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테 외곽 하베스터들이 다수 모여있어 대충 봐도 빈민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리에 누가 보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를 한 손에 안아 든 여성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프로이데도 꽤 오래 지내서인지 거리의 분위기는 적응된 모양인지라 거리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술에 취한 선원이라던가 딱 봐도 험상궃게 생긴 남자들의 흘기는 듯한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얼떨결에 받아 든 현재 이 손에 들려있는 드레스가 잃어버린 오른팔 보다 너무나도 불편해 보이는게 분명해 보였다. 화려한 장식 같은게 달려있어 눈에 띄인다기 보단 어둑한 시간대 인데도 주변의 빛을 빨아들인 후 다시 빛을 내뱉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윤기있고 고급스러운 원단이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데다 밤인데도 붉은색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선명한 옷의 색상이 문제였던 것 이다..
‘마법 처리를 한 걸까… 역시 내가 받아 올만한 상품이 아니었던 거 같아 그 샤덴이란 사람은 왜 나한테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줬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는 프로이데 걸음 사이로
-어이 아가씨 한 손으로 짐 들기 불편하지 [히끅] 이 아저씨가 도와줄 수도 있는뒈에-
-그거 입고 상대 하는 거야? 얼마면 되? 꽤 비싸보이잖아~!-
같은 저질스러운 대사들도 종종 들려왔다.
“아저씨들 취하셨으면 들어가서 쉬세요!”
“카핫! 역시 프로이데야! 언젠가 외로워지면 불러달라고! “
“평생 없을 테니까 기대하지 마세요~”
여유 있게 받아 친 프로이데, 그녀도 역시 이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이런 저질 농담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버려 자기까지도 저질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손에 든 옷이 문제였기에 잡생각은 그만두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빈민가 입구에서부터도 10~15분은 걸어가면 있는 항구 바닷가 근처의 작은 건물앞에 프로이데는 멈춰섰다. 왼손에 들고있던 드레스는 능숙하게 오른쪽 어깨에 걸어두고 스커트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기 위해 손을 넣자 열쇠꾸러미 이전의 종이조각 같은 무언가가 느껴져 무심코 꺼내보았다
[프로이데 양께]
프로이데 양이 이 편지를 보실 ㄸ….
‘어느틈에 이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임을 확인한 프로이데는 의아해 했지만 별거 아니겠거니 싶어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고 열쇠로 힘겹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드디어 도착! 오늘은 왠지 모르게 힘들었어~”
집 안으로 들어와 문단속을 마친 후 안도감을 느낀 프로이데는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던 경직된 공기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선 어깨에 걸어놨던 드레스를 소중하게 옷걸이에 걸고 목욕을 하기 위해 입고 있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벗고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후 욕탕에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아 참! 쪽지!”
프로이데는 아까 주머니에 찔러 넣은 편지를 떠올리고선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스커트를 다시 집어들고선 스커트의 주머니를 뒤져 메모지를 꺼낸 뒤 재차 욕실로 향했다.
[프로이데 동방의 국가에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이렇게 물을 받아 몸을 담구고 하루의 피로를 푼다고 하던데? 우리도 해보는게 어떨까?]
-
옛날 그 특유의 비실거리는 바보 같은 얼굴로 프로이데 에게 이 목욕방법을 설명해준 남자의 목소리가 얼핏 떠올랐다. 도대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게 피로회복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 방법으로 목욕을 하고 있으면 차분해 지는 느낌이 들어 싫지는 않았다. 또한 오른팔 단면의 감각도 무뎌져 불편함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알고 나선 이쪽을 더 선호하게 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겨울에는 어렵겠지만..
그렇게 받아놓은 욕조 속에 들어가 있던 프로이데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오늘 이상한 일들이 많았어.
쓸데없이 친절한 ‘가게 오너 샤덴씨’
평소에도 친절했지만 오늘따라 더 친절했던 것 같은 여관주인 세르핀씨
그리고 두 사람에게서 받은 뜻밖의 호의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 들어있던 편지..
평소의 프로이데 라면 하베스터의 신분으로 이런 호의를 일년에 한번 기대하기가 힘든 환경 이었으므로 오늘 일들이 신기하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한참을 욕조속에서 하루를 돌아보던 프로이데는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렇게 목욕을 끝낸 프로이데는 대충 몸에 물기를 털어내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긴 머리카락은 목욕후 에 항상 정리하기가 불편했지만 쉽게 자를 수는 없었다 머릿결이 뻗어 내려와 마치 자신의 불편한 부분을 가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프로이데는 머리 손질만은 게을리 하는법이 없었고 오늘도 역시 머리손질에 열중하기 위해 도구들을 작은 테이블 위에 퍼트려 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까전에 읽지 못한 편지를 올려놓고 내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프로이데 양께]
프로이데 양이 이 쪽지를 보실 땐 집에 잘 도착하신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아까 자리에서 충분한 설명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프로이데 양 당신은 곧 곤란한 일에 처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 냐며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4일후에 제일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오라는 이야기가
있을 것 입니다. 꼭 아까 드린 드레스를 입고 가셔야 합니다.
다만 가시기전에 오른팔 소매를 고치셔서 기장을 짧게 하고 가주십시요
[뷰티 앤 아너 관리자 샤덴이]
편지를 끝까지 다 읽은 샤덴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편지를 꾸겨 휴지통으로 던져넣었다.
골인
어느 날보다 깔끔하게 휴지통으로 빨려 들어가는 편지뭉치를 본 프로이데는 만족감에 살짝 몸을 떨었다. 별 이상한 이야기가 다 있다며 너스레를 떨곤 프로이데는 하지못한 머리관리를 계속 했고 어느정도 후에 머리정리를 마친 프로이데는 두 개의 침대중 왼쪽침대에 몸을 던졌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편지의 주인에 대해 잠깐 생각하던 프로이데는 많이 피곤했는지 이내 곧 잠이 들었다.
-뿌우우우웅-
베스테의 아침을 알리는 우렁찬 출항 나팔소리와 함께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태양빛들은 마치 곤히 자고 있는 프로이데를 질투하듯 시각과 청각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으음..’
프로이데에겐 매번 느끼는 아침의 감각이었지만 베스테에서 좀처럼 이것만큼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크라이스 아저씨는 왜 이런곳에 자릴 잡아서..정말…”
어릴 때 큰 병을 앓았다던 자신을 이곳에 데려와 살게 해준 남자의 이름을 읊조리면서 모포를 머리에 뒤집어 올리며 부스럭 거리다가 이내 못 버티겠다는 듯 짜증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아아 정말! 알았어 알았다구!”
주변에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마치 들어달라는 듯 투털거리며 프로이데는 한 팔로 몸을 지탱해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전투에 패배한 패잔병 같은 발걸음으로 어제 저녁에 풀어놨던 치장도구로 향한 프로이데는 간단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서랍에서 옷가지를 꺼내어 입곤 나설 채비를 마치던 그 때였다.
-똑똑똑-
‘이시간에..누구지?’
평소에 방문이 없던 집에 들려온 방문의 신호에 문으로 향한 뒤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문틈사이로 살며시 바라 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말함과 동시에 살며시 보이는 문틈사이로 자신이 여관에서 일할 때 입는 스커트를 발견하곤 어느정도 경계가 풀린 프로이데는 제대로 확인하기 위하여 문을 전부 열었을때 문 앞에는 수수해 보이는 한 여성이 해맑게 웃으며 프로이데에게 인사해왔다.
“안녕하세요 프로이데 선배 쥬니라고 해요 오늘부터 시미터의 손잡이 여관에서 일하게 됐어요 사실 어제 세르핀씨 께서 여기 위치를 가르쳐 주셨거든요 오실 때 모셔오라고 말이죠”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는 쥬니의 모습을 보면서 프로이데는 약 1년전쯤 자신을 떠올렸다. 자신도 여관에 처음 일하게 됐을 당시 어떤 선배를 데리러 오라는 세르핀씨의 부탁을 받은 기억이 있었고 그때의 일을 떠올리게 된 프로이데는 이내 남아있던 조금의 경계마저도 풀어내고 문을 나서 쥬니와 함께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을 향해 걸어가면서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쥬니도 역시 프로이데 집 주변에서 멀지않은 빈민촌에 사는 아가씨였고 어려운 집안의 사정을 돕기 위해 시미터의 여관에 취직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여관에 도착했다.
“그럼 오늘부터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프로이데 선배! 세르핀씨!”
블라우스와 롱 스커트를 정리한 쥬니가 세르핀과 프로이데를 향해 머리가 무릎에 닿도록 깍듯하게 인사했다.
“쥬니 양 오늘부터 잘 부탁해요~ 프로이데도 쥬니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래요”
그렇게 세르핀은 짧은 훈화말씀을 끝낸 뒤 카운터로 돌아갔다. 프로이데도 인사하는 쥬니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로 화답한뒤 자신의 위치에서 손님의 접객준비를 마쳤다. 어제 많은 일이 있었고 오늘도 평소와는 다르게 하루가 시작됐지만 귀여운 후배가 생겼다는 사실에 프로이데는 내심 들떠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도 이 베스테, 그리고 이 시미터의 손잡이 여관에서 프로이데는 즐겁게 일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