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이 글은 특정 종교를 표방하거나 비판, 비난하는 글이 아닌 픽션임을 알려들립니다.
종교재판이 한창인 마을
한 사내을 둘러싸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중앙에 있는 사내은 심한 상처들과 피를 흘리며 기둥에 묶여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고결함과 당당함이 남아있었다.
“에잇 물렀거라!”
마을 사람들을 한쪽으로 물리며 거만해 보이는 중년의 남성과 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있던 촌장에게 물었다.
“이 사내가 우리 신앙을 더럽히고 성전을 세우는 일을 방해하였다. 해서 왔습니다. 맞습니까?”
그의 말에 촌장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였다.
“그... 그것이...”
“그것이? 어찌하여 바로 이자의 죄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 마을도 혹시 이자와 같은 생각이신건 아니겠지요?”
“아이고! 절대 아니옵니다! 그저... 그... 그 청년은 지나가다...”
촌장이 말을 흐리자 옆에 있던 젊은이가 나서 대신 이야기했다.
“에잇 촌장님 제가 말하겠습니다. 심판관님 그 사내가 저희 마을을 지나가다 저희 성전 건축이 예정된 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또한 형제님들께서 보내주신 저희 신도들이 성전 건축헌금을 내라 말하자 거부하고 비난하였습니다. 그 관경을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젊은이의 말에 심판관은 자신들의 부하를 한번 보았고 확인을 받은 후 사내에게 다가갔다.
“네놈! 어찌하여 이 하늘에 하나 계신분의 성전이 될 곳에 무례하게 들어가 맘대로 잠을 청하고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뜻을 전할 곳의 기부를 하라 하였는데 감히 그것을 거부하고 비난을 하였단 말인가. 입이 뚫려있으니 말을 해보거라.”
사내는 심판관의 말에 심판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신앙을 청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될 수 있으나 이렇게 아무곳에나 원래 있던 것을 몰아내고 성당을 지으며 눈으로 보아야지만 믿고 손으로 만져야지만 알 수 있는 신앙이라는 것은 진정 당신들이 그 분의 뜻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뭣이?!”
“아니 이놈이!”
심판관 옆에 있던 부하들이 사내의 말에 발끈하여 나서려하자 심판관이 그들을 막아 세우고는 다시금 물었다.
“그렇다면 말해보거라. 네놈의 잘난 신앙은 어디서 오는가? 너의 하나되시는 분의 성전은 어느 지역에 있는가. 그렇게 잘난 듯이 말하는 것보면 대단한 곳에 건축되어있나보군.”
심판관의 말에 사내는 살짝 실소를 보이면 말했다.
“아직도 내말을 이해를 못하셨군요. 제 신앙은 물질적이며 현세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성전을 세우고 머리에 교전을 담으며 입으로 교리를 전한다.’ 이것이 저의 하느님 하늘의 임금님께서 내려주신 진리이자 하나되는 교리입니다.”
심판관은 그의 말에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이상론일뿐... 그야말로 멍청하고 아둔한 이들이나 지꺼릴만한 말이로군. 인간은 보이지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믿지 못하고 받아드리지 못한다. 하물며 하느님의 성전은 그 무엇보다 웅대하고! 장엄하며! 어느 무엇도 꿇리지 않아야한다는 말이다!”
심판관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뒤로 돌아떠나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이단죄로써 사형을 명한다.”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은 사내를 처형대로 데려가기 시작했고 심판관은 잠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리고 심판관은 경악하였다. 사내는 겁을 먹지도 인생을 포기한 듯한 무념도 아닌 이 상황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하들이 사내를 처형대로 데려가던 중 갑자기 마을구석에서 한 덩치큰 남성이 말을 타고 나타나 심판관의 부하들을 쓰러트리더니 사내를 순식간에 낚아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저거!”
부하들이 급하게 말을 찾기 시작했고 심판관은 그 장면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누군가 도와줄걸 알고있었던 것인가... 아니다 그 표정은 그 순간을 마치 자신의 숙명을 받아드릴때가 되었다는 듯한 미소였다... 놈은 대체...’
남성과 사내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부하들은 결국 그들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밤 어느 숲속
“왜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나? 자네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터.”
“그랬다간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지지 않았겠나.”
“단순히 그 이유인가?”
“...후 믿음이란 어디서 오는가. 신앙이란 어디에 있는가. 시련없는 보상은 있는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야?”
“요근래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 많은 이들을 보며 많은 어려움을 마주했네. 허나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닐세.”
“이보게 사람들은 이제 믿음을 잃어가고있네. 아니 잘못된 믿음의 길로 가고있지. 눈에 보이고 손에 취할 수 있는 이득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배우고 그것을 믿고있네. 그분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내려와 수많은 고난을 겪으셨지.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분의 고난을 받아드리려 하지않네. 모든 일이 어려움 없이 풀리기를 원하지. 나도 거기서 내가 끝나길 바랬을 수도 있네.”
잘못된 믿음, 거짓된 평화
고통 없는 정의, 보이지 않는 희망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하나 이상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만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거나
종용하며 잘못된 길을 걷게 하는 것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신앙이란 자신의 믿음을 갈고 닦는 길이며
자신의 길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