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네다섯 시간 아르바이트하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만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지 벌써 언 5년이 다 되어간다.
자취방에는 늘 혼자있고, 설거지와 세탁기를 돌리는게 주중 한 번 있는 행사가 되었다.
딱히 이런 삶이 따분하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 삶이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느냐면, 그것 역시 아니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 뒷담화하기. 인터넷 유머 검색, 일본 애니메이션 보기, 온라인 게임하기.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라고 뭔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갈구하는 것이 느껴진다.
소설 속에서는 내가 갑작스럽게 죽으면 환상의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게되고, 일본 애니에서는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삶에 변화를 준다.
내 삶에 그런 일이 있을까?
누군가가 나를 변화시켜주는 것이 가능할까?
솔직히 나는 매우 게으르다.
억지로 누가 뭔가를 시키지 않으면, 나는 절대 그 뭔가를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소설이나, 애니에서의 주인공으로 살기 완전히 그른 인물이 바로 나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뉴스 기사에 댓글이나 다는 나.
마우스나 클릭하던 나.
돌연 어떤 생각이 하나 든다.
나는 주인공으로는 부적합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내가 다른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음.
엑스트라 1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소한 생각이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계속 내 머릿속에 멤돈다.
평소처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공원을 통해 돌아오던 중.
냉냉한 공기가 흐르는 커플이 보인다. 지나가다 언뜻 들리는 두 사람의 대화는 분명 말다툼이다.
왜 싸우는 지,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 사이인지 모른다.
나는 그저 내가 엑스트라 1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에 사로 잡혔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커플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대뜸 여자에게 어깨 동무를 했다.
여자와 남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음, 뭐라고 말하는 게 엑스트라 다울까?
"아가씨, 얼굴 반반한데 오빠랑 데이트할래?"
딱인가?
여자는 순식간에 똥씹은 표정으로 날 위아래로 쳐다보며, 자기 어깨에 걸쳐진 내 팔을 쳐냈다.
이어서 남자친구가 내 멱살을 잡아챈다.
"뭐야, 이 미친 XX는?"
주먹이 날라온다.
아프다.
한 여섯 대 때리고 나자, 그제야 여자는 자기 애인을 말린다.
"그냥 가자. 응?"
"별 그지 같은 XX가!"
나한테 욕을 내뱉던 인간은 어느새 여자 친구 손을 꼭 잡고 길을 간다.
이 정도면 엑스트라 1의 자질은 충분한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이런 엑스트라 놀이에 푹 빠져버렸다.
어떤 날은 그저 평범한 손님 1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학교 동창 1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더 이상 엑스트라가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여러 사람을 보고,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 내 삶에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나 자신의 삶을 느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삶이 연애물이 되었다가, 스릴러가 되었다가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오늘도 다른 사람들을 또 다른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기위해 거리를 누빈다.
잘 봤습니다. 좀더 임팩트가 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
잘 봤습니다. 좀더 임팩트가 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