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에고 프로젝트’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에고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후에 ‘페이블(FABLE)’ 이라는 멋진 작품으로 변해서 나에게 돌아올거란 상상 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어느 날 나는 페이블이 국내 정식 발매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 페이블은 단순히 XBOX 로 나오는 피터 몰리뉴의 새로운 작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고, 기대 또한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페이블의 한글화 스크린 샷을 보면서 흥분할 때에도, 페이블의 오프닝 동영상이 공개 되었을 때에도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몇일 후, 스크린 샷 게시판에 한 페이블의 스크린 샷이 올라왔다. 단순히 주인공이 서 있는 스크린 샷이었는데, 웬지 모르게 그것을 보는 순간 문득 그 캐릭터가 숲속을 뛰어다니며 모험을 하는 영상이 머릿속에 펼쳐졌고, 그 순간 웬지 모를 답답함에 그대로 몸을 일으켜 용산으로 향했다.
용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 머릿속은 페이블 속에서 일어날 모험의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집에 돌아와 페이블의 디스크를 넣는 순간, 항상 그렇듯이 제작사의 유머가 섞인 오프닝이 이어졌고, 곧 메인 화면이 떴다.
메인 화면을 본 소감은... 뭐랄까. 웬지 몇 백, 아니, 몇 천년 전의 전설을 그린 동화책의 표지 같다는 느낌이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메인 화면이었고, 웬지 모르게 긴장이 풀리는 듯한 안락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의 이름을 정하고, 확인을 누르는 순간 페이블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움직이는 순간,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오크 베일의 첫 모습은 아마도 계속해서 내 기억속에 남을 것이다.
마치 손으로 직접 그린듯한, 한폭의 유채화 같은 집들, 웬지 모르게 게임이 아닌 숲속에서 한 노인의 느릿느릿한 손길로 그려진 조그마한 그림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특히나 매우 환상적이고 부드러운 음악들과 어우러져 더욱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을은 생기가 넘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각자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물론, 어딘가로 나르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도 보였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마치 평화로운 중세시대의 마을을 보는 듯 했다. 마을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일어나는 조그마한 퀘스트 들의 구성 또한 매우 재미있었는데, 퀘스트 하나하나에 선과 악을 선택할수 있도록 선택권을 만들어 두어, 플레이어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과의 관계와 대사가 변해갔다.
조작하는 방법 또한 모두 유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메뉴얼을 보지 않고도 금새 조작체계에 적응할 수 있었으며, 단순하면서도 매우 편리한 배치로 유저의 편의를 생각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게임의 난이도 또한 그렇게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크베일을 빠져나와 영웅 길드를 졸업해, 처음으로 전투를 시작하는 순간, 전투를 즐기고 있는 나를 볼 수가 있었다.
전투를 할때마다 항상 긴장하고, 적이 어디로 공격할지 예측하며 어떤 공격을 사용할지 생각하던 그런 전투가 아니었다.
쉽지만 웬지 모르게 적당한 난이도로 인해, 나는 정말 재미있는 전투들을 치루었고, 맵에 적이 있으면 꼭 찾아가 전투를 하곤 했다.
또한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도 매우 놀라웠는데, 결혼을 한다는 것(현재 각 마을마다 아내를 한명씩 두고 있다.)과, 자신만의 집을 소유하며, 집을 임대해 돈을 벌수도 있으며, 밤에 집을 털기도 하고 각 마을의 물가를 이용해 상인을 할 수도 있는 등, 정말 모든 것 하나 하나가 놀라웠다.
하지만, 이렇듯 놀라운 페이블에도 단점은 있었다.
먼저, 유명한 피터 몰리뉴의 부풀기로 인해, 게임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 상당수 있었다. 수많은 마을이라던가, 자식을 낳을 수도 있고, 심지어 케릭터에게 알레르기 증상까지 생긴다고 했었지만, 이런 것들은 구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로딩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각 지역을 이동 할때마다 로딩을 하는데, 이 로딩은 그리 길지는 (3 ~ 5 초 가량.) 않지만, 이 지역 저 지역을 자주 이동할때에는 좀 짜증이 나기도 했다.
길드 인장을 통해서 각 지역을 순간 이동할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좋았지만, 그보다 각 지역의 로딩 횟수를 줄여 놓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각 지역, 각 마을들의 퀄리티는 매우 높은 편이다. 아름다운 햇빛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역시 로딩이 잦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또한 퀘스트의 숫자가 많지 않은 듯 했다. 메인 퀘스트가 1 개 있다면 서브 퀘스트 2 ~ 3 개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고작이었고, 좀더 많은 퀘스트 들을 원했지만 너무 적은 감이 들었으며, 몬스터의 숫자와 스킬의 숫자 또한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계또한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다.
이 지역 저 지역을 이동하는데 로딩으로 인해 좀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실제적인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로딩과 함께 아쉬운 점들이었다.
그리고 케릭터의 모습을 마음껏 결정할 수 없다는 것과(하지만 머리나 수염 모양, 문신 등, 을 할수 있고, 전투시에 상처가 남으면 그것이 그대로 흉터로 남는 점등은 정말 좋았다.), 국내 정발판만의 문제이긴 하지만 번역이 주 대사들만 번역을 해놓고, 일반적인 잡담 등은 번역이 완벽하지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페이블은 정말 훌륭한 게임이었다.
정말 뭔지 모르게 사람을 꽉 잡는 힘으로 인해 일단 패드를 잡게 되면 4 ~ 6 시간은 절대로 놓을 수가 없었고, 엔딩을 본뒤에도 자신이 하던 케릭터로 계속해서 인생을 즐길수도 있으며, 선-악 구도로 인해 악으로도 엔딩을 보기 위해서 한번 더 플레이 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직업들로 인해 최소한 2 번 이상 엔딩을 보게 만들었다. 게다가 정말 많은 요소들이 숨어 있는데, 일반적인 상점 등에선 구할수 없는 아이템들이 숨겨져 있는 마법의 문이라던가, 삽으로 땅을 파면 숨겨진 아이템이 나오고, 낚시를 하면 아이템이 걸려져 나오는 등 자잘한 요소들이 재미를 더해주었으며, 마치 수수께기 같이 맵에 있는 오브젝트 하나 하나를 열어보고, 들어가보기 위해서 페이블의 온 지역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모으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등, 정말 수많은 숨겨진 요소들이 플레이어를 즐겁게 해주었다.
만약, 누군가가 XBOX에서, 아니, XBOX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재미있고 자유도를 보장해주는 RPG를 찾는다면, 나는 페이블을 추천할 것이다.
위에 거론된 단점들 만으로 포기하기엔 페이블은 너무나 재미있고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XBOX 2 로 나올 좀 더 완벽해지고, 피터 몰리뉴의 의도와 생각이 모두 구현될 페이블의 후속작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