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 놈의 현량과랑 소격서 폐지 자기 정적을 소인으로 몰았고 나댔기 때문에 중종에게 죽을 만 했다면서
일방적으로 유교 탈레반이라고만 까기만 해서 부당할 정도 임 조광조는 노비 중에도 인재가 있다면 면천 후 등용해야 하고,
노비종모법으로 노비제는 완화해야 할것을 주장했으며 서얼 허통을 주장했음
이 때문에 후대의 서얼들은 조광조 같은 현인이 서얼 허통을 주장한 것을 근거 삼아 서얼 등용을 주장하였고
또 조광조는 한전제를 실시해서 특권층(특히 훈구 대신) 토지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걸 주장했음
거기에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해 망가진 수취제도나 공납제를 손 볼 것도 주장하는등 조광조는 연산의 폭정으로 망가진 조선을 개혁하려 했는데 조광조의 저런 모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현량과랑 공신전 폐지 같은 것만 부각되고 계속 탈레반이라는 식으로만 부당하게 까이고 있음 특히 조광조는 기묘사림 중에는 '가장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고, 자기 당여들의 과격한 주장을 오히려 진정시키는 모습도 종종 보였고
그리고 조광조의 개혁 방향성은 뒷날 율곡 이이에게도 계승되어서 이이가 내세운 경장론의 모태가 되었고, 흔히 조선의 실무형 관료로 많이 일컬어지는 류성룡이나 김육 등의 민생정책들도 사실은 뿌리를 따져 보면 조광조의 개혁이 뿌리가 되고 있음.
조광조에게 유교 탈레반의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엄연히 비운의 개혁가였던 것도 맞음
현실을 전혀 모르는 꿈속에서만 살던 이상주의 개혁가라는 평가도 있더라
머리속에서 이상적인 개혁을 진행하면 현실의 벽에 부딫히는데 어쩌다보니 최고 권력자가 되는 바람에 그런 현실의 벽을 못 느끼고 계속 현실과 맞지 않는 개혁을 진행했을 거란 의견을 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