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이전에 그런 광경을 본 적은 없다.
다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젊은 시절, 해외 특파원으로 동유럽의 발칸 반도에 취재를 나간 적이 있다. 책상 하나 없던 말단 기자 시절이라,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며 보스니아 출신 주민들을 만나 하루에도 몇 번씩 전쟁 관련 인터뷰를 하며 기사에 공을 들이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제보로 교외 지역에 학살 생존자 출신 자매가 사는 오두막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구덩이 속 시체더미에서 3일 간 숨어있다 나와 보니 이미 철수했는지 세르비아 군인들이 한 사람도 없더군요. 시체를 뒤지다 작은 호미를 찾아서 그걸로 구덩이를 타고 올라왔어요. 오랜 시간 시체 사이에 있었던 탓에 구덩이를 나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자매 중 동생만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찾아간 오두막에 가구랄 것이 별로 없어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같은 느낌에 스산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중년 여성은 빠져나온 날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내내 어두운 표정을 떨치지 못했다.
“마을로 다시 돌아갔나요?”
“예. 멍청한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린 그 때 겨우 10대 초반이었고 마을 외에 달리 아는 곳이 없었어요. 게다가 구덩이를 나오느라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쉴 곳이 간절하게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을로 돌아가는데 진입로에서 순찰을 돌던 군인들이 우릴 발견했어요.”
그녀가 이야기를 멈출 때마다 침묵 속에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멀리서도 총을 든 모습을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지쳐서 도망갈 수가 없었어요. 군인들이 다가오는데 살려달라는 말 밖에는 안 나오더군요. 그들의 군복을 봤더라면 색깔만으로도 세르비아 병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때는 총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말을 멈추면 당장이라도 그 총에 맞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군인들이 무전으로 어디론가 보고를 하는데, 아무 말도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세르비아 놈들이 더 오는구나. 겨우 살아남았는데 구덩이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구나. 온몸에 힘이 빠지고 눈물이 나는데 이상하게도 살려달란 말은 멈추질 않았죠.”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니 목이 타는 듯 그녀는 차를 계속 마셨다.
“그 때 언니가 갑자기 군인에게 달려들며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그 때 지그시 위를 쳐다보았다.
“모두 깜짝 놀랐죠. 총을 손으로 잡고는 자기에게 겨누면서 ‘우릴 욕보일 테면 차라리 여기서 죽여라’라고 소리 질렀어요. 총을 뺏긴 뒤에는 그 군인에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저주의 말을 쏟아 부었죠. 언니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던 수줍은 소녀였는데...”
목이 메는 듯 그녀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 언니는 그렇게 미쳐버렸어요. 그 뒤로 하루도 그 순간에서 벗어나질 못했죠.”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언니가 저를 위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죠.”
위를 다시 올려다보며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아마 그 시선이 향하는 공간에 그녀의 언니가 침묵 속에 상처 입은 정신을 끌어안고 있었을 것이다.
“언니는 항상 저를 아꼈어요. 그 때... 언니가 먼저 미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제가 대신 미쳐버렸을 거예요. 그걸 알았기에 먼저 미쳐버렸던 게 아닐까요.”
그 때의 기억이 난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고통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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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쯤, 뇌 도우미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 잘 버티고 있나? ]
분대장 션의 메시지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영원히 몽상에 잠겨있을 줄 알았던 더크가 제일 먼저 호들갑을 떨었다.
[ 션 병장님!! 우린 대체 언제 나가게 된답니까?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
[ 조금만 기다려봐. 조사 결과를 받았는데 딴 건 몰라도 바이러스는 아닌 모양이니까 내일 아침이면 퇴실 할 수 있을 거다 ]
더크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 역시 내내 3인용 관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 소리라도 지르고 싶던 참이었다.
[ 분대장님, 혹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까? ]
서류를 뒤적이는 듯 잠시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 음... 어디보자, 그 라틴계 병사 말이지... 이름은 에루비엘이고, 너희가 말한 대로 해머 조 소속 병사였어. 덩치가 좀 있다 했더니 왕년에 멕시코 카르텔에서 유명한 간부 였다고 하더군 ]
해머 조에 대한 소문이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 옮겨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숨졌어. 설사 살았었다고 해도 안 좋았을 거야. 충격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 모양이더군. 불쌍한 친구 ]
가르시아는 조용히 손으로 성호를 그었고, 더크는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은 뒤 군모를 눌러 얼굴을 덮었다. 나는 그 구덩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분대장님, 저희가 찾은 구덩이 있잖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혹시 들으신 바 없습니까? ]
잠시 침묵이 있은 후, 션은 차분한 어투로 메시지를 전했다.
[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대대장님의 지시를 받았다. 그 구덩이에 대한 내용은 이제 기밀이야. 상급부대에서 지금 조사에 들어갔고 병사 사기와 관련된 사항이라 정보차단에 들어갔다. 너희도 구덩이에 대해서 절대 발설해서는 안 돼 ]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목격자에게 함구령이라니!
[ 아 그리고, ]
여기 병사들은 대체 왜 이리 덧붙이는 말이 많은 거야!!
[ 모함(母艦)에 있는 동안 조사관들이 호출할거야. 그냥 간단한 질문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협조하도록 해 ]
션은 한결 밝아진 톤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 그럼 리바이어던에서 좋은 시간 보내자고. 내일 아침에 봅시다!! ]
더크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랄하네.”
노인의 전쟁만 읽어 봤는데.. CDF였나? 그것들은 우주로 진출한 인류인데 아예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CDF의 기술이 은하계에서 전쟁해도 아쉬울게 없을 정도로 발달했는데 지구의 기술은 그냥저냥 현대 수준이라니 뭔가 이상한데..
원작 소설에서는 CDF 측과 지구의 기술이 거의 단절된 것으로 나와있죠. 거의 기술 전수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 그럼에도 지구 기술이 너무 후져보이는 점은 있네요. 지구의 이야기가 주인공에게도 상당한 과거라는 점을 감안하고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늦은 답변 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