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 패 2장]
[도펠코프: 패 0장]
비장의 에이스 카드를 터뜨려버렸으니 저쪽도 더욱 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또 숨기고 있는 에이스를 꺼내들지, 아니면 이미 소모된 에이스들을 회수할지, 그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여흥이리라.
"2장째 '엔보이드 레거시'를 발동. '엔보이드 나이트레이'. '엔보이드 아벤트브룸', '엔보이드 버스트'를 뒷면으로 제외하고 3장 드로우."
[리퍼: 패 4장]
"마법 카드 '텅 빈 용륜'. 덱에서 환룡족 몬스터인 '뷔브르'를 묘지로 보낸다. 그 다음 묘지의 '뷔브르'를 뒷면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다른 '엔보이드'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지. '마카라'를 묘지로."
"'개스터'를 소환. 효과로 자기 레벨을 지정해서 양쪽 다 4장 제외."
"그럼 함정 카드 '욕망의 거대 거북'. 2장 드로우한다."
[엔보이드 개스터: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700 / DEF 900]
[도펠코프: 패 2장]
[리퍼: 패 2장]
"카드가 효과로 제외됐으니 묘지의 '마카라'를 특수 소환."
[엔보이드 마카라: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뽑은 카드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터. 리버스 카드는 이미 사용했으니 도펠코프의 필드는 완전히 빈 상태다. '체크섬 드래곤' 같은 카드가 또 없다면야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배틀. 두 마리로 다이렉트 어택."
[도펠코프: LP 9200 → 5700]
도펠코프는 그 공격을 저항없이 다 얻어맞았다. LP의 거의 반절이 깎였음에도 크게 괴로워하는 기색은 없다.
"메인 페이즈 2. 소환 조건은 속성이 같은 몬스터 2마리. 나는 '개스터'와 '마카라'를 소재로 링크 2 '엔보이드 아우로보로스'를 링크 소환."
[엔보이드 아우로보로스: 환룡족 / 어둠 / LINK-2 / ATK 1200 / 링크 마커 ↑↓]
"잠깐, 상대가 링크 소환했을 경우, 패에 있는 '환창룡 판타즈메이'를 특수 소환. 이 녀석의 효과로 상대 링크 몬스터 수에 1장 추가한 매수만큼 덱에서 드로우하고, 상대 링크 몬스터 수만큼 패를 덱으로 되돌린다. 1장이지만."
[환창룡 판타즈메이: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7 / ATK 2400 / DEF 1800]
[도펠코프: 패 2장]
"내 필드에 '엔보이드' 몬스터가 있으니까, '코아틀'을 패에서 특수 소환."
[엔보이드 코아틀: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300 / DEF 800]
"이 순간 '아우로보로스'의 효과. 링크 앞에 몬스터가 특수 소환되면, 제외된 카드 1장을 패로 회수할 수 있다. 이어서 '아우로보로스'와 '코아틀'을 소재로, '엔보이드 나이트'를 다시 링크 소환, 그리고 ①의 효과로 제외된 카드를 회수."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 환룡족 / 어둠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리퍼: 패 2장]
제외된 카드를 패로 회수하는 효과를 2번 쓰면서 회수한 것은 전부 뒷면 표시 카드. 그 와중에 패는 1장밖에 늘지 않은 것을 보면, 1장은 엑스트라 덱 몬스터임을 알 수 있었다.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
"휴, 이제 내 턴이네."
[도펠코프: 패 3장]
또다시 추론의 시간.
엑스트라 덱으로 돌아간 것이 '엔보이드 나이트레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1장은 무엇이 될까. 그것도 세트해두었다가 사용할 만한 건 뭐가 있을까.
상대의 플레이를 견제하는 '엔보이드 메너스'나 '엔보이드 버스트'. '엔보이드' 몬스터를 불러내는 '엔보이드 어라이벌', 그리고 방금 전처럼 기습적으로 링크 몬스터를 불러내는 '트랜스 엔보이드'.
아니면 '엔보이드 마카라' 따위를 회수해서 원하는 때에 내보내도록 패에서 대기시키는 중일지도 모른다. 회수한 뒷면 표시 카드가 뭔지 알지 못하는 시점에서 무엇이든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골치 아픈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즐거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손에 쥐어진 카드가 홀로그램인 것이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 많았다. 아니면 소중한 카드에 진즉에 땀이 배였을지도 모르는 일.
그들은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에이스 카드도 하나둘씩 처리했겠다, 어드밴티지 차도 뒤집었겠다, LP도 깎았고, 거기다 내 턴을 대비한 견제 준비까지, 이쯤 되면 슬슬 끝이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냐?"
뭐가 더 남았다고? 라며 유진이 놀란다. 도펠코프는 리퍼의 반응 역시 다르지는 않으리라고 보았다.
"내 덱 우습게 보면 곤란하거든? 너 보려고 내가 얼마나 버텨왔는데? 얼마나 듀얼해오고 얼마나 카드를 골라왔겠냐 이 말이야."
"아직도 꺼낼 카드가 남은 거냐?"
"그래. 착 알아듣네."
같은 수법을 또 우려먹는 꼴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제외된 카드를 다시 챙기는 전술은 분명 알뜰하고도 위협적이다.
리퍼는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위기를 헤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만의 전매특허가 아님은 알고나 있을까.
도펠코프는 방금 패에 들어온 카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영롱한 그 자태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카드가 어떻게 손에 들어왔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그 놈이 준 거잖아.'
'비스테드'보다도 훨씬 전에 위저드에게서 받은 비장의 레어 카드. 여느 때처럼 재수없는 미소와 함께 '잘 사용해달라'는 말을 남기며 정성스럽게 포장된 이 카드를 건넸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한동안 먹고 지낼 만한 피같은 대금을 내줘야 했기에, 거래를 마친 그 날은 한숨이 끊이지를 않았다. 식비를 걱정하기에 앞서 애초에 밥도 딱히 넘어가지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 카드가 자신의 덱에서 어떻게 날뛰어줄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화가 풀리는 자신이 있었다.
이런 대단한 걸 왜 굳이 아낄 생각을 해왔을까. 아니, 왜 굳이 쓰기를 망설여 왔을까.
리퍼가 보기에는 부질없을 이 자존심에 뭐가 거슬렸던 것일까.
속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승부욕은 자신 혼자서 쌓아올린 것이 아님을. 토대를 깔아준 것은 분명 위저드 쪽이었다.
자신은 위저드라는 인물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져왔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 연전연승에 그가 적지 않은 공헌을 해왔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집착의 굴레에 빠뜨려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으니까.
이런 카드가 뭐라고 모으기 위해 노력했을까. 뭐라고 자신의 인생을 바쳤을까.
그래도 딱히 목숨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버린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나 참. 이런 일이 한 두 번이냐? 곧 죽을 사람처럼 생각하면 뭐해.'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 어둠의 게임에서 양쪽 모두 승리를 내줄 수 없는 처지인 만큼, 깨닫는다 한들 이 승부를 포기할 생각 따윈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승부를 이긴다고 해서 자신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다음은 재버워키를 쓰러뜨리러 가야 한다. 그 다음에는 더 싸울 만한 녀석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위저드에게도 신세져온 것을 갚아야만 한다.
후회해서는 안 된다. 후회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이런 회의감의 편린 따위 당장 떨쳐버리는 편이 낫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이 쌓아온 덱은, 인생은, 지금의 자신이 보기에 문제없으면 그만이다.
요새들어 자기 자신을 설득해야 할 일이 늘었음을 느낀다.
이런 망설임이야 말로 제 목을 조를 독에 불과할 테니 얼른 떨쳐버리자.
그러니 실없는 웃음은 이제 그만. 평소의 기세등등한 미소로 돌아와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만 한다.
'기껏 한 방 먹일 만한 비장의 카드가 잡혀줬잖아. 망설이면 실례 아니겠냐고.'
당장이라도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이 카드는 언제 봐도 아름다울 뿐이다.
도펠코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서, 그 카드를 슬롯에 꺼냈다.
"패에 있는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를 펜듈럼 스케일에 세팅!"
도펠코프의 필드 한 쪽으로 은은한 빛의 기둥이 내려온다. 이를 궤도 삼아 한 마리의 거대한 몬스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푸른 갈기와 청동빛의 피부를 가진, 위협적이고도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드래곤. 그러나 그 몬스터의 공격력 / 수비력 따위가 표기되는 일은 없었다.
현재 '카오스 엠페러'는 몬스터로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 스케일 1]
"펜듈럼…?"
유진이 귀에 들어온 키워드를 의외라는 듯이 되뇌인다. 하지만 유진과 유노에게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펜듈럼. 그것은 '매직&위저드'가 '듀얼몬스터즈'라는 게임으로 탈바꿈해나가는 과도기가 지나고, 혁신의 등장이라 소개되었던 시스템.
펜듈럼 몬스터라는 카드는 룰적으로도, 그 운용 방식으로도 유니크한 특징을 잔뜩 갖고 있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특징이라면, 마법 & 함정 존 양 끝에 두 장의 펜듈럼 몬스터를 짝을 맞춰 세팅하고 '스케일'이라는 별도의 수치를 이용해 특정 레벨대의 몬스터를 대량으로 전개하는 '펜듈럼 소환'일 것이다.
대형 몬스터를 쉽게 꺼내는 역전의 초석, 매 턴 몬스터를 무수히 전개할 수 있는 잠재력, 펜듈럼 소환이 가진 강점은 여럿 있었지만 어쨌든 그 전제 조건은 두 장의 몬스터가 짝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꺼내드는 펜듈럼 카드는 '카오스 엠페러' 1장. 더 꺼낼 기미는 없다. 애초에 그의 덱에 있는 펜듈럼 카드라고는 그것 뿐이니까.
짝을 맞출 수 없는 펜듈럼 몬스터는 펜듈럼 소환에 써먹을 수도 없는 반쪽 자리에 불과할 터. 그럼에도 그가 비장의 카드라 여기며 덱에 넣은 목적은 따로 있는 것이었다.
"'카오스 엠페러'의 펜듈럼 효과. 1000 LP를 지불하면, 자신을 파괴하고 제외된 드래곤족 몬스터 하나를 패로 가져온다. '레비오니아'를 회수."
[도펠코프: LP 5700 → 4700]
공중에 내려앉은 드래곤은 제 몸에 광채를 띄우는가 싶더니, 이내 번쩍이는 가루로 분산되며 모습을 감춘다.
뭔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모양새라 일견 허망해보이기까지 한다.
유진은 그 쓰임새를 일종의 마법 카드나 다름없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어차피 필드에서 바로 힘을 떨칠 수 없는 몸이라면, 그 희생으로나마 어드밴티지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리라.
"계속해서 묘지의 '마옥룡 질드라스', '천구의 성각인', '체크섬 드래곤'를 제외하고, '레비오니아'를 다시 특수 소환."
[혼원룡 레비오니아: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0]
"카운터 함정 '엔보이드 메너스'. 몬스터를 특수 소환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또 막네. 역시 쉽지가 않아."
모처럼 되돌아온 드래곤이 '엔보이드 나이트'의 위세에 눌려버린 듯 다시 필드에서 퇴장한다.
묘지 자원을 갉아먹고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즉시 날려버림으로서 또 어드밴티지 손해를 남긴다. 그것이 펜듈럼 효과를 쓰도록 놔둔 이유일 것이다.
역전의 기회가 또 한 번 날아갔음에도 실망한 기색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다음을 기대하듯 히죽이고 있을 뿐.
유진 역시 그 반응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그에게는 2장의 패가 더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조차 넘어버리는 카드가 도펠코프에게는 또 하나 남아있었다.
"근데 이번에도 아직 끝이 아니거든. 네 세트 카드가 그쪽이라면 지금 막 몬스터를 특수 소환할 별도의 수단은 없는 모양인데…."
"……."
"맞췄지? 좋아."
지금 상황에서 '엔보이드 나이트'의 특수 소환 견제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리퍼의 패에 남은 카드 1장이 아직도 불안요소로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역시 그냥 잉여 패인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자신의 발을 묶어버릴 카드일까.
곧 도펠코프의 머리는 결론을 내렸다. 상관없다. 지금이야말로 이 카드를 내보내기에 제격일 것이다, 라고.
설령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카드라 해도, 자신이 이걸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카드로 이루어진 덱이 자신을 배신할리가 없다. 이기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카드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다.
"그럼 묘지의 빛 속성과 어둠 속성 몬스터를 1장씩 제외하고, 엑스트라 덱에서 이 카드를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특수 소환한다! 레벨 8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
기껏 되살려낸 드래곤이 금세 없어져버리자, 이를 대신하듯 빛의 기둥 속에서 사라진 '카오스 엠페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확실한 전력으로서 필드에 재림한 그 드래곤이 고고한 포효를 내질렀다.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2500]
"펜듈럼 소환도 안 하고, 엑스트라 덱에서 펜듈럼 몬스터를 그냥 꺼내…?"
'애초에 펜듈럼 소환이 안 되는 놈이거든.'
계속해서 상식을 뒤집어버리는 카드들의 등장에 유진은 이번에도 당황의 연속. 마치 현대 문물에 경악하는 이세계 주민 같은 반응에 도펠코프는 한 층 더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놀라기엔 아직 이를 터인데. 저래서야 듀얼판에서 살아남을 수야 있을까.
"배틀. '카오스 엠페러'로 '엔보이드 나이트'를 공격!"
가면을 뒤집어 쓴 듯 황동빛으로 번들거리는 용안이 주둥이를 벌린다. 이내 빛이 번쩍이더니 불기둥을 일으키며 지목받은 대상에게 작렬했다.
'엔보이드 나이트'는 그 불길을 이겨내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퇴장한다.
[리퍼: LP 6200 → 5700]
"'판타즈메이'로 다이렉트 어택!"
뒤이어 '판타즈메이'가 부스터처럼 시퍼런 불꽃을 일으키는 날개를 추진력 삼아 돌격한다. 앞다리에 부착된 건틀릿에서 번쩍이는 스파크로 이루어진 칼날이 뻗어나오더니, 이를 있는 힘껏 리퍼를 향해 휘둘렀다.
[리퍼: LP 5700 → 3300]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면서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는다. 대단한 인내력이구나, 하며 도펠코프는 내심 감탄했다.
어찌 되었든 이번 턴에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턴 엔드야."
"내 턴."
[리퍼: 패 2장]
턴을 내주는 즉시 도펠코프는 다시금 입꼬리를 올린다.
"스탠바이 페이즈, 패에서 2장째 '증식의 G'의 효과! 체인 있냐?"
"……"
"다행이네."
리퍼는 '삼전의 재'를 이미 3장 전부 써버린 상태. 그럼에도 만약을 대비해 도펠코프는 바로 카드의 효과를 내질렀다.
'증식의 G'의 효과가 무사히 통과했으니 특수 소환을 하면 할 수록 자신의 패는 늘어난다. 그 상태에서 끝장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끝장나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눈치를 보면서 몬스터 전개를 소홀히 했다가는 역시 다음 턴에 도펠코프의 몬스터들이 가차없이 상대를 끝장내버릴 것이다.
컨트롤을 빼앗는다거나 대상 지정 제거 따위의 허튼 수작을 시도한다면, 그 때는 '환창룡 판타즈메이'의 효과가 견제해올 것이다.
빈틈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턱없이 불리한 상황임을 부정할 수도 없을 터. 그대로 주저앉거나 어설픈 대처를 보인다는 것은 패배로 직결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보려는 듯 리퍼가 패를 들여다보는 광경을 지켜보며 도펠코프는 생각에 빠져든다.
이대로 멈추고 패배를 택하라는 자신이 있다. 한 편으로는, '또 뭐가 남았을까'라며 기대하는 자신이 있다.
그런 모순된 감정들이 알 수 없는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끝이 가까워져간다는 긴장감이 폭주해오듯이 고조되어간다.
이것 역시 자신은 '즐겁다'고 느껴버린 것이구나, 라며 서서히 자신이 들여다보이기 시작한다. 얼마나 뇌가 망가졌길래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쩌면 무너져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참 오래 전에 무너져버린 것이 아닐까.
즐거움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저쪽이나, 뭐든 즐겁다고 받아넘기려는 이쪽이나, 서로가 사이좋게 무너져 있는 모양이었다. 방향이 다르다 해도 무너져있다는 결과는 다를 것이 없다.
"여전히 포기를 모르는군."
"그럼. 하루 종일 버틸 수 있거든."
"다음이 있다고 믿으니까 즐거운 거겠지."
"그렇고 말고."
여지없는 진심이다.
이제 와서 무엇을 깨달았더라도 자신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찾아오더라도.
"자기 선택만을 믿고 달린다. 일말의 후회도 없이. 그런 점에서 서로 다를 건 없을지도 몰라. 존중이란 게 가능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문득 의외의 발언이 날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공감의 뜻을 비추다니.
같잖은 동정이 아니라는 것이 오히려 기쁠 따름이었다.
"네가 발버둥치듯이 나도 가진 패로 게임을 끝낼 생각이다."
"그래. 와 보셔."
대답을 들은 직후 리퍼는 패의 카드를 바로 세팅한다.
"묘지에서 '개스터'의 ②의 효과를 사용. 뒷면으로 제외된 '암피프테레'를 묘지로 되돌린다. 이어서 '암피프테레'를 다시 뒷면으로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사용. 1장 드로우."
[리퍼: 패 3장]
"'죽은 자의 소생'. 이걸로 '엔보이드 나이트'를 부활."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 환룡족 / 어둠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도펠코프: 패 2장]
"그리고 '엔보이드 코아틀'을 통상 소환."
[엔보이드 코아틀: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300 / DEF 800]
"또 쓰실려고?"
"그래야겠지. 소환 조건은 '엔보이드' 링크 몬스터를 포함하는 몬스터 2장 이상. 나는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과 '엔보이드 코아틀'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4 '엔보이드 나이트레이 드래곤'을 링크 소환."
[엔보이드 나이트레이 드래곤: 환룡족 / 어둠 / LINK-4 / ATK 3000 / 링크 마커 ↑↙↓↘]
[도펠코프: 패 3장]
리퍼가 특수 소환을 해준 덕분에 다음 턴을 이어갈 패는 충분히 잡혔다.
그러나 그 전에 맞이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링크 소환된 '나이트레이'의 ①의 효과. 필드의 다른 카드를 전부 뒷면으로 제외된다."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이 다시 앞발 사이로 시커먼 에너지를 모은다.
그렇게 생성된 검은 구멍과도 같은 아우라를 이번에도 필드로 확산시켜나갔다.
'판타즈메이'가 막을 수 있는 효과는 어디까지나 대상으로 지정하는 효과 뿐. 필드 전체에 효력을 미치는 이 효과에는 무력할 뿐이다.
그러니 이 어둠은 '판타즈메이'에게도,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에게조차도 예외없이 종언을 내린다. 다시금 도펠코프의 필드에 허무가 찾아오는 것이다.
"배틀. '나이트레이'로 다이렉트 어택."
'엔보이드 나이트'가 이번에는 주둥이를 벌리며 역시 시커먼 에너지를 모은다. 그것을 탄환삼아 벽이 될 몬스터를 잃은 도펠코프에게 발사했다.
[LP 4700 → 1700]
착탄과 동시에 그가 느끼는 것은 서서히 몸을 증발시켜오는 고열이었다. 생긴 것만 다를 뿐, 이것은 주변을 불사르는 고열의 불꽃이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지극히 익숙하기는 하지만 상당한 고통이었기에, 전과는 달리 도펠코프의 얼굴이 충격에 일그러지며 뒤로 떠밀려났다.
"카드를 1장 세트. 기다리던 다음 턴이다."
"…하핫, 참나."
그런 고통을 이겨낸 도펠코프가 뒤이은 발언에 헛웃음짓는다.
"벌써 끝이야? 그렇게 큰소리를 쳐놓고?"
몬스터를 전멸시키고 치명타를 가한다. 그러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한 그 시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증명해버린 것이다.
먼저 무너져버리는 것은 역시 저쪽인 셈이다.
"그럼 내 턴."
[도펠코프: 패 4장]
[리퍼: 패 0장]
저 낯설고 무시무시한 몬스터의 능력은 이미 파악이 끝났다.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을 소재로 삼아 나타난 '엔보이드 나이트레이 드래곤'에게는, 특수 소환을 1번 견제할 수 있는 추가 효과가 부여된다. 마음을 어느 정도 놓고서 턴을 넘겨볼 만은 하겠지.
하지만 그딴 것은 방금 뽑은 카드로 타파가 가능하다.
"2장째 '무한포영'! 이걸로…"
그런 효과 쯤이야 무효화시켜버리면 신경끄고 얼마든지 전개를 이룰 수 있다.
여태까지 불러낸 수준의 에이스 몬스터들 정도는 아직도 불러낼 만한 수단이 패와 덱에 남아있다. 그것들을 꺼내가며 버티다 보면 승리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강력한 몬스터 하나 믿고 뻗대던 상대를 밟아버린 적이야 셀 수도 없는 그는, 그 순간에도 그렇게 확신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목표 하나가 끝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 목표를 생각할 시간이 머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려던 순간이었다.
"체인. 2장째 '엔보이드 버스트'를 발동. 이걸로 '엔보이드 나이트레이'를 파괴."
지명받은 '나이트레이'의 육체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어렵게 기회를 잡아 다시 불러낸 비장의 에이스 몬스터를 제 손으로 터뜨리다니. 그런 의문을 가질 새조차 리퍼는 주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이 효과로 '엔보이드' 몬스터를 파괴했을 경우, 양쪽 모두 그 몬스터의 공격력만큼의 데미지를 받는다."
"뭣…!?"
"말했을 텐데. 일말의 희망도 안 주겠다고. 다음은 없어."
그 한마디 직후, '나이트레이'를 감싸던 불길한 빛이 사방으로 터지기 시작한다. 폭풍과 함께 터져나오는 요란한 섬광이 주변을 습격했다.
그것에 한 순간 도펠코프의 눈이 멀어버린다.
◇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서 내일을 꿈꿀지."
그 남자가 또다시 말을 걸었다.
여느 때처럼 파라솔 그늘의 의지하며 한가하게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기분나쁜 청년이, 이번에는 웬일로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려주고 있다.
"그런 선택을 끊임없이 강요받는 거니까, 듀얼은 곧 인생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는 셈이겠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여느 때처럼 건성건성 넘겨버리는 도펠코프.
왜냐하면 그가 이런 뜬구름잡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장식할 서론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고민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낭비해오지는 않았을까. 제법 헛된 인생이다.
그런 것은 됐으니 대답하기도 어려운 말은 상대를 봐가며 하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들어먹을 녀석이 아니란 것 쯤이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고 있었기에, 아예 들을 생각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런 기대는 바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인생도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충분히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럼 성공한 인생이네요."
눈앞의 이 인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도 감이 서지를 않았다.
저쪽은 동료 정도로 생각해주길 바라는 듯 하지만 언젠가 뒤돌아설지도 모르는 속 모를 인간을 그렇게 생각해줘도 될까. 친구라 부를 놈은 더더욱 아니다.
아직까지는 지인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편하겠지.
"더 재미있는 듀얼이 있으면 인생도 그만큼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앗차 싶었는지 남자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낸다.
"그게…, 사실 전에 말씀드린 숙명의 상대 말인데요."
"찾았냐?"
누차 꺼냈을 그 질문에 남자는 또 멋쩍은 미소를 흘린다.
상황 수습용으로 두르는 그 표정이 사람 신경을 더 거슬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나 있을까.
"…아뇨. 이번에도 못 찾아서 죄송하다고요. 다른 상대로 따분함을 달래는 처지가 아닐까 걱정이 되서 말이죠."
"그래."
예전이었다면 대놓고 한숨을 팍 내쉬었겠지만, 도펠코프는 대신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끄덕이는 정도로 넘어가기로 한다.
"아니 뭐. 요전에 붙은 놈도 나름 재미있었어. 너도 네 상대 찾느라 따로 시간 쓰는 모양이고. 너한테 좋은 카드 받아먹은 것도 한 두장이 아니고. 닦달할 게 뭐가 있겠냐."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을지 모른다.
그가 일부러 숨기고 있는 정보가 있다는 것 쯤이야, 도펠코프는 은연 중에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은 이미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이미 파악을 끝내놓았을 가능성마저 추측하고 있었다.
"이해해주셔서 고맙네요."
"지금 주어진 걸로 만끽해야 제대로 인생을 즐긴다는 거겠지. 그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재미 아니겠냐."
"바람직한 자세에요. 듀얼에서 이기는 재미로만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한 제가 몹쓸 놈이었군요."
"몹쓸 놈인 건 사실이지."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어떤 소설에서 나왔다는 문구를 그가 인용한 적이 있었다. 자기더러 그러라는 듯이.
지금은 적어도 그 의도대로 따라주는 것이 이로우리라는 판단이 그에게 있었다.
자신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분명 계속 버티다 보면 그 정보가 순순히 떨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그러니 굳이 비위를 거슬리게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어떤 의도로 어떤 정보를 건네줄지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러니, 말 그대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네, 네, 죄송합니다.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기다릴 만한 흥미거리가 추가로 준비된 참이거든요."
"호오?"
"이번에 나올 게 대충 요 정도입니다."
D-패드 화면에 표시되는 것은 최소 2개월 정도 이후에나 출시될 예정인 카드들의 카탈로그였다.
유통사의 보안이 엄격한 만큼 풀 리스트를 확보하는 것은 실패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가 나름 흥미를 가질 만한 카드에는 별도의 표시를 해놓을 정도로 목록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 중에 갖고 싶은 건 있으세요?"
공짜일리가 없다. 목록에 있는 카드들의 가격은 이번에도 성능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을 따로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지출해서 미리 얻어둔 카드가 매장에서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을 때 배알이 뒤틀리던 것이 몇 번이던가. 브로커에게 등쳐먹힌다는 것은 그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 뭘 고를지 고민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도저히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앞길은 눈을 돌리게 되어 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는 것은 귀찮고 짜증나는 일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자신은 즐거운 일만 하고 살기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자신이 있다. 이전과는 달리 제법 즐기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
그렇다면 현실이 딱히 바뀌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바뀌어 있기에 다르게 느끼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변화를 안겨준 것은 무엇일까.
한 두가지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중 하나를 따진다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눈앞의 이 작자일 것이다. 이 자야말로 그대로 정체되었을 듀얼 외길 인생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다. 곧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대비를 함으로써 꼭 원하는 것을 이루리라는 희망.
그것을 마치, 가축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를 퍼주듯이 베풀어준다.
지금의 자신은 예전 그 양반이 얘기한 '해피 라이프'에 한 걸음 가까워졌을까. 평생 이르지 못할 처지인 것은 아닐지, 아니면 이미 다다른 것은 아닌지, 현재의 소토인 료지는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이런 고민이야 말로 오히려 해피한 삶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답을 이끌어낼 가망이 없다면 머리 아픈 생각이나 하고 있을 이유 따윈 없는 것이다.
머리 아픈 생각은 듀얼 때나 해두면 그만이다. 그 승패로 얻는 쾌감을 통해 확실한 보람이 돌아오니까.
그런 자신이 터득한 해피하게 사는 요령이란, 주어진 먹이에 만족하는 것이겠지.
그러니 이번에도 무슨 먹이를 얻을지 해피한 고민에 빠지기로 한다.
"어디…, 뭐가 좋을까……."
◇
"뭐가 좋을까."
"아무거나 골라. 죄다 달다구리한 건데, 뭐."
평소 들르던 곳에 비하면 다소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카페에 들러 주문하고 있을 무렵, 무표정한 인형같은 얼굴이 성의없는 답을 내뱉은 도펠코프를 쳐다본다.
여러 번 지켜보고야 아, 삐져있구나, 하고 그나마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트릭스라고 불리는 그 아이는 보고있던 메뉴판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런 걸 주문하면 오히려 아르바이트생이 짜증을 내뱉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쓸데없이 화려해보이는 파르페였다. 물론 가격 역시 쓸데없이 화려하기는 마찬가지.
"아무거나 고르랬지?"
"아. 알았어, 알았어. 적당한 가격으로."
"적당한?"
"앗."
말을 내뱉은 도펠코프 본인도 상대측이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정정했다.
"…적당히 싼 걸로."
"………."
이번엔 아, 확실히 삐졌다. 라고 알아볼 만한 표정이다.
주는대로 먹으라고 따지자니 어딘가 찔려오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내 트릭스는 두 번이나 고쳐진 전제를 받아들이며 주문을 정해주었다. 이 녀석치고는 꽤 배려해준 선택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고마워. 네가 사주는 건 생각 못했네."
"그냥 뭐, 적당히 한턱 내 줄만한 애가 필요해서. 위저드 녀석은 당연히 사절이고, 캔필드는 그 쪽이 싫다 그럴 거고."
"블랙잭은?"
"바쁘대."
"그래서 제일 만만한 애로 불렀다는 거구나."
"에이, 얻어먹으러 나와놓고 그러기냐."
이내 웨이트리스가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을 찾아와 주문한 것을 내려놓는다. 도펠코프 몫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트릭스 몫은 쿠키 앤 크림 프라페.
목을 축이는 용도로는 썩 좋지 않은 선택 같지만, 트릭스는 프라페에 장식으로 올려놓은 새까만 쿠키를 휘핑크림에 푹 찍어 한 입에 집어넣었다.
크림을 묻힌 채 오물오물 움직이는 뺨은 철없는 꼬맹이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것 없어보였다.
도펠코프의 잔에 있는 얼음이 녹으려 하기도 전에, 트릭스는 이내 컵을 양손으로 들고는 남은 걸죽한 음료를 한 번에 쭉 들이킨다.
그리고 입에 묻은 것을 적당히 닦고서, 이번에도 트릭스는 무미건조한 감상을 내뱉는 것이었다.
"응, 살 것 같네."
"그거 하나로 만족할 인생이면 얼마나 죽어 있던 거냐."
"그러네. 그럼 크림소다 추가."
"앗."
한 턱 쏘겠다고 말은 꺼낸 몸이니 도펠코프는 순순히 카운터로 찾아가서 주문을 추가해 주었다.
잠시 후, 이전 웨이터가 다시 와서 가져다 준 소다를 음미할 차례였다. 트릭스는 전과 비슷하게 꼭대기의 체리를 크림에 찍어서 한 입 집어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으로 빨대로 컵 안의 멜론소다가 4분의 1 정도 줄어들 만큼 빨아들이고는 갑작스럽게 맛에 대한 감상이 아닌 또다른 말을 꺼낸다.
"전에 위저드가 그러는데."
"응?"
그 놈이 떠벌린 소리를 여기서까지 들어야 하냐, 라고 따지려 들기도 전에 트릭스는 다음 말을 꺼내기 바빴다.
"이성적인 사고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돼야 이뤄지는 거래."
"그러냐."
"자아는 원초적인 욕구를 현실적인 방법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있는 거랬어."
위저드는 얘를 데리고 철학 강의 시간이라도 가졌다는 말인가.
"현실적인 방법이라."
잠시 빨대로 잔에 떠있는 얼음을 휘젓고 있던 도펠코프는, 문득 귀에 들어온 키워드를 곱씹으면서 되물어본다.
"듀얼리스트한테 현실적인 방법이 듀얼 말고 뭐가 있어?"
"그렇지."
"그럼 듀얼로 욕망을 해소하는 게 우리 살 길이 맞는 거겠지?"
트릭스는 잠시 소다를 한 모금 더 빨아들이고는 땡그랗고도 잔잔한 수면 같은 시선으로 대답을 돌려준다.
"갑자기 왜?"
"…아니, 그냥 그렇다고."
아니라고 대답할리가 없다. 적어도 이 자는.
그렇게 욕망에 충실한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서로 딱히 후회를 내비친 적이 없는 동류라 생각해온 그들이었다.
의문을 갖는 순간 행복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태껏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로 이어진다. 무의미라는 결론에 이르러버리는 것이다.
잠깐 고민했다고 그런 후회에 조각나버릴 나약한 정신은 아니겠지만, 작은 흠집이라도 내서야 좋을 것은 없다.
그렇기에 도펠코프 역시 새삼 의미없는 질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놈을 쉽게 털어버린 건 좋은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간단하지 않았나 싶거든."
이렇게 동료에게 한 턱을 낼 만큼 경사스러운 일이 무엇인고 하니, 그 위저드마저도 만만찮은 요주의 인물이라고 고지했던 듀얼리스트를 이틀 전에 마침내 쓰러뜨린 일이었다.
대회에서 상금을 제법 벌어먹던 카드 프로페서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 바닥에 흘러들어오게 되었다는 모양이다. 듣자 하니 위저드한테도 비협조적이던 독고다이라지만, 세계 랭크에도 이름을 올려봤을 정도의 실력자였기에 그의 도움 없이도 연승을 거뒀다고 한다.
나름 살벌한 생태계를 비집고 들어온 포식자 외래종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한동한 리퍼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리며 시시한 놈들이나 상대하던 처지이던 도펠코프는 그 정보를 듣는 즉시 위저드에게 연락을 날렸다. 그렇게까지 용의주도한 인물은 아니었는지, 리퍼 때와는 달리 위저드의 적극적으로 협조가 돌아왔다. 덕분에 제법 순조롭게 어둠의 듀얼이 성사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로써 충분히 강화를 마친 덱은 끝내 도펠코프에게 승리를 안겼고, 자신의 몬스터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하던 그 듀얼리스트는 상쾌한 단말마를 남김으로서 승리를 장식해주었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고전이라면 고전이었다. 이번 덱을 강화하는 데만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었으니까. 위저드가 말하는 '높으신 분'의 투자가 아니었더라면 또 길바닥에서 자야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양지에서는 자신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와 봤을 테니 기세등등해 있던 상대의 낯짝은, 비명을 지르기 직전에 이르니 여태껏 불살라온 상대들과 다를바 없는 별볼일없는 모양새였다.
그나마 그가 남긴 디젠은 드래곤인지 피닉스인지 모를 몬스터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조형의 펜듈럼. 보기에도 제법 근사한 디자인이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 에너지를 수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쾌감이었다.
분명 에픽 퀘스트를 수행하듯 쓰러뜨리는 보람이 있는 난적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네가 세다는 거잖아."
"그렇겠지. 근데 어째 성이 안 찬다니까. 그렇게 센 놈이었는데."
"향상심이라는 게 있어서 아냐?"
"향상심?"
"더한 걸 얻고 싶으니까 만족을 못 하는 거야. 난 달콤한 것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뭐가 됐든 이겨서 얻는 것만 있으면 돼. 그런 식으로 마음을 고쳐보는 건 어때?"
"음……."
더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라.
충분히 철학적인 결론이지만 도펠코프는 선뜻 받아들기가 힘들다. 자신이 그런 정신으로 이 바닥에 임했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정신으로 계속해서 수확을 거두는 트릭스야말로 도펠코프 입장에서는 별종인 것이다.
"안 되겠다. 난 그런 거 재미없어서."
"그럼 어쩔 수 없지."
평소에는 동류라고 여기는 그들 사이에는 그런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이런 의미없는 논제가 나올 만한 화제를 트릭스는 뭐하러 꺼냈을까.
욕망. 이 자리에서 트릭스가 제일 추구할 만한 욕망이라 하면. 답은 정말로 별것 아니었음을 도펠코프는 유추해냈다.
"설마 아직도 모자라냐?"
"응."
"야!"
"마시는 건 먹을 것하고 별개잖아."
"그건… 그러네."
트릭스의 주장에 수긍하며 도펠코프는 그나마 적당한 가격의 먹을 것을 시키기로 한다. 샌드위치 한 쪽조차 납득이 안 갈 정도로 가성비가 꽝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날 정도는 사치 한 번 부려도 괜찮으리라.
추가로 주문한 것들이 나온 직후 그는 한 모금 홀짝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들어서 내민다. 트릭스가 뭐냐는 듯 잔과 얼굴을 교대로 쳐다보았다.
"별 거 없어도 일단 기념하는 자리니까."
"리퍼라는 애를 이기면 더 근사한 메뉴 기대해도 되는 거야?"
"아니 이것도 좀 비싼… 뭐, 까짓거. 그 때 가면 고기도 썰고 샴페인이든 뭐든 따보자."
자신 정도면 충분히 강한 놈이라 자부하면서도, 숙명의 상대와의 승부란 머나먼 날의 숙업으로만 느껴진다.
그 자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는 탓이다. 벌써 두자릿수의 상대를 쓰러뜨렸다는 소문만이 전해질 정도니, 사실인지는 차처하고 얼마나 강할지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저드마저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할 만큼 신출귀몰하고 용의주도한 상대라면 자신보다도 훨씬 어둠의 게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즐거운 승부가 아닐리가 없다.
이길 수 있을까, 또다시 그런 의문이 치밀어오른다.
이것을 불안으로 여기지 않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달콤한 결과가 찾아오리라는 기대다.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그의 뜻을 받아들인 트릭스도 거의 다 마신 소다 잔을 내밀며 건배를 준비한다.
"앞으로도 후회없고 재미있는 인생이 되기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유리잔 두 개가 쨍 하고 부딪혔다.
◇
[도펠코프: LP 1700 → 0]
[리퍼: LP 3300 → 300]
LP가, 자신의 남은 생명이 0을 가리킨다. 그와 동시에 폭풍에 휩싸인 도펠코프의 몸이 바닥을 보기좋게 구른다. 여기저기를 부딪히는 통증에 표정을 더더욱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의 촉감과 욱신거리는 통증이 촉각을 괴롭힌다. 여기저기서 듀얼의 후폭풍에 해당하는 소음에 의해 정적은 빼앗긴지 오래다. 적어도 속편히 누워있을 만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누워있기를 택한다. 아마도 몸을 털기 위해 일어날 필요조차 없을 테니까.
"아아, 졌다…."
그 상태에서 자신이 방금 맞이한 결과를 담담하게 되뇌인다. 그리고 찾아올 다음 결과를 생각해보았다.
패배란 끝. 자신이 명심해왔던 결과가 드디어 찾아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다. 이걸로 다음 기회는 오지 않는다. 즐거웠던 자신의 결투 인생은 이것으로 종막이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 패배. 그걸 맞이한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기분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았다. 분하다기에도, 괴롭다기에도, 슬프다기에도 애매한 이 기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억울한 나머지 당장 벅차고 일어날 수준까지는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무언가가 뻥 뚫린 듯한 기분. 그것은 허무함으로도, 후련함으로도 느껴져온다.
아무래도 단순무식한 이 머리통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려는 모양이었다. 리퍼의 평가는 정확할지도 몰랐다.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마인드를 기피하고 있을 줄이야.
지지 않기 위해 싸워왔을 당시에는 이런 기분을 예상이나 해왔을까.
이런 잡생각이 가능할 정도로 여전히 자신의 몸뚱아리는 남아있다.
즉 아직 자신에게 벌칙은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대화를 보건데 저쪽은 자신을 용서해줄 의도 따윈 없다.
그러니까 곧 있으면 내려진다는 뜻이다. 이번엔 어떤 고통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말일까.
그걸 깨닫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센스없게시리. 그 일격을 벌칙으로 삼으면 깔끔하게 끝났잖아. 뭐, 마침 잘됐어.'
그러나 아직 여유가 남아있는 것에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쓰러뜨린 상대를 향해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잠깐."
"네놈도 목숨 구걸이냐?"
"아니, 다른 부탁이 하나 있는데."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이 아닐까.
이미 그런 식의 발악을 리퍼는 경험해왔다.
할 말이 떨어지는 순간 최후의 일격은 그제서야 목숨이 아까운 상대를 보내버렸다.
"네가 내릴 벌칙도, 내 몸뚱아리가 사라지는 거겠지?"
"그렇지."
"그럼 하다못해 내 카드들이라도 남겨주면 안 될까?"
"왜지?"
"아깝잖아. 이걸 모으는 데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뭐, 나도 남들 덱을 통째로 태워버리기는 했지만, 너까지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좀 안타깝겠다 싶어."
"………"
수상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것을 깨닫고 도펠코프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덧붙였다.
"뭐하러 의심을 해? 카드에 무슨 저주같은 걸 심을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이 말이야. 아무것도 없거든. 그냥 애들놀이용 카드라고."
늘 자신의 몬스터를 패배자의 목숨을 거둬갈 처형인으로 삼아온 그였지만, 용케 그런 표현이 쉽게도 입에서 나왔다.
여러가지를 바쳤을 텐데, 그렇게 해서까지 얻은 것들을 결국은 단순한 '놀이용' 카드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아이러니를 느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니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릅써가며 모아온 것들이라곤 평상시에 별 쓸모도 없는 잡동사니, 그리고 놀이용 카드 따위가 고작이었다.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객관적인 비난을 부정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머리는 후련해진 기분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답답하게 뭉쳐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풀려나가듯이.
그런 표정을 종언을 코앞에 둔 상대에게서 가끔씩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언젠가 찾아올 끝에 안도를 취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니까 남겨놓기만 해준다면 그 다음부턴 마음대로 해. 네가 가지든, 남한테 나눠주든, 아니면 그냥 여기 버리고 가든. 그치만 아예 없었던 걸로 만드는 것만은 참아주라."
자기 자신이 끝나버리면 남은 것에 의미 따위가 있을리가 없다. 자신이 곁에 두지를 못하는 유산은 한낯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아깝다'는 미련이 이런 발언을 재촉하고 있다.
료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에게도 미련이라는 것이 있다는걸.
그야, 다음 승부를 치룰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감일 따름이다. 해야 될 일이, 해치워야 할 상대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승부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버린 모양이다. 아무리 억지를 써도 더 이어나갈 수 없는 미련을 가져봤자 소용없는 일.
그럼 받아들이면 된다.
배제해야 마땅하고, 또 그 운명을 앞둔 자의 말을 굳이 들어줘야 하는가.
그런 논제를 두고 리퍼가 생각에 들어가는 사이, 유노가 머릿속에서 끼어들며 설득해온다.
'수상해.'
'어째서지?'
'너도 봤잖아. 저 자가 내리던 벌칙은 카드에게 상대를 없애버릴 힘을 맡기는 거야. 디젠의 힘이 스며드는 거라고. 그런 걸 남겼다간 뭔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녀의 불안은 타당했다. 아직 디젠의 관한 신비를 리퍼조차 완전히 파악해내지 못한 가운데, 디젠과 연루된 자의 유품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설령 그 자신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본인이 자각을 못했을 뿐 이미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
어쩌면 다른 인물이 취해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가령, 그에게 카드를 선물했던 위저드라는 인물처럼.
'디젠의 힘을 움직이는 것은 소유자의 영혼. 그 영혼이 사라지는 순간 힘은 주인을 잃는 것이다. 그런 힘엔 의미가 없어. 카드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저 사람한테는 일행이 있었잖아. 그 사람이 준 카드가 덱에 있었어. 그런 걸 놔둬도….'
'머지않아 찾아올 위협이 있다면, 그들마저도 상대하면 된다. 우리가 여태껏 그래온 것처럼.'
'…….'
'무슨 선택을 하던 우리가 할 일은 변함없어. 우린 계속 피하려고 행동하는 것이 아냐. 그렇다면 더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게 유리하겠지.'
자신의 방침을 배워온 리퍼가 그렇게 대답한다. 그러니 유노는 차마 부정할 수도 없었다.
문득 이 현장을 말없이 지켜보는 유진을 의식한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해왔을까.
지금의 그는 자신이 맞이해야 마땅할 위협일까. 아니면 여전히 선택을 망설이고 있는 중일까.
"……알겠다."
"이제서야 말귀가 통하네."
리퍼의 대답을 듣고 나서 도펠코프는 만족한 듯 다시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는 누운 상태로 팔에 있던 D-패드를 풀어 옆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럼 시작해."
"………."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을, 그는 침대처럼 편하게 드러눕고 있었다.
바닥을 뒤덮은 늪에 닿은 등은 아무런 통각도 호소하지 않고 서서히 늪에 자신을 들였다.
모든 걸 내려놓은 그 모습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해 하는 것으로조차 보일 정도다.
"…정말 아무런 후회도 없는 거냐?"
"후회는 무슨. 최고였어."
그 동안 상대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을 집어삼킬 늪을 접하면 공포에 떨며 저항한다. 그런가 하면 최대한 차분하게 벌칙을 받아들이는 자들도 있다. 마지막 허세인지, 마음의 준비를 마친 건지 둘 중 하나이리라.
하지만 적어도 개운한 표정으로 '최고'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역시 마지막 허세인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해보인다.
자칫하면 허우적대다 가라앉을지도 모를 바닷물 위를 튜브에 의지해서 누워있는 것 같다. 낙엽을 쿠션삼아 드러눕는 것 같기도 하다.
새하얀 눈밭에 몸을 맡긴 것 같기도 하다. 한기가 닥치거나 옷이 젖는 걸 개의치 않고, 그저 포근한 눈의 감촉에 의지하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어떻게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리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간다. 잘들 해봐."
그의 마지막 말에도 역시 일말의 후회는 엿보이지 않았다.
집어삼킴으로서 역할을 다한 늪은, 이번에도 서서히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남은 리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변함없이 상대의 디젠을 주워드는 일이었다.
추가로 바닥에 남겨진 듀얼 디스크와, 보상으로서 얻은 카드들까지 전부 챙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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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비 하나가 어덯게든 끝이 났습니다.
이것저것 만들어놓고 써먹은 것까지는 좋은데 듀얼로그 짜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생각하면... 자작 오리카로 덱 짜자고 생각한 과거의 나 죽어라
결과물까지 좋은지는 보시는 여러분들의 지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이제 줄줄이 이어질 대화 페이즈가 지나면 새로운 고비를 맞이할 차례로군요
저도 타 작가분의 외전으로 틈틈이 글 작성 감각을 올리는 중이지만 재밌군요 이거
듀얼 로그 짜는 건 진짜 어려운 일 중 하나죠. 카드 효과 찾아야 되지, 라이프 포인트 조절 잘 해야 하지, 신경쓸 게 진짜 이만저만이 아니죠. 거기에 이 효과가 룰 상 문제 없이 발동할 수 있는가?는 베이직으로 깔고 가야 하고... 저도 팬픽을 연재하고 있지만 듀얼 로그 짜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작가 님의 연재를 응원합니다!!!
저도 타 작가분의 외전으로 틈틈이 글 작성 감각을 올리는 중이지만 재밌군요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