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꼭 가야 돼?」
어린 소년이 불만과 서운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늘씬한 체격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죄책감이 가득 실린 눈빛으로 자신의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엄마도 우리 아들이랑 같이 있고 싶지만.......」
여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일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너무 비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차피 또 일 때문이겠지. 엄마는 늘 그래. 다음 주엔 내 생일인데.」
소년의 동그란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아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야만 했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혀 아들과 눈높이를 맞춰 힘을 북돋아주듯 그의 양쪽 어깨에 양손을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들을 위로했다.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다음 주에 돌아올 거야. 그때 꼭 다함께 생일 축하하자, 알겠지?」
「정말이지, 엄마?」
어린 소년의 얼굴에 조금은 화색이 돋았다. 아직 10살도 안된 꼬맹이였지만 그의 기억대로라면 엄마는 일 핑계는 자주 댔지만 돌아오는 날 만큼은 정확히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엄마가 돌아오는 날은 꼭 지키는 거 알잖아?」
소년의 표정이 밝아지자 여자는 빙긋 웃으며 그를 끌어안고 일어섰다.
「알았어. 나 엄마 기다릴게.」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여자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추고 그를 살며시 내려주었다. 이젠 시간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세호야, 이모네 말 잘 듣고 있어야해. 알겠지?」
「응! 엄마도 어디 다치면 안 된다?」
여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하지. 갔다 올 게.」
「잘 다녀와, 엄마~」
소년은 밝은 표정으로 양팔을 흔들며 엄마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엄마가 다시 돌아올 그날을 위해.......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방 안에서 울려오는 알람 소리에 세호의 눈이 떠졌다. 세호의 눈앞에 펼쳐진 건 하얀색 천장이었다. 그제야 그는 방금까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은 17살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세호는 몸을 일으켜 세워 휴대전화의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작은 액자를 집어 들었다. 액자 속에는 파란색 캡 모자를 쓰고 하얀색 셔츠를 입은 여자, 그의 엄마가 태양처럼 눈부시게 웃는 얼굴로 7살짜리 꼬맹이였던 세호를 끌어안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호는 가슴에 손을 얹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책상에 놓인 빛바랜 별 모양 배지로 시선을 옮기며 씁쓸하게 말했다.
“갔다 올게.”
세호는 배지를 꼭 쥐고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