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10월 14일. 공(이순신)이 우수영에 있을 적, 공의 아들 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면은 공의 막내 아들로서 담략(膽略)이 있고 기사(騎射)가 훌륭하였으메,공은 면이 자기를 닮았다 하여 아꼈다. 그 해 9월, 어머니와 함께 아산의 본가에 가서 머무르고 있던 중에 적왜(일본군)이 여염집을 분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나가 싸우려던 중 복병의 칼을 맞고 길에서 죽은 것이다. 공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도 통절하여, 그 때서부터 날로 정신이 초췌해져 갔다.
그 후 공이 고금도에 진을 치고 있을 적의 일이다. 공이 낮에 선잠이 들었는데, 면이 공의 앞에서 슬피 울면서 말하기를 "저를 죽인 적을 아버님께서 죽여주십시오."라 했다. 공이 말하기를 "너는 살아 있을 적에는 장사였거늘 죽어서는 혼자 능히 적을 죽일 수 없더냐?"라 하였다. 면이 답하기를 "제가 적의 손에 죽었기에, 두렵고 꺼림직하여 감히 죽일 수가 없습니다." 라 했다.
공이 깨어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꿈이 이러한데 어찌된 일인가." 하며 슬픔을 스스로 참지 못하고 팔을 굽힌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어렴풋한 가운데에 면이 다시 울며 말하기를 "아버지가 아들의 원수를 갚는 일에 저승과 이승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원수를 같은 진에 수용하시면서 제 말을 듣고도 원수를 베지 않으십니까." 라고 하며 통곡하며 물러갔다. 공이 크게 놀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과연 새로이 잡은 왜적 하나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공이 명하여 그 왜적의 수말을 자세히 문초케 하니, 과연 면을 죽인 자였음이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므로, 토막 내어 죽이라 명하였다.
-이충무공전서 권9 : 행록 (이분-이순신의 조카 저)
十月十四日。公在右水營。聞子葂喪。葂。公之季子也。有膽略善騎射。公愛其類己。是年九月。將母往在牙山第。聞賊倭焚蕩閭家。馳擊之中。伏刃於途死之。公聞訃慟絶。自是精神日瘁。其後公陣古今島。因晝假寐。見葂悲號於前曰。"殺我之賊。父可誅之"。公曰。"汝生爲壯士。死獨不能殺賊乎"。曰。"我死於賊手。畏之而不敢殺"。公起而告人曰。"我夢如此。何也"。悲不自抑。仍曲肱而閉目。髣髴之中。葂又泣告曰。"父報子讎。幽明無間。而容讎一陣。邈我言而不之誅"。痛哭而去。公大驚問之。有新捕賊一人。囚在船中。公令問作賊首末。果殺葂者。甚驗無疑。命剉斫之。
이면의 죽음은 사실이나, 이순신의 꿈과 포로에 대한 처형의 이야기는 행록에 실려 있되 실제적인 이야기로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이분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밑에서 호종하였기에 아예 근거가 없는 일일 가능성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완전한 사실이기 보다는 이순신에 대한 선양의 과정에서 각색이 섞인 이야기로서 해석된다.
(영화 : <노량 : 죽음의 바다> 中)
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있으며,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서도 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두 파트로 나누어 다루어 진 바 있다.
늙은 아비가 죽고 젊은 네가 사는 것이 올바른 이치인데 이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이냐.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보이는구나, 면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