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사는 여자를 가장 성가시게 하는 쓰레기가 뭘 거 같아? 음식물? 그건 남자도 성가시지. 보통 생리대를 생각할거 같은데 그것도 아니야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되니까. 이쯤되면 다 맞출것 같네. 맞아, 머리카락이야. 머리카락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빠지는 거지만 길다란 여자 머리카락은 조금만 청소를 하지 않으면 먼지를 잔뜩 머금고 사방에 굴러다녀서 보통 성가신게 아니라구. 손바닥으로 바닥이라도 한 번 쓱 쓸어보면 어느새 빠졌는지 손끝에 걸려. 외국에 평생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서 코트를 만든 할머니가 있다는데, 수챗구멍에 실타래처럼 뭉쳐있는걸 보면 수긍이 간다니까?
갑자기 머리카락 이야길 왜하냐구? 글쎄 여자에게 머리카락은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자존심이기도 하고 기분을 표현하는 쇼윈도 같은 것이기도 하고 또 신경쓰고 관리하며 성가신 그런 애증의 신체부위잖아. 여름에 달라붙고 덥기도 하고 아침에 시간도 없는데 말리기도 성가시구.
남들이 출근하기 위해 두시간 아니면 세시간 전에 일어난다면 난 그것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20분 정도.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버릇이 있어서도 아니야. 씻고 밥먹으면서 물기 닦고 머리 말리고 화장 가볍게 하고 가끔 무슨 날이면 손톱발톱에 신경좀 쓰기도 하고 옷 입고. 다른 내 또래 여자들이랑 똑같아. 직업이 텔레마케터라 조금 덜 꾸밀수 있다는걸 빼면. 근데 딱 하나 내가 더하는게 있어. 일찍 일어난 20분을 그걸하는데 쓰는거야. 뭐냐구? 사실 말하기 싫어서 이렇게나 빙빙 돌려서 이야기 한거야. 기왕 여기까지 왔잖아. 말 할게. 이십분 동안 난 흑채를 뿌려 정수리 근처에 뿌리는걸 말하냐고? 머리가 좀 부족한 여자들이 미용으로 뿌리는거? 미용목적이 맞긴하겠지만 난 좀 부족해서 뿌리는게 아니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탈모야.
여성탈모는 가르마가 비거나 동그랗게 원형으로 빠지느게 일반적이라고 하더라. 스트레스성이라지? 근데 난 그정도가 아니야 정수리 부분이 완전 비었어. 몇가닥 있긴 하지만 사막에 나무가 난 것처럼 듬성듬성할 뿐. 손바닥을 머리에 얹으면(두피를 따듯하게 하는 맛사지 요법이라나) 손바닥에 맨들맨들한 두피가 느껴져 그것도 살이 두툼한 곳에서 손가락 바로 아래까지 전부. 그래서 흑채를 뿌리려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거나 눈썹 중간쯤에서 가르마를 타고 그 위에 뿌려야해. 빈 부분을 덮어줘야 하니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톡톡톡톡. 그렇게 내 아침의 20분이 지나.
가루가 묻거나 흘러내리는걸 신경써야 하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다야 낫지. 없는 날엔 모자를 써서 가려. 실내에서 모자를 쓰면 여간 눈치보이는게 아니야. 하루종일 따가운 상사의 눈총과 동료직원의 핀잔에 시달려야해. 그래서 겨울 비니를 써. 정말 가끔 생기는 일이지만 모자를 써야하면 편두통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쓰고 있는거야. 실수로 벗겨지지 않게 꾹꾹 눌러서. 한여름에 그런 비니를 눌러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 눈물이 날때도 있어.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때야. 난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었어. 머리가 비상했거나 공부를 좋아해서 한게 아니야.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였어. 꾸역꾸역 하다보니 비교적 쉬운 중학생땐 성적이 오를 수 밖에. 아버진 택배 기사셔. 깡마르고 외소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도저히 힘쓰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아버진 국문학과를 나와서 작은 회사에 입사하셨대. 아버지의 친구 가족이 운영하는 옷인데 해외 원목가구를 수입해서 소매상에 넘기는 곳이었대. 아버진 성실한 편이어서 금새 승진했고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시고 결혼한지 팔년만에 나를 낳으셨데. 내가 네 살땐 엄마 뱃속에 동생도 있었고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남부럽지 않은 삶. 그게 무너진게 아이엠에프 때였어. 회사는 부도가 나고 저금대신 회사 주식에 대부분 돈을 부어놓은 아버지도 전재산을 날리고, 둘째 생긴다고 투자 욕심 부리다가 주택 담보 대출 말고도 끌어쓴 돈이 있었대.
빚쟁이를 피해서 집을 나오던 날. 아버진 부도난 건설기업의 공사장에서 어머니와 날 재우셨어. 비닐과 박스를 깔고 판자를 떼와서 하늘을 대충 가리고. 그날은 몹시 추웠고 어머니는 유산을 하셨어.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외할머니 댁으로 갔고 아버지를 다시 만난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 달 전이었어. 낡은 월셋집, 옆집 부동산 할매는 적산가옥이라고 부르더라. 난 거기서 계속 컸어 아버지는 택배회사에 완전히 적응하셨고 난 중학생이 되었지. 아버지가 아이스박스에 발을 찧어서 깁스를 하고 오신날, 밤새도록 소주병을 잡고 울면서 해주신 이야기야. 아빠가 해줄수 있는건 너 밥먹이고 학원비 내주는거 뿐이다. 공부해라. 그것도 열심히 해라. 아빠처럼 도태되지 않으려면, 니가 집안의 희망이고 아빠의 태양이다. 동생이 못살았던 몫 만큼 배로 열심히 해라.
난 별 불만없이 잘 따랐어. 학원을 돌고 또 돌면서. 집에 가봤자 엄마는 내 학원비에 보태려고 학습지 교사를 하러 나가셔서 안계셨거든. 공부에 방해된다고 티비도 치웠는데 혼자 집에서 뭐하겠어?
다 좋은데 폰트랑 글씨 크기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