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어두컴컴한 암흑이 내려앉은 구 기숙사.
구석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커튼을 쳐 놓은 버려진 창고―또는 에이의 공방.
그곳에서 비이는 오늘도 바닥에 널브러져 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침이 바닥에 깔아둔 천을 적시고 있었다.
실험 5일 차 저녁이었다.
“비비. 이봐, 비비. 괜찮나?”
에이는 마법봉으로 비이의 팔을 콕콕 찔렀다.
그러나 비이는 그녀의 부름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꿈틀꿈틀 떨기만 했다.
몇 분 뒤.
비이가 정신을 차리더니 휘청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가? 마력에 변화가 있나?”
에이가 묻자 비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마력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심상이 그려졌다.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력을 감지할 때 각자 다른 문양 혹은 형상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력문이라고 불렸으며 어떤 마법사라 하더라도 다른 마법사와 마력문이 일치하는 경우는 없었다.
비이의 마력문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흰색의 줄기 여럿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맴도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만약 마력 보유량이 성장했다면 소용돌이가 이전보다 커다래져 있을 터였다.
“…….”
비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으음….”
에이가 신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마력 보유량 말고 다른 변화는 없나?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무언가 있다면 말해보게.”
“몸이 아픈데요. 근육통이 심한 것처럼.”
“그거 말고.”
사소한 거라도 좋다면서.
비이는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력과 관련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결국 비이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에이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군……. 원래 내 계산대로라면 3일 정도 지났을 때 마력 보유량에 변화가 있었어야 했네. 아무래도 이 마력 자극 장치로는 마력 보유량을 성장시킬 수 없는 듯하구만. 아쉽지만 폐기해야겠어.”
그 말에 비이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훅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 실험은 이걸로 끝인 건가요.”
그녀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음? 물론 아니지.”
“네?”
고개를 든 비이의 눈에 히죽 웃고 있는 에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마력 자극 장치는 첫 번째 실험일 뿐이야. 아직 자네를 이용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단 말일세. 설마 벌써부터 후회하는 건가?”
후회라면 이미 첫날에 했다.
그러나 비이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거든요. 그래서 다음 실험은 어떤 거죠?”
“후후. 좋은 질문이야. 마력 보유량을 키우기 위한 두 번째 실험은 바로 마석 이식이라네. 순마력이 결정화한 마석을 이용해서 보유량을 인위적으로 확대하는 거지.”
“이식이라고요?”
“그래.”
비이의 머릿속에 뾰족한 마석을 자기 배에 쑤셔 박는 에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석은 방금 말했듯 순마력의 결정. 그러니 이것 자체는 사용이 불가능하지. 마법사가 순마력이 희박한 곳을 여행할 때 챙겨가는 비상식량 같은 거라고나 할까. 비비, 라젠쿠 현상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아니요. 처음 듣는데요.”
“라젠쿠 현상이란 쉽게 생각해서 마력 흡수의 반대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마법사가 순마력을 흡수해서 가용마력으로 바꾸는 것과 달리 마법사의 마력이 순마력에 영향을 끼쳐 그 성질을 바꾸는 것을 뜻하지.”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요?”
비이의 눈이 커졌다.
“흔한 현상은 아니라네. 마법사의 마력 속성과 주위 자연환경, 대량의 가용마력과 광범위한 마법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발생하는 데다가 모든 조건을 맞춘다고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아니거든. 중요한 건 라젠쿠 현상이 일어나면 순마력에 속성이 깃들며 마법사의 마력과 공명한다는 것이지.”
“공명…….”
비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이는 그런 비이를 잠시 바라보다 뒤쪽의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내 왔다.
그건 아기 손바닥 크기 정도의 녹색 보석이었다.
“이건 안몰 협곡에서 가지고 온 마석일세. 가끔 산산이 찢긴 짐승의 사체가 발견될 정도로 바람이 무척 많이 부는 곳이지. 자네는 오늘부터 이걸 계속 몸에 지니고 있으면 되네.”
“지니고만 있으면 되나요?”
“왜. 설마 내가 이걸 자네 몸속에 쑤셔 넣기라도 할 줄 알았나?”
“선배 입으로 이식이라고 했잖아요.”
“아아. 그래서 오해했군. 만약 내 예상대로 된다면 자연히 자네의 몸이 마석을 흡수할 거야. 이 마석은 내가 특수한 가공을 해놓은 물건이거든.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피가 나거나 흉터가 남을 일은 없을 테니까.”
에이는 그렇게 말하고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순간 비이는 얼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죽으려고 한 주제에 아프거나 상처가 남는 걸 걱정하는 거냐.
비이는 상대가 마치 그렇게 묻는 듯했다.
그녀는 에이가 손에 들고 있던 마석을 낚아채듯 가져왔다.
“오. 의욕이 넘치는구만.”
에이가 다시 한번 히죽 웃었다.
비이는 그런 에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요?”
“그래. 아, 마석의 변화를 관찰해야 하니까 내일도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게.”
“네.”
비이는 짧게 답하고 에이의 공방을 나왔다.
복도가 어두웠기에 그녀는 최하급 빛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봉 끝이 빛나자 주변의 사물이 어렴풋이 보였다.
구 기숙사를 나온 비이는 계속 손에 쥐고 있던 녹색의 마석을 보았다.
“……하아. 모르겠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보흐봉 마법 학원의 1학년들은 야외 수업을 위해 학원 뒤쪽의 실습장에 모여 있었다.
1학년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가운데 비이는 혼자 동떨어져 서 있었다.
그녀는 망토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거기에는 에이가 준 마석이 들어 있었다.
‘계속 지니고 있으라고만 했으니 반드시 피부에 닿을 필요는 없겠지.’
비이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던 그때.
“야. 거지.”
그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남학생 셋에 여학생 둘.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장기가 모조리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비이를 괴롭게 하는 건 그들을 앞으로 4년은 더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 참. 그냥 부른 건데 얼굴이 왜 그래. 비이.”
피부가 새하얀 여자애 하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비이는 고개를 숙였다.
“너 요즘 그 괴짜랑 뭐 하고 다니는 거냐?”
키가 작은 남자애가 물었다.
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실험에 관해 말하는 것은 마법을 통한 맹세로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마법이 아니었다고 해도 비이는 그들에게 자기 일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야. 대답 안 하냐?”
키와 덩치가 다른 1학년 애들보다 한층 큰 남자애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법 배우고 있어.”
“마법을 배우고 있다고?”
키 작은 남자애가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웃기고 있네.”
은귀걸이를 한 여자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3학년 괴짜, 마력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실기는 0점에 가까운데 이론만 만점인 가짜 마법사잖아. 마력 거지인 너보다도 마력이 없을걸?”
‘!’
비이의 눈이 커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도 선배한테 들었어. 학원에서도 골치 아파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머리가 긴 남학생이 말했다.
“고급 마법은 쓰지도 못하는데 이론 성적은 좋아서 내쫓기도 뭐하다고.”
“여하튼 그딴 인간한테 마법을 배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너, 실제로는 그 괴짜랑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마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잖아.”
“이게 우리를 바보로 아나?”
덩치 큰 남자애가 인상을 구기며 비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비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문터. 기다려.”
얼굴이 새하얀 여학생이 말하자 남자애가 손을 들다 멈추었다.
“우리 불쌍한 비이. 자기도 마력 거지면서 자기보다도 마력이 없는 선배밖에는 기댈 곳이 없었구나.”
비이는 입술을 다문 채 이를 꽉 물었다.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거리를 돌아다니면 모든 사람이 쳐다볼 만큼 아름다운 외모.
그러나 거죽을 벗겨보면 그 속은 새카맣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리디아.
다섯 명 중 리더 역할을 맡은 그녀는 비이가 마력이 다른 이들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꾸준히 그녀를 괴롭혀 왔다.
처음 리디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날,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을 때 비이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하루 만에 1학년 사이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리디아가 접근한 이후 다섯 명을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마력 거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 사람한테는 제대로 된 마법을 배울 수 없을 테니까 대신 우리가 알려줄게.”
리디아의 말에 비이는 순간 위가 불타는 것처럼 쓰렸다.
“오늘부터 수업 끝나고 우리랑 같이 마법 연습하자. 좋지?”
“…….”
“리디아 말 안 들렸어? 물어보잖아.”
은귀걸이를 한 여학생이 비이를 노려보았다.
리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비이를 웃는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게. 선배한테는 네가 잘 말해. 가자, 얘들아.”
리디아는 다른 네 사람을 이끌고 가 버렸다.
애들 뒤쪽에서 혼자 선 비이는 위가 뒤틀리는 감각을 맛보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