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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IMF 국제 금융 위기를 맞아 국가 생산력이 급속히 감소하고 대기업이 부도로 줄줄이 쓰러지는 등, 경제 전반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던 시절.
안일하고 방만하게 경영을 일삼던 대기업 총수들은 대부분 해외로 도피해 버리거나 청문회에 불려 나가게 되었으며, 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 사태로 인해 전국에는 5백만이 넘는 실업자가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기간 산업이 위축 되고 실업자가 양산 된 탓에 시중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늘어나게 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기간 산업이 무너지면서 빠져 나온 유동 자금은 증시로도 가지 못하고, 부동산의 점진적 하락으로 더 이상 수요 처를 찾지 못한 채, 벤처 산업이라는 새로운 출구를 향해 모여 들었다.
1997년의 코스닥 시장은 도박판 그 자체였다. IT 딱지만 달고 있어도 한달 연속 상한가를 치는 소형 종목에서 시작하여 웬만한 IT 포털 사업체의 경우 기형적으로 불어난 자산 규모가 대기업 10순위 규모를 넘나 드는 유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벤처 버블의 중심은 IT였으나 그 최중심에는 게임산업이라는 엔터테이먼트 시장이 있었다. 엔케이소프트가 개발한 레니즈라는 온라인 게임이 대박이라는 점은 게임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엔젤 투자가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상장 전의 엔케이는 이러한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공개하지 않았고,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시중의 자금은 꾸역꾸역 레니즈를 중심으로 온라인 게임시장을 향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엔케이소프트 외에 다른 출구를 찾던 자금들은 레니즈와 유사한 게임을 만드는 업체로 몰려 들었다. 온라인 게임에 서버개발자가 우선이고 그래픽은 적당히 따와서, 기획은 똑같이 라는 공식이 성립 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테헤란로에 우뚝 선 엔케이소프트의 본사 5층 대회의실에는 김태윤 사장 이하 엔케이의 이사 및 중요 간부가 모두 모여 2/4분기 경영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의 수치는 아주 고무적입니다”
엔케이소프트의 운영본부장인 윤석희는 프로젝터로 영사 된 스크린에 2/4분기까지의 레니즈 접속자 추이를 설명해 가며 자신감 있는 어조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개발 초기부터 운영이라는 부서에 힘을 실어준 덕에 운영 부서는 부서장이 본부장이라는 직책까지 승급 할 수 있었고, 결국 엔케이의 최고경영회의까지 이사들과 나란히 동석하게 된 것이다. 윤석희 운영본부장은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운영 부서가 기획과 개발, 마케팅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과도한 자신감은 가끔 오만으로 발전 하여 타 부서에 대한 알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엔케이소프트의 김태윤 사장은 윤석희 운영본부장을 몹시 신뢰했다.
그 역시, 운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까지의 추세로 볼 때 유료 전환 시점까지 20만 명 정도를 유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테스트 베드 등의 현황 조사 자료를 참고로 했을 때 이탈율은 극히 낮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윤석희 운영본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동연 마케팅 이사가 말을 막는다.
“이탈 율이 낮을 거라는 예상은 어떤 근거로 나온 겁니까?”
김동연 마케팅 이사는 원래 와세다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한 일본 성향의 인재로 엔케이소프트의 마케팅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면서도 온라인 게임의 과도한 급성장이나 한국 시장의 게임 인구의 움직임 등에 대한 못 미더운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윤석희 운영본부장이 말한 테스트베드라는 것은 엔케이소프트가 레니즈의 알파 테스트부터 면밀하게 관찰 하고 있는 서울 시내 30개소의 PC방을 말한다. 넥스티브에서 개발한 바람의 왕국을 보고 어느 정도 온라인 게임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개발한 레니즈였지만, 김태윤 사장은 경영적 관점에서 그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국, 더 확실한 검증 방법으로 알파 테스트 단계에서부터 30개소의 PC방과 계약하여 200명 이상의 테스터 들에게 레니즈의 플레이를 시켰다. 그리고, 테스트 초기 단계부터 기획자들이 전담 마크하여 게임 내에서 이 들이 자율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교육하였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200여명이 이르는 테스터들은 처음에 받던 시간 외 수당을 폐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집에 가지도 않고 게임 플레이에 몰입하게 된 것이었다. 아는 기존의 아케이드 게임이나 가정용 게임기의 RPG 등에서 보이는 게임 마니아적인 특성을 이미 뛰어 넘은 것이었다. 각 부서의 테스트 팀장 들은 이러한 테스터들의 성향을 ‘단순히 여가용 게임이라기 보다는 성인용 사행성 게임에 몰입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1,2차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경영진에 보고 했다.
보고서를 면밀히 읽어 본 김태윤 사장은 자신이 직접 현장을 둘러 보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PC방 내부에 들어선 김태윤 사장 이하 엔케이소프트의 경영진 들은 우선 코를 찌르는 악취에 인상을 찡그렸다. PC방 내부에는 갈아 입다 만 옷가지에서부터 양말, 목욕을 열흘 간 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인간의 악취로 온통 꽉 차 있었던 것이다. 김태윤 사장은 악취가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테스터들의 옆에 앉아 그들의 플레이를 흥미롭게 지켜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게임에 대한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테스터들과의 접촉이 끝난 후 엔케이소프트의 사옥으로 돌아 온 김태윤 사장은 경영진을 불러 놓고 이야기 했다.
“이것은 대박이다. 그것도 아주 큰”
김동연 마케팅 이사가 김태윤 사장의 말에 반문 했다.
“사장님, 200여명에 이르는 테스터들의 분위기만 갖고는 속단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컨텐츠가 정말 재미가 있는지, 정말 일반인들이 저렇게 몰려 들지도 좀……”
“김이사, 나는 김이사의 해외 경력 및 각종 마케팅 수치에 대한 지식을 높이 사서 엔케이의 마케팅 부분을 맡기고 있는 것 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컨텐츠가 어떤 파괴력을 갖고 있는지, 이 파괴력이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적용 될 수 있을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군요”
“파괴력이라 하시면…… 무슨 말씀입니까? 레니즈가 일종의 마약 효과 같은 중독성이라도 갖추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이상입니다”
장내의 임원들이 모두 술렁거렸다.
“김이사가 지금 간과 하고 있는 것은 게임 시장에 대한 지극히 일반화 된 과거 수치만을 대입하여 우리가 하려고 하는 신규 시장에 대한 가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이 사업이 기존에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PC 패키지 시장이라던가 지금 사그라지고 있는 가정용게임기 시장에 적용 되는 모델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에요”
김태윤 사장은 목이 마른 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생수를 한잔 들이키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시장이란 것을 볼 때는 반드시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게임이라는 범주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상, 그것은 더더욱 중요해 질 수 밖에 없지요. 김이사는 미국과 일본 시장에 밝으니까 물어보겠습니다. 우리 게임이 미국과 일본에선 어떻게 받아 들여질까요?”
“미국인들의 문화적 특성이나 일본인 들의 게임에 대한 생각을 고려 할 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동감합니다”
“사장님, 그러면 우리보다 훨씬 크고 역사가 오래 된 시장에서의 판정 수치를 어느 정도 생각하셔야 한다고…...”
“나는 그 발상 자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김태윤 사장이 짧고 강하게 김동연 이사의 말을 끊었다. 김동연 이사는 김태윤 사장의 얼굴을 보며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경영 이론학적인 관점에서 오랜 기간 고착 되고 시행 착오를 겪은 시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가지고 앞으로의 수치를 도출해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것을 서울대 엘리트 출신인 김태윤 사장이 모를 리가 없다.
‘대체 이 사람의 생각은……’
김동연 마케팅 이사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벤처 열풍의 한가운데에서 서울대 최고 엘리트 집단이 시작한다고 해서 뛰어든 게임 사업.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려는 게임 사업이란 것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게임 사업과는 너무나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운영이라는 것도 생소했고, 우선 무료로 서비스하고 차후에 돈을 거둬가겠다는 비즈니스 마인드도 독특했다. 이런 경영적인 발상은 기존의 구미, 선진 일본 시장 같은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우선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레니즈가 게임이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사장님 그럼 레니즈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서비스입니다”
“그럼 사장님이 말씀 하시는 서비스라는 개념은 게임하고 뭐가 틀립니까?”
“틀려도 많이 틀리지요. 게임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돈을 걷어 가기 위해서 하지만, 우리가 하는 서비스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게 하고 돈을 걷어 가기 위한 것이니까요. 이것을 재미라고 부르기는 힘든 것이에요”
“그럼, 사장님은 이 컨텐츠를 게임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카지노나 사행성 오락 같은 걸로 성장시키실?......”
김태윤 사장이 너털웃음을 짓더니 다시 김동연 이사에게 이야기 하였다.
“후후, 물론 까놓고 이야기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레니즈를 만들고 서비스 해야 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입으로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에요”
당시, 김동연 이사는 김태윤 사장의 설명에 반신반의하면서 물러 났지만, 여전히 레니즈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김태윤 사장이 실질적인 오너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지만, 윤석희 운영본부장의 자만에 가까우리만치 들리는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김이사님께선 레니즈의 매출 전망에 대해 항상 네거티브하군요”
“이봐요 윤부장, 나는 마케팅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사입니다. 개발자들 조차 반신반의 하고 있는 그 엄청난 실적 예상을 날더러 믿으라는 겁니까? 게다가, 당신의 그 예상 실적에 따라 마케팅 쪽에서도 예산 책정을 하게 될 텐데 신뢰도가 낮은 그런 수치를 가지고 와서 들먹거리면……”
김동연 이사는 윤석희 운영본부장에게 의도적으로 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엔케이소프트의 직위 체계상 윤석희 운영본부장은 부장보다 한 단계 높은 임원급의 본부장 직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본부장의 칭호를 사용하는 것이 맞았지만 김동연 이사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윤석희 운영본부장 역시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김동연 이사에게 불쾌감을 드러내거나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윤석희 운영본부장은 나름대로 운영 팀에서 마케팅 영역까지 장악할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학벌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아직 한 수 위에 있는 김동연 이사를 숙청하기 위해선 아직 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개인적인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동연 이사의 도발적인 반문에 윤석희 운영본부장은 예의 오만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만든 레니즈라는 게임은 신뢰도 따위를 생각할 게재가 아닙니다”
“뭐라고요?”
“김이사님은 항상 바쁘시니까 피시방의 분위기나 유저들의 플레이 성향을 모르겠지요. 하지만 우리 운영팀은 24시간 레니즈를 플레이 하는 유저들의 성향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체크한 데이터에는 유저들의 기본 프로필뿐 아니라 그들이 게임 내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고 어떤 지위를 향해 시간을 소비하는지, 또한, 매일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는지도 나타냅니다. 또한, 그러한 지출 시간에 대한 데이터를 유사 업종의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치와 비교한 정밀 데이터도 통계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통계에 따르니까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레니즈는 이미 게임의 영역을 넘어 서 있습니다. 유저들은 이미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게임 내에서 현금 거래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뭐라고? 게임 내에서 현금 거래가 이루어 지고 있다고?!”
윤석희 운영본부장의 현금거래에 대한 발언으로 실내가 웅성거렸다. 이번 경영회의가 있기 한참 전부터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여 현금 거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경영 회의 석상에서 운영본부장이 직접 확인 시켜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현금 거래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지난달의 추정 규모는 30억 원 수준입니다. 참고로 이 수치는 레니즈를 정식 유료 전환했을 때 한달 매출액의 3배에 해당하는 수치라는 점을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석희 운영본부장의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김동연 이사의 일갈이 이어졌다.
“이봐요 윤부장! 정말로 게임 내에서 그런 불법적인 현금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면 더욱 문제가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만든 게임은 미성년자들도 이용 제한이 없는 상태인데 금전적인 부분에서 그렇게 거래 활동이 일어나 버리면……”
“그 부분에서 우리 엔케이소프트에 법적인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
김동연 이사의 일갈을 중간에 막고 나선 것은 서효석 법률 고문이었다. 김동연 이사는 눈을 부라리며 서효석 법률 고문에게 화살을 돌렸다.
“법적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충분히 정황 조사를 하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미 3개월 전부터 법적인 부분은 물론, 이것으로 인해 미치는 사회적 파장에 대한 대응책까지 모두 마련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아, 그리고 현금거래에 대한 조사 및 대응책 마련은 사장님의 특별지시였습니다”
김동연 이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태윤 사장을 바라 보니, 김태윤 사장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김동연 이사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김태윤의 사장의 특별 지시라니, 그런 중차대한 건은 엔케이소프트의 마케팅 이사를 맡고 있는 나한테도 상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사인 나를 젖히고 법률고문 나부랭이가 사장 직속으로 중요 업무를 진행시켜?’
김동연 이사는 힘 없이 의자에 주저 앉았다. 레니즈에 대한 중요 사항이 자신을 젖히고 일사천리로 진행 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하하……”
갑자기 김태윤 사장이 크게 웃어 젖히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든 임원들은 그런 김태윤 사장을 보며 의아한 생각에 휩싸였다.
“경영 회의에서 이와 같은 설전이 벌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김태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윤석희 운영본부장과 김동연 마케팅 이사의 사이에 서서 두 사람의 어깨를 짚고 이야기 했다.
“여기 김동연 이사는 나름대로 자신의 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회사의 앞일을 생각해서 발언 한 것이고 윤석희 운영본부장은 우리가 만든 게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나름대로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두 분 모두 엔케이를 위하는 마음이 강했으니까 이렇게 까지 발언이 거칠어 진 것 아니겠습니까?”
김태윤 사장이 다시 한번 너털 웃음을 지으며 사장 석으로 돌아 갔다. 그 모습을 지켜 보는 김동연 이사의 마음은 심난했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저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이미 김태윤 사장의 마음은 윤석희 운영본부장에게 상당히 기울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김동연 이사는 찬찬히 경영 회의 석상을 둘러 보았다.
‘윤석희와 서효석이는 원래 동문수학한 사이라고 하니까 어차피 한통속일 것이고 나머지 인사팀장을 맡고 있는 정원태하고 관리이사를 맡고 있는 한규범이…… 아, 재무이사를 맡고 있는 이기웅이도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 이 세 놈 중에 나를 밀어 줄 놈이 있나……’
김동연 이사는 그 특유의 판단력과 위기 본능으로 경영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신 쪽으로 세를 불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김태윤 사장의 마음이 돌아 섰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엔케이를 당장 그만 둘 것이 아닌 이상 나름대로 얼라이언스를 구성해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동석자 들을 두루 살펴 보던 김동연 이사의 시선이 송재영 개발이사의 자리에서 멈춰 섰다.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수석 입학, 수석 졸업. 넥스티브에서 바람의 왕국을 만들고, 그 실력을 토대로 지금의 레니즈를 만든 주인공. 김동연 이사는 시간 나는 대로 송재영 이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접근했지만 그는, 경영이나 정치적인 커뮤니케이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경영 회의에 참여할 때도 언제나 묵묵 부답으로 참관만 할 뿐이었다. 경영 회의니 경영 부분에 대한 미팅 같은 것을 애초에 몹시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이런 종류의 자리가 끝나기 무섭게 개발실로 돌아가 개발자들과 개발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다.
‘이놈을 끌어 들여야 하는데……속을 알 수가 없으니’
김동연 이사가 미국과 일본 게임 시장에 정통하고 나름, 게임 시장의 경력자라고 하지만 출신이 개발자가 아닌 이상, 개발자 출신의 송재영 이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에는 벽이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스케줄이나 영업관리 측면에서 개발과 마케팅은 긴밀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김동연 이사 입장에서는 무시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송재영 이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기만 하면 다른 경영진들이 뭐라고 하건 자신 쪽으로 발언권이 강화 될 수 밖에 없다. 게임 개발사에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자는 회사의 지분, 권력 관계에 상관 없이 일종의 독점적 권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이사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 속이 복잡할 무렵 김태윤 사장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레니즈에 대한 논의는 이것으로 하고 이번 달 이슈에 대해 들어 봅시다. 정팀장 준비 됐지요?”
“예, 사장님”
엔케이소프트는 경영 결정 순위에 있어 인사 정책을 상당히 높게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정원태 인사팀장은 불과 팀장의 직위였지만 임원급의 경영회의에 동석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월례 정기 보고 등을 통해 김태윤 사장에게 직접 인재 풀에 대해 설명하고, 경쟁 기업의 인재를 스카우트 할 계획에 대한 브리핑이 이루어졌다. 김태윤 사장은 능력 있는 인재를 스카우트 하는데 상당히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정기 경영회의에서 정원태 인사팀장이 업계의 이슈와 함께 눈 여겨 볼 만한 인재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먼저, 주목해 보실 것은 PC 패키지 업계의 준동입니다”
“그쪽 업계는 이미 게임 끝났잖아? 전체 시장을 다 합쳐도 앞으로 규모의 경제라고는 부를 수 없는 수준의 매출 밖에는 나지 않을 텐데 말이야”
“확실히 와레즈의 영향으로 매출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만, 이전 달에 제이유미디어의 주최로 매출 상위권의 패키지 회사 사장들이 회동을 가졌습니다”
“쥐새끼들이 모여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게임 사업을 처음 시작 할 때 김태윤 사장은 한국 게임 시장에 대해 얼마간의 기대와 신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PC 패키지 업체 사장들과의 교류를 증진할 생각으로 많은 비즈니스 관계를 시도했지만 곧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이 PC 패키지 업계의 사장들이 품고 있는 그릇이라는 것이 당초 김태윤 사장이 생각했던 것 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영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관도 없이 그저 용산 바닥에서 굴러 먹던 유통에 대한 법칙만을 강조 하는 놈, 돈이 된다면 기업간의 윤리나 약속 따위는 전혀 하찮게 생각하는, 그러한 양아치들의 천국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시장의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룰에 빠져서 온라인 게임에 대해 막연한 조롱을 일삼는 데에 있었다. 게임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면서 레니즈를 비롯한 몇 개 온라인 게임에 대해 전혀 게임 같지 않은 IT 쓰레기라고 까지 폄하했던 자 들. 어떤 경우는 공개석상에서 들리게 조롱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태윤 사장이 보기에는 그들이 말하는 게임에 대한 가치관이라는 것도 개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분노가 더했다. 이미 풍요로운 시장을 개척해 놓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시장 수준이나 가치관에 비해 한국의 PC 패키지 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가치관이나 만들어 놓은 시장 구조라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PC 패키지 시장은 일본이나 미국의 시장을 그럴듯하게 따라 가는 것에 불과 했고 한국 게임 시장의 특성을 고려 했을 때,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형 될 것인지 경영적 관점에서 접근 하는 경영주는 한 명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와레즈로 인해 불법 복제의 폐해가 늘어나자 자진해서 잡지사의 똥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는 꼴이라니’
몇 개 업체의 경쟁적 시각에서 촉발 된 잡지사의 주얼 게임 부록 사업이 날이 갈수록 팽창 되어 가는 때였다. 일단 현재까지는 돈을 벌고 있지만, 이것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김태윤 사장은 경영적 측면에서 이미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얼 사업의 코어 역할을 하고 있는 제이유미디어의 주최로 PC 패키지 업계가 모였다는 데 대해 조소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 그 쥐구멍 회의라는 것에 내용이 있었나?”
“제이유미디어가 잡지협회 쪽과 연동해서 각 잡지사와 주얼 부록의 비율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각 메이커들이 이에 따르기로 했다는 후문입니다”
“쥐새끼들이 생각할만한 비즈니스 플랜이로군”
“하지만, 주얼쪽 매상으로 인해 패키지 업계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봐 정팀장. 사업이란 건 말이야 항상 현금의 흐름과 규모의 경제를 생각해야지, 지금 그까짓 거 조금 살아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주얼 게임이라는 게 뭐야? 신발 장수가 신발 안 팔리니까 염가로 떨이하는 거랑 뭐가 다르나? 잡지사를 끼고 한다고? 그거야 말로 지하철에서 잡상인들이 싸게 팔러 다니는 꼴이 아닌가 말이야”
정원태 인사팀장의 반론에 김태윤 사장이 짜증 섞인 얼굴로 회의 탁자를 두드리며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게”
“예, 알겠습니다”
정원태 인사팀장은 원래 용산에서 비즈니스를 한적이 있어 틈나는 대로 PC패키지 업계에 대한 환기를 시키며 김태윤 사장의 주의를 끌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PC패키지 업계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해 있는 김태윤 사장에게 잘 통용 되질 않았다. 물론, 정원태 인사팀장이 생각하기에도 그 간 PC패키지 업계의 몇몇 사장들이 김태윤 사장에게 보여준 행동들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도 특별히 마음을 돌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달에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획기적인 사건? 어떤 거 말인가?”
“먼저 전자신문에 난 기사를 보시죠”
정원태 인사팀장이 파워포인트의 마우스를 드래그 하자, 모서리에서 전자신문의 일면이 나타났다. 김태윤 사장의 시선에 ‘게임기 시장 살아나나, 국제그룹 게임기 사업부 위기에서 탈출’이라는 헤드라인이 들어 왔다.
“이게 무슨 말이야?”
“국제그룹 게임기 사업부에서 슈팅 게임을 하나 내놨는데 초도 5만장이 다 나간 거 같습니다. 알아 본 바로는 지금도 매장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답니다. 재고가 없다는 거죠”
“5만장? 뭐야, 20억이 넘는 매출이잖아! 그게 어떻게 가능했다는 거지?”
기가새턴용 게임의 정가는 5만원~6만원 사이에 결정 되고 있었고, 홀세일 가격을 생각하면 대략 4만원 근방에서 출고가가 결정 되는 셈이었다. 복잡한 도매 절차를 거치지 않는 국제그룹의 유통라인을 감안 할 때 5만장이라면 대략 그 정도의 매출액이 발생했다고 예상 할 수 있다.
김태윤 사장의 되묻는 말이 끝나자, 정원태 인사팀장이 다시 마우스를 드래그 시켰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이 게임이 발매 될 당일의 전자상가 풍경입니다”
정원태 인사팀장이 펴 보인 이미지 상에는 끝 없는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정팀장, 이거 설마 게임 살려고 늘어선 줄은 아니지?”
“그 줄 맞습니다”
“이럴 수가!”
김태윤 사장은 적지 아니 놀랐다. 일본의 아키바에서라면 저런 풍경은 흔하게 구경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가진 나라에서라면 가능한 풍경이 IT시대로 접어 드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PC패키지 조차 꺼져 가는 나라에서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지, 경제적 측면의 생각 이전에 이성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팀장, 이 게임 이름이 뭐야?”
“액트레스…… 라고 하더군요”
“액트레스? 여배우란 뜻이잖아? 장르가 뭔데 그래?”
“슈팅 게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태윤 사장은 찬찬히 생각해 본다.
‘슈팅 게임이면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도 구닥다리가 된 장르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나……’
“이 중에 저 게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저 게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태윤 사장의 갑작스런 질문에 손을 들고 나선 것은 김동연 이사였다.
“김이사도 혹시 저 줄 속에 끼어 있던 건가요?”
김태윤 사장의 반문이 약간 날카로웠기 때문에 김동연 이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런, 김태윤 사장이 레니즈 외의 게임을 즐기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깜빡 했군’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여유 있게 밀고 나가야만 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특유의 감각으로 익히고 있던 터였다.
“네, 사실 저 게임을 직접 사게 된 건 게임성이나 다른 것 보다……타카하시 마도카라는 원화가 때문이죠”
“원화가라구요?”
“일본에서 탑클래스에 속하는 원화가인데 일본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주 지역에서도 꽤 인기 있습니다.
“으음……”
김태윤 사장은 그제서야 납득이 갔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원화가가 도입 되었다면 서비스 개념이 아니라 상품성으로 승부하는 팩키지 시장에서의 판매고 신장이 기대 될 법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이사, 게임을 해봤나요?”
“예”
“게임성은 어떻든가요?”
“그게…… 사실 저도 마도카의 그림에만 관심이 있었지 게임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만, 신규 게임 치고는 훌륭합니다. 현재 다른 슈팅 게임들이 시리즈 물로 이어나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하구요”
“일본 게임 시장에서 슈팅이 차지하는 위치는 요새 어떤가요?”
“슈팅 게임 쪽은 일부 메이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산 상탭니다. 얼마 전에는 궁극타이거 시리즈로 유명한 동아플랜이 도산했더랬죠”
“으음……”
김태윤 사장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김동연 이사를 옆에 놓고 쓰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일본과 미국의 게임시장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김동연 이사가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게임이라니, 거기에 시장의 정황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판매량이 대단했다.
“하지만 겨우 5만장에 불과 합니다”
“이봐, 겨우 5만장이라니?”
윤석희 운영본부장이 김태윤 사장의 안색을 살피며 김동연 이사의 발언을 평가 절하하는 발언을 하자, 김동연 이사가 바로 맞서 대응했다.
“우리 엔케이의 매출에 비하면 이런 건 새 발의 피입니다”
“니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대해서 뭘 알아?”
“왜 이러십니까? 저도 알만큼은 압니다. 복제하기 쉬워서 도태되고 있고 지금은 국제그룹도 철수하기 직전이라는 것도요”
“너는 항상 온라인 게임에 대한 집착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어! 물론, 이 나라가 복제 천국이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무너진 건 사실이지만 잠재구매력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주지하고 있어야지! 그게 경영 책임자로서의 자세가 아닌가?”
“이놈의 나라에 무슨 잠재구매력이 있다는 겁니까? 주제 넘게 말씀 드립니다만 이 나라는 무조건 복제입니다”
“네놈은 어려서 몰라! 여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가정용 게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100만개가 나간 게임기용 게임요? 그게 뭡니까?”
“바람둥이 소닉이라고 있었지…… 지금은 유통 담당사가 망해서 자료가 없지만……”
윤석희 운영본부장은 잠시 움찔했다. 자신도 백화점 앞 시연대에서 넋 놓고 한적이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 어느 매장을 가나 심지어, 문방구 앞엘 가도 그 게임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100만개라니 말도 안 되는……’
“매출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근거를 가지고 경영 판단을 하시는 겁니까?”
“네놈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너무 얕보고 있어! 온라인 게임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세계 시장에서……”
“그만! 그쯤 합시다!”
김동연 이사가 흥분해서 삿대질을 해대기 시작하자, 김태윤 사장이 손을 저으며 막아 섰다. 김태윤 사장은 이럴 때가 가장 난감 했다. 경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 시장에 최적화 된 것이 온라인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푸쉬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자신들이 푸쉬하고 있는 한국형 온라인 게임이 어필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는 점 등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 깊게 고찰을 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 면에서 엔케이소프트에는 김동연 이사 같은 미국과 일본 시장에 정통한 베테랑도 필요 했고,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접어든 한국의 온라인 게임 시장을 선도할 기관차 같은 열정을 지닌 윤석희 운영본부장 같은 사람도 필요 했다.
하지만 김동연 이사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대한 기존의 데이터나 규모에 빠져 있는 측면이 강해서 한국형 온라인 게임에 대한 네거티브 한 생각이 상존해 있었고 윤석희 본부장은 그 반대였다. 게다가 둘은 견원지간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립은 더 심했고 종종 회의석상에서 이런 식으로 대립의 경계가 표출 되곤 하는 것이었다.
“이런 무의미한 소모전이 기업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거…… 두 사람이 더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만”
김태윤 사장의 조용한 한마디가 끝나자 두 사람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김태윤 사장 입장에서는 사실, 가정용 게임 시장이 주도가 되건, 온라인 게임 시장이 주도가 되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기업인으로서 돈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 사업을 미는 것이었고 언제든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돈이 되는 걸로 판단 되면 그쪽으로 전이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할거라고 생각했던 국제그룹에서 장타를 날렸다. 그것도 아주 센세이션 한 이슈 감을 몰고ㅡ
‘이 수치를 가지고 시장의 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겠고…… 그렇다고 아예 무시해버리고 가자니 뭔가 찜찜한데…… 정말 난감하군’
김태윤 사장은 경영에 있어 항상 규모의 경제, 포킷머니의 개념을 생각했기 때문에 자사가 속해 있는 시장만 가지고 판단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들의 판매 대상이 되는 컨슈머들의 속성과 라이프 스타일까지 고려하여 사업 계획을 짜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5천만도 안 되는 나라고……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불이 안되고….. 더구나 게임이라는 카테고리…… 이건 의식주 관계도 아니라 업종 구분이 명확한 두 개의 큰 시장으로 갈리는 건 시장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고…… 파이가 작아지면 굳이 우리가 여기에 정력을 쏟을 필요가 있나?’
김태윤 사장은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사실 재수 좋게 5만장 정도 나간 게임이 나왔다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 인 것이었지만 웬지 켕겼다. 경영 이론적으로도, 마케팅적인 시각으로도 우려할만한 시그널은 없었지만 특유의 경영감각이 그것을 자꾸 신경 쓰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태윤 사장은 파워 포인트 한구석에 배치 된 경민의 사진을 다시 응시했다. 답이 잘 보이지 않는 비즈니스의 문제에선 사람으로 해결 하는 게 제일 편했다.
“정팀장, 저 친구 우리가 데려 올 수 없을까?”
“아직 프로필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그걸 깜빡 했군”
김태윤 사장의 약간 넋 나간 듯한 말투에 실내의 사람들이 모두 주목했다. 사람을 데려 오는 것, 인사이동, 부서배치 등에 적극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꼼꼼하게 전후 사정을 살펴 보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 김태윤 사장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정보도 없는 타사 사람을 보고 스카우트 여부를 주문한 것이었다. 임원들에겐 그것이 센세이션 하게 비춰 졌다.
“이름은 이경민, 본관은 경주 이씨입니다. 호적상 사생아로 되어 있지만 따로 조사를 해본 바로는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으로 제3공화국 때 유신정의회 의원이었던 걸로 나와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요직을 두루 거쳤고요. 어머니는 비서 출신으로 만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호적에 올려 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정팀장님 그런 것까지 조사가 됩니까?”
“이런 건 기본입니다”
서효석 법률고문이 절차 상에 법적인 하자가 없었을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정원태 팀장이 자신 있는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 서효석 고문은 엔케이소프트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이 앞으로 사회에 미칠 파장과 그것을 엔케이소프트가 효율적으로 비껴 나가기 위한 법적인 자문을 구해주는 특사 같은 존재로 김태윤 사장의 제안에 의해 스카우트 된 법조계 인재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엔케이소프트의 조직력이나 경영 능력에 대해 반신반의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접하게 되는 엔케이소프트의 비즈니스 능력은 놀랍기만 했다. 특히 시장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과 수집 된 정보를 가지고 시장을 분석하는 능력은 업계 최고였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꽤 유복한 환경이었던 것 같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지원도 끊어져 어렵게 수학을 한 것 같습니다. 대학은 경희대 사회과학과 졸업,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하는군요”
“대학은 별거 없지만 외국어 능력이 좋군”
“한국인으로 저 3개 국어를 한다면 비즈니스에 전혀 문제 없습니다”
“역시 탐나는 친구야. 그래, 데려 오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상대가 대기업이니까요…… 기본연봉도 3000만선으로 재어 놓고 3배수 정도는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경 1억 정도 되는군”
김태윤 사장의 생각에 1억 원이면 전혀 아까운 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 친구가 벌리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이슈와 그에 대한 파급효과를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는데 드는 비용이 두 배는 들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절약인 것이다.
“좋아, 저 친구 1급 스카우트 대상에 올리고 앞으로 4개월만 더 리서치 해 보자고. 지금까지 모아 논 정보 외에 주변 인물부터 시작해서 여자 관계, 금전적 문제까지 뭐 정보 될만한 것 있으면 몽땅 조사해 놓게”
“헤드헌터 들도 접근 시켜 놓을까요?”
정원태 팀장이 말하는 헤드헌터란 미인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엔케이소프트가 개발자들을 섭외하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는 다소 고전적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카드였다.
“아냐, 그 수는 아직 쓰지 마. 개발자들하고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거든. 정말 장기적으로 쓸만한 인재라면 여자는 가까이 하지 않게 하는 게 나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김동연 이사와 윤석희 운영본부장도 다시 한번 경민의 사진에 주목했다. 이제 막 게임 시장에 첫 이슈를 날렸을 뿐인 남자가 엔케이소프트의 김태윤 사장을 집중하게 만든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회의가 많이 길어졌군요. 더 이상 의제가 없다면 이걸로 마칩시다. 이따 내가 중요한 회동이 있어요…… 그럼 모두들 각 자 위치에서 수고들 해주시고 다음 분기 회의 때는 더욱 활기찬 모습 기대합니다”
김태윤 사장의 마치는 한마디를 끝으로 실내의 임원들이 삼삼오오 일어 섰다. 엔케이소프트의 2/4분기 경영회의가 끝난 것이다.
N모사를 마치 악의 소굴인 것처럼 묘사하셨군요. ^^ 그나저나 '바람둥이 소닉'이라...
이건 팬픽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여
악의소굴이 아닐지는 몰라도 악의 근원??? (현거래를 악으로 본다면) 수준은 충분히 되고도 남지요.
N사가 현거래 사실 알고도 방조하는건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이야기니까요. (그게 자사에 도움이 되기때문에 방조한다는것도)
어찌보면 조연 캐릭터 이하로 취급되기 쉬운 기업 간부들이지만 세세한 가치관의 설정이 있어서 좋네요.
와아... 얘기가 갑자기 무섭게 넘어가네요;;;
역시 한국에서도 밀리언 셀러 콘솔 타이틀이 있긴 있었군요.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소설에 현실이 얼마나 반영이 된 것인지 궁금하군요..
이 글 조아라에 한번 올려보세염. ^^
루리웹에 올리시고 계시는데 유조아에 올릴 필요가 없죠^^ 이 소설 내용이 진행되고 반응 있겠다 평가되면 루리웹 측에서 책으로 내줄 수도 있는거고.. 여기에 공개적으로 올리시는거 보면 프로이신거 같은데 아마추어들이 기고하는 유조아 에 올리시라고 하는건^^;;
재미있게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