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알 아지프의 동력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
로렌스는 의료실로 향한다고 칼에게 말해두었다.
함선의 다른 구역들도 중요하지만
얼마동안 이 곳에 머무르는 동안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원래있던 함선보다
이 곳에서 응급조치를 취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준비해서 나쁠것은 없다.
칼 역시 그러한 점을 알고 있었기에
로렌스가 의료실로 향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알 아지프의 동력전달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로렌스는 의료실로 향하면서 같이 왔던 팀원에게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장비와 약들을
알 아지프쪽으로 옮기라고 명했다.
몇몇 소형 의료기재들은 사용할 수 있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는
최신 의료 기재가 나을것이다.
로렌스의 머릿속에선
알 아지프내의 의료기재를 사용하라는 소리가 울렸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괜히 의심의 여지를 줄 필요는 없다.
낡은 기재를 사용해서 생기는 의심은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원하는 바가 아닐것이다.
그렇기에 목소리가 원하는 낡은 기재가 아닌
자신의 생각인 최신 기재를 옮기라고 한 것이다.
로렌스는 동력이 들어와 조금씩 밝아지는 의료실에 들어서면서
목소리가 원하는 것이
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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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실에서 잠시 쉬고 있던 매튜는
칼이 항해 일지를 보냈다는 한수의 보고를 듣고
그 자료를 자신의 방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어차피 기록의 확인이니 어느 장소에서 하건
큰 문제는 안되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수가
디지털 항해일지를 매튜에게 건네주었다.
구형모델이라는 점만 빼고는 외형적으로
항해일지에 손상상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겉이 멀쩡하다고
속이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자세히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고.
항해일지는 알 아지프가 수송함으로
이용되기 시작된 뒤부터 작성되었다.
전함으로 이용될 당시의 항해일지도 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군사기밀의 자료가 민간에 전해질리는 없으니
없다해도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항해일지의 내용은 중반까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평범한 화물운송 내역과
함내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들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매튜의 흥미를 끌만한 일들은
중반이후부터 작성되어 있었다.
2~4달 정도의 주기로
배에 알수없는 이상상태가 발생한다던지,
그와 비슷한 시기마다
선원들 중에서 몇몇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난다고 되어있었다.
이상상태의 종류도 여러 종류여서
함선의 동력계 문제부터,
항로이탈, 추진저하, 개폐장치 이상등
여러 계통에서 발생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선원들의 이상증세는
단순한 발열과 컨디션저하로
거의 일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즉 배에 알수없는 일이 있을때마다
선원들중에서 마치 거기에 동조하듯이
일정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보통 배에 이상상태가 발생시
선원들중에서 이상증세를 보이는 일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얼마동안 기분이 불쾌하다는 정도인데,
알 아지프의 항해일지에 의하면
그것보다 조금 강도가 쎈 증세가
매번 확인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상증세를 보이는 선원들도 전부 제각각이었다.
한 선원이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 경우가
아직 안보이는 것이다.
이상증세를 보이는 선원은
비슷한 상황에서 또 이상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알 아지프의 항해기록에는
그런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흥미를 끄는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후반으로 갈 수록
중반에 서술된 내용이 역전되는 것이 보였다.
함선의 이상상태가
항로이탈과 출력저하로 통일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선원들의 이상증세는 여러 종류를 보여주고 있었다.
환각과 환시 증세가 보고되기도 하고,
우주멀미로 보이는 구토증세가 보고되기도 하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신경질을 부리는 증세가 보고되는가 하면,
우울증으로 보이는 증세가 보고되기도 하였다.
또한 중반과는 다르게
모든 선원들이 그런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당시 알 아지프의 선장은
함선의 이상상태를
전함이었을 당시의 후유증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수송함으로 개조한 직후에는
그런 문제가 보이지 않았지만
배가 노후됨에 따라 그런 문제가 들어났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선장도
선원들의 이상증세에 대해서는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것으로 보였다.
매튜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다.
특별한 의학적 이상징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원들이 이상증세를 호소하는것을
알 방법이 없는것이다.
기껏해야 선원들의 자질부족이나,
정신적 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생각해볼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선원들의 경력이
최고 10년이상인 인물들만 있다는 것으로 보아
자질부족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증세의 종유와 증세를 보이는 선원이 많았다.
일부 선원이 아닌 모든 선원에게서
이런 증세를 관찰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당시의 선장도 고민했을 것이
충분히 상상되었다.
표류전후로 생각되어지는
항해일지의 후반부는 아쉽게도
데이터가 손상되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라이언이 칼이 보내준것을 복원했는데도
이정도라면 더 이상의 복원은
전문센터에 의뢰해야 할 것이다.
매튜는 항해일지의 후반부가
손상되었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표류당시의 일지를 확인하면
거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연의 사고에
미리 방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데이터가 손상된 지금
어쩔수 없이 표류상태에서 오는 사고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처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디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래야 할 것이다.
매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구조함이 올 때까지 무사히 말이다.
항해일지 중반에 나와있는 이상증세에
왠지 모르게 신경이 가는 것은
무시하면서.
알 아지프의 밤.
밤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상으로 구분할 뿐이다.
어차피 밖에는 어둑컴컴한 우주만 있으니.
그런 알 아지프내에서는 하나의 불빛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칼의 팀원인 엔지니어가 순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대한지 1시간이 지난 지금 특별한 이상은 없어보였다.
이대로 30분만 지난다면
다음 순찰자와 무사히 교대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엔지니어는 천천히 알 아지프내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귀에 독특한 소리가 들렸다.
일정하면서도 낮은 소리를 내는 동력음 말고도
뭔가가 불규칙적으로 끼어드는 소리였다.
처음엔 잘못들었나했지만,
계속 그런 소리가 들리자
혹시나 하는 맘으로 엔진룸으로 향하였다.
낡은 함선이었기 때문에
엔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엔진룸으로 갈수록 그 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엔진룸으로간 그는 핵융합엔진부터 확인하였고
일단 눈으로 보기에는 엔진에는 이상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정밀기계에는 뭔가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검사패널을 조작하여 엔진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패널역시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이 엔진룸에서 그 소리는 나고 있었다.
그런데 동력계통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와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길래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엔지룸을 돌던 엔지니어의 귓가에
잡음소리가 커지는 장소가 있었다.
다른장소에서 그 장소로 접어들자
약하게 들리던 잡음이 좀 더 뚜렷하게 들린것이다.
즉시 휴대용 점검장비로 그 근처 일대를 조사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 고민하고 있던 엔지니어의 귓가에
잡음소리에 말소리가 얼핏 들렸다.
무슨소리인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확실히 소근소근거리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듯한 언어로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였다.
그렇게 그 말소리를 듣다보니
어느새 잡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말소리만 들리게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잡음소리는 말소리였는지 모른다.
그런 말소리를 정신을 집중하고 들었지만,
여전히 내용은 알수 없었다.
다만 좀 전까지라면
좀 더 다른곳을 조사하기위해 정신을 쏟았을테지만
말소리가 들리는 지금은
오직 그 말소리에만 신경이 가서
다른 것은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 말소리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엔진룸의 천장의 한 배선에서
조그마한 액체가 방울방울거리고 있었다.
새까만 색에 흰 연기가 조금씩나는 그 방울은
누가봐도 수상하고 위험해보였다.
동력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면
그 방울은 모이면서 공중에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 아지프 내에서는
중력이 작동하고 있었고
그 결과로
그렇게 조금씩 커져가던 그 방울은
엄지손톱만해지자 바로 밑으로 떨어졌고
그 방울은 엔진룸에서 나오는 말소리에 홀려있던
엔지니어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아마 동력이 들어오지 않아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무언가가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진듯한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머리위가 타는듯하게 아파왔으며
무언가에 자신의 머리를 후펴파는것 같았다.
"끄아아아악!"
결국 엔지니어는 고통을 참지못하고 그대로 질러내며
몸을 구르며 긴급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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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지?"
막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한 상태로 칼은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니
긴급상황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황급히 방에서 나가보니
주변서도 허둥지둥거리는 선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봐, 무슨 일이지?"
"순찰중이던 선원에게서 긴급신호가 들어왔습니다.
장소는 엔진룸이고요."
로렌스의 팀원중 한 명이 그렇게 알려주고는
성급히 엔진룸쪽으로 향했다.
칼 역시 그 말에 바로 그의 뒤를 쫓았다.
그를 따라 엔진룸에 와보니
어느새 로렌스가 와서 엔지니어를 돌보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원인은 모르지만 두부(머리)쪽에 심한 손상을 입었어.
즉시 의료실로 옮겨야해."
로렌스는 의료팀원들에게 명령하여
엔지니어를 의료실로 옮겼다.
그렇게 엔지니어를 데리고 의료실로 향하는
로렌스의 등을 보며 칼은 투덜거리며
본선에 연락했다.
본선에서는 마침 부함장인 한수가 있었다.
칼의 보고를 받은 한수는 엔지니어의 치료와 함께
엔지니어를 본선으로 후송시키라고 했다.
한수가 그렇게 명하지 않아도
칼은 어차피 후송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니
아마도 음급조치를 마무리 짓고
귀함할때까지 아무런 일도 못하리라.
무거운 마음에 엔진룸을 나가려던
칼의 귀에 낯선소리가 들렸다.
칼은 모르지만
그것은 엔지니어가 들은 그 말소리였다.
무슨소리인가하고 칼은 잠시서서 고개를 들어
엔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좀 전의 그 잡음은
언제 들렸냐는 듯이
평상시의 동력음을 내고 있었다.
왠지 미심쩍다는 의혹의 마음을 가지고
칼은 엔진룸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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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실에서는 로렌스와 팀원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머리를 다친 엔지니어의 반항이 심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치료대에 엔지니어를 눕힌 의료진은
일단 마취제를 투입하여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어느정도 큰 수술이 될 것같다.
그렇게 여긴 로렌스는 일단
알 아지프내의 기재로 응급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어차피 큰 치료는 이 배에서 할 수 없으니
본선으로 이 선원을 데리고 가야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서는
본선으로 데리고 가는 것도 벅찼다.
함부로 이동했다가는 상처가 악화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팀원들과 항생제와 응급기재를 챙기는 로렌스의 입가엔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소가 살며시 얹혀있었다.
그가 챙기는 항생제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아니 검사기재로 확인해도 알 수 없는 비밀이었다.
어째서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지
로렌스 자신은 몰랐지만
머릿속의 목소리는 알고 있는지
계속 낮게 웃고 있었다.
로렌스 자신도 그 목소리를 따라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가 투여하려는 항생제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미 오염되어 있는 것처럼
약간의 변색과 함께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침에 매튜는 한수에게서
간 밤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다.
"그래, 그 선원은?"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에 냉동캡슐에 넣었습니다.
어차피 귀함하기 전까지 다른 조치는 취할 수 없으니까요."
"알겠네. 그 외의 특별한 사항은?"
"특이하다면 특이하달까요?
순찰자 2명에게서 환시경험이 있었습니다."
매튜는 자신이 읽은 항해일지가 생각나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환시라고?"
"네. 엔진룸 근처에서 검은 안개같을 것을 봤답니다.
다만 그 주변이 어두운지라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한수의 보고에 매튜는 알았다고 한 후
항해일지와 연관해서 생각했다.
예전 알 아지프내에서의 환시경험과
지금 있는 환시경험은 과연 상관이 있을것인가.
아니라고 답할 수 없다는게 아쉬웠다.
알 아지프내의 항해일지에 나온 환시와
어제 선원들이 겪은 환시는 내용은 틀렸지만
결국 환시를 보았다는 것은 같았다.
그런 상황이 알 아지프만의 고유한 것인가.
아니면 현 선원들에게 문제는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
혹시나 과거 알 아지프내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까
매튜는 그런 생각들로 고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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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라고?"
오늘 작업을 나가려던 마틴은
라이언에게서 한수가 매튜에게 보고한 내용을 듣고
다시 되 물었다.
"순찰갔던 선원들에게서 얼핏들은 얘긴데,
무슨 검은 안개같은 것이 엔진룸 근처에 있었나봐.
뭐, 그 근처는 어둑어둑하니까
자기들도 장담을 못하고 있지만 말이야."
마틴은 라이언의 얘기에
어제 자신이 겪은 일이 겹쳐지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한순간에 겪었지만
알 아지프가 마치 안개가 낀듯
흐릿해지는 환시와
알 아지프내의 검은 안개가 왠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나저나 다친 녀석은 너무 안타까워.
얼마 안 있으면 휴가인데,
그런 일이 발생하다니.
치료받으려면 한참을 병원에 있어야 할테니 말이야."
라이언은 어느새 어제 부상당한 선원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만
마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라이언, 부탁할게 있어요."
"응? 갑자기 왜?"
"제가 말한 장비를 챙겨주시겠어요?"
마틴은 라이언에게 몇가지 장비를 일러주었다.
"그런거라면 작업용 로봇에 달린 것으로도 충분하지않아?"
"혹시모르니까요. 문제 있을까요?"
"뭐, 현장탐사용이라고 하면 내오는데는 문제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일 때문에 그래?"
"그건 나중에 설명해드릴께요."
라이언은 마틴의 그런 부탁에 투덜거렸지만
준비를 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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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장비의 상태는?]
"괜찮은데요.
이거라면 원하는 일을 하는데에 문제 없겠어요."
[부탁이니 부수지만 말아줘.
부수면 니 월급과 네 월급에서 나가니 말이야.]
"알았다고요."
마틴은 라이언의 부탁에 대답하고
관측장비 몇개를 알 아지프를 향하게 하여
설치를 하였다.
우주선에 장착하고 관측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부함장의 허락을 맡아야한다.
장비를 내어준것도 감지덕지인데
거기까지 바랄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작업용 로봇 몇 대를 돌려서
장착하였다.
어제 자신이 봤던 그 흐릿함이
순찰중에 본 안개와 관련이 있을지는
자신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으면서
머리에 떠오른 관련점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웠다.
안개라는 공통점을 빼면 전혀 다른 이야기 였지만,
그래도 뭔가가 있을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걸릴지는 나중에 확인하면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틴은
장비가 장착된 로봇 몇대를 알 아지프 근처에서
작동하게 조작하고는 작업공간으로 향했다.
그가 떠나기직전
관측장비에
알 아지프의 외형이 안개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고
그 안개가 마치 호탕하게 웃는 것 같은 모습을 띤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장비에 측정된 그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장비에 노이즈가 발생하며
그 장면이 삭제되고 있었다.
그 장면이 찍힌 로봇들 중에서
알 아지프에 가까이 있는 로봇들에게서 말이다.
그러나 이미 자리를 떠난 마틴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칼은 자신의 순찰 시간이 끝나자 엔진룸으로 향했다.
어젯밤에 들은 말소리가 맘에 걸린 것이다.
엔진룸에 들어와 한 쪽에 서서 엔진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두쿵거리는 엔진의 작동 소리만 들려올 뿐
다른 특별한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하고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작동하는 엔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럴 마음이 약해졌다.
얼마동안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엔진을 바라보고 있는
칼의 귀에
의식하지 못하였지만 어젯밤의 그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렇게 멍하니
귓가에 울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엔진을 바라보고 있을때 누군가 와서 그의 어깨를 쳤다.
"어떤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로렌스가 그의 옆으로 와 있었다.
"자네도 지금 이 소리가 들리겠지?
얼핏들으면 불쾌한 소리지만
집중하고 들으면 나에게 계시를 내려주는 소리 같이 들리다네."
칼은 로렌스의 말에 어디가 계시같은 소리냐고 따지려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불쾌할 수도 있네.
하지만 잘 들어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날 살려줘. 날 살려줘.
나의 자식을 남기게 날 살려줘]"
로렌스는 칼의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칼은 그런 로렌스의 목소리가 신경을 긁는듯해서
밀쳐내려고 했으나
왠지 모르게 방해말고 그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고귀한 일이야.
설사 그것이 기계로 된 우주함이라도,
생명이 있다면 살려주어야 되겠지.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일이니까."
로렌스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말소리가
갸날픈 여자목소리처럼 느껴졌다.
겨우겨우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슬아슬하게 말하고 있지만,
칼이 느끼기에는 확실한 여자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자, 자네도 [그녀]가 원하는 일을 해주자고.
불쌍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 말이야."
어느새 칼의 앞으로 온 로렌스가
양 손으로 칼의 머리를 잡고 낮게 말하였고
칼은 자신도 몰랐지만
그런 로렌스를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칼을 설득하면서
로렌스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가 원하는 일을 해 줄 또 한 명의 조력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이 친구라면
[그녀]의 맘에 드는 일을 확실하게 해 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조금씩 사람들을
[그녀]의 일꾼이 되게 하는 일이라면
칼은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요람을 만드는 일에
동참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로렌스의 머릿속에는
그런 자신을 칭찬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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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매튜에게 순찰팀만으로 불안하니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자신이 알 아지프에 상주하면 어떻냐는 의견을 내었다.
어젯밤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으니
일종의 대리 함장으로서 알 아지프 내의 일을 지휘하려는 것이다.
매튜는 군말없이 허가를 내 주었다.
어차피 알 아지프를 구조함이 와서 데려가기 전까지
이 배는 알 아지프와 같이 있을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 곳에 상주해서 또다른 지휘계통을 가져서
지휘를 한다고 하는 편이 좀 더 나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젯밤과 같은 일이 있을 경우에는
한수가 적절한 조치를 금방 내릴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한수도 얼마 안 있으면 함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리 함장연습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매튜는 그렇게 생각하였기에
한수에게 알 아지프내의 지휘계통을 넘긴것이다.
그라면 잘 해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매튜는 한수가 알 아지프로 넘어가기 전에
거기서 얻은 항해일지를 한수에게 넘겨주었다.
안그래도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계속 드는 배다.
어젯밤과 같은 사고도 우연이 아닐수 있다고 매튜는 생각하면서
혹시모를 대비를 위해 넘겨준것이다.
한수는 매튜에게서 항해일지를 받아서
알 아지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한수는 매튜의 불길한 감을 별로 믿지 않았다.
그 당시 알 아지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배의 노후와 표류사고를 당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30여년전이지만
과학기술은 해가 바뀔수록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그 당시의 일이 지금에는 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은 무시하고
항해일지의 일들만 보고
불길함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매튜를
한수는 실망스럽다고 여긴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일단 자신의 상사이니 복종 할 수 밖에.
그래도 자신에게 알 아지프의 지휘권을 넘겨준 건에 대하여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런 낡은 수송섬에서 인생을 마칠 생각은 없다.
경력을 쌓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여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함장 연습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알 아지프는 그런 것을 연습하기에
괜찮은 배였다.
인원은 적었고,
지휘계통은 일단 자신이니 자신의 생각대로
선원들을 지휘 할 수 있으니
예행연습이라고 하면
괜찮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알 아지프내로 들어가기에
한수는 자신의 등 뒤에
검은 안개가 생겨서 등에 달라붙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한수는 알 아지프로 넘어와서
먼저 칼과 로렌스에게서 상황을 보고 받았다.
"엔진에서 조금 이상한 소리가 나지만,
배가 낡아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어보이고요."
"의료적인 면에서는 어제 일어난 사태 말고는
보고 드릴 것은 없습니다.
간단한 응급조치는 이 배에서 할 수 있고
안되면 본 함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고요."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라고요?
그것을 보수해서 차단할 수는 없나요?"
"보고드렸다시피 배가 낡아서 나는 소리같습니다.
저희가 응급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하겠지만
엔진 자체가 낡은 것을 어쩌겠습니까?
오버홀(부품 하나까지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일)하지 않는 이상
소리가 나는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구조함이 오기전에 무슨 사태가 발생하면 어떡할꺼죠?
최소한의 응급조치해서
그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저희가 취할수 있는 조치는 행하겠지만
완전히 소리를 안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엔진 자체를 수리할 여건이 안되지 않습니까?"
한수는 칼의 반박에 조금씩 화가 났다.
지휘계통을 넘겨받자마자
자신의 지휘를 거부하는 듯한
그의 입장이 불쾌한 것이다.
물론 칼의 입장도 이해한다.
엔진 자체가 낡은것을 수리할 여건이
본 함이건, 알 아지프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급조치만이라도 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구조함이 올 때까지는 이상없이
버텨야 할 것 아니겠는가.
자칫해서 모두에게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면
그 땐 어떡하겠는가.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넘어갈 수 는 없는 법이다.
할 수없이 칼에게 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취하라고
명한 후 칼을 물러가게 했다.
"로렌스, 현재 이 배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의료기구를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진짜로 없습니까?"
"응급조치는 이 배의 간단한 기재로도 충분합니다.
만약 안되면 본 함으로 옮겨서 치료를 하면 되고,
어제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사고에는 냉동캡슐을 이용할 수 밖에 없겠지요."
"이 배는 낡았습니다.
어제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 배에서 치료가 제 때 하지못해 생기는 불상사를
로렌스씨가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
"보통 최악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 확률이 높지만,
이 배는 낡아서 무슨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배의 기재로는 응급조치가 겨우입니다.
그 이상의 치료를 하려면
대형 기재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배의 대형기재는 낡아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결국 본 함의 대형기재를 사용해야 되는데
그 기재들을 옮기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최대한 옮길수 있는 자재들을 알 아지프로 옮겨 두세요."
"그럼 나중에 알 아지프가 구조 될 때
다시 그 기재들을 본 함으로 옮겨야 합니다.
잠시동안 머무를 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형기재들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중형기재들은 얼마든지 이동 시킬수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 일부라도 옮겨서 대비할 수는 없습니까?
어제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것에 대비하자는 겁니다."
"알았습니다."
로렌스는 한수의 명령에 불만인 듯 하였지만
일단은 복종하기로 하고 물러났다.
칼과 로렌스가 물러나자
한수는 그들에게 불쾌감을 느꼈다.
일단 함장은 자신에게 알 아지프내의 지휘를 맡겼다.
그럼 그들은 자신에게 따라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자신의 지휘에 반항하고 있으니
그게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어느정도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배가 낡아서 최악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으니
거기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게 낫지 않은가.
그런데도 배가 낡았고
며칠만 있으면 바이바이할 배니 대충해도 된다는 식의 보고를 하니
한수로서는 무사안일한 그 사고가 불쾌한 것이다.
도대체 배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엔지니어팀과 의료팀의 팀장들이 저런 말을 할 정도니
다른 선원들은 어쩌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젊은 나이에 부함장이라는 직위에 있으니
질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함선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불쾌하게 여겨졌다.
지금 자신에게 반항하는듯한 칼과 로렌스뿐만 아니라
은근슬쩍 자신을 대화에서 제외시키는 항해사랑 통신사,
그리고 작업요원인 마틴을 말이다.
특히 작업요원인 마틴이 불만스러웠다.
자신과 자주 마주치지 않으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한수는 불쾌감에 떨었다.
자신이 알 아지프에 있는 동안에
지휘체계를 확실히 갖추어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위해서는 조금 험한일이나
약간의 위협정도는 괜찮을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한수 자신의
어깨와 뒷머리에 검은 안개가 스며드는 것을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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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 미나미츠 : 다음은 당신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