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그녀가 돌아왔을때,
나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고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낮게 드리워진 회색빛 구름이 풍경에 한결같이 빛을 뿌리고있었기에
경치는 원근감이없는, 한장의 사진처럼보였다.
사진의 오른쪽끝에는 역으로 향하는 길이 있으며,
이 도로는 도로위를 어지럽힌듯이 보이는 민가쪽으로 쭉 뻗어있기에,
이곳에서 본다면 사라지는듯이 보이는 길이다.
공주님은 그 길을 걷고있었다.
공주님은 돌연히, 사진속에 모습을 나타냈다.
제법 거리를 두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과같이 보이는 이동하는 무엇인가가 공주님이라는걸 곧바로 알아챘다.
길을따라 느긋하게 걷는 공주님.
걷고있을떄 정면을 바라보지않는 버릇이있어, 조금 염려스럽기만하다.
나는 길 모퉁이의 나무나 꽃들에 전혀 흥미가없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생각하기에 「귀여운것」을 찾으면서 걷는 버릇.
이 버릇이 내겐 못마땅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걷고있는 그녀의 오른손엔 하얀 편의점봉투가 쥐어져있었다.
봉투속엔 과일같은 무언가가 담겨져, 딱 그정도의 무게에 앞뒤로 흔들리고있었다.
커튼을 닫는다.
CD를 트레이에 얹고서 재생한다.
그리고선 침대에 기어들어간다.
이불에서 머리를 꺼내어 크게 호흡하자
목에서 풀무에서 나는 소리와 썩다를바없는 흐윽 거리는 소리를 내온다.
hiroshima.tistory.
확실히 나른하다.
하지만 심장은 크게도 두근거리고있었다.
감기때문이 아니란건 안다.
이제곧 공주님이 이곳에 오기떄문에다.
병원의 할아버지가 말했었던건 옳은 판단이었다.
지금은 39도에 도달한듯한 열도, 나는 잊고만 있었다.
나는 건강체 그 자체라고말이다.
걸을때 조금 휘청거릴뿐인..
일초라도 빨리 공주님의 얼굴이 보고싶다.
173
엄마의 기쁜듯한 높은톤의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진다.
조금지나자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건 분명,
오른손에 늘어뜨리고있던 편의점봉투가 내는 소리겠지.
레드핫 칠리페퍼스의 ScarTissue,
곡이 끝나기전 수십초간 애절한 기타의소리가 계단의 발소리와 겹쳐진다.
언젠가 MTV에서 본, 그 영상을 떠올려냈다.
황야를 질주하는 너덜거리는 오픈카와 넥이 끊긴 기타.
연주자는 연주가 끝자나, 아무런 망설임도없이.
기타를 주행중인 차에서 뒷쪽으로,
수면에 흘리듯이 버리고만다.
쓸데없이 멋진 마무리다.
그걸본 나는 나라도 무언가의,
매사의 마무리에 있어선 그정도로 멋있게 정할수 있을거라며, 그럴수있을거라며 믿고있었다.
[다녀왔어요.]
하지만 어떨까.
그녀와의, 최후의 순간에 나는, 제대로 설수는 있으려나?
[제대로 자고있던거 맞죠?]
시원스레 '안녕' 이라고 말할수는 있을까?
[저기저기, 이것좀 봐요]
그런건 분명히... 할수없다.
있을수없다.
[귤과 사과를 잔뜩 사왔어요, 엄청 쌌다구요?]
그녀의 디스켓이, 언젠가 그녀를 삼켜버리진 않을까하며,
나는 역시나 불안하여 어쩔수가없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들었던 그녀의 작은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주술의 주문처럼 읊어졌지만,
그 주문은 아무런 효과없이 머리속을 내돌기만했다.
[아, 과도랑 접시를 가져올게요]
hiroshima.tistory.
이제, 나도 머릿속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될것같다.
지나친 생각일테다.
감기탓에 마음이 약해지고있는걸거야.
아마,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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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정도로 숙달된 손놀림으로 그녀는 사과껍질을 벗겼다.
왼손에 있는 사과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얇게, 붉은껍질을 벗겨져간다.
그녀는 왼손에서 사과를 놓지않고 네등분으로 나눴다. 나이프로.
씨로 막힐법한 부분까지 간단히 싹둑하고 잘라냈다.
조금 큰, 네등분된 한조각이 내 입언저리에 옮겨졌다.
사과는 차가웠기에 상쾌감이 입안에 퍼진다.
맛은 별로 느껴지지않았지만, 침샘관이 한가득 열리며 산미가 있다는걸 알려줬다.
그새 그녀도 한조각을 입에물고서 오물거리고있었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를 내는채로[맛있어요?] 라고묻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졸음이 몰려온다.
그녀가 곁에있으면 안심되기에 졸음이 몰려온다.
내가 눈을감고 호흡을 낮게쉬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자려고 했을때.
그녀는 평소와달리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이리 말했다.
[내일부턴 잠깐동안 만나지 못할지도몰라요.
짧은 시일내로 , 금방 돌아올게요.
일본에 돌아오면, 제일먼저 당신에게...]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입을닫고말았다.
175
일본에...
돌아온다면...
친구의 메일을 생각해냈다.
분명히 공주님은 인도에 떠날 예정이다고했다.
만약 그리된다면, 나는 명탐정과 한패가 된다.
디스켓에서 몽땅 다운로드된 알수없는 데이터 속에서.
이와같은 답을 추론해낸 친구.
친구야, 너는 명탐정이었던것같다.
그녀는 해가 떨어지기전에 돌아갔다.
아쉬운듯이 긴 시간을 들여 코트를입고서.
한동안 내 뺨에 머리를 붙대어주었다.
그런채로[돌아올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라고 그녀는말했다.
그녀에게 내 감기가 옮기지 않았으면 좋을텐데.
아아...인도는 더웠던가?
그녀가 없어진 뒤의 어둠.
나는 그 안에서 단지 누워있을수만은 없었다.
PC를 기동시켜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낸다고해서 무엇이 된다고하는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258
그녀가없는 밤.
나는 방에서 한발짝도 내딛지않았다.
CD케이스더미에서 적당한걸한장잡아채고서 재생해본다.
하지만 무얼 재생해봐도,
몇번이고 cd를 바꾸어봐도 기분이풀리지 않았다.
나는 카드점이라도 치는듯이 CD를 꺼내어 CD들을 탑을쌓듯 쌓으며, 매일,매일간 음악을 재생했다.
이런경험, 누구에게나 있는게 아닐까?
있을리없는 미래를 점치는 이런 일들을.
강변에서 자갈을 주워,
과녁삼아 노린 바위에 제대로 명중될경우엔 혼자서 끙끙앓는 짝사랑이 이루어진다던가 하는...
하지만 내 손끝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들리는 노래도 어느곡이고 시끄럽기만, 잔잔하기만했다.
그런 노래를 내 뇌하수체가 망가진듯이 소리를 계속 먹어치우고있었다.
절대로 가시지않을 굶주림이 들린것처럼말이다,
게다가 내게는 그녀가 돌아오지않을거라는 불안이 자리하고있었다.
그런 내가 열과 좋지않은 몸상태를 어떻게든 억누르고서 회사에 얼굴을 내비친건,
그녀에대해서 죄다 잊고싶었으니까다.
아침,
할아버지가있는 병원에 가서 [안정을 취하거라] 라는 말을받으려하자.
할아버지는 내게 공주님의 얼굴이보고싶다고 말했다.
[혼자서 독차지하지만말고, 앞날이 얼마남지않은 늙은이에게도 감상시켜다오.]
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말을듣곤 우울해지고말았다.
그래서 이렇게 출근해있다.
이 할아범탱이...
이상하게도 일에 몰두하고있자 몸상태가 좋아지는듯한 느낌이들었다.
실제로 열도 오후엔 미열로내려가 잠잠해졌었고.
삐걱대며 통증을 몰고오던 관절과 예민해졌던 촉각이 무뎌졌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을쯤엔, 전혀 아무렇지도않게되어
할아버지에겐 확실히 나았다며 보증까지 받게되었다.
하지만 밤에 홀로있자 울적함이 찾아왔다.
그런 밤이 계속되어 소리를 먹는것에 질리자,
나는 시체가된듯 잠들었다.
260
친구의 메일이 내게 전달되었을때는 확실히 그쯤이었다고 생각한다.
괴로웠던 체열도 가시는, 컨디션이 서서히 회복을 시작했을 무렵,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있을때.
나는 동료에게서 걸려온 연락이라고 착각하고서,
한동안 휴대폰을 내버려 뒀었다.
하지만 발신자는 친구였었다.
> 네 이메일로 긴 정보를 넣어뒀으니 읽어보도록.
친구의 메일은 길었다.
분명히 오래간 사귀어온 지금까지 받아온 메일중엔 가장 길었다.
친구는 공주님이 인도에 떠난건 유감이다.로 시작하여
내 수중에있는 데이터로는 이제 아무것도 알아낼수가 없었다. 는 끝마침이었다.
그 와중에도, 친구나름대로 나를 위로해주려고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문장들.
이제 괜찮아, 친구.
친구의 걱정이 무엇보다기뻤다.
그런 친구의 메일끝에는 이렇게 덧붙여져있었다.
>만약 죄악감이 남아있다면, 공주님만을 생각하도록해.
공주님이 널 마음에 들여놨다면 더더욱말야.
이제 공주님은 우리에게 디스크를 보여주지도않을테니,
어떤사소한거라도, 작은거라도좋으니까 뭔가 남긴건 없어?
예를들자면 공주님의 데이트대행업체 명함이것이라던가.
아, 그래 너는 그쪽에 전화를 걸었었잖아?
그게아니라면 직접가서 공주님을 지명했던게 되는거고,
혹시나해서 말해보는데 그곳엔 뭔가 남아있진않을까?
그러니까 다른여자를 사서라도 , 공주님에대해물어본다던가를 하란말야.
262
크리스마스 이브날밤,
나는 데이트대행업체의 여자를 샀던적이있다.
ㅅㅅ는 하지않는다는 조건한정이었지만,
우리둘은 한순간에 의기투합하고서, 불문율의 한 선을 시원스레 뛰어넘었다.
공주님이 왜 나따위를 맘에 들어한걸지. 지금이 되어서도 알진못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몇시간 후, 호텔의 한 방에 있을정도의 사이가되었다.
영화를 본뒤 공주님은 내게 한장의 카드를주었다.
명함 이라기보다는 전화번호와 메일주소가 적혀있는, 단순한 인포메이션카드.
싸보이는 연한 카키색의, 머메이드지.
간단하게 복사기로 직접 만들어낸듯,
검은 잉크가 인쇄된 자리를 손톱으로 세게 긁자. 벗겨진 토너가 가루가되어 떨어진다.
이 카드는 내 지갑의 카드홀더에 박힌채로 있었다.
완전히 잊고있었다.
곧바로 카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수화음에 때때로 신호가 좋지않아 내는 탁한전파음이 섞여나올뿐, 아무도 받지않는다.
날을 새로 잡아 전화를 걸어봐도 결과는 같을뿐이다.
263
왠지 이상하다...
카드에는가게명도 적혀있지않다.
나는 공주님의 정체를 밝혀내고싶은건 아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흔적을 뒤쫓지않으면 진정되질않는다.
공주님은 만나고싶어진다면 이 번호로 전화해줘요. 라고 말했다.
이 번호를 가게번호라고 멋대로 생각했던건 내쪽이잖은가.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가동해나가는 공주님의 디스켓전용 PC와도 같이,
이 번호가 공주님의 전용번호란말인게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내 추리는 올바른 결과를 내지못한채로 언제고 꺾여버리고만다.
공주님은 부유한데도 왜 나따위와 놀고있는걸까.
친구는 공주님이 부자라고 말하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고 하곤,
그 돈은 공주님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면서
그 세계의 신용에 이루어진것과같이,
그녀를 뒤따르는 그 돈은 없는것과 별반다를게 없다고 말했다.
306
복잡한 생각을하며 침대에 눕자 문득 떠오르는건, 그 채팅방에 대한것이었다.
음악계의BBS와 채팅으로 구성된 꽤나 적당적당한, 어딘가의 카페식 사이트.
이 클럽은 심심풀이삼아 들른뒤, 곧바로 나갈생각이었으나.
어떻게된일인지 동이틀때까지 거기서 체류하게되는 자신이 모니터에 비춰지고있었다.
몇명인가의 여자애들과 잡담하며 멍하게 있다가.
슬슬 나가볼까 하던참에, 나는 특이한 닉네임을 발견했다.
이름은 [질식할것같아]
프로필메세지는 [평범하게 얘기해줄사람 희망]
단지 그뿐인 문자가 묘하게 걸렸기에, 나는 로그인했다.
달리 적혀있는건 꽤나 과격(?)하게도
노골적으로 하룻밤을 지내는데 드는 비용까지 표시되어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곳은 풍속녀가 대기하며 사용하는 사이트라는듯하다.
그렇다면 클럽주인장이 내건 '음악계'사이트라는건 사이버경찰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인가?
아니,클럽자체가 진실된 음악계일지는 모를지언정
이곳의 단골들은 풍속녀와 그 찌라시등의 상업적인 문자를 나열하기 위한자들의 쉼터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이곳에 들어온것이다.
307
그리고 거기서 찾아낸건
시부야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멀리 사라져 버린듯 보일정도로 아름다운 공주님이었다.
무료기도했으니, 세시간정도를 주절댔으려나?
그러다 정신을차리고보니 동이 터오르기 시작했기에, 채팅으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기 직전,
우리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이트를 약속했다.
물론, 유료로.
그런 공주님이 내 일회용메일주소에 사진을 보내왔을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기쁘다. 라고 하기보단, 나를 놀리고 있다고생각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렇기에 나가지말까...하는 생각에 혹하기도했었다.
당일.
나는 태연히 집을나섰고, 공주님을 발견해낸뒤,
기쁜나머지 방방뛰었다.
그러면서도 [이건 유료라고!] 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렇게 예쁜사람과 데이트를 한다고해도 너는 손끝하나 못 건드려!] 라며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양된기분은, 그런말로는 가라앉지않는다.
전화방등의 약속따위의 성공률은 약2할도 되지않는다고 들었던적이있다.
만약 전화방의 상대와 만난후 상대에게 만족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 확률은 더욱더 급하강을 보이며 낮아지겠지.
그러니 이 확률이 정확하다고한다면, 나는 기적과 조우한케이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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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회사와의 업무회의를 끝마친뒤,
회사에 돌아가기전에 홀로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사들곤
HMV라거나 타워레코드를 서성이러간다. *둘다 시부야의 레코스숍
학생일적엔 중고CD숍에서 끈덕지게 들이박혀선 월50장 쯤을 사들인적도 있다.
몇년이고 그 행위를 반복하게된다면, 매월 몇백장을사던,1장만을 사던
좋아하는 노래의 절대량에는 변화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일을 시작하자, 내가 서성이는 장소는 타워레코드 등의
대형점포에 한정된듯이 되어있었다.
갖고싶은 새앨범들은 발매일부터해서 수일이내에 사곤했으니 서성이러 갔다고하는건 정말이다.
그럴때 사들이는건 좀처럼 없다지만, 내 방에 자리한 CD들의양은 날이다르게 팽창하는 경향이있다.
사들이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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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밑과 옷장이나 벽장등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듯이 CD들이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그곳엔, 이제 절대로 들을리없는CD들이,정리되지않은채로 쑤셔넣어져있다.
오늘밤도 그 폐기처분이 결정된채인 CD더미속에서 한장을 골라 재생한다.
산 기억조차 나질않는 CD.
처음으로 듣는 소리다.
그렇게 몇밤을 보낸걸까.
주님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었던게 현실적이지 않게되었고
공주님의 부드러운 피부의감촉이나, 머리에서나는 향기.
그런 기억의파편들을 떠올려내는게 어려워졌을때쯤.
공주님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장소는 공항에딸린 카페라고한다.
방에서 재생되는 배경음이 들리지않게끔, 무서울정도로 고요하게 된듯하다.
그런 방에 멍하게 앉아있는 내게 , 공주님의 목소리가 뚜렷이 , 귀에 울린다.
나는 CD의 재생을 멈췄다.
[보고싶어요. 지금바로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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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hiroshim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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