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라비안 미드데이
사막이다. 항상 그렇듯이 사막이란 이 일종의 시공간은 하늘위에서 땅밑까지의 온갖 것들이 사람이란 종자를 배척하기 위한 것 투성이다. 말하자면 원초적인 비 인간-친화적 환경이라 하시겠다. 으레 사람이 환경따라 변한다 하듯,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기어이 사람은 살지만, 썩 화목하게 살지는 못하는 것이 항상의 현실이다.
그럴만도 하다. 태양은 덥지, 먹을건 부족해, 가만 있어도 골아픈데 툭하면 싸움이니, 사막은 사람이 없어도 지옥이고, 있어서 더 지옥이다.
그래도 난 이런 사막이 싫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몇몇 개같은 점만 빼면 여전히 사막이 좋다.
일단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인데다가, 잔잔히 파문이 이는 오아시스에 비치는 햇빛은... 정말이지 만인에게 허락된 보석의 광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건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다. 진짜로 아름답다.
그리고 또--
독백이 끊겼다.
사막을 걸어가며 홀로 말하던 그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낡고 큰 망토를 온 몸에 뒤집어 써서 얼굴을 가리고, 모습을 가려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가 보아도 그는 정체 모를 불청객에 불과해보였다. 그렇기에 목적지- 동부 사막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모스크인 바드마 모스크에 당도한 지금, 도시의 관문을 지키는 위병들도 그저 이방인 하나가 멀뚱히 서 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이었다.
다만 그가 등에 맨 봇짐이 제법 크기가 있어보이는 탓에, 한 위병은 그가 봇짐장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도시의 입구를 흘깃 보고, 하늘을 보았다.
아직 해가 길었다. 그것은 좋을 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모스크 안에서 오전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는 경비병력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이 성지 슐람을 향해 기도를 하기 때문에 기도가 끝나고 정오가 되기 까지는 관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알기에 근처에서 기다렸다. 새벽에 일어나서 남은 거리를 계산할 때에는 분명 오전 기도가 끝난 직후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바드마에 도착한 것을 생각한 그는 -자신이 굳이 의식하지는 않았으나- 의외로 흥분했고, 발을 서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좀 차분해지자. 흥분해서도, 서둘러서도 득 될 게 없어. 어차피 오늘은, 15년 전 부터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고대하던 그 날은 오고야 말았으니. 지금 좀 기다린다고 바뀔 건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끝난다. 그러니까, 조금만 차분히, 냉정하게.
기다리는거야...'
그는 곧 자신이 진정했을을 느꼈다. 좋은 느낌이었다. 그가 진정함에 따라 이성은 더할 나위 없이 냉철해져갔지만, 동시에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양 다리에서, 등허리에서 묘한 열기와 함께 힘이 올라온다. 이른바 만전의 상태인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는 일어서 아까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짧아졌음을 느꼈다.
정오다.
위병들이 교대를 하고 관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그 몸을 비튼다.
그는 관문으로 다가가 위병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소인은 북서쪽에 있는 라마라 오아시스에서 물건을 팔러 왔습니다만, 들어가도 될깝쇼?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비굴해보이려는 듯 허리를 앞으로 살짝 굽혔다.
"무엇을 팔지? 등 뒤의 짐에 뭐가 들었냐?"
위병이 말했다.
"이것들은 제가 돌산에서 캐낸 보석들로 만든 세공품입니다, 그닥 값나가진 않는 싸구려들이니
나리들께서 보셔도 눈만 버리실 겁니다"
그는 다시 한번 굽신 거리는 투로 말했다. 이번에는 심지어 댁들이 뺏어봤자 별로 돈도 안되니까 삥뜯지 말아달라는 전형적인 상인의 변명까지 곁들여가면서.
"판단은 우리가 한다. 짐을 풀어라!"
위병이 말하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허리춤을 뒤적여 성인 주먹 하나 만한 크키의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뒤에 있는 것들은 미리 예약받은 것들도 있고 해서
저것들은 지인짜 안되구요... 대신이라고는 뭐하지만 이것들을 드리면 안될까요? 요것들은 제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가 친지들한테 선물하는 것들인데.... 함 봐주셔요..."
그는 주머니를 펼쳐 위병들에게 안에 든 것을 보였다.
안에는 마치 그가 아까 독백한 오아시스에 비친 태양빛과도 같은 광채를 내뿜는 다이아몬드가 어림잡아 수십 개는 있었다.
"어떻게.... 이걸로 괜찮을까...요?!"
그는 떠보듯 말했다. 그러나 위병들은 다이아몬드의 광채에 정신이 팔려 더 이상 눈 앞의 사내에 대한 건 안중에 두기 귀찮을 뿐이었다.
"어어 그래 들어가"
"아이구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쇼!!"
그는 위병들을 통과해 도시로 들어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좋은 하루 되셔야지. 네놈들이 살아서 마주하는 마지막날 일텐데"
들어서는 그는 아까의 비굴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등을 꼿꼿이 편 채 두 눈에서는 일종의 섬뜩한 의지를 띄우고 있었다.
관문을 지나 도시에 들어간 그는 곧장 직진하여 도시 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 앞에- 정확히는 지붕이 크기의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도달했다. 그곳은 바드마의 모스크, 중앙 신전이었다.
신전은 끝은 뾰족하고 몸통은 넓은 구와 같은 녹색 지붕이 태양을 가릴 듯 말 듯이 올려다보는 하늘을 덮고 있었으며, 원통형의 긴 첨탑과 사각형으로 된 신전 본관의 적절한 혼합은 모스크의 위엄과 규모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하는 듯 했다.
그는 모스크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위용도 오늘까지다'
그는 어금니를 까득 하고 한번 악물고,
신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신전 1층 중앙홀로 들어갔다.
중앙홀은 2층까지 뻥 뚫린 구조로 2층에서는 난간으로 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가 들어갔을 때 중앙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 두어명이 앉아서 잡담을 떨고 있었고, 구석에서 청소하는 노인 한 명 정도 뿐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중앙홀은 기도실로 들어가는 가장 크고 가까운 곳이었다. 그렇기에 중앙홀은 기도 시간 전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인데, 그가 기도가 끝나고 관문이 개방되자마자 도시에 들어왔음에도
중앙홀에는 어색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중앙홀의 이질감을 느끼자마자 그는 이것이 함정임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중앙홀의 모든 문이 닫히고
10시방향에서 청소를 하던 노인이, 4시 방향에서 잡담을 떨던 두 청년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노인은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그에게 단검을 겨눴고, 두 청년은 허리 뒤편에서 곡도를 꺼내 돌진했다.
그는 두 난데없는 기습에 전혀 동요치 않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는 곧바로 등에 맨 짐을 던져 두 청년을 맞추고,
망토를 펼쳐 가리고 있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단검을 내리찍으려는 늙은 암살자를 향해 도약했다.
써걱!!
공중에서 아래로 칼을 향하던 노인은 살아서 땅을 딛지 못했다.
그는 도약과 동시에 허리춤에 감추고 있던 샴쉬르를 뽑아 늙은 자객을 두동강내었다. 망토를 벗고 드러낸 그의 모습은, 낡은 망토와는 대비되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의복은 정성스레 짜여진 튼튼한 의복이었고, 머리에 쓴 터번은 관문에서 위병들에게 뇌물로 준 다이아와는 다른 붉은 광채를 띄는 루비로 중심이 고정되어있었다. 그는 노인을 베고 곧바로 두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젊은 기습자들은 노인과는 다르게 둘이었고 호흡이 상당히 잘맞았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대각선방향으로 틀어 두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습을 받았으니 기습으로 돌려주마. 하고 생각하며 내지른 공격이었으나, 두 사내는 곡도를 겹쳐 그의 강격을 버티고 오히려 그를 밀어내는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생각보단 좀 센데, 하나씩 처리하면 귀찮겠고...일격에 둘 다 처리한다!'
결론에 다다른 그는 다시금 두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사내는 다시금 몸을 겹쳐 합격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두 사내에게 거의 근접했을 때, 두 사내가 좌측 상단과 우측 중단에서 동시에 공격을 가했을 때, 그는 돌진하던 몸의 직선 궤도를 기계체조를 하듯 도약하여 포물선 궤도로 바꾸었다. 그리고 도약의 고점에서 두 사내의 머리 위에 도달했을 때, 그의 몸에서 짙은 음영을 띄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이 겹쳐져 나와 두 사내를 향해 차크람을 꺼내 던졌다.
휘리리릭!! 촤자자작--팍!!!
차크람이 궤도를 그리며 허공을 가르더니 두 사내를 세로로 두동강내었다.
그는 착지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함정이었다.
그가 1층에서 기습자들을 처치하던 그 짧은 시간동안
2층 난간에는 궁수들이 빼곡히 포진하고 있었다.
그는 궁수들을 보았다. 궁수들의 활끝은 하나같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분명히 정보가 샜다. 어디서 샌 건지는 몰라도 그가 오늘 바드마에 당도할 것이라는 정보가 이미 모스크에 전달된 것이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그러뜨리며 생각했다.
'야 이거 살짝 깔끔하게 좆됐는데'
'어떡하지? 전력으로 부딪혀볼까?'
'아냐 아직은 일러. 아직 '그 새끼' 얼굴은 보지도 못했어'
그가 이렇게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궁리하고 있을 때,
2층 난간의 북쪽 방향, 1층 계단과 연결된 난간에서 이질적인 발자국 소리가 울려왔다.
느긋하고, 하지만 힘있는, 보통 권력자가 가질 법한 그런 발걸음 소리였다.
그 발걸음 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그 새끼' 다!!
이런 발걸음은 그냥 생기는 습관이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일말의 노력도 없이 타인의 위에 선 채 약자를 짓밟는 감각이 일상이 된, 그런 거만에 찌든 개새끼들만이 이런 발걸음을 지닌다.
발걸음소리가 멈추고, 한 남자가 2층 북쪽 난간에 나타났다. 그 남자는 궁수들을 향해 오른손을 슬쩍 들어 손짓했다. 그 남자의 손짓에 궁수들이 자리를 비켰고, 그 자리에 그 남자가 섰다.
"이런이런이런, 이거 아쉬워서 어쩌나, 우리 지하드 형님? 날 죽이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아무도 모르게 잠입했을텐데, 이렇게 딱걸려버렸군 그래"
"아까 보니까 칼쓰는 실력이 상당하던데, 자기 기술까지 가질 정도로 검술의 카르마를 쌓아올린거야? 하하- 그럴 시간에 주술이나 연습해서 올것이지, 그 정도 실력으론 나 못죽여. 칼 좀 쓰는 장군들은 여기도 많거든"
"아가리 닥쳐, 핫산, 아 이거 본명 아니지?!
아가리 닥쳐 아미쉬. 누가 니 형제야?! 그리고, 뭐가 어찌 됐건간에 넌 오늘 내 손에 죽어 이새끼야."
그는 아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격양된 얼굴로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던 핫산이라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훗...형님은 역시 여전해. 아버지를 빼닮은 그 다혈질도 그렇고, 한 번 꼬투리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도 그렇고. 날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무례를 범하는 놈은 정말 오랜만이야."
"뭐, 형은 모르겠지만 한 모스크의 지배자로써 생활하는건 상당히 지치는 일이야. 매일매일이 힘들다보니 감각은 둔해지고, 만사에 무신경해지지."
"그럴 땐 기존에 없던 색다른 자극을 갈구하기 마련인데, 요즘엔 술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영 아니더라고."
이렇게 말하며 핫산은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인 채 지하드를 흘겨보았다.
"어느 정도냐면 형이 그렇게 죽고 못살던 그 계집애 거 누구야 이름이... 아 맞다 아마라! 옛날엔 걔 엉덩이 라인만 봐고 밤잠 설치고 그랬었는데 이젠 뭐 걔랑도 볼장 다보니까 재미 없더라고."
핫산의 입에서 아마라 라는 이름이 나오자 지하드의 관자놀이에 핏발이 서고, 어금니 안쪽에서 빠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 아무튼 내 말은 그렇게까지 무료하던 차에... 형님께서 이렇게 목숨바쳐 날 달래주러 와주셨다 이말이지. 그래서 난 괜찮아. 형님이 뭣도 모르고 내 옛날 이름으로 도발하려고 해도, 이제 날 재밌게 해줄 걸 생각하면 용서 가능해."
"그러니까 형님, 어디 한 번.....
"아 됐고, 개소리는 다 했냐?"
지하드는 핫산의 말을 끊으며 핫산이 서있는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이젠 네 개소리 들어줄 인내심이 바닥났다. 짧게 한마디만 하고 죽여줄테니까 잘들어라."
지하드는 숨을 깊게 내쉬고 마치 하늘과 땅의 모든 것에 선언하여 동의를 구하듯 소리쳤다.
"나, 지하드 페르샤는 나의 아버지, 바드마의 위대한 술탄 무스타파 페르샤의 정통한 후계자로써 오늘 이 모스크를 탈환하러 왔다!!
아버지를 현혹시켜 몰락시키고 가문의 모든 것을 빼앗은 미친 마녀의 애새끼! 오늘 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잃어버린 내 인생을 네놈의 모가지로 보상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