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유록
조선 후기 문신, 문장가인 신유한이 있었는데 이분은 일필휘지 뛰어난 글씨와 빼어난 시 등으로 당시 매우 유명했음
1719년 (숙종 45)에 제술관의 신분으로 일본으로 통신사인 홍치중과 같이 떠남
대마도부터 일본 대판 ( 오사카 ) 에 도착해 관백인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즉위를 축하하고 ( 실제론 관백이 아니었음)
돌아오는 과정에서 본 일본의 풍습과 지리 등을 신유한이 써놓은 기록임
그 중 일본인들의 성에 대한 기록들을 써놓음
이 나라의 성 풍속은 반드시 등불을 밝히고 남녀가 잠자리를 가지며
왜인 남자들은 특이하게 품속에 춘화도를 가지고 다니며 항상 정욕을 일으킨다
그리고 왜인들은 특이한 성 풍습이 있는데...
내가 가는 곳 마다 시와 그림을 그려달라는 자들이 너무 많았고 심지어 새벽까지 무수한 커미션 요청이 들어오니
( 조선 통신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시나 경구를 수려한 글씨로 쓰거나 그림을 그려 다이묘나 권세가들에게 전해주는 것이었음 )
마음이 울적해져서 통역관과 호위를 데리고 밖을 거닐다 유곽을 보게 되었는데...
연꽃이 뺨이 되고 하얀달이 살결 된듯 아름다운 어린 창기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소년 남창들이었다..
심지어 모든 남자들이 다른 여자 기생들을 찾지도 않고 요염한 동자만 지목해 애를 태우고 있다...
황금 욕실에 비단 가마에... 남창들이 있는 곳은 임금의 거처 같다.
심지어는 다른 이가 남창의 애인을 질투해 죽이기 까지 하니 허 참...
일본의 유학자 중 최고인 아메노모리 호슈과 만났을 때
"음양이 조화가 되어야 이치인데 양과 양이 이끌린다니 해괴하지 않느냐?"
라고 물었더니
아메노모리 호슈
( 일본 에도 시대 당시 최고로 명성이 높은 성리학자이자 유학자이고 조선어도 능통하며 친조선으로 유명 )
......... 어....
그 좋은 것을 아직도 해보지 않았다고요? 실화임? ㄷㄷㄷ
........
" 성리학자인 아메노모리도 저런데..
보통 왜인들은 오죽하겠나... "
사실 동성애를 배격하는 조선이 특이하다할 수도 있는데
일본은 물론이고 동시기 중국에서도 상류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도 소년애, BL, 남창 문화를 반쯤 공개적으로 즐겼음
특히 중국에서 대 히트를 친 '변이채' 라는 BL... 라기보단 Tag : 피폐, 유혈, 조교 등등이 달린 소설 책이
상국에서 물건너온 희귀한 책이라며 기뻐하며 탐독하던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고간 일도 있음
물론 공식적으로 중국에선 동성끼리의 성교는 금지시켰지만 그동안 처벌 규정이 없어 그냥 유명무실한 법이었음
청나라 때 드디어 처벌 법이 나왔지만 실제로 집행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유행했다가
이후 근현대에 와서 완전 터부시 되면서 사라짐
일본 또한 18세기 중까지 유행했지만 메이지 유신 즈음 해서 동성애를 배격하며 법적으로 금지해 사라짐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삼국시대를 넘어 고려시대까지 어느 정도 남아있던 동성애 문화를
상류층까지 전부 합심하여 싹 다 음지로 보내고 불경시하여 배격한 조선이 특이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음
근데 보통 저런경우는 동성애 이전애 매춘이라서... 음성적으로야 하긴 했지. 왕의 남자에서 나오듯이 남사당패들이 몸판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실 대부분 가난한 어린소년들이 박히는 대상이어서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봄 교도소에서 근육질 죄수들이 호리호리한 죄수들 뒷구멍 따는게 유사하다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고대그리스에서도 할 정도로 메이저한 문화이긴 했어
남창이라는게 어차피 상류층인 이유가 여성이랑 성관계해서 아기가 생겼는데 알고보니 여자가 왠 딴놈이랑 해서 아기 생겼다고 이야기 해봐 그럼 귀족 체면에 저건 내 자식이 아니다 해버리기도 어렵고 나중에 재산 분할 해버려야 하는데, 남창으로 성욕 풀면 자식이 없으니 얼마나 편해
조선 통신사 일동: 아오.... 우삼방주(아메노모리 호슈) 저 인간도 결국 왜놈이었어...
솔직히 궁굼함 당시에 보추들이 얼마나 아름다웠음 귀족층만 즐겼음?
유교 원리주의 국가인 조선에서 동성애가 허용될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리웹-3641492601
근데 보통 저런경우는 동성애 이전애 매춘이라서... 음성적으로야 하긴 했지. 왕의 남자에서 나오듯이 남사당패들이 몸판다던가 하는 식으로.
조선인들은 생각보다 꼴알못이였군
게이게이야... 조선통신사한텐 먹는게 ㅅㅅ였다고! 가스테라가 얼마나 개꼴렸으면 외교자리에서 더내놔 시전했겠어
조선 통신사 일동: 아오.... 우삼방주(아메노모리 호슈) 저 인간도 결국 왜놈이었어...
솔직히 궁굼함 당시에 보추들이 얼마나 아름다웠음 귀족층만 즐겼음?
나도 궁금하니 작성자를 보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후덕)(풍성)
1. 저런 남색용으로 기르는 경우엔 보통 아주 어릴때부터 잘라내서 진짜 이쁜 경우가 더 많았음 2. 고려, 삼국시대때 우리나라가 그랬듯 귀족층의 전유물
중도 문화에서 거기 자른다는 이야기는 처음듣는구만
귀족층은 당연히 즐겼음. 일본의 소년 남창 문화가 절에서 스타트 끊고 그게 귀족층>무사층>상인 이렇게 넘어갔다고 추측되니까.. 그리고 남창 비쌌음. 외모가 어느정도 되면 걍 기본으로 여자보다 비쌌다고 함. 그래서 돈없는 무사가 자기 최애 남창이 상인에게 계속 지명되고 자기는 못만나니까 돈없는 자기 신세한탄+NTR당했다고 빡쳐서 상인 칼찌하고 그런 사건도 있었음.
자른다는게 물리적으로 자르는건 아니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고환을 맛이 가게 만드는걸로 알음 묶는 경우도 있었고 요도로 뭐 넣는 경우도 있었고...
고대그리스에서도 할 정도로 메이저한 문화이긴 했어
그러게,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쩌다 그랬으려나?
뭐 대부분은 성욕 해소하는데 애가 생긴다는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여자를 사랑하는건 본능인데 남자를 사랑하는건 이성이 본능을 누른거잖아? 라는듯
그리스에서는 본능적인 쾌락보다 본능을 이겨낸 쾌락을 더 중요시했는데 남자와 여자가 하는건 본능적이라고 봐서 동성애로 쾌락을 느끼는것을 더 높은 경지의 쾌락이라고 봤었음
오 그렇구만
사실 동성애 문화는 동서양 할것없이 뿌리깊긴 하지ㅋㅋㅋ
일본이 불교가 더 성행해서 그런 듯
남창이라는게 어차피 상류층인 이유가 여성이랑 성관계해서 아기가 생겼는데 알고보니 여자가 왠 딴놈이랑 해서 아기 생겼다고 이야기 해봐 그럼 귀족 체면에 저건 내 자식이 아니다 해버리기도 어렵고 나중에 재산 분할 해버려야 하는데, 남창으로 성욕 풀면 자식이 없으니 얼마나 편해
여성과도 엉덩이로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하다보면 흥분해서 혹은 분위기타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앞구멍에 넣어버릴 수도 있으니
그걸 누가 증명함? 단체로 가서 구경해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유럽에 왕실에 애를 낳을때 증인들이 우루르 몰려거사 출산장면 보는게 괜히 있는게 아님
꼴잘알
남자를 진정 이해해줄수 있는건 남자인게 당연하다
그밀은 일뽕들도 적절하게 개조하면 보급형 보추로 만들수 있다는 말 아녀???
사실 대부분 가난한 어린소년들이 박히는 대상이어서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봄 교도소에서 근육질 죄수들이 호리호리한 죄수들 뒷구멍 따는게 유사하다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에도시대 일본과 고대 그리스는 거대한 교도소나 마찬가지였구나!
그리스의 게이ㅅㅅ론: "남자와 여자가 하는건 그저 번식욕구에 의한 것으로, 그건 짐승도 할 줄 아는것, 고로 짐승수준의 ㅅㅅ인 것이다. 허나 우리 인간은 짐승보다 고등된 사고가 가능한 존재, 동물이 하지 못하는 남자와 남자간의 사랑은 한낮 번식욕구에 끌린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근데 다른 동물들도 동성끼리 하는 경우 있다던 거 같은...
대표적으로 보노보(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중 하나)
역시 보추는 최고야! 인가
하지만 정작 순 우리말에도 미소년 파트너( '면' )를 일컫는 말이 있음. 그걸 보면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있을 만큼은 있었을수도.
고려때만 해도 있었던 문화지만 조선은 고려를 비판하고 박살내며 나온 국가니 그걸 이어갈수 없는 노릇이지..
전체적으로 조선은 희한하게 정상국가임 당장 머리빡빡 미는 나라가 주변국 전부인데 안 밀고 다니잖음 살점을 포떠서 죽이니, 끓는 물에 삶아죽이니 하는 사형도 엽기적이라고 안 하고
머리 같은건 반대로 쟤들은 왜 비위생적으로 머리를 기르고 다니지? 같은 논리도 가능함 문화라는건 정상 비정상은 없음
조선사신: ㅅㅂ 이새끼들 아직도 순장하던데요?
이건 너무 국뽕적 생각이긴해 ㅋㅋㅋㅋㅋㅋ
안양군 오열
우리도 고려때까지만 해도 저런 문화가 있었음. 심지어 공민왕 같은 왕들까지 그런 취미에 빠졌고.
조선에서도 우리의 치욕스러운 시절 문화! 하면서 없앤거지 생각해보니 이거 비정상 아님? 이라는 이유로 없앤건 아니라 ㅋㅋㅋㅋ
근데 대부분의 역사권에서 있어왔다는게 범용적인 취향이었나봄
사생아 걱정 없는 책임없는 쾌락이 목적이였나?
그런것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기록보면 남창이 진짜로 여자보다 이쁘고 기분이 좋았다고하니까 뭐....정말 좋아서? 남창에 빠진것도 있을듯??
일본 유학자마저 츄라이 츄라이 모드였엌ㅋㅋㅋ
300년전 보추 어떻게생겼을지 궁금하긴 하다
ps1. 조선에는 동성결혼 해달라고 왕에게 청원올린 관료도 있다 물론 그 청원은 씹혔다 ps2. 본문에 나오는 변이채는 나중에 사도세자의 책모음집에 들어갔다
중국도 남창이 있었다는 증거
조선도 사실 왕실에서만 발작했다고 하던가
저건 동성애가 아니라 그냥 피부 곱고 곱상하면 꽈추유무 불문하고 박아대는 거임. 동성애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