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ress
김포 공항의 활주로에 바퀴가 닿는 충격과 소음에 경민은 잠에서 깼다. 나리타를 이륙할 때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일본의 동해안을 보면서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김포 공항의 활주로 양편에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가 그의 시선에 들어와 있었다.
‘피곤하긴 피곤했었나 보군’
귀국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 온다. 코미케에서 타카하시와 구두 협의를 하고 귀국까지 남은 이틀 기간 동안 경민은 야노와 일본 최고의 환락가라 불리우는 가부키초에서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귀국 당일에는 타카하시가 먼저 NDA를 써주었기 때문에 더욱 성취감이 더했고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그간의 긴장감이 모두 빠져나가면서 곯아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이과장님!”
경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미수가 손을 흔들며 게이트 입구에 서있었다. 놀람과 동시에 반가움이 밀려 왔다.
“미수씨, 여긴 어쩐 일이야? 근무 시간일 텐데”
“외근 보드에는 업체에 나간다고 써놓고 왔어요”
경민은 부서를 맡고 있는 책임자로서 약간 난감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만나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 나와 준 미수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수가 그런 경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민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인다.
“야노씨에게 그간의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정말 대단한 활약을 했던걸요?”
“야노씨가 그간의 일을 다 설명한 모양이군”
“그는 순수하니까요”
‘순수’라는 단어에 경민은 야노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야노는 미수를 가리켜 미모만큼의 영리함을 가진 여자라고 추켜 세웠는데 정작 야노 자신은 미수가 자신을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ㅡ 하는 것이었다.
미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면서 경민은 야노와 이틀에 걸쳐 술을 마시며 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야노와 미수가 서로를 알게 된 건 미수가 도쿄에 연수를 갔을 때 동인회의 활동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 계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둘의 관계는 벌써 3년 이상이나 지속 되어 오고 있는 것이었다.
3년 동안 둘 사이에 일어 났던 에피소드를 듣다 보니, 자연히 그가 미수에게 가진 감정을 알게 됐고 이미 둘 사이에는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닌, 연인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도 어렴 풋이 알게 됐다. 경민은 그 걸 알고 나서 미수에 대해 섭섭한 감정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술김에 잠시 유희를 즐긴 것뿐이었다. 경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차는 국제그룹의 게임기 사업부가 자리 잡고 있는 역삼동 사옥에 다다랐다.
“축하합니다!”
경민과 미수가 개발실에 들어서자 스탭들이 일어서서 열렬한 환호로 둘을 맞았다. 갑작스런 환호에 경민은 약간 얼떨떨했지만 미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우고 경민을 쳐다 본다. 타카하시 마도카의 일러스트를 쓰기로 한데 대해 스탭들 역시 미수에게 이야길 듣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경민은 멋쩍게 인사치레를 하고 회의 테이블에 앉아 스탭들을 둘러 봤다. 일본에 가기 전에는 다들 자신과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데스크에만 집중하다가 퇴근해 버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모두들 기대와 신망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 보고 있는 것이다.
“다들 과장님에게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싶어합니다”
“좋습니다. 우리 부서가 조직 된 것은 이미 몇 주 전의 이야기지만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의미로 해볼까요”
첫 번째로 자신을 소개한 것은 프로그래머였다. 경민은 게임 개발에 있어 그가 가장 중요해 질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경청했다.
“제 이름은 안세환이라고 합니다. 이력서에 있는 대로 새턴용 한글 롬 개발에도 참여 했습니다만, 그 전의 기가드라이브용 슈팅 게임 프로젝트에서는 메인 프로그래머 역할을 맡았었지요. 당시 어셈블리어 쪽이 초보 단계였기 때문에 게임기로 만드는데 애먹었습니다만, 이젠 자신 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나머지 그래픽 담당자 중 박정윤, 신현아 두 여성은 각각 캐릭터와 배경을 맡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송미현이라는 여성은 배경 타일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3D 디자인 쪽으로 숙련 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미현씨는 3D쪽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요”
“네, 2D로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을 3D를 이용해서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떻게요?”
“기가새턴은 원래 3D 쪽에 특화 된 하드웨어가 아니라서 3D로 슈팅 게임을 만들었다간 처리 속도에 문제가 생기겠죠. 하지만 2D로 웬만한 슈팅 게임을 만든다는 건 일일이 이미지를 찍는데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3D로 원하는 캐릭터를 먼저 모델링 해서 돌리고, 거기서 프레임 별로 2D로 캡처를 해서 사용한다면 시간이 많이 단축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민은 미현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前世에서 게임에 3D 그래픽 적용이 활성화 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업체들이 2D에서 3D로 빠르게 전이하고 이후에는 툰 렌더링을 이용해서 3D를 2D 이미지처럼 부드럽게 표현하는 기술에만 신경을 썼지, 2D 게임을 만드는데 있어서 3D로 모델링을 하고 모델링 된 객체가 애니메이션 되는 것을 이용해서 2D로 이미지를 따올 생각을 한 업체는 몇 개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우수한 기술력을 요한다거나 특별한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아니라, 시장 자체가 2D에서 3D로 너무 급속하게 전이해 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형 개발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3D를 기본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2D의 작업 프로세스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2D 게임을 만드는 중소형 업체들은 말도 안 되는 스케줄과 예산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개발자들이 그런 연구를 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현씨는 지금 어떤 툴을 사용해서 모델링을 하나요?”
“광파요”
“이번에 만드는 기가새턴용 프로젝트에서 그런 기법을 활용해서 스프라이팅을 하면 좋을까요?”
“그건 캐릭터 메인을 맡고 있는 미수씨하고 상의를 해야 해요”
경민은 미수를 흘깃 쳐다봤지만 미수는 본 척도 않고 뭔가 메모하느라 열중이었다. 경민은 미현의 답변과 미수의 태도로 미루어 이전 프로젝트 때부터 이미 미수가 그래픽 팀장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팀이 구성 될 때부터 미수가 힌트를 주었고 자신은 미수의 힌트에 따라 충실히 움직인 것 밖에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팀장 이상의 재목이 자신의 밑에 있는 것은 아닐지. 새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목적은 단기간에 최선의 퀄리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과도한 테크닉이나 스테이지 수를 늘려서 리소스를 증가 시키는 기획을 자제해야 하구요. 일단 기획은 제가 맡고 있으니 그런 점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여러분 모두가 게임에 대해 애정도 있고 저마다의 아이디어도 있겠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국제그룹의 전략 사업인 만큼 자신의 작업에 대한 납기와 퀄리티에 대한 장인 정신을 살려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과장님 중요한게 남았잖아요”
미수가 손을 들고 경민을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회사 안에서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음에도, 귀여운 미소를 띤 미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경민은 은근히 얼굴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아, 미수씨 뭔가요?”
“이 게임의 타이틀 명 정도는 정하고 시작하셔야 저희도 동기 부여가 더 잘 될 거 같아요. 프로젝트 명으로 호칭할 때도 필요하구요”
“그렇군요. 확실히 타이틀 명 정도는 정해 놓고 시작 하는 게 좋겠지요”
경민은 생각해 본다.
이 게임 하나로 매출을 많이 낼 순 없겠지만 자신의 여러 계획을 출발 시키는 키 포인트로 만들 것은 확실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 타이틀 자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유저들에게 어필 할 필요가 있고, 유저뿐 아니라 업계의 다른 관계자 모두에게도 일종의 연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前世와 같이 흘러가는 지금의 시계 바늘을 억지로 돌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감성과 시장의 생명 곡선을 동시에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이틀 이름은 액트레스로 합시다”
“네? 액트레스요?”
스탭들이 이구동성으로 경민에게 물었다. 경민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타카하시 마도카의 캐릭터입니다. 나는 이 캐릭터에 혼을 불어 넣고, 일종의 연기를 시키고 싶습니다. 시장을 감동 시킨다는 거죠”
“하지만, 과장님 그런 이름은 미소녀 육성 시뮬레이션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우리 게임은 슈팅 게임인데……”
“슈팅 게임에 이런 미소녀가 나오는걸 본적이 있으십니까?”
프로그래머인 세환의 말에 경민이 반문하자, 세환은 우물쭈물 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군…… 생각해 보면 미소녀 캐릭터가 들어갔기 때문에 게임 시스템도 기존의 것과는 달라지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기존의 슈팅 게임들 마냥 SF 타입이거나 전쟁 냄새 물씬 풍기는 타입으로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 그렇군요. 이미 이 게임은 파격적이니까요. 나머지는 역시, 과장님이 타이틀 명에 어울리는 게임 시스템을 만들어 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
경민은 여유 있는 미소로 세환에게 대답했다. 세환이 고개를 끄떡이며 도로 자리에 앉자, 미수가 스탭들을 향해 말한다.
“자, 여러분 앞으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우리들의 멋진 그녀를 위해서 일들 열심히 하자고요!”
미수의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맺음말을 뒤로 하고 스탭 모두가 자리로 되돌아 갔다.
그로부터 8개월 뒤, 한국 최초의 기가새턴용 오리지널 게임으로 출시 된 슈팅게임 “액트레스”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타카하시 마도카의 캐릭터가 전면에 채용 된 것을 필두로 필살공격 시스템에 연동하는 전화면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더해져 초도 5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했다.
죽어가기만 하던 게임기 시장에 일거에 낭보로 작용한 이 타이틀에 PC 패키지 업계 마저 주목했다. 그리고 여기에 주목한 것은 패키지 업계뿐만이 아니었다.
끝마무리에서 너무 설렁설렁 넘어가네요...
기가 드라이브와 기가 새턴... 그 다음은 비운의 명기! 기가 캐스트 인가?
게임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잼게 보고 있습니다. 액트레스 밀봉으로 얼마인가요.??
마지막이 너무 흐지부지하네요.
칼럼과 소설 모두 결말을 짓지를 못하는것 같네요
이번엔 야설이 없군요
휴대용기기는 안나오는겁니까ㅇㅅㅇ
야아아... 언제나 멋지군요. ^^
다음편 기대할게요. ^^
나름 재미있네요ㅎㅎ 근데 정리가 좀 잘 안되는듯
ㅎㅎ 재미있습니다
역전이란 글을 보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