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구한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2-4

[악어눈물]

[에필로그] 우리의 힘으로 조선 왕조를 무너뜨리지 못했으므로

2-4

조선의 멸망에 '민비'가 큰 역할을 했음은 더 말하면 입이 아픈 일이지만 '고종'이 조금이라도 왕으로서의 자질이 있는 놈이였다면 '민비'가 그토록 권세를 휘두르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종'은 잔정이 많고 맺고 끊음이 없는 아낙네와 같은 성품의 인물이었습니다. 귀가 얇아 한번 결정한 것도 '민비'가 베개맡에서 속닥이면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민비'가 죽은 후에도 항상 못잊어하고 그리워하며 징징 울곤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은 지 5일 만에 '엄상궁'을 끌어들일만큼 엄마 없이 견딜 수 없는 마마보이였습니다. '엄비(엄상궁)'는 이미 국운이 기울고 니혼의 세력이 강하여 '민비'만큼 국정을 전단할 수는 없었지만 영친왕 '이 은'을 낳은 것을 빌미로 친정 식구들을 정권에 끌어들이고 이미 거의 왕권을 물려받기로 결정 되어 있던 의친왕 '이 강'을 내치고 '고종'과 이간 시키는등 '민비' 못지않은 수완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고종'이 기꺼이 여인들의 노리개가 되기를 자청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민비'도 탐욕스럽기 한이 없었지만 아래의 글에서 보시듯 '민비'가 죽은 후에도 '고종'의 탐욕과 무절제는 도를 넘어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한낱 조그만 회사의 사장도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자기가 받아갈 이윤보다는 먹여 살려야 하는 사원들, 회사의 앞날,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고종'은 조선이라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회사를 물려받았는데 바야흐로 세계는 제국식민지(무한경쟁) 시대로서 어느 회사와 M&A될지 알 수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부실한 회사를 물려받았어도 밤낮없이 회사의 장래를 걱정하고 직원들을 독려하며 앞날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경영자의 몫입니다. '고종'은 그나마 남아있던 조선의 자본을 곶감 빼먹듯 모두 빼먹고 회사를 넘겼고 모든 책임은 보좌를 잘못한 간부들에게 뒤집어 씌우니 어떤 간부는 회사의 빚보증을 잘못서 알거지가 되고 어떤 간부는 회사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알아 자살하기도 하고 어떤 간부는 그 판국에도 자신의 몫을 챙겨 한 밑천 잡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과거를 팔고 관직을 팔고 열국에 온갖 이권을 팔아 넘기다가 더 이상 팔아 넘길 것이 없자 나라를 팔아 넘겼습니다. 더욱이 무책임한 것은 최고 책임자로서 아랫사람의 불충을 원망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놈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려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해야 하겠죠. 경복궁의 호위대가 제 목숨이나 보존하려고 달아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씨 왕조는 나라를 팔아 왕가의 안전과 안락을 샀습니다. 그들은 팔아먹은 나라를 되찾으면 왕조가 계속되리라고 믿은 어리석고 뻔뻔스런 인간들이었습니다. 순종의 후비 '윤비'는 해방이 되고 사람들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자 백성들이 대한제국 만세가 아니라,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씨 왕조는 이미 사망했어야 마땅한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도 질긴 목숨을 유지했으니 한일합방을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적절한 시기에 조선 왕조를 무너뜨리지 못했으므로 외세가 그 왕조를 이용하고 꼭두각시로 만들어 나라를 접수했습니다. 지금도 조선의 질긴 목숨이 연장되고 있으니 바로 <조선인민공화국>입니다. 이 썩을 놈의 나라이름까지 닮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씨의 조선을 접수할 세력은 그 나라 안이 아닌, 나라밖의 힘이 개입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랫글은 '황 현(1855-1910)'의『매천야록』에서 옮겼습니다

을미왜변

그무렵 민비는 권세가 조금씩 커지자 매일밤 궁중에서 놀이를 벌이고 가곡을 들었다. 니혼인 소촌실(小村室)이란 놈에게는 영리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왕후는 이 여자를 총애하여 늘 불러서 만났다. '미우라'는 거느리고 있는 니혼인으로 하여금 광대들과 뒤섞여 놀이를 구경하도록 하면서 몰래 왕후의 초상 수십 장을 그리도록 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기일을 정해 거사하는 데, 남의 나라 국모를 시해했다는 죄가 두려워 드디어 대원군과 내통하여 그날 밤 공덕리로 나아가 대원군을 가마에 실어 앞세우고 , 여러 니혼 낭인들이 뒤따랐다. 각기 왕후의 초상화를 한 장씩 가지고 있었으며 '소촌실'의 딸은 그들을 안내하였다. 곤녕전에 이르자 대궐 안은 횃불이 환히 비쳐 개미도 헤아릴 정도였다. '이 경직'을 만나자 왕후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이 경직'이 모른다고 하며 소매를 들어 저들을 막자 '이 경직'의 좌우 팔뚝이 모두 떨어져 나가 죽었다.

왕후는 옷장 속으로 숨었으나 적들은 머리를 휘어잡아 끌어내었고 '소촌실'의 딸이 확인해 주었다. 왕후는 수차 목숨을 구걸했으나 적의 칼날이 마구 내리쳤다. 주검을 검은 천으로 싸서 석유를 끼얹고 녹산의 숲속에서 불태우고는 몇조각 잔해를 수습해 즉시 태운 자리에다 파묻었다.

왕후는 기민하고 권모술수가 많았는데 정치에 간여한 이십년 동안 점차 망국에 이르게 하더니 마침내는 천고에 없던 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민비' 폐비 조서

8월 22일, 왕후 민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그 조서의 대략은 이렇다.

"짐이 나라를 다스린지 32년 동안 덕화가 흡족하지 못해, '민비'는 친족을 끌어들여 좌우에 배치하고 나의 총명을 가린채 사람들을 해치고 정치을 어지럽게 했으며 관직을 매매하기까지 했다. 그 탐욕은 하늘에 넘쳐 사방에서 도적이 일어났고 종묘사직이 위태롭게 되니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짐이 그녀의 극악함을 알고 있었으나 처벌하지 못한 것은 짐이 현명하지 못해서만이 아니고 그 족당을 꺼려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므로 짐은 지난 해 12월에 태묘에 고하여 종친과 외친은 정사에 간여하지 못하게 했으니 혹 뉘우치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러나 민씨는 구악을 뉘우치지 않고 몰래 소인배들을 끌어들여 짐의 동정을 살폈으며 무릇 짐이 접견하는 대신을 모두 막아 저지하였고 짐의 명령을 사칭해 병력을 해산하여 변란을 격동시키기도 하였다. 사변이 발생하는데 이르자 홀로 짐을 피하여 탈출하여 임오년의 지난 일을 답습했으며 찾을 때도 끝내 나타나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왕비의 신분과 덕에 맞지 않을 뿐이겠는가. 그 죄악은 실로 지대하니 종묘를 이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삼가 우리 왕가의 고사에 의거해 폐하여 서인으로 만든다"

'미우라'는 궁정을 침범한 사건의 수괴가 되고보니 해외 열강이 이를 구실로 삼아 죄를 성토할 것이 두려워 임금을 협박해 왕비를 폐하는 조서를 내리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또 '민비'가 난을 피해 밖으로 달아났다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냈다. 민간에서는 임오년 때와 같이 충주에 가있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혹은 진주의 옥천암에 있다는 말도 있었다.

조서는 비록 임금의 뜻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무렵 사람들은 그야말로 실록이라고 녀겼이다.

'엄비'의 입궁

전 상궁 엄씨를 불러 입궁토록했다. '민비'가 있을 때는 임금이 꺼려서 감히 만나지 못하였다. 10년 전 우연히 엄씨를 가까이 한 일이 있었는데 '민비'가 크게 화를 내며 죽이려고 하였다. 임금이 살려주기를 간청하여 밖으로 쫓아냈던 것이다. 이 때에 이르러 불러 들였는데 변란이 있은 지 불과 5일밖에 지나지 않아서였다. 임금이 쓸개 빠진 짓을 하여 서울 사람들이 모두 한탄하였었다. 엄씨는 얼굴이 민씨와 닮았고 권모와 지략도 그와 같았으므로 입궁하고 나서 크게 총애를 받아 국정에 간여하고 뇌물을 받아들여 점점 '민비'가 있을 때와 같아졌다.

임금의 왕후 추념

임금은 왕후의 죽음을 애통해 마지않아 말만 나와도 문득 줄줄 눈물을 흘렸으며, 경대와 대야등속만 보아도 탄식하면서 어루만지며 차마 놓질 못하였다. 한 환관이 자기와 절친한 한 사람의 성명을 써서 왕후의 경대 속에 접어서 넣어 두었다. 임금이 그것을 발견하고 돌아보며 "이 웬 사람이며 무슨 연고로 여기에 적혀 있는가?" 라고 물었다. 그 환관은 울먹이며 대답하기를, "마마께서 살아 계실 때 이 늙은 놈에게 수령 재목을 물으시기에 제가 감히 이 사람을 아뢰었던 것입니다. 마마께서 손수 써 보관하신 모양인데 변고로 말미암아 결국 기용되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슬프도다." 하고는 곧 그 사람을 군수로 임명하였다. 왕후를 추념하는 간절함이 이와 같았다. 매월 삭망이면 반드시 친히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니 사람들은 공민왕이 원나라 공주를 위해 슬퍼한 일에 견주곤 하였다.

매관직

이 때에 이르러 매관의 풍조가 갑오년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심해졌기에 아무리 종친이나 외척 혹은 임금과 가까운 자라도 감히 한자리도 은택으로 구할 수 없었다. 관찰사 자리는 10만냥 내지 20만냥이었고 일등 수령자리는 적어도 5만냥 이하를 내려가지 않았다. 부임하면 빚을 갚을 도리가 없어 다투어 공전을 낚아채서 상환하였다. 교활한 놈은 사적으로 바치는 것을 더욱 많이 하여 좋은 자리로 승진하기도 했다. 아전들 또한 이를 보고 배워 공금을 끌어다가 논밭과 재산을 불리기도 하고 혹은 관직과 작위를 얻고자 하였다.

이때에 조관이나 아전들이 가로채는 것은 모두 공금이므로 국고는 저절로 새어나가고 텅비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임금은 국고는 공물(公物)이라고 녀겨 차거나 줄어드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으며 벼슬자리를 판 돈은 자기 재산으로 삼아 오직 손해 볼까 걱정하여 조삼모사의 속임을 당하게 되는 줄을 알지 못했다.

'서 상훈'은 '민 영환'의 외숙이다. '민 영환'은 임금에게 군수 자리를 하나 달라고 오래 전에 아뢰었는데, 임금이 "너의 외숙이 아직까지 고을살이 하나 하지 못했단 말이냐?" 라고 하였다. 얼마 있다가 다시 그 일을 아뢰자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잊을 뻔 하였다. 곧바로 임명하도록 하겠다." 하고는 이에 광양 군수에 임명했다. '민 영환'은 집에 돌아가 기쁜 얼굴로 "오늘 임금이 외숙에게 군수 자리를 허락하셨으니 천은이 감격스럽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실소하며 "네가 이처럼 어리석고도 척리(戚里)란 말이냐? 임금이 한자리라도 은택으로 제수한 적이 있었더냐? 어찌하여 너에게만 특별히 은택이 미친단 말이냐? 내가 이미 5만냥을 바쳤단다."라고 하였다.

군수자리 팔기

군수의 임기를 개정하여 16개월로 기한을 삼았다. 이 때 군수를 임명함에 있어 돈으로 비율을 정했는데, 임금은 자주팔면 돈이 많이 생긴다고 녀겨 1년도 못되어 금방 교체시켰다. 돈을 바치고 임명을 받은 자들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아서 부임하자마자 즉시 수탈을 일삼았으니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교체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친 돈이 워낙 많아 그 본전을 끝내 채울 수 없었다. 임금은 또한 교체해야 할 놈들을 살펴 돈푼깨나 있으면 다른 군으로 옮겨주고 옮겨준 값을 징수했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5개 군이나 옮겨간 놈도 있었으며 한 군에서 1년에 5명의 군수를 맞이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까닭에 부자로서 군수가 된 자가 몇 년 사이에 파산하기도 하여 군수 자리를 사려고 하는 자가 점차로 드물어졌다. 임금은 이 점을 깨닫고 마침내 기한을 16개월로 정한 것이다.

러시아 공사가 임금의 돈을 훔쳐 감 *이것은 훗날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니혼인은 우리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 '파우로후'를 보호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러시아 주재 공사 '율야신태랑'?을 러시아의 수도에서 덕국(도이치란트)의 수도로 옮기도록 하였다. 임금은 러시아 공관을 행궁처럼 녀겨 지폐 10여 포대를 보관해 두고는 급박한 경우에 대비하려고 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파우로후'가 그것을 훔쳐 가버렸으니 대개 수백만원이나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을미사변 후의 '고종' <맥켄지 기자>

계단을 몇 발자국 올라가 낭하를 건너 작은 방으로 들어가 다시 왼편으로 돌아갔다. 방문을 여니 한식으로 볼품없이 꾸며진 더 작은 방이 그 안에 있었다. 방안에는 안짱다리의 왕이 창백한 얼굴로 초라하게 서있었으며 그 옆에는 명색이 세자라는 그의 아들이 무기력하게 서있었다. 왕은 체구가 작고 야위었으며 혈색이 없어 보였다. 최근 며칠 동안에 있었던 일들은 그를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으며, 신경쇠약이 된 그의 모습은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그는 통역을 맡고 있는 '존스'를 향해 우리와 악수를 해도 좋은 지를 물었다. 그는 매우 반갑게 우리와 악수한 다음, 그의 옆에서 이를 내놓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저능아인 그의 아들에게 방문객들의 손을 넘겨 주었다.

이때 러시아 공사가 크고 두툼한 통을 왕에게 전해 주면서 과일과 음식이 약간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마다 독살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왕은 그 통을 받았다. 열쇠도 전달 되었다. 새로이 임명된 군부대신의 우측에 서있던 왕은 저 믿음직한 '다이' 장군이 자기의 곁을 떠나지 않도록 해달라는 몸짓을 하면서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베베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도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처럼 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슬픈 눈길로 무엇인가를 애원하고 있었다.

'알렌'의 탄식

유엣에이 공사 안련(알렌)이 체임되어 귀국하고 '모건'이 신임으로 왔다. '알렌'은 우리나라에 10여년간 머물렀는데, 귀국 즈음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조선 백성이 가련합니다. 내가 일찍이 9만리를 돌아다녀 보고 위 아래로 4천년의 역사를 보았지만 조선 황제?와 같은 인간은 또한 처음 봤습니다!" 하였다.

옮긴이: 악어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