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상병님, 그런 광경 이전에도 보신 적 있으십니까.”
가르시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로 나는 격리실 창문을 통해 점점 가까워지는 모함(母艦) 리바이어던 호만 바라보았다. 아직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형형색색의 불빛 때문에 전함은 마치 거대한 부표처럼 보였다. 위협이 없는 평온 지역이라 가능한 일이다. 전방에서는 적 함선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담배 불 하나라도 보일까 전전긍긍하곤 하기 때문에 저런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태평함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대답이 없자 가르시아는 구석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더크 상병은 온종일 디오에 취한 채 침상에 누워 몽상에 빠져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째, 바이러스로 인한 발병 여부 확인은 3일이 기본이라 여기서 적어도 하루는 더 지내야만 했다. 불편한 침묵 속에 생각할 거리를 잃어버린 나는 다시금 우리가 본 광경을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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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를 쫓아오던 병사는 우리 앞에 다다르자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덜컥 멈춰 섰다. 온 몸이 누더기가 된 채였는데도 신음조차 내지 않는 모습은 21세기 초반 영화 속 좀비 같아 보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가까운 거리에서 총구 너머로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짐승의 것 같이, 생각을 담고 있지 않아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눈이었다. 그는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 위로 알아보기 힘든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기절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고개가 땅으로 떨어지던 그 순간에도 시선은 우리에게 못 박힌 채로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헉, 헉.”
가르시아가 땅에 누워 숨을 고르는 동안 MP를 들고 쓰러진 병사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라틴계로 보이는 병사는 그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게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눈은 아직도 감지 않은 채였다. 천천히 그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눈이 움직임을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그저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 상해버린 것이다. CDF의 방위자 신체가 이 정도로 망가진 건 처음 보았다. 빨래처럼 비틀린 채 근육 곳곳의 힘줄이 보기 흉하게 튀어나온 그 모습은 지옥에라도 갔다 온 것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낙오병인가. 누군지는 몰라도 몰골이 처참한 게 살아남긴 어렵겠는데.”
더크가 걸어오며 말했다. 아까의 들뜬 모습과 달리 목소리가 어두웠다.
“젠장. 르레이에게 이런 고문 기술이 있었나? 이렇게 심한 꼴은 처음이구만. 누군지 얼굴부터 확인해보자.”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나 역시 다가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무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행성 내 대규모 전투에서 낙오병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었다. 게다가 상태로 봐서는 우리가 모르는 행성 내의 토속 전염병에 감염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더크 상병님, 그냥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헤이, 박. 잠깐만. 상황을 좀 보고 움직이자. 조금 지체한다고 죽지는 않을 거야.”
“탈수 증세가 너무 심합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더크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제야 이 늙은이의 꿍꿍이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는 모아놓은 디오 더미가 걱정인 것이다. 조금 있다 구급 팀이 오면 분명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테니까. 짐짓 신중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제발...제발 살려주시오.”
갑자기 들린 말소리에 우리 둘은 순간 놀라 뒷걸음질 쳤다. 쓰러진 병사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입을 열고 있었다.
“...제...제발 살려주시오. 돈은 드리리다. 집에만 가...가게 해주시오.”
“소속이 어디야?”
“소...소속이 뭐요? 그런 거 없소. 제발 부탁이오. 죽...죽이지 마시오. 집에 보내주오.”
그는 눈물을 보이더니 급기야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미쳐버린 것인가? 들썩이는 탓에 얼굴의 진흙이 조금씩 떨어지자 더크의 입에서 갑자기 탄식이 흘러나왔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돌아보니 표정이 심각했다.
“저 녀석 누군지 알 것 같아. 바에서 몇 번 본적이 있어. 해머 조 소속이야.”
해머 조라고? 해머 조라면 우리 ‘망나니 사냥꾼’의 최고 에이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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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머 조? 소속을 모른다고? 알겠다. 우선 소대장께 보고 할 테니 현장 보존하고 있어. ]
“분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오케이. 우선 경계를 서고 있어. 난 잠깐 저거 정리하고 올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흐느끼는 건 멈췄지만 그는 여전히 멍한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알아 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와 서투른 영어를 섞어가며 계속 용서를 빌었다.
“살려주시오. 살려줘. 난 딸이...딸이 둘이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소. 맹세하오.”
“기다려요. 곧 사람이 올 테니.”
“히익! 잘못했소. 잘못했소. 제발 살려주시오.”
도통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나와 가르시아는 등을 돌리고 경계에 집중하기로 했다.
해머 조 인원은 울지 않는다. 적어도 ‘망나니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감정을 지구 시절 육신과 같이 버리고 온 냉혈한 들이고 유령여단에 가장 가까운 전투 인원들이라고.
해머 조가 속한 본부 중대 인원들 전체가 타 중대 인원들보다 2배 이상 높은 살상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해머 조의 살상률은 거의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다. 갱단이나 전범 출신들을 비밀리에 모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 정도였다.
전적으로만 따졌을 때 원래 부대에서 사고만 치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인물들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도 같은 부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공연히 다른 모두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무법자 중 한 명이 이렇게 비참한 꼴로 있는 것이었다..
“으아!! 로꼬스!! 로꼬스!!!”
우리가 미동조차 없자, 병사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독기에 소름이 돋았다.
[ 가르시아, 로꼬스가 무슨 뜻인지 혹시 알아? ]
[ 미친놈들 이라는 뜻 입니다. 박 상병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
나도 그게 알고 싶다.
“로꼬스!! 저주!! 저주 받아!! 천벌을 받을 꺼다!!”
문득 젊었을 적 들었던 이야기 한 가지가 내 뇌리를 스쳤다.
[ 가르시아, 잠시 경계서고 있어봐. 1시 쪽에 다녀 오겠다. ]
[ 하지만, 더크 상병님이 경계를 서라고...]
[ 잠깐이면 돼. 확인해볼 게 있어. ]
[ 저...그래도... ]
가르시아를 내버려두고 나는 1시 방향으로 뛰어갔다. 예전의 본능이 그곳에 무언가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디오 밭을 지나서 조금 들어가자 빽빽한 숲 사이로 무언가 타버린 듯한 강렬한 냄새가 코를 사로잡았다. 냄새를 따라 수풀을 헤치자마자 보게 된 것은 설마하고 예감했던 바로 그 광경이었다.
[ ...더크 상병님, 여기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거대한 구덩이. 그리고 타버린 시체 더미들.
눈앞에 지옥이 있었다.
또다시 어깨가 쑤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