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일째입니다.
내일 오전에 한국으로 돌아가니
사실상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사실 오늘 계획은 그렇게 계획적이진 않습니다.
반쯤 즉흥적으로 세웠죠.
원래는 지브리 미술관에 가려고 했지만
여름방학이라 그런지
평일인데도 예약이 가득 차서 계획을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계획한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갈 생각은 없었는데
급행을 타니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간 곳은 바로 이곳!
사실 여기까지만 보고도
이곳이 어딘지 아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전철에 내려 개찰구를 나와 저 횡단보도 앞까지 말이죠.
바로 주인공 시즈쿠가 우연히 지하철에서 본 고양이 쫓아가다
횡단보도에서 고양이를 놓치는 장면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애니메이션인
'귀를 기울이면'의 배경지인 타마시의 사쿠라가오카입니다.
이른바, 성지순례입니다.
이곳은 그 배경 중 하나인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역과 횡단보도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왔습니다.
그래서 횡단보도 맞은 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우선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실 9년 전 이곳을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하필 날씨가 흐린 바람에
사진이 모두 우중충하게 찍혔습니다.
그게 아쉬워서 맑은 풍경을 찍고자 왔는데 또 흐리네요.
일기예보에서는 오전에 맑고
오후에 흐리다고 해서 빨리 왔는데 말이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전에 흐리고 점심부터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우선 근처에 있는 타마강으로 갔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잠깐이지만 타마강이 등장합니다.
강변은 꽤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할 거 같이 생겼습니다.
사실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냈던 건
맑은 하늘을 기다린 것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이 팜플렛 때문이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성지순례 도장을 위한 팜플렛입니다.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총 3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팜플렛을 나눠주는 쇼핑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쇼핑몰이 10시에 문을 엽니다.
그래서 10시까지 기다리느라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팜플렛도 얻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성지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나오는 패밀리마트 편의점입니다.
이곳에서 2번째 도장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
시즈쿠가 고양이를 놓치고 돌아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별 볼일 없는 편의점이
2번째 도장을 찍는 곳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얼핏 찾아본 내용으로는 패밀리마트가
'귀를 기울이면'에서 등장한 패밀리마트라곤 하는데
진위 여부는 확인이 안 됐습니다.
시즈쿠가 건넜던 다리입니다.
그 아래에 있는 오쿠리강입니다.
이걸 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시즈쿠가 걸었던 강둑길... 로 알고 있었는데...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멀리 작은 산과 송전탑
그리고 다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걸어보니
딱 거기에 맞는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이야 말 시즈쿠가 걸었던 강둑길로 생각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벚꽃 동산, 사쿠라가오카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시즈쿠가 걸었던 언덕입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이곳에 인도가 있지만
실제로는 도로입니다.
그리고 오쿠리강도 보여주는데
지금은 건물 때문에 강둑길만 살짝 보입니다.
중간에 작은 공원... 보다는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마을 전경을 바라보기 좋은 곳 중 한 곳입니다.
이곳이 도서관이 있는 자리인데 후보가 2군데 입니다.
원래 아래 사진으로 알고 있었는데
위 사진이라고 하는 것도 봐서 2군데로 올렸습니다.
이곳은 시즈쿠가 하교길에
골동품 가게에 가려고 올라갔던 계단입니다.
맨홀에 그려져 있는
'귀를 기울이면'과 '꼬마 너구리 라스칼'
라스칼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는데
전혀 상관이 없더라구요.
미국 작가가 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럼 왜 그러져 있는거지???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작품은 무려 미야자키 하야오와 토미노 요시유키가
가장 많이 협업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둘이 같이 일을 한 적은 많이 있지만
미야자키옹이 토미노옹의 연출을 그대로 따라준 건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이 계단과 급커브 도로는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2번이나 등장한 곳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보다 훨씬 경사가 급하고
나무가 주변 풍경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배경은 나무가 무성했고 극적인 경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애니메이션 구도로
사진을 찍기가 진짜 쉽지 않았죠.
어떻게든 찍어 파노라마처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 계단 바로 옆에 신사가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숲 속에 있는 운치 있는 신사로 나오지만
실상은 마을 안에 있는 작은 신사였습니다.
솔직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작은 신사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한 신사라도
의미가 생기면 특별해지는 법이니까요.
여기까지 둘러보는데 한 30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생각보다 주요 배경이 거의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건 시즈쿠가 내려가면서 잠깐 등장한 곳인데
진짜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걸 넘어 완전 똑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배경들은 모두 수정과 각색이 들어갔는데
이건 짧게 등장한 거라 그런지 그냥 그대로 그렸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로타리에 왔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아담한 나무 한 그루만 있었는데
실제로는 크고 무성한 약간 정글같은 느낌이 드는 로타리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팜플렛의 마지막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곳입니다.
다만, 이때 기온이 너무 높아 도장을 찍으며 잉크가 번져나가
깔끔하게 찍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시즈쿠가 고양이를 따라 올라온
언덕 위 마을로 생각됩니다.
시즈쿠가 그곳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그 외에도 시즈쿠가 홀로 걸을 때나
골동품 가게에서 본 풍경 모두 이 풍경을
배경으로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나름 시골도시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28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죠.
이곳이 나름 뉴타운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지금은 완전 올드타운처럼 느껴졌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이 점이 늘 궁금했습니다.
처음부터 논밭 따윈 없는 도시였는지
아니면 시대가 변해 논밭에 주택이 들어섰는지 말이죠.
그래서 일본 사이트까지 뒤지며
옛날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해당 사진이 있는 홈페이지 글에는
1996~1997년 사이에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귀를 기울이면'이 개봉하고
길어야 2년 정도 밖에 안 되었을 때입니다.
이때 확실히 건물보다 논밭이나 공터가
더 많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귀를 기울이면'에서 등장했던
시골도시같은 풍경은 다시 배경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 보여집니다.
아쉽게도 저 사진 구도로 찍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막혀 있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저런 철망이 없어서
언덕으로 갈 수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아쉬운 건
언덕 중간에 저렇게 나무들이 우거진 부분 때문에
풍경이 반토막났습니다.
그런데 저 우거진 곳은 옛날에도 있었죠.
다만, 지금보다 그렇게 우거지진 않았고요.
마을 풍경이 보이는 곳에서 조금 이동하면
왠 숲길 같은 곳이 보였습니다.
뭔가 촉이 왔습니다
그래서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 보기로 했죠.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시즈쿠가 고양이를 따라
비포장된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바로 이곳이 그 길 같았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다른 사이트에서도 이곳을
그 장면에 등장한 곳으로 소개하고 있더라구요.
이런 건 전혀 생각지도 못 했는데
우연히 찾게 되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밖의 사쿠라가오카 마을 풍경입니다.
이건 제가 지나갔던 경로를 대강 나타낸 지도입니다.
파란색 동그라미가 사진을 찍었던 곳입니다.
이렇게 '귀를 기울이면' 성지순례를 끝냈습니다.
이전에 흐린 날에 사진을 찍은 게 아쉬운 점도 있었고
마을 자체도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한 번 더 오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다만, 너무 덥고 조금이라도 해가 비춘 사진을 찍고 싶어서
같은 곳을 2번이나 돌다 보니 꽤 지쳤습니다.
이곳 말고도 시즈쿠가 살았던 아파트,
골동품 가게 모티브가 된 찻집,
도서관의 모티브가 된 관공서 등이 있었지만
여기까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오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귀를 기울이면' 배경이 여름에서 가을이라 그 계절에 맞춰 왔지만
실제로 이 언덕의 명칭은 사쿠라가오카, 즉 벚꽃 동산입니다.
봄에 오면 언덕 전체에 벚꽃이 피는데
그 풍경을 한 번 더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지쳐서 그냥 눈에 보이는 가까운 라멘가게로 갔습니다.
맛은 대강 고른 것 치곤 괜찮았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사실, 흐린 풍경이 아닌 맑은 풍경을 찍고 싶어서 왔는데
완전히 맑아진 게 아니라 좀 아쉬운 성지순례였습니다.
더 아쉬운 건, '귀를 기울이면'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가
젊은 날 요절한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귀를 기울이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애니메이션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후임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됩니다.
나이차가 후계라고 불리기엔 9살 밖에 나지 않았으니까.
특히, 작화감독 출신이라 그런지
인물이나 배경 표현이 지금 봐도 대단하다 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조차
자신이 그릴 수 없는 걸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극찬할 정도로 말이죠.
이런 실력을 인정 받아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에게 지브리를 맡기려고 했었죠.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격상 간섭은 했겠지만요.
어쨌든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가 아니라
콘도 요시후미의 지브리가 탄생했을 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가 감독한 작품이 '귀를 기울이면'이 유일하긴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작품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콘도 요시후미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바로 이러한 이어짐입니다.
다음 후계자가 누가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나 콘도 요시후미의 색채 대신
자신만의 색채를 지브리 스타일로 뽑낼 수 있을 테니까요.
바로 콘도 요시후미가 그 선례를 만들었으니까요.
물론 이건 100% 제 생각입니다.
지브리가 결국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NTV에 합병된 게 아쉬워서 글을 남겨봅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지금도 가끔씩 꺼내 보는 작품입니다. 넷플릭스에도 있어서 이제 손쉽게 볼 수 있어서 좋아졌네요.
저도 가끔식 보는데 어릴 때 봤을 때와 또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와 보자마자 그 풍경들이 떠오르네요
처음 갔을 때는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는데도 풍경만 보고 '여기가 혹시'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했었죠
하야오 외 감독들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데 영화 속에서도 마을이 참 감성있고 예뻤는데 실제로도 참 예쁘네요. 마을 사진 보고 있으니까 걷고 싶게 만들어요.
마을이 아담하고 깔끔하고 굉장히 일본스러워서 성지 순례가 아니라도 한 번 더 오고 싶었던 곳이었죠. 다음에는 봄에 와서 마을 이름답게 벚꽃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어요.
한여름 도쿄 돌아다니면 죽음인데 대대한 애정이시네요
나름 체력에 자신이 있는데 진짜 1시간 이상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로 더웠었죠. 그것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물이랑 커피를 제일 많이 마신 거 같아요.
1부부터 5부까지 재밌게 봤습니다 올해에 도쿄를 가려했는데...개인 사정으로 못 가게 되어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멋진 사진과 이야기로 대리 만족이라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도쿄 여행 마무리인 6부도 올렸으니 재미있게 봐주세요~~~
여름은 무서워서 못가는 도쿄인데 사진 잘봤습니다. 덥고 습해서 힘드셨을텐데 대단하세요. 혹시 숙소가 신주쿠 카부키쵸 도요코인 였나요? 창문 방음이 안되서 저기 야구공 치는 소리에 잠을 못자서 원망스러웠거든요 ㅋㅋㅋ 11월인데도 도쿄는 참 덥더군요.
맞아요. 정확합니다. 가부키쵸에 있는 도요코인입니다. 그런데 한여름이라 그런지 배팅하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사실 배팅장인 것도 지금 댓글 보고 알았어요.
간만에 귀에 "콘크리트 로드~ 코노미치~ " 하고 들리는 기분이네요 ㅎㅎ
저도 그 노래 좋아하죠^^
계단 사진을 보니까 확실히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요절한 콘도 요시후미가 안타깝긴 하지만 설령 그가 살아 있었어도 지브리는 미야자키의 것이었을 겝니다. 예전에는 저도 후계자가 없어서 저러나 싶었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생각이 바꼈어요. 저 양반은 자신의 예술혼이 식지 않는한 지브리의 터줏대감 자리를 결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귀를 기울이면 작업할 때도 감독이 콘도 요시후미인데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엄청 간섭했으니까요. 그래도 중간에 누군가 한 명이 있어 중재하는 것과 직접 하야오의 간섭을 받는 것과는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작은 변화가 현재 지브리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더라구요.
[귀를 기울이면]은 제 인생 애니메이션이여서 지금도 종종 다시 보곤 합니다. 일본 살던 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저도 다녀왔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보니 좋네요.
집근처라니 좋으셨겠어요~~~ 저도 집근처였다면 봄여름가을겨울 풍경을 모두 사진에 담고 싶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