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시우스 중위, 안에 있습니까? 들어가겠습니다.”
누군가가 장교용 숙소텐트의 출입천막을 걷어 올렸다. 몽롱했던 정신은 이내 날카롭게 깨어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얼을 반쯤 놓은 채 고개만 들면서 대답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누워있던 간이식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아멜리아 대위였다. 왼쪽 가슴에 달린 장미문양의 부대휘장과 망토 안 편에 마저 못 숨겨지고 살짝 빠져나온 날개의 깃털이 용기병대 ‘장미깃털’의 중대장임을 증명하였다. 나는 손끝을 눈썹 위로, 손바닥이 전방을 향하도록 오른손을 올렸다. 텐트 안에 같이 쉬고 있던 동료 장교들도 대위를 향해 경례하였다.
“Ma’am.”
“편히 쉬십시오, 중위.”
아멜리아 대위도 경례로 응대하였다.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현기증이 느껴졌고, 전날의 전투로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예의상 한 말을 진심으로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대위 앞에서 할 일은 오른손을 내리는 것뿐이었다.
“마르시우스 중위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아멜리아 대위는 내 성(姓)을 재차 부르고서 명령을 전달하였다.
“호테 대위가 중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00시까지는 착륙장에 있을 겁니다.”
언제 대위님이 그곳에 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1시간 동안 대위님은 착륙장에 계실 모양이었다.
‘수송기 화물 적재작업을 도우실 모양인가.’
대위님의 성격이라면 그러시고도 남았다. 대위님은 책상 앞에서 서류에 도장을 찍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을 더욱 좋아했다. 하긴 그런 몸으로는 책상 앞에 앉는 것 자체가 고역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멜리아 대위는 어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말끝이 흐려지는 것을 보니 명령은 아닌 듯했다. 개인적인 전달사항인 모양이지만 정말로 말할지 안 할지를 고민하는 듯하다가, 주위에서 꼿꼿이 서 있는 장교들의 눈치를 살펴본다.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을 굴리면서.
“……진급을 축하합니다. 중위.”
대위님은 이 말을 끝으로 텐트를 나섰다. 고작 인사를 위해 부하들의 눈치를 살핀 것인가? 나는 대위님이 마저 하지 못한 말이 있음을 지레짐작했지만, 당장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전날 벌어진 전투는 승리로 종결되었다.
적의 포격을 버텨낸 뒤 접근사격을 한 결과, 적 부대는 궤멸적인 피해를 당하였다. 대대가 일제히 쏘아낸 빛의 창은 적의 선봉대를 관통하고 후위대까지 타격하였다. 안개가 걷히고 난 뒤 전방에 보이는 정경은 낱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전열(前列)을 이루고 있던 거신병들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중간에 서 있던 병정들은 신체가 세 조각 이상으로 동강 난 이가 태반이었으며, 후위에 있던 병정들은 잃어버린 팔과 다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나마 운 좋게 수족이 멀쩡한 거신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그저 쓰러져있거나, 입자포를 던지고 우리 대대를 등진 채 정신없이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로만 구별되었다. 땅에 떨어진 거신들의 육편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고열 때문에 대부분 검게 태워져 있었으나, 중심과 분리되어 기능이 상실될 날만을 기다리는 몇몇 기관들은 혈액을 대지 위로 쏟아냈다. 산소가 가득 들어있던 피는 발화점을 넘는 주변 환경과 만난 지푸라기의 점화를 도와주어 불길을 만들어냈다. 주변에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일제사격에 바로 이어서 우리 대대는 적진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격하였다. 잔당들은 모두 처리되었고, 포병대 또한 제압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모든 적대요소를 구축(驅逐)하게 되었다. 적군을 이끌고 있던 지휘관은 거신째로 멀쩡히 포로로 잡을 수 있었다. 저항은 소용없음을 이미 알고 먼저 무기를 버린 뒤 항복했던 것이었다.
전투가 끝난 뒤, 본대는 뒤처리를 위해 2개 중대를 파견하였고 이들은 해가 뜨기 직전에 도착하였다. 그들에게 임무를 인계한 우리 대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본대로 발을 돌렸다. 폐허가 된 마을을 등지면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광경은 돈 되는 물건을 찾아내기 위해 거신의 사체를 파헤치는 사병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수고는 제대로 보상받지 못할 것이 뻔했다. 멀쩡하게 반짝이는 물건은 이미 우리 대대 병정들의 움켜쥔 손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대로 귀환한 우리 대대는 거신병에서 내린 뒤 몸을 씻자마자 다시 연병장―우리 대대가 오기 전에는 야외극장이었다―으로 모여야 했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질질 끌고 진급식을 진행하였다. 다른 장교들 몇몇과 함께 내가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한 순간이었다. 내 옛 계급장이 떨어지고 새로운 계급장이 제복에 붙여지는 순간에도 나는 빨리 침대로 돌진하고 싶을 뿐이었다. 전투에서 막 돌아온 부사관들 또한 빨리 숙소에서 오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리라.
“소위님 안녕하십니까!”
세면실에서 마저 잠을 쫓은 뒤 착륙장으로 향하던 중, 자신들의 텐트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소대원들이 나를 보고 경례하였다.
“인마, 소위님께서는 아까 중위로 진급하셨다고. 정신 못 차렸냐?”
“그러는 너도 방금 ‘소위님’이라고 말했잖냐. 너야말로 정신 차리지?”
둘 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이언은 어디 있나?”
사이언은 저 둘과 항상 함께 다니는 상사의 이름이었다.
“그 녀석은 우리를 위해서 조금 수고하고 있는 중입니다요.”
고기구이판 왼쪽에 앉은 소대원이 음흉한 미소를 띠며 말했고, 다른 소대원이 자세한 사정을 뒤이어 설명했다.
“그 마구간지기 녀석이 우리 물건을 가로채고 쌩 깠지 뭡니까. 아, 사실 저기에서 가져온 물건의 일정량을 나눠 가지기로 했었는데, 그놈이 우리가 정한 분량보다 더 많이 가져가서 숨겨버렸습죠. 그래서 사이언이 가서 그 자식을 갈구고 있습니다. 저기 이건 우리만의 비밀인 거 아시죠?”
한껏 전투를 치르고 난 뒤의 전장은 병정들에겐 숨겨진 노다지였다. 거신이 착용하는 갑옷에는 곳곳에 희귀금속이 숨겨져 있는 이른바 광맥인 것이다. 물론 우리가 상대한 반란군들은 정규군이 아니었기 때문에 갑옷을 착용한 거신병 자체도 적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우리 대대의 사격에 녹아버린 최전방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건지기는 쉽지 않았다.
덕분에 너무 적은 ‘전리품’을 서로 더 많이 가져가고자 해서 싸움이 나는 것이다. 당근 대놓고 싸우지는 않는다. ‘황제의 제국군’은 약탈을 엄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증진의 일환으로 작전장교들은 이를 눈감아주고 있지만, 헌병대에게 걸리면 태형을 당하게 된다. 정도가 심하면 사형까지 처할 수도 있지만, 일개 병정이 그렇게 많이 전리품을 챙길 수는 없다. 동료에게도 눈과 손은 괜히 달린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귀한 신분의 기수―기사나 귀족―’를 포로로 납치한 뒤에 몸값을 요구하기도 했다는데, 포로는 헌병대가 관리하는 요즘 시대에선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역시 내가 직접 갖고 갈 걸 그랬어. 욕심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
“아서라. 뒷덜미에 같이 넣고 다니게? 큰일 난다.”
기수는 거신병의 뒷덜미를 통해 ‘안장―말의 등에 얹는 것에서 명칭이 유래되었지만, 실제로는 인공적으로 교배시켜 발달시킨 거신의 신체기관 중 하나이다.―’으로 들어가서 거신을 제어한다. 거신은 기수와의 동기화가 필요하므로, 기수가 들어가 있는 ‘안장’에 유사뇌수를 주입하게 된다. 이때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이물질’이 안장 안에 있으면 상호 간 전기적 소통에 악영향을 끼쳐서 운 좋으면 거신 제어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그치지만, 운이 나쁘면 해당 기수에게 뇌성마비를 안겨줄 수도 있다.
“쳇…… 소위님, 이리 와서 고기 좀 드십쇼! 이제 저녁식사 할 시간이잖습니까?”
“먼저 먹어라. 난 호테 대위님께서 부르셔서 지금 가는 중이다.”
“그렇습니까, 그럼 제 말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이 뒤에 이어진 말은 별로 전달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투정이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우스운 말이었는지 말을 마친 뒤에 그는 낄낄거렸다.
“총 쏠 일 좀 없게 해주십쇼. 귀한 전리품 다 망가지니깐요.”
하늘에서는 주공양용강습호위함(宙空兩用强襲護衛艦) ‘바르시다’ 호가 공중에서 후방격납고를 열어둔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바르시다 호는 우주와 대기권 내 두 곳에서 모두 운용할 수 있는 강습호위함으로써, 행성의 지자기를 밀어내는 초전도체를 이용한 부양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함선은 중력을 이겨낸 채 추진제 소모 없이 ―일정하지 않은 자기장의 흐름과 기류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공중정지가 가능해진다. 개방된 후방격납고에서는 수송기가 착함하며 화물을 하역하고 있었다. 항공기들은 착륙장과 호위함 격납고를 분주히 왕복하고 있었다. 착륙장에 가까워질수록 소음은 커졌다. 지게차들도 수송기 못지않게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고 있었다.
활주로 외곽을 배회하다가 다른 경비 거신병들과는 달리 철조건물 바로 옆에서 맨손으로 서 있는 거신 하나를 보았다. 호테 대위님이었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경례하였다.
“루이 베른 마르시우스 중위. 대위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대위님은 공상에 잠긴듯한 표정으로 활주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 소음 때문에 소리를 못 들었나 생각하여 다시 한번 아뢰고자 했으나, 대위님의 시선이 향한 지점을 보고 난 뒤엔 알림을 그만두었다.
대위님이 보고 있는 것은 국기로 덮인 관이었다. 단정된 제복을 입은 병사들은 25개의 관을 들고 차례대로 수송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4명의 용기병. 18명의 맨앳암즈(Men-at-Arms). 3명의 전열장교. 이번 작전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이었다.
“역시 내가 너무 무리한 건가……”
대위님은 자신을 자조하며 말을 이었다.
“지휘관이 ‘바우슨’이었음을 알고 있었더라면 전령으로 미리 대화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바우슨 말리디우스 장군은 사이프라사에서 반란군을 결집한 지휘관이었다. 대전쟁 때 실종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 잠적한 뒤 반란군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대위님이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꽤 안면을 튼 사이로 보이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대위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누구도 대위님보다 현명하게 행동할 순 없었을 겁니다.”
나는 대위님께 위로의 말씀을 올렸다. 하지만 이야기를 지어내진 않았다. 사이프라사로 파견된 우리 대대 중에서도 대위님만큼 효과적인 작전을 지휘할 장교는 없었다.
대위님은 본래 중세시대의 인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로서 첫 원정 전투에서 그는 심각한 중상을 당하였다. 생사가 오고 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수도원은 그에게 저주를 걸어버렸다. 거신을 계속 갈아탈 수 있는 한 영생을 살아갈 수 있는 불사의 저주와 갈아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신에서 내릴 수 없는 저주를……
그렇게 무사히 소생한 대위님은 수많은 전장을 헤쳐가며, 자신이 타고 있던 거신의 수명이 모두 소모될 때마다 다른 거신으로 갈아타 생명을 연장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수세기에 걸쳐 쌓인 그의 전투경험은 천부적인 재능과 합쳐져 그를 범접할 수 없는 천재로 만들었다. 격렬한 난전에서 탈출하고, 소모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전면전에서 적을 압도적으로 격퇴해 얻어낸 화려한 전적이 그를 증명시켜주었다.
하지만 대위님은 적을 물리쳐 승리에 도취하는 것보다 전우들의 무사 생환을 먼저 경축하였다. 그는 부하들을 멀쩡하게 귀환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를 위해서 대위님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친구’를 두었으며, 출전은 최소한으로 피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임관한 중대가 대위님의 중대인 것은 나에겐 굉장한 행운임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도 대위님께서 가만히 계셨더라면 더 많은 용기병이 희생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난 다른 중대원까지 휘말리게 해버렸어. 나의 억지에도 그저 말없이 따라와 준 중대장들에겐 미안할 따름이야. 전사자와 그 전우들에게는 고개조차 들 수 없네.”
더 이상의 어떤 말로도 대위님을 위로할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화제를 바꾸었다.
“대위님,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애도를 위해 저를 부르신 것이리라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 그렇지. 자네에게 하달할 사항이 있네.”
대위님은 그 자리에서 양반다리로 앉으며 말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와 눈높이가 맞춰질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마르시우스 중위, 자네는 이제 다른 대대로 전임가게 될 것이네. 은하제국 해병사령부 3원정군 직할 제178특수기동대대, 음, 부대명이 기억 안 나는군.”
대위님은 단기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하전입자포의 ‘입자가속’과정을 ‘예열’과정으로 오인하시는 분이니 말이다―시대에 뒤처져서 그러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다음 날 아침에 본부에서 받게나. 관련 서류가 있으니 바로 처리해버리고, 익일 1500시까지 바르시다 호에 착함하도록.”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직 사이프라사의 뒤처리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복창할 사이를 못 기다리고 대위님이 물어보았다.
“질문 있나?”
“대위님, 전 아직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사이프라사에서의 작업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건 우리 부대원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야. 여기서 자네가 맡은 임무는 진작에 끝났네.”
“……언제 그랬습니까?”
“어젯밤에!”
대위님은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즉답하였다. 누가 날 그렇게도 빨리 데려가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딱 봐도 재촉하는 듯한 지령이었다. 문득 명령을 내린 그 사람의 면상이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실망한 이유는 대위님조차 이 명령에 동조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분이 얼굴에라도 나타난 모양인지 대위님이 날 회유하고자 말을 덧붙였다.
“중위, 이것은 자네를 위한 일이기도 하네. 이 명령이 아니었다면 자네는 최전방으로 배치될 수도 있었어. 그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나도 자네의 생환을 보장할 수 없네.”
대위님의 말대로라면, 나는 적어도 전선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아버지께서 실망하실 것이 틀림없었다.
“절 특별대우 하지 마십시오! 저도 황제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은하제국군의 중위입니다!”
“아니야 중위, 우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군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자네가 마르시우스 가문의 자제라고 해서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니네.”
조금 전의 말은 잘못 해석하면 대역의 죄목을 추궁할 수 있는 실언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대위님이 내 말의 뒤 문장이 아닌 앞 문장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물론 대위님을 고발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대는 싸움꾼이 아니네. 전열을 이루는 일은 자네 적성이 아니야. 방아쇠를 당기는 일 말고도 백성에게 공헌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얼마든지 있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내 제복의 안주머니에 들은 항우울제 캡슐이 은연히 대위님의 의견을 수긍하였다.
“……그렇다면 무녀님은 여기에서의 일이 끝난 다음 어디에 계실 겁니까?”
나는 혹시 명령을 받지 않았다면 계속 무녀님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 해서 물어보았다. 사실 중대를 떠나기 싫은 주요한 이유는 무녀님과 떨어지기 싫어서였다. 우리 대대는 무녀님의 호위를 주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녀님께서는 수도로 돌아가실 것이네. 봉사기간을 모두 채우셨으니 말이야.”
‘어차피 무녀님과는 떨어질 예정이었군……’
나는 낙담하였다. 그동안의 군 생활을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약 말고도 무녀님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중대로 임관한 이후 첫 출전에서 전열을 무단으로 이탈한 적이 있었다. 나는 방위조차 상실한 채 하염없이 평원을 달리다가 제단까지 도달했었다. 나는 곧바로 호위병에게 제재당하여 쇠사슬에 속박당한 채 쓰러졌지만, 무녀님께선 흥분한 나를 진정시켜주셨다. 그것이 아이린 무녀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하하핫,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나. 자네가 전역하면 나중에 얼마든지 만나 뵐 수 있지 않은가?”
대위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치려다 그만두었다. 자신의 체급과 내 체급은 비교할 수 없음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나는 저 멀리 날아가 땅에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전신 탈골은 기본이다.
그것보다 나는 무녀님에 대한 연정이 들켜버렸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더 이상의 추태를 가리기 위해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고, 가리지 못한 쪽은 고개를 돌려 대위님에게 보이지 않게 하였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꼬리를 무는 법이지.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말이야.”
대위님은 고개를 돌리고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대위님, 그러면 대위님은 이 일이 끝난 다음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나? 나는 이 일이 끝나고 퇴역할 예정이네. 뭐, 내가 스스로 사임하는 거지만 말이야. 이제 퇴직금으로 봉토를 받고 밭 갈러 가야지.”
대위님은 명예를 바라거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야심을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돌아갈 고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는 전우들과 어깨를 맞대고 손에 칼을 들어 병사를 부리는 일보다 농부들과 함께 쟁기를 들고 땅을 가는 일을 더욱 사랑했다. 그런 그에게 전투의 재능이 부여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오침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인데, 어서 밥 먹고 잠을 들게나. 아무래도 자네에겐 잠시라도 푹 쉴 수 없는 저주가 내려진 모양이군.”
대위님은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서 천막으로 향하였다. 저녁 생각은 나질 않았다. 바로 아이린 무녀님을 뵙고 싶었지만, 아직 기도를 올리실 시간이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단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을 택하였다. 그전에 나는 대위님이 착륙장을 나가기 전에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대위님! 혹시 아멜리아 대위님에게 저를 부르라고 부탁하셨습니까?”
“아니, 난 놀런 원사에게 시켰네. 내가 어떻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녀를 붙잡겠는가?”
확실히 그건 그랬다. 그렇다면 왜 아멜리아 대위는 굳이 놀런의 일을 가로채 가면서 나에게 온 것인가. 그 이유는 무녀님을 찾아뵈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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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런 글에 보름이나 걸려서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roz
이번 화는 쉬어가는 편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근데 해설이 많고 길어보이는 것은 기분탓...이 아니라 제 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ㅠ_ㅠ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다음화에는 드디어 무녀님이 등장하십니다. 집필을 서둘러야겠습니다! +_+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해설이나 설명은 꾹 참고 사건을 터트리고 진행하는 게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가장 좋죠. 막상 자신이 설정을 짤 때에는 정성들여서 이 설정이 참신하고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며 욕심껏 보여주려고 하지만 정작 독자들은 딱 한 번 읽을 땐 의외로 설정은 크게 신경 안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정은 사건 진행 틈틈이 보여주거나 SF적인 소도구나 효과 등을 보여준 뒤에 살짝 넣으라는 얘기를 하는 거죠
역시 과한 욕심은 일을 그르치죠...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_ _)
아 그리고 이건 기법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 부분인데 프롤로그를 낸 뒤에 또 다른 큰 사건을 연속해서 던지는 쪽이 독자들의 집중을 유도하는 데 더 유리합니다?
지금 진행중인 이야기에서 호테 대위는 주연이 아닌 관계로 끝맺음을 위해 조금 서두른 감도 있었습니다ㅎㅎ; 곧 새로 배치된 개척행성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정신없는 일상당직과 모험담을 펼쳐낼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