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와 빛의 신 아케루스, 그리고 두 신격을 따르는 수많은 집단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싸워왔고 수많은 생명들이 사그러졌다.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사람들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가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둘 개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트와일라잇 시티의 방과후 일상에선 어디선가 본 것같은 노란 브릿지가 달린, 목덜미까지 덮는 길이의 하늘색 머리의 소년은 지금은 사라진 둘 중 그 어느 쪽과도 닮지 않은 자주색의 눈동자를 자신과 대치 중인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야, 저기 왔다! 암흑 날개의 대장이야!"
"그래, 오늘은 좀 어떨지 보자고."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그 악명높은 '샤키르 나셸'과 닮아있는 외모 때문에 아이들은 걸핏하면 암흑 날개의 대장이 왔다며 장난을 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 화답으로 아예 진짜로 실전성과는 별개로 흉흉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지박] 덱을 구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긴 검은 코트와 군청색 조끼, 검은 넥타이를 조합한 드레스 셔츠, 군청색의 반바지와 가터를 물려놓은 검은 하이 삭스, 몇 센티미터 정도의 굽을 가진 짙은 갈색의 옥스포드 화, 특별 주문으로 제작한 제트 블랙 듀얼디스크 등등 학생들 사이에서 유달리 눈에 띠는 코스프레성 복장까지 더해서 돈많고 건방진 도련님 듀얼리스트를 연기하고 있었다.
"어제는 졸려 죽는 줄 알았어. 오늘은 좀 몇 턴이나 버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잘 좀 해봐."
"절대로 용서 못 해! 오늘이야말로 우리가 널 처단해주겠다!"
"그래보던가. 하지만 너희들 수준으론 어림도 없다고."
지겨울 정도로 자주 겪는 장난이었음에도 그에 맞춰 자기 컨셉을 연기하며 아이들의 호승심을 이끌어내는 소년이었다. 좋은 점이 있었다면, 이를 통해 실전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덱의 최적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면서 때로는 아이들이 보는 자신의 이미지에 걸맞는 몬스터를 채용해가며 힘으로 으스러트리거나 반대로 상대를 서서히 말려죽이는 플레이도 가능했다.
"아직이야. 패 1장을 버리고, 속공 마법 [초융합]을 발동."
"뭐어?!"
"이걸로 [지오그리폰]과 [지오그렘리나]를... 초융합. 그래도 내 진심을 한... 10% 정도는 이끌어낸 보답은 해주겠어. [지오 글라샤=라볼라스]를 융합 소환."
그러다보니 최소한 자기 학급 내에서는 소년을 이길 만한 상대는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몇몇 아이들이 기세좋게 덤볐다가 보기 좋게 깨지고는 같은 반에 속한 하준에게 도움 요청을 보내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
"하준아! 우리 좀 도와줘! 암흑 날개가 우리를 겁주고 있어!"
"그만해, 정말. 생긴게 좀 닮은 거가지고 너무 괴롭히는 거 아냐?"
그럴 때마다 하준은 매번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그 악명높은 샤키르 나셸과 닮아있는 것은 맞지만, 그가 보기에는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분명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좋은 가족과 여러 유명한 지인들에 둘러싸여 자신보다 밝게 빛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컨셉트 플레이에 익숙한 것과는 상관없이 소년으로 하여금 약간의 부러움과 질투심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글쌔. 안 붙을 거면 네가 진 걸로 한다?"
"정말 그래야 해?"
"쫄아서 도망친 거잖아. 네 형이 이걸 알면 진짜 싫어라하겠지. 듀얼리스트가 듀얼이 무서워서 도망친다고."
능숙하게 도발성 대사와 포즈를 취하며 하준의 도전을 유도하고 있는 소년은 자신이 쓸데없이 자기 컨셉에 먹혀버린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상대 전적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 했던 하준을 한 번이라도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었고, 그렇기에 자기 컨셉에 맞춰 상대해주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하준을 상대로는 아주 진지하게 덤벼들고 있었다.
"왜? 네 형은 암흑 날개만 보면 아주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던데. 진짜 쫄았어?"
"아이, 참... 알았어. 정말로 나랑 듀얼을 하고 싶은 거라면 안 받아줄 이유도 없어!"
하준도 본인의 컨셉과 상관없이 자신을 진심으로 이기고 싶어하는 소년의 마음은 짐작하고 있었고, 어차피 듀얼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 역시 소년의 대결에 응하며 자신의 듀얼 디스크를 가동했다.
*
"또 졌나보네."
"그렇지... 또 졌어."
황혼이 물드는 저녁, 소년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외모의 여고생과 합류하고 있었다. 자주색의 단발과 생물학적 아버지와 유사하게 보라색과 하늘색의 오드아이를 지닌 날카로운 인상의 여학생. 그 융기는 또래에 비해 조금 더 높게 솟아있었고 또래에 비해서도 다소 작은 키를 가진 남동생과 대조되는 훤칠한 키 덕분에 모델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 두 사람은 비록 어머니는 달랐으나, 분명 같은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둘 다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 했다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에 애프터라이프 시절에 우연히 접하고 상당히 나이 차이가 나는 사이임에도 일종의 동지의식마저 느끼고 있었다.
"분하더라고. 악당 놀이야 하다보니까 재밌어서 즐기게 되는데, 하준... 그 녀석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 한 건 좀 분해."
"라이벌...인거네?"
"그렇네. 라이벌이네."
연기 내지는 컨셉과는 상관없이 진심을 다해 상대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단 한 번도 꺾지 못 한 상대에게 분함을 느끼는 이복 동생의 머리를 그의 누나는 살짝 웃으면서 쓰담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키벨, 늘 말하는 거지만 너를 동생으로 만날 수 있었다는게 정말 기뻐."
"그 이야기를 수십번은 더 했잖아, 누나. 나 볼 때마다 그 망할 인간이 생각나지 않아?"
새삼스럽기 그지 없는 말에 슬쩍 자기 누나를 떠보는 '키벨'이었고, 그의 누나는 소년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전혀 아닌데? 말랑말랑하게 생긴 것만 봐도 하나도 안 닮았거든."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좀 낫네."
"그나저나 악당 놀이하려고 입은 옷인데, 내 눈엔 악당이 아니라 그냥 귀여운 도련님인 거 알아?"
"알게 뭐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키벨은 누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기분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퉁명스러운 대답에 담긴 동생의 마음을 알고 있는 소녀는 재차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누나."
"응?"
"악당 놀이를 하다보니까 생각난건데, 만약에 내가 중2병인지 뭔지에 빠지면 어떻게 할 거야?"
"캠코더든 스마트폰이든 들고와서 찍어야지. 그러면서 나중에 네가 이랬었다면서 잔뜩 귀여워해주는거지."
"무서운 소리하네..."
슬쩍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에 키벨은 자신의 중2병을 녹화하겠다는 누나의 생각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집으로 돌아가니,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는 누군가가 보낸 편지가 한 통 있었다.
"또 오셨네. 키다리 아저씨."
키벨의 누나는 그가 보낸 편지 봉투를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읽어보았다.
키벨레우스, 로젤리아에게.
오늘도 너희 두 사람이 일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바른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늘 건강하게 지내거라.
아저씨가.
암흑 날개의 샤키르 나셸은 말년에 리스와 불건전한 관계를 맺은 것이 알려졌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로서 그는 이전에도 다소 깔끔하지 못 한 사생활을 보냈으며 애프터라이프의 여신도 몇몇이 그의 사생아를 임신했었던 경력이 있었다. 그 사생아들 중 일부가 바로 로젤리아와 키벨레우스의 두 사람이었고, 본래대로면 애프터라이프의 신도 A로서 사라졌을 두 사람은 아스트라이모나드의 몰락과 함께 비록 비참했을지언정 살아남았고 암흑 날개와의 전쟁에서 도시가 엉망이 된 와중에도 두 사람은 끝내 살아남았다. 그런 두 사람을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거두어 트와일라잇 시티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이 아저씨는 도대체 언제쯤이어야 우리한테 얼굴 한 번을 보여줄까?"
"그러게. 우리한테 이것저것 해주는 건 고맙지만 얼굴을 모르니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키벨레우스, 약칭 키벨과 로젤리아, 약칭 로제의 두 이복 남매의 트와일라잇 시티 정착기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
그러나 둘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 남매라거나 남성과 여성이라는 가장 직관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제쳐두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밥 많이 안 먹는 건 똑같네... 가뜩이나 키도 작아서 걱정인데, 밥도 많이 안 먹으니까 정말 걱정이다."
"어쩔 수가 없다고. 이것도 정말 많이 노력하는거야."
평균적인 여성 이상의 키를 지닌데다 식사량도 제법 많은 로제와 자기 또래에 비해서도 작은데다 소식 성향을 가진 키벨,
"너네 또래의 애들은 이런 오래된 노래들은 잘 안 듣지 않아?"
"글쌔. 적어도 영양가없는 요즘 노래들보단 훨씬 그럴 듯하지 않아?"
현대의 EDM을 적극적으로 청취하는 로제와 60~80년대의 노래 위주(주로 팝송 계열)로 즐겨듣는 키벨,
"같이 TV를 보는 정도는 괜찮잖아?"
"나는 TV를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야."
TV 시청을 즐기는 로제와 그렇지 않은 키벨,
"듀얼리스트도 체력이 있어야 오래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렇게 말해도... 내가 밥도 많이 안 먹는 거 알잖아아..."
운동에 진심인 로제와 운동은 질색인 키벨,
"매일 보는데도 너는 옷을 입는게 아니라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아."
"누나도 알잖아. 키가 작으니까 옷이라도 잘 입어야한다고."
그다지 스타일링에 연연하지 않는 로제와 스타일링과 컨셉에는 아주 진심인 키벨,
"네 듀얼을 볼 때마다 너는 듀얼을 하는게 아니라 무슨 서커스를 선보이는 것 같아."
"누나는 친선전을 할 때도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로 하잖아."
듀얼에는 언제나 전심전력을 다하는 로제와 덱의 수준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자기 컨셉을 맞춰 듀얼을 선보이는 키벨,
"누나는 볼 때마다 나보다도 더 남자같단 생각이 든단 말이야."
"너는 볼 때마다 남동생이 아니라 여동생같단 생각이 드는걸."
여성들에게도 '형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솔직담백하고 꾸밈이 없는 로제와 타고난 연기력과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키벨. 이런 두 사람의 너무나도 다른 모습은 언뜻보면 뭔가 삐걱거릴 것같은 느낌을 주었다.
"자, 나보다는 누나가 더 많이 챙겨먹어야지."
"또 그러네. 가끔은 좀 많이 먹고 그래."
그렇지만 둘의 조합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역할도 했다.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
"자, 여기 네가 찾던 CD야. 어렵게 구했다고."
"요즘 새로 뜨는 음악들을 좀 알아봤어. 누나가 좋아할까 싶어서."
서로의 취향을 챙겨주는 것,
"그래도 역시 같이 TV를 보니까 훨씬 낫네."
"그렇다니까. 옆 사람하고 같이 뭔가를 본다는게 얼마나 즐거운데."
누나의 즐거움을 위해 한 걸음 뒤로 빼주는 동생,
"이걸로 끝이라고! [볼캐닉 엠페러]! 남동생의 어둠을 불태워버려라!"
"으으, 분하다!"
동생의 성향에 맞춰 자신의 신념을 물려주는 누나,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돼!"
"어으...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거 맞지?"
동생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누나,
"누나, 이건 이렇게 입으면 더 어울려."
"이래저래 스타일링은 너한테 신세를 지게 되는걸."
누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동생. 알고보면 둘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상호보완적인,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챙겨주는 관계였다.
"누나... 이건 좀 많이 심한데..."
"왜, 딱봐도 여장하면 애들이 두 배로 좋아할 것 같았는데. 소위 말하는 쇼타들의 필수 코스아냐?"
"그런다고 [저택 와라시] 코스프레 복장을 가지고 오다니... 참 퍽이나 좋아하겠다..."
"뭐래, 평소에도 다리 다 드러내고 다니면서."
가끔은 누나가 동생에게 짓궃은 장난을 치고,
"으아아! 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그래?"
"너, 내 음악 파일에 장난쳤지! 귀 아파 죽는 줄 알았잖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또 가끔은 동생이 누나한테 얄밉게 굴기도 했지만.
"누나, 고마워. 늘 언제나."
"그건 내가 할 말인데."
그래도 키벨과 로제, 둘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사이였고 그렇기에 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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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타만이 진리다 (맞아죽은 작성자의 마지막 유언이었읍니다)
이번 엑스트라 스토리 라인은 오네쇼타가 아니라 샤키르 나셸의 사생아 중 일부인 키벨과 로제의 이복남매를 주역으로 두고서 전개될 예정입니다
글쓰는 감각도 살릴 겸 외전 한 편이 연재중인 것에 삘을 받아 저도 엑스트라 스토리로 다시 돌아왔읍니다
이 글의 시간대는 본편의 작가가 본인의 편의에 맞춰 정할 예정입니다(?)
X2는 언제 무슨 내용으로 나올지는 저도 잘 몰?루입니다
뭐야 왜 이야기가 한꺼번에 두개씩 올라와요 어디 밖에 나와있어서 컴퓨터를 못하는데! 모바일로 써야하나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모바일로 써야하지 않을까요(?)
방금 본편 22화를 올린 뒤에 시즌 2 엑스트라 에피소드 1화가 올라온 이 타이밍... 설마 황신께서 가호를 내리신 걸까요?! (※ 아닙니다.)
호오, 샤키르의 사생아 이복 남매의 이야기라... 이거 엄청 흥미진진한 이야기네요! 이번 엑스트라 스토리는 어떤 이야기가 될 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예측해 보건대, 키벨리우스와 로젤리아 남매를 챙겨주는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는 아마도 오벨 대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비록 샤키르가 가문 족보에서 완전히 파였다곤 해도 일단 나셸 가문 사람이었고, 오벨이라면 샤키르에게 사생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두 사람을 챙겨줄 수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준이도 형 림이랑 누나 윤이처럼 친한 사람들에겐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합니다. 그나저나 알리시도 그렇고, 루시우스도 그렇고(좀 다르긴 하지만), 알파드도 그렇고... 혹시 요즘 프리큐어에서 오네쇼타가 나와서 거기에 꽂히신 건가ㅇ... 읍읍!!!
프리큐어와는 상관없이 그저 쇼타가 좋은 겁니다(맞아죽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