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 때의 유학자 겸 문자학사 허신(許愼, 58?-149)이 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부수별 한자사전.
서기 100년에 집필을 시작해 121년에 완성했다. 당시엔 갑골문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전서(篆書)를 기반으로 하여 글자의 유래를 설명했다. 정문(正文, 기본자) 9,353자와 중문(重文, 이체자) 1,163자를 수록했다.(당연한 얘기겠지만 허신이 맨 처음 만든 원본은 실전됐고, 후대의 학자들이 손을 댄 판본만 남아 전해지기에 원본에 몇 자가 수록됐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신이 설문해자를 쓴 이유는 각 한자의 원래 뜻과 음, 표준 형태를 규정해 설명하고, 글자의 구조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허신이 살았던 한나라 땐 예서(隸書)를 썼는데, 당시엔 지금처럼 표준 글자체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자를 아무렇게나 써서 비공식 이체자가 늘어났고, 한자가 처음 등장한 때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한자의 원래 뜻과 음, 모양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잊혔다. 그래서 학자들이 각 글자를 잘못 해석하고, 이 그릇된 해석을 경전 해석에 그대로 적용해 학문이 변질되는 지경에 이르자 허신이 직접 나선 것이다.
설문해자는 처음으로 '부수'를 이용해 한자를 분류한 한자서적으로, 이 '부수'라는 개념은 현대에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한자사전처럼 획수 순으로 분류된 건 아니다.
설문해자에는 一(하나 일)부터 亥(돼지 해)까지 총 540여 개의 부수가 있다. 왜 이렇게 부수가 많냐면, 허신이 맨 처음 부수라는 개념을 만들 때 여러 글자들 중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한자가 있으면 그것을 부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수를 거듭해 만들어진 한자가 다른 한자와 결합해 또 다른 한자를 만들면, 그 부수를 거듭한 한자도 하나의 부수로 인정했다. 그리고 원래는 하나였으나 형태가 바뀌어 갈라진 부수(예를 들면 人과 儿)도 독립된 각각의 부수로 인정했다.
설문해자는 부수와 표제자의 근거를 전서로 삼았기에 지금 입장에서 봤을 때 "왜 이 글자가 이 부수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善(착할 선) 자는 현대의 한자사전에선 口(입 구) 자가 부수라고 되어 있지만, 설문해자에선 譱(羊 밑에 言 자가 2개 있는 꼴)을 기준으로 했기에 誩(말다툼할 경) 자를 부수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