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성격이 있다. 부모님 대신 종종 먹이를 주곤 하는 동우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예전처럼 닭들을 빽빽하게 고정시켜놓고 살만 찌우는 양계장 시스템이었다면 백날 먹이를 줘봤자 이런 사실을 발견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닭이 멸종했다가 부활한 이후부터 닭을 사육하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이들은 또 언제 죽어 사라질지 모르는 귀하고도 약한 존재들이니까.
전보다 훨씬 넉넉한 공간에서 약 열 마리 정도를 한 그룹으로 묶어 기른다. 우두머리 수탉 한 놈과 암탉 9마리가 딱 적당하다. 이렇게 최대한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어서 좋은 먹이를 주어 정성껏 기르는 게 교단의 방침이다.
각 그룹마다 있는 수탉이 잔뜩 기고만장해져서 으스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서열싸움의 위협도 없이 암탉을 거느리며 편하게 사는 것들. 동우는 이것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진짜 재미있는 특성을 보여주는 것은 암탉들이었다. 조용하게 구석에서 큰 욕심 없이 살아가는 녀석들, 적극적으로 수탉을 유혹하거나 자기 세력을 만들려고 애쓰는 녀석들 등등.......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한 암탉이 있었다.
동우는 그녀에게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엘리자베스는 닭치고는 지나치게 똑똑한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모이를 쪼거나 다른 닭의 뒤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주위 닭과는 다르게 그녀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스스로가 닭일 뿐이고, 갇혀서 잡아먹히기 위해 키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렇게 닭장 밖 하늘을 자꾸 쳐다보곤 했다.
동우가 먹이를 주고 있을 때도, 그녀는 여느 평범한 닭처럼 땅에 고개를 처박는 대신 동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우는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엘리자베스, 먹어야지. 먹어야 살지.’ 하고 말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면 그녀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천천히 먹이를 주워 먹기 시작한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속한 닭장 쪽이 시끄럽길래 가보니 그녀가 수탉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수탉은 엘리자베스를 제압하고 그녀의 뒤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동우는 왠지 그 꼴이 보기 싫어져서 수탉의 배를 가볍게 걷어차 엘리자베스와 떼어놓았다. 기분탓이겠지만, 엘리자베스가 동우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동우가 나타날 때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곁으로 쫑쫑쫑 다가와 그의 발등을 가볍게 쪼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동우가 비틀거리며 닭장으로 다가오자 멍하니 밖을 보고 있던 엘리자베스가 깃털을 삐죽 세우며 그에게 달려갔다. 동우는 넋이 나간채로 그의 발등을 쪼는 엘리자베스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허허.......괜히 말했어........허허허........”
그러니까 그건, 순전히 실수였다.
그는 아침까지만 해도 그가 그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그녀’에게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학교는 한창 부활절 전야제를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부활절까지는 아직 2주나 남았는데도 곳곳이 시끌벅적했다. 아무래도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니까 미리 해둘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카페, 귀신의 집, 치킨 요리대회 등등의 다양한 즐길거리를 설계하고 구체화 시키는 아이들의 얼굴은 이 축제를 누리게 해주신 치느님에 대한 애정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동우가 맡은 부문은 연극이었다. 주인공은커녕 엑스트라도 되지 못해 타이밍에 맞춰 무대조명을 껐다 키는 대단치 않은 일을 하게 되었지만.......뭐 그래도 장점은 있었다.
“안녕!”
그녀였다. 오늘도 정말 미치도록 예쁜 그녀. 이번 연극의 프리마돈나 예은이 그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연극연습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인사를 하는 일 같은 건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어? 어 안녕!”
반갑고 기쁘기만한 마음과는 다르게 동우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더듬거렸다. 겨우 안녕이란 두 글자를 더듬거릴 수도 있다니, 동우는 내심 스스로의 바보스러움에 감탄했다.
“뭐야, 왜 그렇게 당황해.”
그녀가 까르르 웃으며 동우를 지나쳐갔다. 긴 생머리의 잔향이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가슴 한구석이 그녀의 향기로 황홀하게 물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황홀함은 잠시뿐이었다.
예은이 그의 앞을 걷고 있던 키큰 남학생의 옆으로 가 팔짱을 꼈다. 연극에서 그녀의 상대역을 맡은 아이였다. 둘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예은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동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방금 전까지 구름 위를 떠다니다가 갑자기 진흙탕속으로 처박혀진 것처럼 기분이 참담해졌다.
‘역시, 인사정도로 만족해야겠지.’
연극 속에서 그녀는 그녀답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치킨, 저 남학생은 맥주다. 청소년이 연기하기엔 지나치게 도발적인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는 그의 모습을 동우는 무대 뒤에서 모두 지켜봐왔다. 그를 동우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연습시간에 자주 마주친다는 이유로 인사만 겨우 하는, 사실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이. 같은 반인데도 하루 종일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날이 대부분인 그런 사이가 바로 그녀와 동우의 관계다.
하지만 그런 미미한 관계조차 없었다면 안 그래도 지루한 학교 생활이 얼마나 더 지루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동우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몰래 한숨을 쉬었다.
“자 여러분, 예배시간이에요.”
대체 언제부터 잠들었을까. 동우는 카랑카랑한 여선생님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3교시에 펴 두었던 역사교과서에 그가 졸면서 흘린 침이 조금 묻어 있었다. 동우는 황급히 소맷자락으로 침자국을 문지른 다음 책상 밑에 교과서를 쑤셔 넣었다. 예배, 맞다 오늘 4교시에 예배가 끼어있었지. 그는 교실 뒤편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마침 중학생이 가장 배고파진다는 오전 11시 반. 치킨 두 마리를 끝장내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것 같았다.
“자, 모두 이 방송을 시청하도록 해요.”
종교 담당 여선생님이 예의 그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직도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며 말했다. 그녀가 티비를 틀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젠장, 동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젠 저 멜로디만 들어도 침이 고인다. 그는 예은쪽을 힐끔 보았다. 그녀는 꿈꾸는 소녀처럼 두 손을 가슴에 모아쥐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시작 멜로디가 끝나고 나서, 화면에는 잘 손질된 닭고기가 나타났다. 동우는 은밀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는 이 다음에 이어질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소금간이 짭짤하게 배이도록 손질한 생닭은 곧 싱싱한 노란 빛의 계란 물에 담궈질 것이다. 그리고는 쓸데없이 드라마틱한 시각적 효과를 주며 밀가루 더미에 던져지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튀김가루에 굴려진다. 일련의 동작은 견딜 수 없이 생생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튀김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영혼까지 바삭해 질 것 같은, 오싹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맑게 끓는 기름에 입수하는 장면.
교실 안에서 영상을 보던 아이들 모두 나지막이 탄성을 내질렀다.
화면 구석에서 교주가 나타나.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이것은 크리스피 치킨이라고 합니다.”
동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