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다시 시선을 빈터에게 주며 말했다.
“팀이다. 같은 보도 팀. 그리고 우리 팀의 전속 기사는 당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말을 마치며 위는 안아든 요란을 앞으로 죽 내밀었다.
윽, 빈터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큭, 뭐 지인의 팀과 통성명도 하고 좋군요.
어차피 내일 3대 용병단 시민참여 이벤트에 참여한다면 내가 굳이 만나려 기를 쓰지 않아도 그녀와는 만나게 될 거 같은데 어쩌죠?"
위는 빈터를 노려보았다.
“아시죠, 저 팬던트 4인까지 동반 참여 가능하다는 사실.
가급적이면 여기계신 모두를 내일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하, 아주 즐거운 취재가 되겠는걸요?”
빈터는 말의 기수를 돌렸다. 그의 호위무사들도 그를 따라 말머리를 돌렸다.
그에게 환호성을 던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따각따각 말을 몰던 그가 넌지시 아를레아를 향해 말을 던졌다.
“그럼, 열심히 해보라고, 아를레아. 참, 알고는 있나?
시민참여 이벤트 도중 불의의 사고로 죽는 시민 참가자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더군.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지만 말야, 뭐 만약 나온다면 의뢰 성공 여부보다 그 쪽이 더 잘 팔리는 기사거리가 되려나?”
빈터의 눈은 호위무사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 가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위는 멀어져 가는 빈터와 그의 수하들의 모습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빈터의 실루엣이 굽이진 길 너머로 사라지자 모여 있던 사람들도 제각각 흩어졌다.
삽시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변은 보통의 웅성거림으로 채워졌다.
호에……
꽈악.
“아악!”
요란은 악수가 더 하고 싶었던지 루블럼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시전했다.
루블럼의 몸이 종잇장처럼 위아래로 펄럭였다. 위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관심을 끄고는 아를레아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아를레아가 위를 불렀다.
“아무튼 그렇게 됐군. 내일부터 신세를 지게 되었어. 팀으로써 잘 부탁해.”
위가 아를레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를레아는 벅벅 눈물을 훔치더니 씩씩하게 일어나 웃으며 얘기했다.
“저야말로 영광이죠!”
“아니, 우리야 말로 다행이지. 오늘 기사 제출하고 나면 취재거리가 전무했던 상황이니까 말야. 안그래, 위?”
가까스로 요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온 루블럼이 쿨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지켜 세우고 있었다.
월간지 광고 면에 실리는 미청년 검사의 화보와도 같은 장면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널브러진 자세만 아니었더라면.
위는 루블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틀렸어.”
루블럼은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긴 이런 자세로 쿨한 미소와 멋진 말을 던지는 것은 본인이 생각해도 설득력도 없고 그저 우습기만한 상황……
“매복조로는 영 쓸 수 없겠어. 저렇게 반짝 반짝해서야.”
‘틀린 점이 뭔가 틀려, 이 인간아……’
루블럼은 생각했으나 말로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뭐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기사 얘기도 나오고 모두 다 여기 다 모여있으니 하는 말인데…….”
루블럼이 툭툭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어쩌자고 여기 다 모여 있는 거야! 기사는 어떻게 낼 거야! 줄은 왜 박차고 나온 거야!”
루블럼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루블럼, 위, 아를레아, 요란의 옆으로 뱀의 몸통처럼 구불구불 구부러진 인파의 줄이 벽문소 ‘가노드 메티스’ 앞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턱,
위는 루블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신념과도 비슷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루블럼, 진정해. 진정하고 내 얼굴을 봐. 모든 상황에 대한 준비가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곤 하지.”
흑칠을 한 시커먼 얼굴이 루블럼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때, 이만하면 마음이 든든한가.”
‘아니, 전혀. 더더욱 믿음이 안가.’
루블럼이 그렇게 말하려 입을 벙긋하려 했을 때 이미 위는 상큼한 미소와
‘어디가서 차나 한잔하며 기다리고 있지 그래. 그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지.’
라는 말과 함께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도 낮은 포복으로.
약 5분 뒤, 인파의 수면 위로 검은색 사람 모양의 실루엣이 하늘로 솟아 오르는 것을 루블럼은 목격할 수 있었다.
루블럼은 판단했다. 저건 지독히도 사람과 닮은 형상을 하고 있지만 절대 사람은 아닐 거야.
아무렴,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아닐 거야.
4.
시민참여 용병단, 줄여서 연합 민병단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한 무리들이 리우 에쏘리타의 성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사실, 이 민병단 의뢰는 다분히 홍보 이벤트의 성격이 강한 행사였다.
장비길드나 마법물품 길드가 뒤에서 후원을 하고 하급 난이도의 임무를 A랭크 이상의 용병단,
그것도 리우에쏘리타에서 가장 강하기로 소문난 세 개의 용병단에게 연합하여 의뢰한다. 실패할래야 실패할 수가 없는 임무였다.
그리고 그 임무에 각 메이저, 마이너 벽문소들이 달라 붙어서 자극적인 머리 기사로 벽문을 장식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극대화 한다.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호사꾼들이 소문을 보태고 임무에 대한 내용은 진실이 어떻든 제멋대로 부풀어 오른다.
좀도둑 하나 검거하는 의뢰가 순식간에 도둑길드 하나의 완전 분쇄 즘으로 둔갑한다.
이즘 되면 후원사인 각 길드들에게 임무의 완수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은 상황이 된다. 중요한 건 발대식.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사람들의 관심 덕분에 수만의 인파가 발대식 날 중앙광장에 몰리게 되고 발대식에 오르는 이벤트의 주인공,
각 용병단의 용병들 갑옷에, 검집에, 망토에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걸어 주기만 하면 이 이벤트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었다.
발대식이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의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연기처럼 흩어져 버릴 것이었다.
남는 것은 화려한 영웅들의 자태와 그들이 걸쳤던 값비싼, 그러나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각 길드의 신제품 이미지들뿐.
마법보호구 길드 8인의 위원 중 하나인 누탄 마조라는 연합 민병단의 행렬 정가운데에 있었다.
금번, 연합 민병대 의뢰는 철제무기 길드와 마법보호구 길드가 후원하고 있었다.
지붕 덮인 호화 마차 안에서 그는 밖으로 보이는 수만 명의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가 탄 마차의 지붕에 금으로 수놓은 ‘여신의 숨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올 상반기 길드에서 밀고 있는 새로운 마법보호구 브랜드의 명칭이었다.
그는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양손을 흔들다 이내 마차의 커튼을 닫아 버렸다.
마차 안에는 호화로운 금실로 수놓아진 붉은색 비단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다.
누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고 있었던 얼굴을 싹 지워버리고는 피로에 절은 표정을 띄웠다.
마치 변검을 보듯 순식간에,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변하는 얼굴 표정이었다. 그는 비단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맞은편에 반듯한 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은 길드 서기원을 불렀다.
마법보호구 길드 규약 상 위원 1인에게는 개인 비서처럼 서기원 한 명이 따라 붙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린네.”
“네, 위원님.”
“이거 의뢰 내용이 뭐였지? 오래 걸리는 의뢰였나?”
“리우 에쏘리타와 보타란바란을 잇는 공용 도로를 점거한 미노타우르스 2마리를 포획하거나 쫓아내서 도로의 안전을 다시 확보하는 내용의 의뢰입니다.
목적지는 란바란 숲 입구입니다. 일정 상 보름 정도 걸릴 듯 하군요.”
“보름씩이나?!”
누탄은 또다시 변검술을 시전했다. 이번엔 놀란 얼굴이었다. 펄쩍 뛰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안그래도 육중한 그가 마차 안에서 펄쩍 뛰어오르자 마차가 흔들거렸다.
“안돼, 안돼. 닷새 뒤에 윈저공과 사냥 약속이 있단 말이네.”
“그래도 길드의 규정 상……”
“에잇, 중요한 건 발대식이지 않나. 발대식도 끝났겠다.
중간에 빠져도 멍청한 시민 나부랭이들은 아무도 모를 거야. 대체 미노타우르스가 도로를 점거했으면 돌아가면 될 것을 왜 의뢰를 하고 난리야, 난리가.”
흥분한 누탄이 팔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말했다. 린네는 감정의 동요 없이 대답했다.
“리우 에쏘리타와 보타란바란 사이에는 마경의 숲이 있습니다. 마경의 숲을 지나는 길은 외길이지요.
그리고 그 외길을 현재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각각 입구와 출구에서 막고 있는 탓에 보타란바란과 리우 에쏘리타 간 물자교환이 사실 상 끊어진 상태고요.
이 상황이 지속되면 보타란바란의 특산물인 쌀과 모직의 가격이……”
“아, 됐네. 됐어.”
누탄은 손을 흔들어 거부의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어려운 얘기는 그만 해, 머리 아프니까. 요컨대 이 마차만 연합 민병대 줄 안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이 마차가 식량 보증수표 같은 거니까 말야. 내가 빠지면 길드에서 후원한 식량 마차들도 같이 빠지니 이번 의뢰는 실패가 될테고,
그러면 이번 이벤트로 이미지 메이킹 제대로 하고픈 용병단과 기삿거리 하나 정도 건지고 싶은 벽문소 윗 선들이 곤란해지는 걸 테지. 안 그런가?”
의뢰의 세부적인 정황도 모르고 이 의뢰의 성패가 가진 두 도시 간의 경제적 파급력이 얼마나 되는지 추산할 줄은 몰라도
자신의 처신에 대해서만은 극도로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는 누탄이었다. 길드라는 조직에서 위원이 되려면 실력보다는 처신일까,
누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면서 린네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