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희안하지. 사람 사는 곳에 그렇게 큰 놈이 나온다는거 자체가 희안햐”
“그래도 겨울철만 나와서 다행이여~사시사철 나오면 우린 뭐 먹고 살어 안그려?”
“혹시라도 애들 못가게 단속들 잘 허드라고.”
“이것들아!! 잡담 그만하고 어서와서 거들어! 촌장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지금 무슨 짓들인가!”
모든 인명피해 사건 처리엔 빠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입소문, 웅성거림, 유가족의 통곡소리, 책임자의 잔소리.. 그리고 개념없는 인간들의 흰소리다. 열거한 아이템 중 가장 끝에 오는 흰소리를 나누던 무개념 동네 총각들은 나르쉐 펍의 안주인 네리아에게 한소리 듣고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도아머에서 나온 빛이 녹인 사람은 정확히 4명 반이다. 그 중 한 사람은 왼쪽 어깨서부터 오른쪽 골반을 경계로 아랫부분이 없어졌다. 물론 사망했다. 해파리 냉채를 해동한 듯 흐물거리는 상태로 변해버린 촌장님과 동네 사람 셋은 마을 여장부 네리아와 그녀를 사모하는 네명의 총각에 의해 수거(?)되고 있었다. 바람은 차갑고 밤은 아직 어두웠다. 영원히 어두울 것 같은 밤이다. 반쯤 남은 시체는 이미 얼어붙고 있었고, 따라서 네리아는 단단히 굳어버린 릭스의 눈동자를 감겨줄 수 없었다. 기계문명이 싫어. 가스트라 황제도 싫어, 제국병사도 싫어. 50년 넘게 걸어온 사람을 이렇게도 쉽게 녹여버리는 마도아머도 싫어! 촌장님을 죽인 그 놈들도 탄광 속 몬스터에게 당해버렸으면 좋겠어! 검은 땅을 바라보며 젖은 눈빛으로 거기까지 생각하던 네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혹독한 추위에도 하나 둘 나와서 뒤처리 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했다. 네리아는 미안했다. 동네 광부들의 뜨겁게 달궈진 등을 식혀줄 시원한 맥주를 대접하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
“어이 네리아~ 근데 릭스 시체는 어떻게 하냐. 좀 난감하네..”
네리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겨울철엔 언제가 설장(雪葬)을 해 왔잖아, 지금은 땅을 파려해도 곡괭이가 들어가지 않아. 탄광 출구 옆에 넓은 구덩이가 있을꺼야. 펍 창고에 낡은 카페트 한 장 있는데 그걸 가져가서 잘 덮어두자.”
“겨울이 지나고 옮겨 묻는거지?”
“...응. 그래야지..”
네리아는 마을 주민들의 눈물을 잘 닦아주고 집으로 들여보냈다. 집집마다 2층에 있는 작은 나무창에선 소나무 뿌리근처에 자라는 작은 송이버섯처럼 아이들의 머리가 송이송이 돋아나 있었다. 네리아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도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서 치우고 들어가서.. 어서 치우고?’
생각을 거듭하던 네리아는 순간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엊그제 함께 말을 나누고 눈빛을 교환하던 사람들을 치운다는 표현으로 벌써 무생물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자기혐오가 든다는 것, 그게 또 혐오스러웠다.
네리아는 아이들이 흔드는 손짓만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 고인의 슬픔을 만끽하기엔 겨울은 길고 배는 굶주렸어. 살아있는 사람들에 온 정신을 주어도 모자란 마을이잖아. 위안인가? 위안이라도 좋아. 악덕을 쌓아도 좋으니 잊어버리고 싶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 새카맣게 어린 녀석들 데리고 밤새 술이나 마시고 싶다고 ... ... 촌장님 댁에는 낡은 흔들의자가 있었지. 어릴 적 그 의자에 앉아서 파이프를 물고 벌쭉거리며 웃던 촌장님이 정말 미웠는데..이젠 왜 미워했는지 이유조차 모르겠어. 파이프 냄새가 기억나지 않아. 가슴이 봉긋 솟아오르고 아버지를 도와 펍의 잔심부름을 시작할 나이가 되선 촌장님의 파이프 연기 냄새를 맡질 못했어. 서재에서 잘 나오지 않는 분이잖아.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라구. 얼마전 펍에 들른 촌장님 이마에 몰라볼 정도로 주름이 늘었다는... ... 내 탓 아니야!! 릭스는 삽질을 잘했지. 늦봄에 얼어붙은 눈덩이를 치우는 건 언제나 웃음이 시원한 릭스의 몫이었어. 잘 생기진 않았지만 튼튼한 턱과 넓은 어깨는 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었었지. 착한 애였는데... ...’
“.. 이봐 !!네리아!!!”
“으..응!”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대충 끝냈으니 펍에서 술이나 한잔 주라구.”
“그래...... 그러자.”
네리아는 고개를 들어 동쪽하늘을 바라봤다. 어김없이 미명은 산머리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누가 죽던, 어떤 눈물이 있건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침이 싫었다. 술은 잘만 이용하면 아침이 오는 시간을 멈출 수 있다. 수고한 4명의 까까머리 총각들이랑 함께 나르쉐의 다섯 사람은 아침을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무언가를 멈추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또 있었다. 마도아머에 시동을 건 웨지는 앞에서 다가오는 생물이 무엇인지 확실히 판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확실한 판별이 가능하다는 것에 황당함을 느꼈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두 개의 형광색 발광체는 역시나 눈동자였다. 그 생물의 등에는 병사들의 죽창 같이 날카로운 돌기가 솟아있는 나선형의 껍질이 집채만한 크기로 튼튼하게 씌여져 있었고, 그 아래엔 젤리같은 몸체가 육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앞엔 더듬이 같은 생김새를 한 눈동자가 달려있었다. 달팽이었다. ‘달팽이가 저렇게 컸나? 이거 달팽이라고 한눈에 알아보는 건 좋은데 크기에서 현실감이 없구만’ 웨지는 혀를 찼지만, 이번만큼은 혀를 찼는지 깨물었는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어쨌건 빅스를 죽인 녀석이다. 저녀석 내가 멈춰야 동굴 안쪽의 성소에 소녀를 당도시킬 수도 있고 빅스를 애도하는 자격도 얻을 수 있다. 저 놈, 늑진하게 다가오는 행동을 멈춰야겠다.'
“ 틱틱티딕 틱틱틱틱~~~~~”
겨울철 스웨터를 벗을 때 나는 정전기 소리가 몇천배 증폭되면 저런 소리가 날까? 달팽이 몬스터의 등에선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그 점액질 몸뚱아리는 반투명해지면서, 그 속에선 초록색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작은 발광물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웨지는 직감했다.
“피해!!!”
그 순간, 졸고 있는 웨지를 깨웠던 육중한 진동이 들리며, 동굴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웨지는 반사적으로 마도아머를 급 후진 시켰다. 심한 반동으로 내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웨지는 두어 번 심하게 쿨럭 거리고 소녀를 찾았다. 무사했다. 생각했다. 달팽이는 몸에서 발전시킨 전기를 등껍질로 발산하는 녀석이었다. 소녀가 무사하다면 나에게 겨냥된 것이다. 있던 자리를 살펴봤다. 번개가 떨어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했다. 다시 소녀를 바라봤다. 그때서야 소녀 주위에 옅은 초록색 막이 씌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리플렉크로군!!”
소녀는 진동을 느꼈을 때부터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메모라이즈한 마법을 시전하려 주문을 외웠던 것이다. 달팽이 몬스터가 발산한 번개공격을 마법반사 주문인 리플렉스로 방어한 모양이다.
웨지는 기분 좋게 혀를 찼다. 이번엔 확실히 혀를 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몸체에다 번개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다. 그렇다면...
<제국 육본 병술서 제 3장, 마도아머의 공격과 방어. 웨지는 3장의 24절을 생각했다. 몬스터별 상성 공격법..번개속성을 가진 몬스터는 물 속성의 레이져로 공격해라.>
생각과 동시에 웨지는 공격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컨버터블(열이 조종석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덮개를 씌우는 장치) 버튼을 눌렀다. 21살 때부터 타기 시작한 마도아머는 이미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물건이다. 웨지는 뚜껑이 닫히는 짧은 시간에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소녀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의 거리가 있었지만, 소녀가 무엇인가를 또 중얼거린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마도아머의 보호 장갑이 닫히고 레이저를 발사할 준비가 끝난 후 웨지는 달팽이의 측면으로 아머를 이동시켰다. 행동이 느린 몬스터라서 이쪽을 신경 쓰진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 마법을 반사시킨 소녀에게 관심이 쏠린 듯 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보자.."
웨지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다리를 고정시킨 후 레이져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아머는 레이져를 발사할 때 동력기관의 모든 에너지를 마석에 집중시킨다. 그래서 레이져 공격시엔 움직이지 못한다. 초코보로 따지면 그 큰 부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레이져를 발산하는 마석이 박혀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물컹아~”
웨지의 시각 정 중앙에 몬스터가 놓여있고 시야가 흐려지는 경계에 소녀가 희미하게 보인다. 몬스터는 소녀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소녀는 웨지를 보고 있다.
“큭. 왜 날보고 있는 거냐!!”
몬스터가 다가오든 말든 아무생각 없다는 듯 소녀는 웨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86%가 충전되었다. 몇 초만 있으면 공격 가능하다.
“탁탁타닥 탁탁탁탁탁탁!!!”
웨지는 숯덩이가 된 빅스와 저 기분 나쁜 몬스터 소리가 겹쳐지면서 아직 충전이 덜된 아쿠아 레이져를 반사적으로 발사해 버렸다. 레이져를 쏘는 건 언제 해봐도 기분 나쁜 일이다. 순간 가열된 기체에선 비릿한 금속냄새가 올라오고, 컨버터블의 방탄유리창엔 급격히 올라간 실내 기압으로 물방울이 생긴다. 레이져를 발산할 때 끊임없이 진동하는 의자를 꽉 잡고 이를 악 물어야 한다. 몬스터는 한참 전기를 모으고 있어서인지 몸 전체가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레이져를 미쳐 짐작하지 못했다.
“쿠슈우우우우웅~~~~!!!”
정확히 옆구리에 레이져를 맞은 몬스터는 점액질 몸으로 전기를 모으던 중 아쿠아 레이져로 방전이 되었는지 빠지직 소리가 나며 경련하고 있었고, 소녀는 아까 중얼거리던 마법을 시전하려 하는지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충전되었던 에너지가 떨어지면서 레이져의 힘은 약해지고 있었고 아직 몬스터는 살아있었다. 웨지는 100% 채우지 못하고 레이져를 발사한 자신을 탓하면서 소녀에게 희망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염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상대는 알아차리는 게 세상이치인지도 모른다.
소녀는 웨지의 눈빛에 응답했다.
....
........... ......
“.....블리자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이었다.
줄곳 풀린 눈동자도 여전히 아래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법을 시전하는 소녀의 손동작은 마치 손 시려워서 입김을 불어넣으려 하는 어린아이의 가냘픈 행동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법은 강력했다.
달팽이 몬스터는 웨지의 아쿠아 레이져와 자기몸에서 발전된 전기의 방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가운데,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식어간다는 사실을 느꼈는지 경련을 멈추고 튀어나온 눈을 이리저리 둘러봐 댔다.. 달팽이의 껍질에선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점액질 몸체는 눈에 띄게 건조해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주변은 갑작스런 온도차로 인한 심한 대류현상으로 아지랑이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리고 공기 자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세상에....”
웨지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과학으로 점수 매길 수 없는 자연의 경이가 합치면 화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건 고고학자들의 솔솔한 학문적 욕구를 호승 시키는 중요한 지적 재산이 될 것이다.
지금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이름도 모르는 한 소녀는 집채만한 몬스터를 얼음화석화 시켜버렸다.
꽁꽁 얼어붙은 몬스터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웨지는 컨버터블을 열고 소녀에게 아머를 이동시켰다. 몬스터도 죽였으니, 이제 빅스를 애도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엔 웨지의 염원이 약했는지 소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소녀는 다른 행동을 취했다.
“어이어이..소녀...지금 뭐하는...어이!!!! 크악!”
소녀는 얼어붙은 달팽이 몬스터에게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 아머 살상용으로 장착된 유도미사일이다. 동굴에서 그걸 발사하면 충격으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런 개념없는!!!
웨지는 아머 조종 경력 13년만에 최초로 특이한 시도를 했다. 4살박이 어린아이가 뒤뚱뒤뚱 달려가다 앞으로 철퍼덕 넘어지는 모양새와 다를 것 없이, 콕크핏을 아머의 두 팔로 감싼채 앞으로 넘어지길 시도한 것이다. 동굴이 무너지는 판에 쓸데없는 시도였을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웨지는 아머 조종기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도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의식에 빠져들었다.
........ ...... ........ 주마등이 지나갔다.
‘어머니, 아버지.. 초코보 배설물로 옆집 대머리 아저씨 애플파이를 못먹게 만든 것 죄송해요. 아직도 동생이 그런 줄 알고 계시죠? 이 미천한 자식이 제국군 병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머니. 무뚝뚝하게 내색 안하시곤 친구분들과의 술자리에서 제 자랑만 늘어놓으시던 아버지. 자식놈은 그 훌륭한 제국의 작은 변두리 탄광마을에서 매장됩니다. 건강히 오래 사세요..깨꾸닥.....더 이상 생각할 것 없는데 왜 안 죽냐... 다시 깨꾸닥... ’
“꿈벅꿈벅..”
웨지는 눈을 꿈벅거렸다. ‘아직 살아있네?’ 천정이 보였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시야가 흐려지는 한 구석에 소녀가 있었다.. 내려다 보고 있다.
“....뭐, 뭐냐......”
소녀는 아머에서 내려 무릎을 짚고 서서 웨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귀엽다면 귀엽다 할 수 있는 포즈였지만 소녀의 풀린 동공에선 을씨년스러운 기운만 감돌고 있었고, 무표정한 소녀의 얼굴은 흡사 시체를 내려다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직도 미사일의 폭발음 때문에 귀가 멍멍하고 등이 시리다. 죽은 달팽이 몬스터의 움직임처럼 천천히 꾸무적대며 일어난 웨지는 또 다시 혀를 찼다.
“쳇..젠장, 임무 마지막에 이 무슨 꼬락서니를 당하는지..”
일어나서 몸을 추스린 웨지는 간략하게나마 빅스를 장례해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산산 조각난 달팽이조각을 기념으로 하나 가져갈까......하는 생각을 번갈아 하면서 지친 몸을 움직였다. 소녀는 한쪽 벽에 세워둔 자신의 아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