥 거리는 게 서러워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잘 알아 둬!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얘기하신 거니까! 그런 건 밖에서나 하라고!”
그녀의 분노 어린 전파는 학생들이 듣기엔 “서러워 죽겠으니까 절대 하지마!” 울부짖는 것 같았다. 물론 학생들은 담임의 분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때껏 남자에게 차인 것만 4번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기가 보기 싫어서 그런 걸 거야....”
“노처녀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세호의 옆줄 책상에 있던 두 여학생이 자기네들만 들리게 자기네 담임의 뒷담화를 깠다. 다행히도 은영의 귓가에 들리진 않았는지 그녀는 분을 삭히기 위해 보온병 속의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교탁에 내려놓으며 다시 말했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얘기할게. 뉴스나 신문 본 녀석들은 알겠지만 어제 옆 동네에서 보이드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공격했대. 일단은 세이비어들이 때마침 와줘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어.”
지금부터 17년 전, 지구 곳곳에서 뚫린 균열 ‘심연’에서 이계 생명체 ‘인트루더’(Intruder)가 지구를 습격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파괴하고 오염시켜 인류 살 수 없는 자기네들만의 땅으로 만들었다. 각국의 정부는 군대를 보내 인트루더들과 싸웠지만 그들에겐 물리적인 타격을 방어하는 특수한 방어막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사용하는 무기가 통하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균열이 생성된 영향으로 극소수의 인간들이 초월적인 힘 ‘메타피지컬(Metaphysical)’, 줄여서 메타 능력을 각성했고 이 초월적인 힘이 인트루더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이에 세계 정부는 그들 능력자를 그들을 지원해 인트루더와 싸우기 시작했고, 수많은 능력자들의 희생 끝에 그들을 이 세상에서 쫓아내고 인류를 수호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인류는 오염되지 않은 도시를 수복하면서 갑작스럽게 불어난 능력자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교육시키는 기관 ‘국제 메타피지컬 관리국’(Universal Metaphysical Management)를 설립했다. 그리고 국제 메타 관리국에 소속된 마나 능력자들을 ‘세이비어(Savior)라고 칭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인트루더인가 뭔가가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하는 얘기야.”
은영은 방금 전 까지 털털했던 표정을 싹 지우고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의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웬만하면 밤늦게 쏘다니지 마. 길가다가 대피 방송 뜨면 바로 대피소로 도망치고. 명심해.”
학생들은 담임의 진지한 표정에 조금은 고조 되었는데 입을 모아 “네.”라고 대답했다. 고은영 선생은 한숨을 쉬고는 애써 털털한 어조로 말했다.
“뭐, 전파할 건 여기까지. 난 교무실 갈 테니까 떠들 거면 조용히 떠들어라. 떠들다가 3반 쌤한테 걸려서 단체로 혼나지 말고.”
은영이 앞문을 통해 교실에서 나가자 교실 여기저기에서 약속이라도 했는지 잡담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세호도 성훈과 현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책상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 때, 어떤 남학생의 목소리가 세호의 귓가에 맴돌았다.
“요즘 세상 참 무섭다.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질 않나. 이래서 어디 밖에 나갈 수가 있나.”
세호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불안감을 품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람한 체격의 남학생이 그녀에게 동조했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난 능력자가 더 무서워. 인트루더는 나타나면 대피 방송이라도 울리지. 그 놈들은 나타나도 방송도 안 울리잖아. 오히려 그 자식들이 괴물이지.”
“맞아, 진짜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한데 모아서 어디다 격리시키라고 했을 꺼다.”
두 남녀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또 한 명의 남학생이 대화에 끼어들며 키득거렸다.
세호의 표정이 알게 모르게 굳어졌다. 메타 능력자에 대한 시선은 극과 극을 오간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인트루더와 싸우거나, 능력을 사람들을 돕는데 이용하는 능력자도 있기 때문에 능력자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으나,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능력을 쓰거나 강도, 살인, 테러 등 범죄에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 역시 있기 때문에 능력자를 사회악, 구제해야 할 해충, 또는 인트루더와 싸우는 기계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야, 세호야.”
성훈의 목소리가 세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앞자리에 앉은 패거리의 대화에 집중하던 세호는 고개를 돌려 성훈과 현모를 바라보았다.
“너 왜 그렇게 얼굴이 굳어있냐?”
성훈과 현모는 세호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호는 그제야 애써 쓴 웃음을 지었다.
“뭐? 아, 별 거 아냐. 그냥 요즘 세상 참 위험해진 거 같아서.”
“그렇긴 해. 그래도 제때 대피하면 무사할 거야, 아마도.”
현모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성훈이 피식 웃으며 현모의 어깨를 쿡 찔렀다.
“야, 아마도가 뭐냐, 아마도가? 말 똑바로 해야지.”
“윽, 실수.”
자신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자 방금까지 굳어 있던 세호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유입되더라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함
께 있을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
“다 왔다. 우리 먼저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
“그래, 내일 보자.”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세호와 두 친구는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었고, 지금 성훈과 현모가 내릴 차례가 되었다.
성훈과 현모는 세호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성훈과 현모를 비롯해 하차할 사람들이 다 내리자 버스의 문이 닫혔다.
신호등의 신호가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바뀔 때 세호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세호는 진동의 원인인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어, 세호야. 지금 학교 마쳤어?>
성숙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의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세호에게 들려왔다. 세호가 대답했다.
“그래, 수민이 누나. 마쳤어.”
<그래? 나 지금 일 끝나고 마트에서 장 볼 건데 와서 좀 도와줄래?>
세호의 누나 수민은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업무가 끝난 그녀는 종종 샛별상가의 마트에서 시장을 보며 가끔 세호를 불러 같이 장을 보기도 한다.
“뭐? 알았어, 나도 곧 샛별 상가에 다 와가거든.”
<그래, 누나는 늘 가는 마트에 있을게. 세호야, 오늘 저녁으로 갈치 조림 해 먹자.>
“결국 만드는 건 내가 하겠지만 말이야.”
세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호의 누나 수민은 자취한 지 제법 된 주제에 요리를 지독하게 못하기 때문이다. 세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 수민이 직접 만들어 준 그 맛없는 제육볶음을. 색깔만 새빨갛지 싱겁다 못해 아무런 맛도 나지 않던 그 제육볶음을!
아무튼 수민의 맛없는 요리 덕분에 세호는 직접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도 요리는 세호의 담당 업무가 되었다.
<윽, 크흠. 아, 아무튼 마트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이따가 보자!>
수민의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버스에서 샛별 상가 정류장에 도착한다는 내용의 안내 방송이 들렸다. 세호는 자기가 앉은 좌석 옆에 있는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버스는 곧바로 정류장을 앞에 두고 멈췄다.
세호는 곧바로 버스에서 내려 상가로 들어갔다. 샛별 상가에 속한 GZ 슈퍼마켓은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슬슬 전화해볼까.’
세호가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상가의 계단을 통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위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지금 방송을 들으신 분들은 신속히 가까운 지하 대피소로 피신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방송을....>
난데없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자의 대피 방송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대피 방송에 세호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지금껏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만 나오던 사건이 직접 닥쳐왔다. 피난 안내 방송과 함께 상가에 있던 사람들은 무질서하게 앞다투어 대피소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대피소로 들어가 몸을 숨겨야 한다. 세호의 기억대로라면 이 상가 지하 2층에 지하 대피소가 존재한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세호의 머릿속에는 마트에 있을 누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호는 비로소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실감했다. 그러면서도 세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걱정을 애써 뿌리치려 했다.
‘괜찮을 거야, 누나도 방송은 들었을 테니까 먼저 대피소에 가 있겠지. 나도 어서 대피소로 가야지.......’
세호가 헐레벌떡 발걸음을 옮겨 대피소로 가려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웅......
그 때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심연이 형성되는 소리임이 틀림없다!
“이런 미친...!”
세호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며 사람들에 떠밀리며 대피소로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쿠아아아아아악!!
이 세상 생물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괴성이 상가에 가득 울려 퍼졌다.
*
“여러분, 긴급 상황이에요. 다들 주목해줘요.”
청색 재킷을 입은 장발 머리 여성이 사무실로 8인용 직사각형 테이블을 둘러 싼 검은 제복 차림의 5인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언뜻 보기엔 침착해 보였으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고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12구역에 인트루더의 반응이 나타났어요.”
“경혜 언니, 12구역의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했나요?”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 중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짓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경비대와 구조대원들이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있지만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도 많아, 서둘러야 돼.”
“경혜씨, 우리 말고 투입하는 팀도 있어?”
단발머리 소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장신의 안경잡이 청년이 물었다.
“아뇨, 제가 상부에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지원하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요.”
“결국 우리 팀끼리 해결하라는 소리군.”
청년의 옆에 앉아있던 성게 머리 소년이 삐딱하게 앉은 채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해당 구역에 고립된 민간인들도 있을 테니까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인트루더 제거 작전 및 민간인 구조 작전을 수행하겠습니다.”
단발머리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5명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혜 언니, 저희만 믿으세요! 후딱 해치우고 올게요!”
5인 중 한 명인 포니테일 머리를 한 소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먼저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잠깐, 세리 언니! 혼자 앞서가면 어떡해?”
이번에 뒤따라간 건 차분한 분위기의 단발머리 소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서 장신의 안경잡이 청년과 성게 머리 소년,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던 소녀가 사무실을 나섰다.
“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알겠죠?”
경혜도 복도로 나와 급히 작전에 투입하는 일행에게 걱정 어린 어조로 외쳤다. 그러자 일행 중 단발머리 소녀가 고개를 경혜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네, 걱정 마세요. 언니.”
“그래, 경혜씨. 우리 애들은 나한테 맡겨두라고.”
단발머리 소녀에 이어서 안경잡이 청년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혜는 자신만만한 요원들의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열었다.
한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단발머리 소녀를 비롯한 5명을 반긴 것은 가지런히 주차된 은백색 차량이었다. 그 차량의 문짝에는 국제 마나 관리국의 엠블렘, X자로 교차된 두 자루의 검이 겹쳐진 지구 문양이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자그마하게 ‘국제 마나 관리국 한국지부’라고 쓰여 있는 걸 제외하면 평범한 승합차 그 자체였다..
단발머리 소녀 일행은 곧바로 차량 한 대에 올라탔고 운전석에 앉은 안경잡이 청년이 시동을 걸었다. 그들은 태운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아저씨, 차라리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게 더 낫지 않아요? 내 ‘가속’능력이면 까짓 거 5분 만에 도착할 텐데.”
포니 테일 머리 소녀, 세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세리 언니, 혼자 싸웠다가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가뜩이나 언니는 우리들 중 제일 늦게 힘을 각성했으니까 좀 더 조절하면서 싸울 필요가 있어.”
청년을 대신해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단발 머리 소녀가 세리에게 대답해주었다. 세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씁,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그래, 세리야. 민지 말이 맞아. 그리고 덤으로 아저씨 아니야, 오빠야.”
운전을 하던 청년이 민지의 말을 거들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인지 그의 말투가 묘하게 진지하게 들려왔다.
“네? 그치만 아저씨랑 저랑 9살이나 차이 나잖아요. 오빠라 부르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나요?”
세리가 짓궂게 따지고 들자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리의 뼈있는 일침에 충격 받은게 틀림없었다.
“이제 인정하죠, 아저씨? 우리한테 형, 오빠 소리 들을 나이 아니란 거 알면서 왜 그래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성게머리 소년이 비아냥댔다. 그러자 거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방금까지만 해도 묵묵히 운전하던 청년의 입에서 묘하게 상냥한 어조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얘, 혜성아. 넌 어려서 모를 거야. 너도 이 나이 되면 오빠 소리 듣고 싶을 걸?”
“네, 난 나잇값 못하는 아저씨는 안 될 거구요.”
성게머리 소년, 혜성은 은근히 느껴지는 청년의 위협적인 말투를 못 느꼈는지 아니면 알면서 무시하는 건지 더더욱 비아냥거렸다.
“좋아, 강혜성. 일 끝나고 훈련장에서 보자. 특별 훈련 한 판 하자.”
등을 돌린 채 운전하는 청년의 말에서 분노의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수라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민지가 헛기침을 했다.
“다들 잡담은 그만. 지금부터 역할을 분담할게요. 세리 언니는 아직 탈출 못 한 민간인들을 대피시켜줘.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찾아. 그리고 선우현 선배님은 세리 언니를 도와서 민간인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보호해주세요. 알겠죠?”
“좋아! 식은 죽 먹기지!”
“맡겨만 줘, 대장님.”
세리가 의기양양하게 거수경례로써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고 현도 오른 손으로 OK 사인을 그렸다. 민지는 눈길을 뒷좌석에 앉은 준과 또 한 명의 소녀에게 옮겼다.
“그리고 나랑 혜성이, 그리고 레이는.......”
“싸운다. 맞지?”
혜성이 민지의 말을 가로채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는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세웠고 이빨을 드러낸 채 웃음을 지으며 호승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민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대신에 너 또 혼자 신나서 힘 조절 안 하고 날뛰면 안 된다? 저번에 대공원에서 혼자 날뛰다가 공원을 홀랑 태워 버릴 뻔 했던 거 기억 안 나? 또 그러면 진짜 상부에 보고 해버리는 수가 있어!”
“그래, 그래, 덕분에 내가 고생 좀 했지.
“끄윽, 알았어, 알았다고! 조심하면 되잖아.”
민지는 혜성 잡아먹을 기세로 혜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민지는 지난번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 대공원에 나타난 인트루더 무리를 상대하다가 그만 혜성이 시설물까지 홀랑 태워 버릴 뻔했었기 때문에 경혜와 자신에게 실컷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 다음부턴 조심해. 그리고 레이, 넌 평소처럼 싸워줘. 알겠지?”
목소리를 가다듬은 민지는 마지막으로 세리와 혜성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은발 머리 소녀, 레이에게도 당부했다. 레이는 민지를 바라보다가 감정 따윈 실리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응.”
“좋아, 곧 있으면 현장에 도착할 거야. 다들 통신기랑 무기 상태 확인해주고, 도착하면 내가 경혜 언니한테 보고할 테니까 다들 준비하고 있어!”
민지를 비롯한 5인방, 국제 파동 관리국 한국 지부 소속의 세이비어 팀, ‘리틀 나이츠(Little Knights)’를 태운 차량은 12구역, 즉 샛별 상가를 향해 달려갔다.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채로......
*
“으윽......”
어두운 폐허 아래 세호의 희미한 신음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눈을 뜨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여긴 대체 어디야......”
세호는 안간힘을 쓰며 쓰러진 상체를 일으켰다. 몸이 무언가에 부딪쳤는지 온몸이 욱신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아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상체에 이어서 하체까지 일으킬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야 세호는 주위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허억......!”
세호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어두운 폐허 가운데엔 무너져버린 콘크리트 파편에 깔린 사람들, 온 몸에 상처를 입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쓰러져 있는 사람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사람, 그리고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아무런 미동 없이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순간이었다. 지옥과도 같은 광경에 세호의 가슴속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일까?
세호는 머리에 손을 얹고 흐릿한 기억을 되짚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호는 학교를 마치고 누나의 장보기를 거들기 위해 샛별 상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들려온 피난 경고를 듣고 지금껏 받았던 민방위 훈련이 무색하게 앞 다투어 도망치는 사람들에 섞여 대피소로 도망치다가 괴성이 상가를 덮쳤던 것이다.
‘맞다, 누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세호는 잠깐이지만 자신의 누나이자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 수민을 잊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수민을 찾았다.
“수민이 누나, 어디 있어?”
“으으, 크윽......”
그 때 세호의 귓가에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색 세로 줄무늬의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면바지를 입은 한 여성이 그의 눈앞에 쓰러져 있었다. 세호의 누나 수민이 틀림없었다.
“누나, 수민이 누나!”
세호는 황급히 수민에게 달려가 그녀를 불러 깨웠다. 그러자 수민의 방금 깨어난 듯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으으으...... 세호야, 소리 지르지 좀 마라...... 누나 귀청 떨어지겠다......”
“깨어났구나, 누나! 내 얼굴 잘 보여? 어디 불편한 곳 없어?”
수민이 깨어나자 곧바로 그녀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폈다. 만에 하나 머리를 다쳤다면 장애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괘, 괜찮아. 네 누나 그리 허약하진 않거든.”
“일어설 수 있겠어? 내 손 잡아.”
제대로 언어를 구사하는 걸로 보아 머리에는 크게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세호는 무릎을 굽혀서 수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윽, 아악....!”
“누나, 왜 그래?”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 무릎을 펴려 하자 수민이 고통을 호소하며 다시 주저 앉았다. 세호도 누나의 모습에 놀라 같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 무릎이 아파......”
수민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면서 양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감쌌다. 세호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지하가 무너질 때 콘크리트 파편이 수민의 무릎과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골절임이 틀림없다!
“누나, 잠깐만 있어봐.”
세호는 식은땀이 나는 와중에도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비교적 형태가 멀쩡한 각목을 찾아냈다. 이거라면 부목 역할을 해 줄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각목을 집어 들어 수민에게 가져왔다. 그리고 그는 가방에서 오늘 체육 시간 때문에 학교에 가져갔었던 군청색 체육복과 체육 시간 끝나고 쓰려고 했던 수건을 꺼냈다.
“누나, 다리 잠깐만 들 수 있겠어?”
“으, 응. 한 번 해볼게.”
수민이 무릎이 접히려는 걸 애써 참으며 조심스럽게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리자 세호는 살며시 각목을 그녀의 다리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리를 내리자, 세호는 체육복과 수건을 가져와 각목과 다리를 최대한 꽁꽁 묶었다. 어설퍼 보였지만 세호로서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어때, 좀 낫니?”
“오오. 우리 세호, 제법 잘 하는데? 이런 건 어디서 배웠대?”
자신에게 부목을 대준 세호에게 수민은 장난 섞인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칭찬했다.
“어제 학교에서 응급 처치 교육 했었는데 거기서 배웠어. 것보다 우리 괜찮을까? 혹시 대피소까지 무너졌다면......”
수민은 자신의 옆에 나란히 앉은 세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팔(八)자 눈썹을 진 그의 표정엔 초조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세호가 고개를 떨구며 탄식했다. 수민은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는 동생을 나름대로 안심시키기 위해 낙관적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세이비어들이 와서 해결해 주겠지.”
하지만 세호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곳에는 자신의 누나를 비롯한 부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조대원들이나 수민의 말대로 세이비어들이 제때에 와준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일 그들이 이 곳을 지나친다면? 아니, 그 전에 그들이 오기 전에 인트루더들이 들이닥친다면? 세호는 고개를 황급히 저으며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려고 했다.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될 때엔 일단 하고 보는 거야.」
순간, 한 여자의 목소리가 세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어지러웠던 세호의 머릿속이 맑아진 것 같았다. 그는 왼쪽 바지 주머니에서 빛바랜 별 모양 배지를 꺼내며 되뇌였다.
“그래, 그 말이 맞겠지.”
세호는 다시 수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나, 잘 들어. 나 지금 밖에 나갈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세호의 말도 안 되는 선언에 수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세호의 눈빛은 확실히 긴장해 있었다.
“여기서 기다린다고 구조대원들이 이리로 올 거란 보장이 없어.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이쪽으로 오게 할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세호 너 그러다가 오히려 괴물들한테 걸리면 어쩔 건데?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괜찮아, 누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나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얼굴이 사색이 된 수민이 세호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세호는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세호는 뒤를 돌아보며 누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럼 이따가 보자, 누나. 절대 다리 움직이지 마!”
“야, 박세호! 너 거기 안 서? 당장 돌아와!!”
세호는 누나의 절규를 애써 뒤로 한 채 다행스럽게도 무너지지 않은 출구 쪽으로 뛰어갔다. 누나의 목소리가 멀어진 뒤엔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감각에 세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의 행동이 미친 짓이라는 건 세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지금 자신이 유일하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수민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박세호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세호는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그나마 다행인 점은 12구역의 대피소는 샛별 상가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 점을 생각하니 세호도 조금은 불안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세호는 계단을 통해서 대피소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피소 쪽이 구조대원을 만나기 쉬울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하 3층으로 내려온 세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미 폐허가 되어버려 차가운 정적만이 흐르는 주차장이었다. 방금 전 충격 때문인지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져 있었고 곳곳에 수많은 차량들이 박살이 나 있었다. 세호는 잔뜩 긴장한 채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더 늦기 전에 대피소로 통하는 문을 찾아야 돼...’
세호는 주차장에 고개를 몇 번 두리번거렸다. 그는 지금 대피소로 통하는 문을 찾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자신을 기다리는 누나, 수민을 위해서......
하지만 세호가 그토록 찾는 대피소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주차장의 왼쪽 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세호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주차장의 왼쪽 벽을 향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너져버린 콘크리트 더미 뿐...... 아까 처음 심연이 열렸을 때 충격으로 지하 3층 주차장의 벽이 무너져 내려 그 파편들이 대피소의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었다.
“하필 막히다니......”
세호는 허탈함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하 4층까지 존재한다. 또한 지하 대피로도 지하 4층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호는 초조했다. 만약 지하 4층까지 막혀버렸다면? 그렇게 된다면 세호의 용기는 물거품이 돼버릴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그 수 밖엔 없잖아......’
세호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초조함이 못 박힌 것 마냥 남아 있었지만 그를 멈추게 할 순 없었다. 그는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쿠르르르륵.....
순간, 세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세호의 등 뒤에서 야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무, 무슨 소리지?’
잘못 들은 소리인가하고 생각할 때 또 다시 한 번 야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아까 전의 것 보다 더욱 크게,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쿠르르르르륵......!
세호는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을 교복 바지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안에 있는 별 모양 배지를 꼬옥 쥐면서 떨리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진정 시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셋을 센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그 자리에 있던 것은 3m 정도 되어 보이는 덩치의 거인이었다. 거인은 잿빛의 철갑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고 관절 부분은 피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으며, 고릴라처럼 크고 굵직한 양팔을 가진 채 안면 중앙에 큼지막하게 박힌 붉은 빛 외눈은 세호를 잡아먹을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인의 얼굴 역시 철갑을 두르고 있었지만 붉게 번쩍이는 눈과 입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거인이 입을 벌리자 송곳처럼 돋아난 이빨들이 드러났다. 그렇다. 영락없는 괴물의 모습. 세호는 지금 이 세상을 침공한 괴물, 인트루더를 보고야 만 것이다.
-쿠와아아아아아악!!!
철갑 거인이 세호를 향해 목 놓아 울부짖자 폐허가 된 지하 주차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괴성에 세호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거인의 포효 소리는 그의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다. 세호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괴물, 세호를 사냥감으로 간주한 것이다!
-크아악!
“우왁!?”
거인이 체중을 실어 주먹을 날리자 세호는 몸을 굴려 가까스로 피하는 데 성공했다. 세호가 있던 자리는 큼지막한 크레이터(Crater)가 생겨져 있었다. 만약 세호 자신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더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세호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저리 가. 꺼지지 못 해!”
세호는 바닥에 있던 큼지막한 콘크리트 파편을 주워 마구잡이로 던져댔다. 세호의 손을 떠난 콘크리트 파편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외눈 거인의 이마를 강타하고 푸른색 스파크를 튀기며 튕겨 나갔다.
빠각!
-쿠윽?
머리를 가격당한 거인은 당황함을 숨기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세호는 이때다 싶어서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쿠르르륵..... 쿠아아아아악!!
세호의 갑작스런 공격에 당한 거인의 눈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당혹감은 이내 분노로 바뀌어 이윽고 포효소리가 되어 주차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젠장, 젠장, 젠장!”
닥치던 대로 달리던 세호는 주차장 구석에 있던 암록색 승합차의 잔해 뒤에 숨어들었다. 그는 방금 전 자신이 거인에게 돌팔매질을 했을 때 일어난 현상을 떠올렸다. 푸른빛 스파크, 고통을 호소하며 뒷걸음질 치던 거인.
인트루더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한 보호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단은 메타피지컬 능력 뿐.
세호는 방금 전 거인에게 돌을 던졌을 때부터 온 몸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물처럼 흐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감각....... 역시 그렇지?’
-크르르르르.....
바로 그 순간, 세호가 몸을 숨기고 있던 승합차가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세호는 승합차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철갑을 뒤집어 쓴 거인이 양 손으로 승합차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비쳤다. 거인의 붉은 눈은 분노와 광기만이 남아 있었다.
“아, 안 돼!”
공포에 사로잡힌 세호는 도망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비정한 거인은 그럴 기회 따윈 주지 않고 세호를 향해 체중을 가득 실은 승합차를 휘둘렀다.
암녹색 승합차가 자신에게 직면하는 순간, 세호는 자신의 몸속에서 흐르던 기운이 점점 휘몰아치는 걸 느꼈다. 온 몸을 태울 것 같은 뜨겁고도 강렬한 기운을!
세호는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승합차를 향해 양 팔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세호의 양팔에 푸른색 기운이 불꽃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한 순간의 강렬한 섬광이 일어났다.
*
샤악!
은발의 소녀가 휘두르는 장검이 은빛을 궤적을 그리며 숯으로 온몸을 칠한 것 같은 왜소한 체격을 가진 괴인(怪人)의 몸을 사선으로 양단했다.
-햐아아악!
둘로 갈라진 칠흑색 괴인의 육체는 어두운 보랏빛 액체를 뿌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소녀는 칼날에 묻은 보랏빛 액체를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녀의 앞에는 아직 5등급 인트루더, ‘미니언(Minion)’ 세 마리가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소녀가 불리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정작 소녀 본인은 개의치 않는 건지 어떠한 표정도 내비치지 않고 그저 앞만 보고 있었다.
-우웨에에엑!!
-캬아악!!
소녀와 대치한 네 마리의 괴인들이 갈고리처럼 돋아난 손톱을 앞세우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지르며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미니언 한 마리의 갈고리 손톱을 피하고는 민첩하게 장검을 휘둘러 눈앞의 괴인의 가슴을 내려쳤다.
-히아아악!
소녀의 참격이 괴인의 가슴팍에 크고 깊은 상처를 입혔고 괴인은 상처에서 보랏빛 액체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키아아악!!
-히아아아악!!
이번엔 두 마리의 괴인이 손톱 창칼처럼 솟은 이빨을 드러내며 동시에 소녀를 향해 도약했다. 소녀는 오른손에 검을 굳게 쥔 채 그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그리곤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날선 단검을 뽑아 던졌다.
푸슉!
그녀가 던진 단검은 백은색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살갗을 찢는 소리를 내며 괴인 중 한 마리의 목에 박혔다.
-카악! 끼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기습을 허용한 괴인은 그 자리에서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소리를 흘리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은발 소녀는 쓰러진 괴인을 무시하고 양손으로 검을 굳게 쥐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번개 같은 기세로 마지막 남은 괴인을 향해 검을 세로로 내려쳤다.
촤아악!!
마지막 남은 괴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 조각으로 쪼개져버렸다. 지하 2층에 있던 괴인들을 모두 정리한 소녀는 방금 전 쓰러졌던 괴인의 목에 꽂혀 있던 단검을 뽑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 2층에는 오직 그녀만이 서 있었고 황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레이, 레이? 내 목소리 들려?>
소녀의 귀에 부착된 소형 무전기에서 또 다른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발 소녀, 아리사는 무전기의 버튼을 눌러 대답했다.
“민지, 무슨 일이야?”
<지금 지하 3층 부근에서 엄청난 메타 에너지 반응이 감지됐어. 지금 나랑 혜성이도 1층 정리하는 대로 내려갈 거야. 세리 언니랑 현 선배님은 지금 지하 1층에 있는 민간인들을 구조하고 있으니까 혹시 네가 먼저 가서 확인해 줄 수 있어?>
무전기 속의 소녀, 민지는 다급함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지금 감지된 메타 에너지의 주인이 인트루더건, 메타 능력을 악용하는 능력자건,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메타 능력을 폭주해버린 능력자건 남아있을 지도 모를 민간인은 물론이고 어쩌면 레이 역시 위험에 빠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레이는 기계처럼 억양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대답했다.
“알았어, 갈게.”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해 줘.>
민지의 대답을 끝으로 통신이 끝났을 때였다.
콰아앙--.
아래쪽에서 한차례 굉음이 울려 퍼져 지하 3층 바닥을 뒤흔들었다. 분명 민지가 말한 메타피지컬 반응일 것이다.
“찾았다.”
굉음이 그치자 레이는 조용히 중얼거리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레이는 한 가지만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지금 감지된 메타피지컬 능력의 주인이 인트루더건 폭주하는 메타 능력자건 자신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고. 맞서 싸운다. 그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니까.
지하 3층의 주차장에 도착한 은발 소녀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확인했다.
자기 다리보다 더 크고 굵은 양팔과 피처럼 붉은 눈이 특징인 3등급 인트루더, 오우거(Ogre)가 암녹색 승합차와 함께 벽에 처박혀 있었다. 오우거의 하반신은 승합차에 짓눌려서 확실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흐르는 보랏빛 액체, 인트루더의 피 웅덩이를 보아하니 거인의 하반신은 처참히 훼손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광기에 사로잡혔을 두 눈에 초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숨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민지가 말한 메타 에너지는 이곳에서 감지된 것이었다. 레이는 장검을 굳게 쥐고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끄으윽......”
그 때 소년이 신음소리가 레이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이가 고개를 돌린 곳엔 한 소년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소년은 어떤 학교의 교복으로 추정되는 하얀 와이셔츠와 남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고 묘하게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 소년이 방금 감지된 메타 에너지의 주인인 걸까?
*
한 차례의 섬광이 사라지자 세호는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차장의 천장이었다.
‘살아있는 걸까......?’
비록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세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 온몸이 피로에 절어서 무거웠지만 손발에 감각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사지도 멀쩡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일까, 몸속에 그동안 쌓아온 걸 다 푼 것처럼 시원한 기분마저 들었다.
‘역시 지치는군......’
그랬다. 세호는 방금 전,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든 철갑 거인을 해치운 것이었다. 자신의 메타피지컬 능력으로. 세호는 자신이 능력자라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태어났으니 무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구조대원을 만나야겠다.’
세호는 떠올렸다. 자신이 왜 이 곳에 왔는지를. 대피소에서 구조대원을 만나 지하 1층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끄으윽......”
세호는 안간힘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메타 능력의 후유증 때문인지 온몸에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상반신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호의 눈앞에 들어온 건 은빛의 기류가 서린 장검을 쥔 소녀였다.
“어?”
등까지 닿는 은빛 머리칼에 금빛 눈동자, 잘못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체격을 가진 소녀가 세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외모로 보나 가녀린 체격으로 보나 10대 중반으로 보였고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은 그녀의 몸을 감싼 단정한 검은색 제복과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얼음처럼 깨끗하면서도 예쁜 그녀의 얼굴엔 어떠한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신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 세호는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감마저 잊고 넋을 놓은 채 소녀를 바라보았다.
“эй(저기),”
소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세호는 정신을 차렸다.
“저거, 네가 한 거야?”
소녀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에는 방금 전 세호를 죽이려한 철갑 거인이 처참하게 훼손된 채 박혀 있었다.
“아, 아니야. 내가 무슨......”
세호는 망설임 없이 잡아뗐다. 그는 눈앞의 소녀가 메타 관리국 소속의 세이비어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검은색 제복에 수놓아진 X자로 교차된 두 자루의 검이 겹쳐진 지구 문양이 증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세호 자신이 거인을 해치웠다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손에 실린 건 메타가 아니야?”
소녀는 여전히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으며 세호의 양손을 가리켰다. 세호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말대로 그의 양손에는 미약하게나마 푸른빛의 기류가 남아있었다.
‘변명해봤자 안 통하겠군.’
세호는 자포자기한 눈으로 자신의 양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묘하게 복잡한 빛이 서려 있었다.
“메타.”
세호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 소녀는 짧게 중얼거리며 세호를 살펴보았다. 방금 철갑 거인을 쓰러뜨렸을 세호에게는 별다른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귀에 부착된 소형 무전기의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여기는 레이. 민지, 응답해.”
잠시 후, 소녀의 귓속에 또 다른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레이. 어디 있어?>
“지하 3층. 메타 에너지의 주인을 찾았어.”
<정말?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무전기 속 소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은발 소녀는 그녀와는 정 반대로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응, 괜찮아.”
<알았어. 지금 세리 언니랑 현 선배가 도착했을 거야. 이따가 1층에서 합류하자. 그 메타 능력자도 같이 데려와줘.>
“Да(그래).”
소녀는 무전기에서 손을 떼고 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
“우리 올라가야 해.”
“뭐? 하지만 지하 1층에 사람들이......”
세호는 혼자 갈 수 없었다. 그에겐 누나 수민을 구해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저기 있다! 레이, 우리 왔어!”
그 때, 또 한 명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라고 불린 소녀와 세호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포니테일 머리를 한 여자가 환한 표정으로 세호와 은발 소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담하고 가녀린 몸매를 가진 은발 소녀와 대조되게 성숙하다 못해 건강해 보이는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고 몸매와 어울리게 얼굴 또한 밝은 분위기의 미인상이었다. 그녀는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색 제복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자신의 키와 비슷한 길이의 창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뒤를 이어서 검은 제복을 입은 장신의 안경잡이 청년이 여유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청년은 비교적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은근히 균형 잡힌 체형을 가지고 있었고 제법 깔끔해 보이는 얼굴엔 잔 흉터들이 있었다.
“수고 많았어. 이제 여기서 나가자고.”
청년은 조금의 무게감 없이 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기 죄송한데, 아직 지하 1층에 사람들이 있어요!”
세호가 청년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청년의 옆에 있던 포니테일 여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 방금 전에 경비대랑 구조대원들이 다 데려갔어. 이제 여기에 남은 건 너 한 명이다, 이 말씀!”“아...... 그랬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누나를 살려주셔서요......”
누나의 안전이 확인되자 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은 그런 세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예전에 만난 사람을 보듯이......
“아저씨? 뭐하세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민지랑 혜성이 녀석이 기다리겠다. 얼른 내려가자.”
포니테일 소녀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청년은 나머지 일행을 데리고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갔다.
상가에서 나온 청년 일행의 눈에 비친 것은 그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찾아온 민간인들과 바리케이드를 세워서 그들을 제지하는 청색 전투복을 입은 경비대원, 그리고 줄을 지어 찾아와 사상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출발하는 구급차와 들의 모습이었다. 세호는 구급차의 행렬을 보자마자 눈앞에서 다른 구조대원들을 지휘하고 있던 구조대원을 향해 다급하게 뛰어갔다.
“저기, 아저씨. 혹시 저희 누나 못 보셨어요?”
“아이고, 깜짝이야!”
세호가 불쑥 찾아오자 구조대원이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대답했다.
“으으....... 너희 누나가 어떻게 생겼는데?”
“줄무늬 와이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는데...... 아, 그리고 다리를 다쳐서 널빤지로 응급처치를 해두었거든요.”
세호의 설명을 들은 구조대원은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하, 그 아가씨 말이지? 그 아가씨는 방금 전에 구급차 타고 중앙병원으로 갔어. 너도 어서 돌아가라, 여긴 위험하니까.”
세호는 바쁜 와중에도 친절하게 수민의 행방을 알려준 구조대원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동시에 수민에 대한 불안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괜히 고집 부리지 말고 누나 곁에 있어줘야 했었나.......’
“저기.”
그 때 소녀가 세호의 눈앞에 섰다. 그 소녀는 목덜미까지 가지런하게 자른 단발머리와 특유의 차분하고도 이지적인 눈빛과 꾸밈없이 단정한 외모와 몸에 맞게 차려입은 검은색
제복까지....... 딱 이상적인 모범생 반장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누구지?”
세호는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수민 때문에 안 그래도 불안함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는데 목소리 때문에 더욱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괜찮아, 불안해 할 것 없어. 난 메타피지컬 관리국에 소속된 세이비어 팀 ‘리틀 나이츠(Little Knights)의 요원이야.”
세호도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소녀가 세이비어 요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검은색 제복은 방금 전에 만난 은발 소녀와 포니테일 여자가 입은 것과 똑같은 것이었
기 때문이었다.
“관리국 사람들이 나한텐 무슨 볼일인데?”
세호는 긴장을 풀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이, 이 애가 맞는 거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은발 소녀를 불렀고, 자신의 검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던 은발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모범생 소녀는 미소를 짓고는 다시 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기대감 넘치는 시선으로 세호를 보며 대답했다.
“박세호, 잠깐 우리랑 같이 가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