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토마스 포스터
역자 - 손영미, 박영원
출판사 - 이루
쪽수 - 472쪽
가격 - 25,000원 (정가)
* 개정판
교과서처럼 읽히던 최고의 문학 입문서, 진짜 ‘교과서’가 되다!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매끄럽게 다듬은 개정증보판 출간!
2003년 출간된 이래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마존 문학비평 분야와 독서일반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 책은 사실 성인과 대학생의 교양서로 널리 읽히던 책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영어 선생님들이 ‘대학과목 선이수제’의 교재로 채택하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게 되면서 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읽히는 진짜 문학 ‘교과서’가 되었다. 초판의 작은 오류도 바로잡고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다듬었으며, 2개 챕터가 새롭게 추가되어 50쪽 분량이 늘어났다. 더욱 충실해진 이번 개정증보판은 물가 상승의 영향에도 7년 전 초판의 가격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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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어서
문학 작품, 특히 고전이나 명작을 읽는 사람은 흔히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 작품의 비밀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그 바람을 꺾어 버리기 일쑤다. 작가가 물려받은 문학 전통과 장르 전통,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작가 개인의 경험과 사상, 시대 상황과 주변 환경 등 온갖 변수가 우거진 잡초와 뒤엉킨 나뭇가지처럼 독자의 시야를 가리고 곁길로 새게 하면서 작품의 실체에 다다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별도의 채비 없이 그 어려운 길을 가려는 독자들을 위해 중요한 몇 가지 접근 방식과 코드, 상징, 기본 주제를 소개한다. 아울러 작품 분석의 실례를 통하여 비평 이론이 독서 현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 준다. 그렇게 저자의 안내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독자는 그 작품들에 관해 차츰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각 작품이 갖가지 의미와 색채를 지닌 하나의 교향곡으로 연주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벽 허물기’ 또는 ‘철망 치우기’를 시도한다. 문학 전공자와 일반 독자를 갈라놓는 가시 철망을 걷어 내고,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현대 비평의 성과를 누리게 하려는 의도이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쉽고 깊게 즐길 수 있게 말이다.
26가지 문학 독서의 기술
흔히 독자는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누가 나와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놀라운 일을 겪는지 주시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오로지 작품의 감정적인 차원에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기쁨이나 슬픔, 즐거움이나 괴로움, 고양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고 거기에 본능처럼 휘말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작품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의 감정적인 차원에도 반응하지만, 대개 다른 요소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이 작품의 감정적인 효과는 어디서 올까? 등장인물은 과거의 누구와 비슷한가? 이런 장면을 전에 본 적이 있던가? 전에 어느 책에서 누가 이 말을 했더라?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습관을 들이면,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이해하게 되고, 독서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이런 것들이 문학 독서를 풍요롭게 해주는 독서 기술의 한 예이다.
더하여 이 책은 작품에 대한 기본 접근 방식을 알려주고, 그 속의 코드와 패턴 그리고 비유와 상징을 짚어 내며 작품의 실체에 다가서게 한다. 아울러 현대 비평의 성과를 녹여 낸 수많은 작품 분석을 예시함으로써 평범한 독자라도 전공자처럼 문학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간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애러비」「써니의 블루스」『솔로몬의 노래』 같은 작품들을 여러 관점에서 논의한 부분에서 독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리라.
문학의 문법, 알면 더 잘 보인다
신화와 성경은 문학, 특히 서양 문학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와 기억, 어쩌면 무의식의 힘이 작용하는 한 서양 문학에서 그리스 신화와 예수,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지워 버리기는 쉽지 않다. 많은 문학 작품에는 장소와 계절, 날씨와 질병 같은 보편성을 띠는 코드와 더불어 옛것에서 비롯한 갖가지 이미지와 알레고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미 교수처럼 읽는 태도를 갖춘 셈이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는 뛰어난 단편이다. 소설을 쓰겠다는 야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이 훌륭한 소설 앞에서 질투와 경외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맨스필드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든파티」는 짧지만 그 안에 계층 또는 계급 제도의 모순에 대한 자각, 가족 사이의 역학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 부모의 영향력에 맞서 독립된 개체로 나아가려는 한 소녀의 성장통 등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토마스 포스터 교수가 이 작품의 줄거리와 주제가 페르세포네 신화와 겹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놀랍기까지 하다. 저자는 여러 코드와 비유를 통해 주인공이 하데스, 즉 고전 문학에서 말하는 지하 세계이자 죽은 자의 영역인 저승에 다녀온 것으로 파악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제는? 죽음과 대면하는 경험을 통해 성인의 세계로 들어서는 한 소녀의 초상인 셈이다.
문학의 성찬, 즐기는 게 남는 것이다
책 말미에 나오는 부록에서 저자는 더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 부록에는 대개 앞에서 언급한 작품, 이런저런 이유로 저자가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작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은 책들이 실려 있다.
그 책들을 전보다 더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 많은 노고가 깃들어 있다는 뜻에서 ‘작품works’이라는 말을 쓰지만, 창작이든 독서든 그것은 일단 놀이의 한 형태다. 독자는 우선 재미가 있어서 문학을 접한다. 사과가 아무리 식이섬유와 칼륨, 풍부한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도 맛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즐겨 먹지 않을 것이다.
소설이나 시, 희곡을 읽고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잘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학 작품이든 뭐든 독자는 거기에서 뭘 얻으려고 하기에 앞서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작가는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독서가 괴롭게 느껴진다면 책을 덮어라. 책 읽는 게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읽는다고 길바닥에 나앉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즐겨라. 독자들이여, 즐겁게 읽어라. 이 책 『교수처럼 문학 읽기』 또한!
- 개정증보판에 부쳐
서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01 (예외도 있지만) 모든 여행은 하나의 원정이다
02 같이 식사할 수 있어 기쁩니다 : 친교의 행위
03 당신을 먹게 되어 기쁩니다 : 뱀파이어들의 소행
04 가만, 이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05 혹시나 싶으면 그건 셰익스피어…
06 …아니면 혹시 성경?
07 헨젤디와 그레텔덤
08 그리스 신화
09 비나 눈은 그냥 비나 눈이 아니다
10 영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여기서 잠깐: 그게 정말 작가의 의도일까?
11 아픔 그 이상의 의미…: 폭력에 관하여
12 그건 상징인가요?
13 모든 게 정치적이다
14 혹시… 예수?
15 상상의 나래를 펴다
16 문학에서의 섹스
17 섹스만 빼고…
18 그 여자가 물에서 살아 나오면 침례야
19 장소도 중요하다…
20 계절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하나의 이야기
21 위대함의 표지
22 눈이 멀었다고? 다 이유가 있는 법!
23 심장병으로 죽어야 하는 이유! 질병의 의미
24 당신만의 기준으로 책을 읽지 말라
25 이건 나의 상징이야, 내 맘이라고
26 아이러니에 대하여
27 실전연습 :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글을 맺으며 : 여기 주인은 누구죠?
엔보이Envoi
부록: 도서 목록
역자 후기
개정판 역자 후기
색인
추 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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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포스터의 〈교수처럼 문학 읽기〉는 뭔가 불길하다. 마치 무림 고수들 사이에서만 떠돌던 비전(秘傳)이 유출된 느낌이랄까? 문학 강의를 생계로 삼는 처지에서 보자면, 모두가 교수처럼 '쉽고 깊게' 문학을 읽는 날은 내가 전업해야 하는 날이다. 문학의 일반 문법과 함께 시시콜콜한 독서 비결까지 일러주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정말로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 내공을 쌓은 사회라면 문학 교수로서 실직하더라도 문학 독자로서는 더없이 부듯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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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교수와 함께 문학을 읽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토록 실감나게 보여 준 책은 없었다. 정말 유용하고 통찰력 넘치는 이 책에서 토마스 포스터는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갈라놓는 해묵은 벽을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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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포스터는 그의 뛰어난 학식을 일반 독자와 학생들에게 전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을 한 셈이다. 훈련된 눈, 조율된 귀, 간단한 암호를 풀 정도의 지적 능력만 있으면 문학 작품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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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은 아무래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고, 그 메시지를 작품 속에 숨겨놓는 경우가 강하다보니 그 의도를 찾고 해석하는 방식의 독서법이 필요한 편입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특히 문학과 철학이 거의 한 몸이었던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 알베르 카뮈 등으로 대표되는 작가들의 작품은 이러한 독법 없이는 그 작품을 확실하게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운 수준이었죠. 그 시대에 녹아있던 전반적인 철학, 사회문화(ex>헤르만 헤세는 정신분석, 알베르 카뮈 실존주의, 제임스 조이스 모더니즘)를 모른다면 그 작품을 아무리 읽어도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위 책의 독서평 중에 "재미없는 고전 명작들이 왜 명작들인지 수긍하게 된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작가주의 작품들은 스토리만 보고 작품을 읽으면 이렇게 지루한데 왜 명작이라 떠들까 의문만 들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순문학은 과거에 비해 그 농도가 확실히 옅어졌죠. 폴 오스터(우연의 미학)나 한강(생명주의) 같은 작가주의나 메시지 중심주의 중심 작가를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러한 방식에서 벗어나서, 순문학도 스토리 전달 중심으로 옮겨간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최근 작품은 고전명작처럼 깊이 파고드는 방식의 독서법을 익힐 필요성도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라노벨이나 장르문학은 특성상 스토리를 중심으로 두지, 메시지를 중심으로 두는 경우는 적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겨진 장치처럼 상징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스토리를 따라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자체로 즐기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장르문학도 심오한 세계관을 담은 작품들은 해석을 위한 독법이 필요하긴 합니다
문학도 읽기 기술이 필요한 건 맞는 듯 하네요. 논픽션에 치중되어 있는 독서분야의 균형을 맞출까 싶어서 19~20세기 문학 거장들의 유명작품들을 기회될 때마다 구입반복해 많이 쌓아뒀지만, 결국 거의 읽지도 않고 방치중입니다. 반면에 라노벨과 장르문학 등은 언제봐도 재밌는데, 위 소개된 책의 기술을 습득하면 순문학의 접근성도 비슷하게 나아지려나요. 다만 독서는 의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진 이제와서 굳이 그래야 될 필요성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신간 소개를 비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긴 합니다. 비문학은 작품의 개요만 훑어도 어떤 방향성과 관점을 가지고 책의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이 쉽게 드러나는 반면, 문학은 그 작품을 끝까지 읽고 생각을 곱씹어보지 않는 이상 논지를 파악하기 어렵고, 좋은 작품인지 나쁜 작품인지 판독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죠.
문학도 읽기 기술이 필요한 건 맞는 듯 하네요. 논픽션에 치중되어 있는 독서분야의 균형을 맞출까 싶어서 19~20세기 문학 거장들의 유명작품들을 기회될 때마다 구입반복해 많이 쌓아뒀지만, 결국 거의 읽지도 않고 방치중입니다. 반면에 라노벨과 장르문학 등은 언제봐도 재밌는데, 위 소개된 책의 기술을 습득하면 순문학의 접근성도 비슷하게 나아지려나요. 다만 독서는 의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진 이제와서 굳이 그래야 될 필요성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순문학은 아무래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고, 그 메시지를 작품 속에 숨겨놓는 경우가 강하다보니 그 의도를 찾고 해석하는 방식의 독서법이 필요한 편입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특히 문학과 철학이 거의 한 몸이었던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 알베르 카뮈 등으로 대표되는 작가들의 작품은 이러한 독법 없이는 그 작품을 확실하게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운 수준이었죠. 그 시대에 녹아있던 전반적인 철학, 사회문화(ex>헤르만 헤세는 정신분석, 알베르 카뮈 실존주의, 제임스 조이스 모더니즘)를 모른다면 그 작품을 아무리 읽어도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위 책의 독서평 중에 "재미없는 고전 명작들이 왜 명작들인지 수긍하게 된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작가주의 작품들은 스토리만 보고 작품을 읽으면 이렇게 지루한데 왜 명작이라 떠들까 의문만 들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순문학은 과거에 비해 그 농도가 확실히 옅어졌죠. 폴 오스터(우연의 미학)나 한강(생명주의) 같은 작가주의나 메시지 중심주의 중심 작가를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러한 방식에서 벗어나서, 순문학도 스토리 전달 중심으로 옮겨간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최근 작품은 고전명작처럼 깊이 파고드는 방식의 독서법을 익힐 필요성도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라노벨이나 장르문학은 특성상 스토리를 중심으로 두지, 메시지를 중심으로 두는 경우는 적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겨진 장치처럼 상징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스토리를 따라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자체로 즐기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장르문학도 심오한 세계관을 담은 작품들은 해석을 위한 독법이 필요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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