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에취~~!!"
"뭐라고?"
느닷없이 불어오는 바람소리 때문에 웨지는 빅스의 재채기를 잘 들을 수 없었다.
탄광촌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나르쉐 산맥 정상은 북극곰도 얼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빅스는 빨개진 코를 거칠게 문대며 말했다.
"흐워..뭐 얻어..머..먹을게 있다고..흐웨치!!"
"...언제부터 언청이었냐 빅스. 못 알아듣겠다..."
"크악! 춥다고!"
웨지는 그런 빅스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의 앞에는 현실을 부정해도 좋다는 듯, 엄청난 절벽이 놓여있다.
적갈색 암벽과 상아색 눈이 기분나쁘게 비벼져 있다.
이 언어도단의 살인적 추위가 살고있는 얼음산맥은 도도하다.
숨쉬는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도아머의 힘을 빌어 이곳까지 올라왔지만
웨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알려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 주변엔 유기체라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잡초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건조한 바위와 더 건조한 눈보라다. 그리고 절벽.
떨어지면
도착하기 전에
동사로 사망할 듯한
높은 낭떠러지 계곡이다.
웨지는 그 곳에서 올라오는 을씨년한 높새바람소리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못했다.,
젖 때고 부터 버리지 못하는 혀 차는 버릇을 또 감행했다. 쯧..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밟지 않았던 만년설을 밟았다는 사실에
정복감과 성취감을 느낄만도 하다.
하지만 웨지는 그러지 못했다.
성취감을 느끼기엔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임무를 수행하고
천천히 즐겨도 좋을 감각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옮긴 시선의 꼭지점을 바라봤다.
그곳엔 한 소녀가 있었다.
웨지는 말을 건넸다.
"여~ 괴물. 안 춥나?"
"허버버...내,내가 괴물이며,면 넌 조..좀비다..후욱..훅."
"....빅스 말하기 힘들면 하지마, 저 소녀에게 한 말이다."
빅스는
추위때문에
일상적 언어구사도
하지 못할 위기에서
소녀를 바라봤다.
자신들의 042버전 마도아머와는 달리
구시대 유물이라 생각할 수 있는 낡은 아머에 타고 있는 소녀는
웨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람은 동공이 풀리면 죽는다.
추위가 싫다면 동공을 풀어라.
동공을 풀면 자연스레 날씨도 풀릴것이다.
죽으면 추위도 못느끼니까.
하지만 소녀는 풀린 동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사나운 시선으로 소녀를 쏘아보던 빅스는 드디어 정상적인 한마디를 했다.
"빌어먹을 년."
"...앞으로 욕만해라. 혀가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미덕이다."
빅스는 소녀를 쏘아보던 시선을 웨지에게 이전하며, 안장 밑에 넣어둔 보드카를 꺼내 한모금 마셨다.
입가를 거칠게 닦은 빅스는 웨지에게 보드카 병을 건넨 후,
그는 하던 재채기를 성실하게도 계속 수행했다.
웨지는 빅스가 건넨 술을 마시고 계속 소녀를 바라봤다.
죽은 눈빛을 가진 소녀는 이미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관이다.
하지만 차림새는 더욱 가관이었다.
이 추위에 민소매 가죽 조끼와
붉은색 짧은 치마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동색 부츠를 신고 있었다.
허벅지와 팔뚝이 드러나는 옷이다.
얼어죽을..이라는 표현이 아주 생생하게 다가오는 매무새였지만
웨지와 그걸 보고있지 않았다.
그는 소녀의 이마에 둘러씌어져 있는 청록색 금속띠를 보고 있었다.
금속띠 뒤론 길고 투명한 쪽빛의 머리카락이 눈보라 속에서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웨지는 빅스에게 말을 건넸다.
"빅스..저 띠가 없었으면 우리도 당하겠지?"
"킁...자, 자네가 괴물이라 불렀잖나. 후에취! 저 년, 혼자 프렐류드 사단, 마도아머 중대를 전멸시켰다구."
"그래...그렇지.."
웨지는 곱씹어 말하며 다시 시선을 옮겼다.
낭떠러지 아래 멀리 보이는 마을을 바라봤다.
"자! 빅스, 어서 가자구.. 빌어먹을 경비병때문에 바로가지 못해서 이렇게 산맥넘어 개고생 하잖나. 해 떨어지기 전에 나르쉐마을에 도착해야 목적을 달성한다."
"흐웨치!!"
"....대답한번 쿨 하군..가자!"
웨지는 마도아머에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육중한 기계음과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신호 삼아,
셋은 산맥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웨지는 닭대가리라 애칭을 붙인 자신의 아머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타조와 닭을 빼고 유일하게 날지 못하는 새는 초코보다.
온순하고 힘이 좋아 농업과 이동수단으로 쓰인다.
제국문명은 고양이 한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그 온순한 가축을 본따 범 살상용 병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웨지는
자신이 초코보 농장 출신이라는 사실에 개의치는 않았다.
다만 생각했다.
'승차감은 초코보만 못하군..'
마도아머의 크기는 말보다 조금 크지만 무게는 말보다 10배는 무겁다.
그리고 말보다 100배는 무거울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헛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임무의 열쇠가 될 조용한 소녀를 뒤돌아 보며 검은색 기계를 가속시켰다.
두 제국병사와 한 소녀는 하얀 계곡을 내리달리는 검은 세 점이 되서, 그렇게 눈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