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길! 일어나!"
베아트리체는 주머니에서 검은 크리스탈을 꺼내 내 눈 앞에서 꺠뜨렸다.
"방금 하나 빚진 거 갚은 거다!"
베아트리체는 곧바로 돌아서며 임프와 대치했다.
"으윽..."
나는 몸에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키에엑!"
거대 임프는 베아트리체를 노리고 전투 망치를 휘둘렀으나 그 궤도에 내가 있어서 나는 재빨리 전투 망치 자루 부분으로 바닥을 치며 뒤로 빠졌다. 전투 망치가 바닥을 때리며 쏟아진 흙먼지가 내 얼굴을 덮었다.
"후우..."
나는 앞이 안보이자 만약의 상황을 생각해 망치를 등에 메고 등에 메어놨던 방패를 양손으로 잡아들고 몸을 웅크렸다. 다행히 흙먼지 때문에 나도 안보였지만 임프도 내 모습을 못 본듯 했다. 나는 다시 등 뒤의 전투 망치를 잡았다.
"아니지..."
나는 이내 망치에서 손을 떼고 허리춤에 있는 녹슨 롱소드를 뽑았다. 체급 차이 때문에 휘두르는 동작이 큰 전투 망치로는 맘 편하게 못싸울 것 같았다.
"정신 들었으면 이제 도와주지?"
베아트리체는 정신없이 임프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재빠르게 레이피어로 찔러대며 말했다. 나는 베아트리체의 말에 달려가 롱소드로 임프의 발등을 긁어대며 발을 구르는 임프의 발을 피했다. 한참을 유효타를 못내던 임프는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검은 구체 형태가 됐다.
"물러서!"
베아트리체의 말에 나는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러자 베아트리체의 말대로 뭐가 있는지 움찔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방패를 양손으로 잡고 몸을 움크려 방패 뒤로 몸을 완전히 숨겼다. 그리고 갑자기 폭발하더니 사방으로 검은 액체가 튀었다. 그리고 그 검은 액체들은 천천히 기립하더니 작은 임프 형태를 갖추었고 이내 소리를 지르며 나와 베아트리체에게로 달려들었다.
"붙어!"
베아트리체의 외침이 무슨 뜻인지 아는 나는 베아트리체와 등을 맞붙이고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임프들을 상대했다.
"젠장...너무 많은데..."
나는 롱소드와 방패 바닥에 떨어뜨리고 전투 망치를 잡았다. 어차피 저 덩치에 손톱으로 긁어대는 거라면 겁도 나지 않았다.
"뭐야?"
바닥에 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베아트리체는 앞의 임프의 목을 찌르며 슬쩍 뒤를 돌아봤고, 양손으로 전투 망치를 잡은 나를 보고 기겁했다.
"너 뭐하는 거야? 방어 안해?"
"흐랴압!"
나는 베아트리체의 말을 무시하고 전투 망치를 마구 휘둘렀고, 확실히 임프들은 내 등에 달라붙으며 손톱으로 긁어댔으나 시끄럽기만 했지 내 몸에 닿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임프들은 내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두 마리씩 떨어져나갔고 두 대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바스라졌다. 그러자 임프들은 다시 뭉치기 시작했고 다시 하나의 형태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신으로 보내면서 힘이 많이 줄어들었는지 나아 체급이 비슷해졌다. 이 정도 크기면 할만 하다고 생각됐다
"......"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를 조용히 노려봤다. 먼저 움직인 건 임프 쪽이었다. 몸의 크기에 맞게 줄어든 전투 망치를 창처럼 나를 향하게 하고 돌진했고, 나는 방패를 들어 임프의 공격을 대비했다.
"흐럇!"
"깡!"
그리고 나는 팔을 크게 휘둘러 방패로 창을 걷어내려 했고 타이밍 좋게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충격으로 체급이 비슷해진 임프는 뒤로 넘어졌다. 나는 망치를 크게 휘둘러 임프의 배를 내려찍었고 임프의 몸은 폭발하며 사방에 검은 액체가 되어 흩뿌려졌다. 흩뿌려진 액체는 다시 모여 검은 웅덩이가 됐고 방금 전보다는 조금 더 작은 크기의 임프가 됐다. 임프는 더 이상 공격적으로 나올 여유가 없는지 망치로 방어 자세를 잡고 나의 방패 쪽으로 돌기 시작했고, 나도 먼저 공격할 용기가 없어 방패를 세우고 대치만 했다.
"히얍!"
정적을 깬 건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가 임프의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해 오금을 걷어찬 뒤 무릎을 꿇은 임프의 등을 방패로 밀쳐 완전히 엎드리게 했다. 그 후 길다란 레이피어로 그대로 임프의 등을 관통했다.
"끼에엑!!"
나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꼼짝 못하는 임프에게서 비스듬하게 서며 전쟁 망치를 양손으로 잡아 참수하듯 임프의 머리를 내리쳤다, 임프는 비명도 못지르고 천천히 바스라졌고, 바스러지면서 나온 검은 먼지들은 나와 베아트리체의 상처에 스며들며 몸을 치유했다.
"이건 내 몫으로 챙길꼐."
베아트리체가 먼저 임프가 죽은 자리에 떨어져있던 4개 중에 2개를 챙기며 말했다. 아쉽긴 했지만 3개나 가져가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크리스탈을 챙겼다.
"그럼 난 이만."
베아트리체는 들어왔던 입구로 사라졌고, 나는 임프가 막고있던 다른 문을 봤다. 적어도 뒤로 돌아간다고 이 빌어먹을 크리스탈을 더 모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 위에 떠있는 2개의 달을 봤다. 그게 달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눈이 부셔 못 볼 정도는 아니니 태양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 저 달을 봤을 때와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뭐 달이 항상 똑같은 곳에 떠있다는 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수단이었으므로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이보게 젊은이."
나는 고개를 들고 달을 보며 가느라 누구를 지나친 줄도 모르고 있었고 뒤에서 들린 소리에 급히 방패를 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후후, 이제 늙어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악마이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다시 들린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왠 검은 거적대기에서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딱 보니 죽여도 크리스탈 하나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날 왜 부른 거지?"
내 질문에 악마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게 중요한가?"
"내 뒤에 정체 모를 악마를 남기고 싶진 않으니까."
내 대답에 늙은 악마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 길은 떨어진 자들이 항상 지나가는 길이라 그들에게 크리스탈을 사고있네."
"검은 크리스탈을?"
나는 크리스탈을 산다는 말에 되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검은 액체가 들은 유리병을 꺼내보였다. 그리고는 이거 어떻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이게 뭡니까?"
"검은 크리스탈을 녹인 걸세. 순순하게 자네의 영혼을 치료하는데 쓸 수 밖에 없지만 검은 크리스탈을 깨는 것보다는 좋지."
그러고보니 임프를 죽였을 때 흩날리던 검은 가루가 몸에 붙자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는데 그걸 녹인 건가? 그럼 확실히 가치가 있겠군.
"마셔보겠나?"
악마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크리스탈 한 개일세."
"그럼 됐소."
정체 모를 검은 액체를 덥썩 먹을 수는 없었다.
"낄낄낄, 그럼 가던 길이나 마저 가시게."
흠...
"안가고 뭐하나, 킬킬."
"좋아요, 여기 하나."
나는 결국 크리스탈을 하나 주고 그 유리병을 받았다. 엄지손가락만한 유리병은 심지로 입구가 막혀있었다. 나는 심지를 뽑아버리고 냄새를 맡았다. 확실히 힘이 솟는듯 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그 검은 액체를 들이켰다. 나쁘지 않았다. 아까 베아트리체가 눈앞에서 크리스탈을 깨뜨렸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
"여기요."
나는 주머니를 털어 남은 크리스탈 세 개를 모두 건내줬고, 그는 웃으며 3개를 건내줬다.
"꽤 많이 사가는군."
"죽고 싶진 않으니까요."
대답을 하던 나는 왼쪽 눈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내 감겨진 왼쪽 눈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덕분에 걱정없겠어. 내 선물로 이야기 하나 해주지."
그는 검은 크리스탈을 품으로 넣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곳을 지배하던 왕이 있었는데 끝없이 쏟아지는 떨어진 자들을 막느라 이 땅은 계속 다른 왕들에 의해 정복됐고 이 땅의 주인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땅을 지배한 왕은 떨어진 자들을 악마로 만드는 실험을 했었네. 결국에는 그 왕도 사라져 버리고 버려진 땅이 됐지만. 재밌나?"
"악마들끼리 땅싸움을 한다라..."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전 이만 가겠습니다."
"이거 가져가게."
그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나무 뿌리를 내게 건내줬다. 그는 그게 뭔지 말하지 않고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