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실제로 일본이 다른 열강에 비해서 식민지배정책이 힘들었던 이유기도 함
서양 열강들은 자신들과 문명과 기술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역을 쳐들어간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했음
그런데 일제는 비록 근래에 들어 자신들보다 뒤쳐지긴 했어도 엄연히 자주적이고 스스로의 문화와 정체성이 뚜렷했던 조선과 청나라/중화민국에 그걸 시도했으니 수월할 수가 없었던 것
이는 영국도 인도를 상대로는 아프리카 지역보단 머리를 훨씬 더 많이 굴려야 했던 것과 비슷함
자신들이 토인 취급하던 사람들이 살던 지역과는 너무 조건이 달랐던 것
실제로 일본이 다른 열강에 비해서 식민지배정책이 힘들었던 이유기도 함
서양 열강들은 자신들과 문명과 기술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역을 쳐들어간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했음
그런데 일제는 비록 근래에 들어 자신들보다 뒤쳐지긴 했어도 엄연히 자주적이고 스스로의 문화와 정체성이 뚜렷했던 조선과 청나라/중화민국에 그걸 시도했으니 수월할 수가 없었던 것
이는 영국도 인도를 상대로는 아프리카 지역보단 머리를 훨씬 더 많이 굴려야 했던 것과 비슷함
자신들이 토인 취급하던 사람들이 살던 지역과는 너무 조건이 달랐던 것
근현대사 시간에 그래서 10년 단위로 끊어서 무단통치(1910년대), 문화통치(3.1운동 이후 1920년대), 민족말살통치(1930년대 후반 이후)로 나눠서 배우지.
무단통치 때 한 번 억압적으로 해봤다가 3.1운동으로 한번 데이고 나서 들고 온 게 유화책인 문화통치기인데(마침 이 떄 일본 본토도 다이쇼 데오크라시라고 해서 어느 정도 민주화 요구 등 진보적 주제들이 힘을 얻음),
일제시대에 그나마 부드러웠던 시기가 이 시기고, 일제를 미화하는 사람들도 이 시기를 주로 들고 옴,
보면, 일본도 뭐 원래부터 프로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었고, 특히 조선급 체급 국가에 대한 식민통치는 처음 해보는 거라(조선이 일본보다 작긴 하지만, 오키나와처럼 막 대해도 될 정도로 답없이 압도적인 체급은 아니었음), 처음에 무단 통치(억압적으로 통치하기) 해봤다가 문화통치로 전향하는 등 식민지배의 방식에 시행착오를 겪은 티가 남.
그런데 이 문화통치 시기가 유화적이고, 친일파 조선인 개인에 대한 등용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서(일종의 디바이드 앤 룰이자, 일본 식민 체제의 정당화로 '조선인 성공사례'를 만든 거라고 봐도 됨), 사실은 이 시기가 정말 한국사에서 위협적인 시기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 아예 폭압적이면 저항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교묘하게 당근과 채찍을 주는 거라서...
당연하지만, 한국어, 한글 허용해줬다고 해서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줬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오히려 2등신민의 딱지 같은 거였음. 조선인은 일본인과 명백히 구분되는 미개한 2등신민이었고, 대부분의 조선인은 명백한 유리천장...아니지, 눈에 안 보이는 유리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천장에 부딪혔어.
그게 가장 극명한 사례고..사실 지주-소작제가 가장 융성하고 지주들의 최전성기던 시절이 일제시대였음. 일제에 협조한 조선인 지주 계급이나, 일본인 지주는 일본 본토에 있고 그 대리인(마름)으로써 조선의 토지를 경영한 조선인들은 많은 부와 혜택을 누렸음. 이 사람들은 식민지 조선 내에서는 상류층 행세 할 수 있었고, 일본에서도 중산층은 되는 사람들이었음. 단적으로 일본의 하층민 근로자들보다 조선인 지주들이 훨씬 더 잘 살았음.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민족이 하나로 뭉뚱그려지지만, 사실 민족 내에도 명백히 존재하는 계층이 있고 이 계층들의 이해관계가 다 똑같지 않잖음. 예를 들어 일본인 안에서도 당연히 하층민이 있었는데 이들의 사정은 조선인 일반 민중보다 조금 낫다싶은 수준에 불과했음.
광복 후에 남한이나 북한이나 둘 다 지주제에 학을 떼면서 토지개혁 하려고 했던 것(북한은 아예 토지 국유화로 강경하게 그리했고, 남한은 좀 굴곡이 있었지만, 그래도 경자유전 원칙은 지키려고 했던)도 그런 배경이 있어서임.
결국 민족말살정책은 전쟁동원 정당화 작업이였냐 ( ܸ ⩌ _ ⩌ ܸ )
의외로 민족말살통치라고 하는 막나가는 정책들은 1930년 이후인게 많음 신사참배라던가 창씨개명이라던가
애초에 일본이 전쟁에 동원 하려고 보니 말이 제대로 안 통하니 그걸 해결하려고 한 게 민족말살정책의 목적이니
실제로 일본이 다른 열강에 비해서 식민지배정책이 힘들었던 이유기도 함 서양 열강들은 자신들과 문명과 기술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역을 쳐들어간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했음 그런데 일제는 비록 근래에 들어 자신들보다 뒤쳐지긴 했어도 엄연히 자주적이고 스스로의 문화와 정체성이 뚜렷했던 조선과 청나라/중화민국에 그걸 시도했으니 수월할 수가 없었던 것 이는 영국도 인도를 상대로는 아프리카 지역보단 머리를 훨씬 더 많이 굴려야 했던 것과 비슷함 자신들이 토인 취급하던 사람들이 살던 지역과는 너무 조건이 달랐던 것
실무자가 한글배우게하기 vs 식민지인 한글 못쓰게하기
정답이다 냥식아
그건 별개라고 봄 그 사이가 거의 30년이야
ㅎㄷㄷㄷㄷ
죄수번호-745705044
실제로 일본이 다른 열강에 비해서 식민지배정책이 힘들었던 이유기도 함 서양 열강들은 자신들과 문명과 기술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역을 쳐들어간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했음 그런데 일제는 비록 근래에 들어 자신들보다 뒤쳐지긴 했어도 엄연히 자주적이고 스스로의 문화와 정체성이 뚜렷했던 조선과 청나라/중화민국에 그걸 시도했으니 수월할 수가 없었던 것 이는 영국도 인도를 상대로는 아프리카 지역보단 머리를 훨씬 더 많이 굴려야 했던 것과 비슷함 자신들이 토인 취급하던 사람들이 살던 지역과는 너무 조건이 달랐던 것
의외로 민족말살통치라고 하는 막나가는 정책들은 1930년 이후인게 많음 신사참배라던가 창씨개명이라던가
근현대사 시간에 그래서 10년 단위로 끊어서 무단통치(1910년대), 문화통치(3.1운동 이후 1920년대), 민족말살통치(1930년대 후반 이후)로 나눠서 배우지. 무단통치 때 한 번 억압적으로 해봤다가 3.1운동으로 한번 데이고 나서 들고 온 게 유화책인 문화통치기인데(마침 이 떄 일본 본토도 다이쇼 데오크라시라고 해서 어느 정도 민주화 요구 등 진보적 주제들이 힘을 얻음), 일제시대에 그나마 부드러웠던 시기가 이 시기고, 일제를 미화하는 사람들도 이 시기를 주로 들고 옴,
이토암살 후로 온건파(?)들이 서서히 힘 잃고 급진파들이 세력잡으서 막나가게된것도 큰거같음 ㅋㅋㅋㅋ
샤아WAAAGH나블
그건 별개라고 봄 그 사이가 거의 30년이야
보면, 일본도 뭐 원래부터 프로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었고, 특히 조선급 체급 국가에 대한 식민통치는 처음 해보는 거라(조선이 일본보다 작긴 하지만, 오키나와처럼 막 대해도 될 정도로 답없이 압도적인 체급은 아니었음), 처음에 무단 통치(억압적으로 통치하기) 해봤다가 문화통치로 전향하는 등 식민지배의 방식에 시행착오를 겪은 티가 남. 그런데 이 문화통치 시기가 유화적이고, 친일파 조선인 개인에 대한 등용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서(일종의 디바이드 앤 룰이자, 일본 식민 체제의 정당화로 '조선인 성공사례'를 만든 거라고 봐도 됨), 사실은 이 시기가 정말 한국사에서 위협적인 시기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 아예 폭압적이면 저항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교묘하게 당근과 채찍을 주는 거라서... 당연하지만, 한국어, 한글 허용해줬다고 해서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줬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오히려 2등신민의 딱지 같은 거였음. 조선인은 일본인과 명백히 구분되는 미개한 2등신민이었고, 대부분의 조선인은 명백한 유리천장...아니지, 눈에 안 보이는 유리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천장에 부딪혔어.
애시당초 그때 괜찮았다고 주장하는것들은 이봉창의사 케이스선에서 죄다 컷나지않나?
사실...'어떤 조선인' 들에겐 정말로 그 시기가 황금기였거든...
그 그랜드 매국 달성한 그놈 집안같은...?
그게 가장 극명한 사례고..사실 지주-소작제가 가장 융성하고 지주들의 최전성기던 시절이 일제시대였음. 일제에 협조한 조선인 지주 계급이나, 일본인 지주는 일본 본토에 있고 그 대리인(마름)으로써 조선의 토지를 경영한 조선인들은 많은 부와 혜택을 누렸음. 이 사람들은 식민지 조선 내에서는 상류층 행세 할 수 있었고, 일본에서도 중산층은 되는 사람들이었음. 단적으로 일본의 하층민 근로자들보다 조선인 지주들이 훨씬 더 잘 살았음.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민족이 하나로 뭉뚱그려지지만, 사실 민족 내에도 명백히 존재하는 계층이 있고 이 계층들의 이해관계가 다 똑같지 않잖음. 예를 들어 일본인 안에서도 당연히 하층민이 있었는데 이들의 사정은 조선인 일반 민중보다 조금 낫다싶은 수준에 불과했음. 광복 후에 남한이나 북한이나 둘 다 지주제에 학을 떼면서 토지개혁 하려고 했던 것(북한은 아예 토지 국유화로 강경하게 그리했고, 남한은 좀 굴곡이 있었지만, 그래도 경자유전 원칙은 지키려고 했던)도 그런 배경이 있어서임.
실무자가 한글배우게하기 vs 식민지인 한글 못쓰게하기
결국 민족말살정책은 전쟁동원 정당화 작업이였냐 ( ܸ ⩌ _ ⩌ ܸ )
레이오트 C호크
정답이다 냥식아
애초에 일본이 전쟁에 동원 하려고 보니 말이 제대로 안 통하니 그걸 해결하려고 한 게 민족말살정책의 목적이니
김두한 대신 긴또깡이라고 해서 그렇지 그거 빼면 한국어 디게 유창하긴 했어 ㅋㅋㅋㅋㅋ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민족융화정책이라고 해서 조선말 금지 안하고 자연스럽게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융화되도록 정책을 펼침 민족말살정책 펼친건 정확히 미국하고 척지게 되고 정세가 불리해졌을때
효율성의 차이임 전쟁 이전엔 식민지 인구 전체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비용보다 일본인 실무자들이 한글을 배우는 비용이 더 싸게 먹혀서 그랬던 거고 전쟁 후엔 이 식민지 노동력과 병력을 일본군 지휘 하에 운용해야 하니 일본어를 가르치는 게 효율적이었던 거고
그것도 사실 일본이 그나마 의회라는 것이 굴러갈때랑 군부가 완전히 장악하고 난 뒤 둘로 나뉨 어느쪽이든 둘다 쌍놈이지만 아에 ㅁㅊㄴ이 되기 시작한 시점이 있긴 해
그 얼마 안 되는 시기 동안에 민족성 말살을 진행했으니 이 얼마나 악독한지 ㄷㄷ
긴또깡!!!!
덕분에 공부할 거 생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