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난 농담이 아냐
46시간 후, 60층 아래. 밤이 되자 호텔 로비는 텅 비어 마치 검은 대리석 무덤처럼 반짝였다. 리셉션 구역에서 라디오가 재생되고 있었고, 소녀는 메스크의 원자 십자군이 깊은 창백에서 염탐하고 있다는 소식을 걱정스럽게 듣고 있었다. 산업 스파이 활동이 이곳으로 잠입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플라스틱 재킷을 입은 남자가 자동문을 통해 들어오자 전쟁 뉴스가 홀에 다시 반사되었다. 눈구름이 그를 따라오자 그는 서둘러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빛나는 흰색 글자 "호텔 인터그라드"가 배경에 흘렀다. 소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경비원도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손님은 그들을 바로 지나쳐 투숙객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그의 뒤에서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의 황금빛 불빛 속에 혼자 남겨진 그는 6학년 때 배운 대로 배낭끈을 어깨에 건 채 가슴 위로 넘겼다.
[이렇게 하렴, 칸, 보기 좋구나.]
칸은 가방 옆 주머니를 뒤졌다. 금속성 소리와 함께 여러 개의 키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그의 살렘 목조 주택의 열쇠, 복도의 녹슨 망치, 지하실 문을 잠그는 알루미늄 괴물이 걸려 있는데, 모두 쓸모가 없어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 황금 열쇠의 이빨은 기술적으로 매우 정교해 보여서 마치 같은 종류의 열쇠를 동시에 돌리면, 마지막 방어 수단인 자폭 프로토콜이 실행되어, 선제 핵공격에 의해 최고사령부가 파괴되더라도 반격을 보장할 것처럼 보인다.
칸은 최후의 날 열쇠를 자물쇠에 꽂고 지시에 따라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다시 왼쪽으로 돌린다. 열쇠 구멍 옆 동판에는 "암바르춤잔, 사르잔 아사투로비츠"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확성기의 쉭쉭거리는 소리가 엘리베이터의 침묵을 가른다. "암바르춤잔씨, 걱정했어요..."
"저는 암바르춤잔이 아닙니다. 저는 이나얏 칸입니다." 남자는 열쇠를 보여주지만 어디를 향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가 거울 속의 자신을 돌아보자 머리에 투투 모자가 비뚤어져 있었고 재킷 어깨 위에서는 눈이 녹고 있었다. 그의 수염은 덥수룩하고 끔찍해 보인다.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이걸 받았어요. 지금이 긴급상황입니다. 왜 제 전화에 응답하지 않죠?"
"당신 이스마엘처럼 말하는군요."
"죄송합니다, 뭐라구요?"
"당신 정확히 이스마엘처럼 말한다구요."
"오 그래요...이스마엘을 기억하세요?"
"제가 이스마엘입니다." 충실한 비서가 대답하자 승강기는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움직인다. 가속도의 충격이 칸을 통과한다.
"걱정했다구요? 왜요? 왜 전화를 받지 않았죠?"
"저는..." 비서가 주저한다. "저는 이틀동안 암바르춤잔씨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지시는, 전화를 연결하지 말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그게 그저께였다구요?"
"예, 암바르춤잔씨가 당신의 연락을 받았을때요, 이나얏 칸."
"알았어요." 진눈깨비가 안경에 녹고 있는 가운데 칸은 거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머리에서 안경을 벗어 플라스틱 재킷 소매에 닦는다. "그럼 그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나요? 연합경찰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암바르춤잔씨로부터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예..." 엘리베이터 승강기는 하늘을 향해 조용히 미끄러져 올라갔다. 칸의 귀는 압력 변화로 인한 긴장을 느꼈다. 칸은 침을 삼키고 뒤돌아서 배낭을 가슴에 얹은 채 문을 향해 섰다.
"칸씨," 스피커가 갑자기 지직댔다.
"네?"
"암바르춤잔씨의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제가 연락을 달라고 했다고 전해주세요."
"왜 안그럴것 같은데요?" 엘리베이터가 속도를 늦추자, 무중력 상태인 듯 양쪽 손이 올라간다. "왜 그 분에게는 모든 것이 잘되지 않을까요?" 그는 묻는다. 그러나 비서는 대답하지 않는다. 칸 앞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딩…" 한 줄기 빛이 복도를 지나 어두운 60층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바람이 울부짖고 있었고, 그 돌풍은 유령처럼 진열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개인 실종 수집품들이 눈더미 속에 서서히 묻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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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이 리놀륨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사과에서 온 한 남자가 밤에 병원 복도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행 가방 전화기가 매달려 있고, 손목에 사슬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옷깃에 연한 파란색 에나멜 배지가 돋보인다. 두 명의 경찰이 중환자실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자고 있었다.
"왜 자고 있지?" 수사관이 그에게 몸을 기울인다. "난 메스크 출신의 침입자다. 이 가방 안에는 5톤짜리 폭탄이 들어있다." 경찰관은 당황하여 눈을 비볐고, 그의 파트너는 겁에 질려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미로바 중앙병원에서 대체할 수 없는 전략적 자원을 잃었다. 그라드 시민 3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네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관은 벌떡 일어나 셔츠를 바로잡았는데, 여전히 졸린 듯한 눈빛이었다. 조사관은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여기 서 있는가? 서서 자면 좀 나아지나? 나는 누구인가? 내 직장 ID는 어디에 있나? 나는 왜 방문자 이름표를 착용하고 있지 않나?"
수사관 뒤에서 양면 금속문이 열리자 그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복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의 양쪽에는 플라스틱 커튼으로 분리된 칸막이가 지나가고, 창가의 마지막 칸막이에는 의료 장비가 빛나고 있다. 남자는 발뒤꿈치를 돌리고 플라스틱 커튼을 잡아당겨 연다. "마체젝, 친구에게 전화 좀 해야겠어. 친구들에게 전화해. 지금 당장."
침대 머리맡에 모르핀이 뚝뚝 떨어져 들어간다. 오래 전에 투약이 중지되었어야 했는데, 좋은 징조는 아니다. 망가진 요원이 창밖을 내다보자 커다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넌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난 너에게 줘야할 것을 줄 필요가 없어."
"난 네 사연을 알아." 그건 보고되지 않았다... "넌 수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넌 유령이야. 너같은 자들은 기만하는 것밖에 못하지."
거짓이라는 유령. 일반적으로 그들 이익에 반하는 국가기관의 거짓말로 기만당하는 것은 실업자 시민들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 마체젝.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연합 경찰의 요원들이야. 연합경찰의 목적은 수사에 있는 것이 아니야. 연합경찰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마체젝은 창문에서 시선을 돌린다. "지금 우리 세상은 진짜 똥통이야."
"오!" 내사과 수사관은 놀란 척한다. "그런 철학인가. 그럼 인류를 위한 세인트-미로의 계획은 마음에 드나?"
"여기 허무주의자는 너 뿐이야, 유령."
"그럼 넌 세인트-미로와 인류를 위한 그의 계획을 좋아하지 않나?" 내부 조사관의 표정이 날카로워졌고, 그는 침대 옆, 심장 모니터의 녹색 불빛 속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넌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을 좋아하잖아? 아니면 네 친구가 어떤 부류와 연락하는지 모르나? 너의 비정상적인 친구말이야. 나도 몰랐어. 그들의 취미가 무엇인지 , 무엇을 하는지…"
마체젝은 어깨 붕대를 붉게 물들이며 반항적으로 자리에 앉았다. "칸? 칸은 천재야. 넌 그를 막을 수 없어."
"그래." 내부 조사관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지. 너와는 달리. 지금 그에게 전화해."
마체젝에게는 이정도 양보했으면 충분하다. "이봐, 친구. 그만 좀 해.. 차라리 모프핀을 늘려줘. 난 닿지 않거든."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웠다. 터진 웃음때문에 통증이 오는 바람에 숨을 멈춰야만 했다.
"약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약이라..." 마체젝이 비웃었다.
내부 조사관은 분개해서 그를 바라본다. 병원 침대에는 땀에 젖은 한 남자가 누워 있었고, 상체에서는 피가 배어나오고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가 마음에 들어? 네 결말에 만족하냐구, 콘찰로프스키?"
테레즈는 모르핀 용액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어두운 파도가 그를 덮치고 눈송이가 물에 떨어진다. 그는 차갑게 타오른다. 기회! 아이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고 물위로 떠받치고 있다. 작고 강한 손... 그는 사랑의 전사가 된다. "그래." 그는 심장 모니터의 녹색 점이 튀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차분하게, 리드미컬하게. "여긴 괜찮아. 더 이상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거 알아? 나는 아무데도 안가. 난 이 나라가 싫어. 난 그라드가 싫어. 나는 연합 경찰과 모랄인턴이 싫어. 그건 나에게 그냥 도구일 뿐이고, 나 자신도 도구일 뿐이야. 나도 알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누가 나를 포기했는지. 얘기 안해도 알아, 난 바보가 아니니까. 내 역할이 끝났다는 걸 알아."
어둠 속에 밝은 녹색 빛이 흔들린다.
"칸이 너를 위해 무엇을 했지? 넌 그에게 무엇을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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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증기의 흔적이 옥상의 눈더미 사이로 이어진다. 사라지는 데는 세계 최고 전문가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휘날리는 눈송이가 초점에 맞춰졌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변증법적 유물론 안경이 있었다. 그의 날카롭고 검은 눈은 눈송이가 유리에 달라붙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웅크려 앉자 플라스틱 재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손을 뻗어 눈 더미에서 무언가를 집는다.
그를 둘러싼 바람은 잦아들자, 커튼은 힘없이 내려앉았다. 어두운 커튼은 다시 진열장의 형태를 취했으며, 이나얏 칸은 방 중앙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인간 두개골을 들었다. 그는 눈구멍의 검은 부분을 깊이 응시한다. 6만 레알이 이곳 주변에 흩어져 있다. 멀리 떨어진 에르그 사막은 서사시 영웅이 신들을 만나러 갔던 곳이다. 6만 개의 깊은 구멍이 파헤쳐졌지만, 헛된 짓이었다. 칸이 입김을 불자 라무트 카르자이의 눈구멍에서 눈이 날아간다. 그의 턱은 걸쇠처럼 잠겨 있었고 입은 말이 없었다. 창은 부러졌고 깃발은 장례식 수의가 되었다.
"암바르춤잔씨!" 칸이 일어섰다. 너덜너덜한 깃발이 밧줄처럼 팽팽하게 벽에서 흔들리고 있다. 일마라 삼색기는 거대했다. 돌풍이 일고, 같은 색의 스카프가 남자의 목에 휘날린다. 남자는 같은 색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암바르춤잔!" 칸이 다가가 유리 진열장 위로 손을 뻗는다. 눈 더미 아래에서 끝이 녹슨 골동품 창 자루가 보인다. "얘기할 게 있어요."
투투 모자의 불길한 그림자가 책상 위로 옮겨가고, 종이가 펄럭이고, 피라미드 모양 스피커가 눈 속에 묻혀 있다. 엘리베이터의 불빛을 향해 뻗은 손이 갑자기 유령처럼 떨린다. 긴장된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쉭! 두개골은 스피커에 부딪혀 수천 조각으로 부서진다.
"내건 어디있어?! 어디야?!"
남자는 진열장을 향해서 다가간다. 유리가 깨진다. "내 물건이 없어지는 건 싫어! 조금도 마음에 안 들어 !" 그는 멈춰서서 양손으로 마호가니 책상을 짚은 채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책상 위의 종이와 필기구를 쓸어낸다. "당신이 그걸 어디에 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얘길 했잖아요 ? 당신은 배를 가지기로 했고, 약속을 했잖아요. 내 물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창문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가장 큰 중앙 창문은 내부로부터 산산조각이 나서 삼각형의 유리 파편이 바깥쪽으로 향해있고, 눈이 들이치고 있다. 그리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미로바가 보였다. 창문 앞에는 커다란 진열장 위에서 아랫쪽으로 불꽃이 튀고 있었다. 피복이 벗겨진 전선 때문이었다.
칸은 고개를 돌리고 책상 위 벽에 걸린 종이 그림을 뒤에 남겨둔 채 물러난다. 눈에 젖은 종이가 물결치고, 수채화 물감으로 그려진 곤추가 천천히 흘러내린다. 용맥의 검은 노래기는 줄무늬 자루로, 청록색의 갈대는 무지개로 변하고 있다. 곧 그는 사라지겠지만, 곤추가 부하들에게 불사의 복숭아를 하나씩 나눠주는 모습은 여전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칸은 그런 걸 볼 여유가 없다.
물건을 뒤지고 있는 그의 귀에 바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진열장이 눈 속에서 나오자 남자는 그것을 바로 뒤집어 종이를 꺼낸다. 고급 종이였다. 누군가의 노출된 치아의 엑스레이 사진이 담긴 연합경찰 서류철, 그 서류철에서 신분증 사진이 바람에 날아갔다. 은빛 문신, 손가락 관절의 불가능한 기억: 5, 12, 13, 14. 칸은 사진을 알아보고 나머지 사진과 함께 가슴에 있는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라드 사마라 오블라스트에 있는 쿠쿠쉬킨으로의 환승 허가증과 함께 인민 공화국 가짜 서류도 함께 집어넣었다. 여권 표지 상단에는 흰색으로 인쇄된 거꾸로 된 오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진열장 바닥에는 최대 수확인 로디오노프 딥이 빛나고 있었다. 칸이 입을 벌리고 손을 내밀었다. 구멍이 뚫린 암청색 금속판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톱날처럼 노래하며 도시의 빛이 수천 개의 점을 통해 빛난다. 점들 옆에는 보로니킨의 손글씨로 쓰여진 지도 범례가 있었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그것을 읽고 있는 그의 어두운 얼굴 위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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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체젝은 슬프게 웃는다. "괜찮았어?"
수사관은 대답없이, 테레즈의 무릎 위에 여행가방 전화를 연다. 내부에 불이 켜지고 비둘기가 그려진 그의 노트 위에서 낯선 사람이 찍힌 사진과 열쇠가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건 아주 좋은 일이 되었어야 했어." 남자는 잠시 생각한다. "이제 오고 가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바사 시민이 생겼어, 맞지? 넌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는 협력자야… 하지만 그는 널 속였어. 넌 그에게 무엇을 주었는지조차 몰랐어!"
"그건 좋지 않았어, 마체젝." 조사관이 쏘아붙였다. "내가 잘못 알았어!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틀렸고, 넌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네 용의자는 피해자야." 그는 노트를 집어 든다. "왜 너의 사건 케이스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넌 그들을 알잖아, 마체젝! 그것에 대해 얘기해보자구. 아니면 더 이상 얘기하기 싫어? 데렉 트렌트뮐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이제 재미가 없어?"
수사관은 열받은 남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사건이 일어났고, 넌 네 눈으로 직접 그것을 봤어.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어.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건 아무 상관이 없어." 테레즈는 무작위 색상 홍채로 가려진 눈동자로 숨을 헐떡인다. "너 스스로 말했잖아. 지금은 칸의 계획만이 중요해."
"칸의 계획은 비정상적이야. 로디오노프 딥! 빌어먹을 정신나간 공산주의자들은 죽어가고 있고, 너희들은 다 똑같은 환상속에 살고 있어.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다루고… 너희들은 온갖 물건을 좋아하지. 그렇지? 나도 하나 갖고있지. 오늘 바사에서 나에게 도착했어. 다섯 번이나 다시 팩스로 받았지." 남자는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오지 않고 항상 이 방법으로만 와. 사진 하나를 보여주지, 마체젝. 왜냐하면 네가 어른처럼 굴지 않으면, 네가 치른 희생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신경쓰지 않는게 분명하니까." 그는 노트에서 인화지를 꺼낸다. "이것은 데렉 트렌트뮐러의 물건 중 네 이야기를 확증하는 유일한 물건이야. 그가 자신의 개인실에서 직접 인화했지. 너도 네 기계 ZA/UM을 통해 그것을 보았을거야. 인화일자는 52년 8월 29일 이야. 이틀 후 그는 네거티브와 함께 그것을 바사의 사진 연구소로 보냈어. "네거티브는 손상되지 않았으며 현상결과는 동일합니다." 한 달 후 중앙 사진 연구소는 후속 조사를 통해 재확인했어. "네거티브는 손상되지 않았으며 인쇄물은 동일합니다" 제울이 렌즈에 결함이 없음을 확인했고 트리갓은 카메라 장비를 사용하여 300번의 테스트 촬영을 진행했어. 아무런 이상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어. 이 사람은 기억이상이 생길 때까지 6년 동안 그 장치를 연구했어. 내 생각에는 평생 동안 그 장치를 연구했던것 같아. 너 같이."
테레즈는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게 잘린 인화지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뒷면에 날짜와 도장이 찍혀 있었다. 52년 8월 29일.
"뒤집어 봐!"
땀이 종이에 얼룩을 남긴다. 사진 연구소 우표. "제울". "트리갓".
"넌 감히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지, 안그래? 누구도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돼. 그들은 잊혀져야 해. 그래서 마체젝 ‒ 미안하지만, 친구들에게 전화해야해. 반드시."
테레즈가 사진을 뒤집자, 빛이 사진 표면을 가로질러 윤기 나는 광택으로 미끄러진다. 노란 시간의 여름날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언덕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작은 세 사람이 로즈힙 덤불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칸은 복숭아와 곤추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와 제스퍼는 비치 파라솔을 손에 들고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세 소년은 아무에게도 우산을 받혀주고 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심장모니터의 점이 멈춘다.
"거기가 네 친구가 가고있는 곳이야. 그것이 너희들의 로디오노프 딥이지."
"조작이야…" 테레즈는 마치 뒷면에서 그들을 찾으려는듯이 당황하여 사진을 뒤집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거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유령은 없어, 마.약.쟁이. 우리는 인류의 친구라구. 언제나 이해할래? 수정한 사람은 없어. 넌 그냥 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은거야. 누구도 원하지 않아. 그대로 놔줘." 내사과의 남자가 후크에서 전화기를 들어올리고 재다이얼 키를 누른다. 호출음. 테레즈는 고개를 돌리지만 내사과의 남자는 그의 턱을 잡는다. "멈추지 마! 넌 해를 끼치는 것 이상의 일을 했어. 허드와 트렌트뮐러 모두에게 한 짓 말이야. 넌 그들의 머리에서 공포를 제거했어. 거의 다 됐어." 전화 너머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호텔 '인터그라드'…
사진이 테레즈의 손가락에서 떨어진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불가능하지," 죽음의 천사가 한숨을 쉰다, "오직 그대로의 세상만이 가능하지. 우린 그런걸 연구하거나 찔러보지 않아. 우리는 평온해. 우린 잊어. 우리는 기다리고, 보호하지."
"호텔 '인터그라드', 듣고 있어요."
"4001호로 연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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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
"내 말 들려요?"
교환대에서 칸의 목소리가 들린다. 충실한 비서는 아날로그 소켓에 수천 개의 금속 플러그가 연결되어 있는 전선 묶음 앞에 서 있있다. 전구가 깜박인다. 그는 분홍색 셔츠를 입고 찰칵 소리를 내며 책상 위의 전선을 평소와 같은 민첩함으로 연결했다. "들립니다."
"암바르춤잔씨가 뛰어내려 죽었어요.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냥 건물에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연락드렸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리는데, 10분 동안 당국에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암바르춤잔씨도 그걸 원했을 거예요. 내가 방해받지 않으면서, 당국의 조사가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도록요." 칸은 바람이 울부짖는 가운데 지시한다. "시간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제 말을 이해하셨다면 제 말대로 해 주세요."
그의 등뒤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비명처럼 부서지는 거친 소리가 들려온다.
"내 말을 이해했나요?" 그가 반복하자 스피커는 칙칙 소리를 낸다. "… 10분…"
"좋아요."
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발 아래에서 심연이 어른거린다. 세상을 두려워하던 남자는 사라져가고 있었고,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Noo)가 그 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의 안경과 홍채 뒤에서 생각이 질주했다. 질서있고 전략적인 사고. 그것은 광범위한 구출작전이었고,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완수했으며,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는 20년간의 진지전에서 자신을 완성한 전술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 책략의 창시자이자 실행자는 자신이다. 사랑의 폭군이자 한 사람을 섬기는 총체적인 세계관이다. 다른 장애물도 있지만 그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 공포가 그를 방문하고나서 최근에는 더 이상 그들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았고, 나이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의 눈 대신 피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공포에 대한 기억. 그리고 더욱 추악한 심연의 전화가 울려 퍼진다. "넌 내가 누구인지 알아. 뚱보야, 난 네 장난감이 아니야. 우리를 내버려 둬!" 그는 깨어났을 때 엄청나게 울었지만,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대응책이 마련되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기억한다. 영원히.
청록색-주황색-보라색 수의가 건물 60층의 깨진 창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 위로 펄럭이고 있다. 그는 슈퍼 히어로이다. 얘들아 - 그가 너희들을 구하러 오고 있어.
그는 배낭을 메고 눈 쌓인 바닥을 통해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투숙객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손님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는 베스페르 사업가와 그의 경호원들과 함께 19층에서 내려 미소를 짓고, 40층에서 내려서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운다. 전자 기술자가 아래층의 엘리베이터 문을 부수기 30분 전, 그리고 칸이 눈 덮인 주차장에서 거리로 나오기 45분 전에 그는 신발을 벗지 않은 채 친구 이름으로 임대한 스위트룸에 들어간다.
복도는 어두웠으나, 칸은 불을 켜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신발장에는 3000 레알짜리 매끈하고 낡은 가죽신이 놓여 있고, 피가 묻은 베이지색 페르세우스 블랙 오버코트가 고리에 걸려 있는데, 제스퍼에게는 그냥 입기에 너무 병적이었다. 텅 빈 방에 전화벨이 울린다. 칸은 응답하기 위해 침실로 걸어갔다. 침대도 정돈되어 있고, 공기도 상쾌하고, 방 중앙의 하얀 사각 테이블 위에는 칠흑색 지폐를 쌓아 만든 검은 피라미드가 보였다. 칸은 배낭을 열고 수의를 스포츠 가방에 넣은 다음 가방에 지폐를 쌓기 시작한다. 백, 천, 만, 십만, 오십만 레알. 팔십만 레알. 테이블 맨 아래에는 무덤처럼 테레즈의 경찰지급용 무기가 놓여 있다. 니켈은 희미한 빛에 빛나고 있었다. 칸은 그것을 가방안의 물건들 위에 집어넣은 다음 일어선다.
칸은 빈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빨간불이 꺼졌다가 벨소리와 함께 다시 켜진다. 잠시 멈추고 30분이 지나자 다시 시작된다. 그는 수신기에 손을 얹고 생각한다. 손가락에 땀이 난다. 그는 전화기를 집었다가 다시 거치대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그것을 집어들고 이번에는 그의 귀에 갖다 대었다. 진한 노란색 손가락이 버튼 위로 움직인다. 16자리 번호의 연결이 지나자 전화에 침묵이 흐르다가 간헐적으로 호출음이 들리고 다른 세계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을 때 창백은 방 전체를 가득 채운다. 먼 바다인 듯 께어진 소리로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여보세요?"
"엄마, 나 이제 집에 안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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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뒤, 북쪽으로 4천 킬로미터 떨어진 야쿠트 보호구역 반대편. 그라드 북동쪽의 옛 타이가가 수평선에 곡선으로 펼쳐져 있고, 헤아릴 수 없는 거리에서 창백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8억 헥타르의 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눈 덮인 넓은 심연이 겨울 저녁 대기 속으로 산소를 내뿜는다. 이곳에는 원주민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 수많은 얼음 입방체는 그라드 전체가 흡입한다. 그것은 그라드의 폐였다. 수문기상보호구역, 산소공원. 실내 조명이 희미해지고 있는 짙은 회색의 모터 캐리지가 넓은 들판 가장자리의 숲길 위에 서 있다. 납산 배터리가 천천히 소모된다. 헤드라이트의 유리 커버가 12월 말의 어둠 속으로 드러난다. 펌프 호스가 기계의 연료 탱크 밖으로 나와 있고, 34세의 남자가 빈 용기를 손에 들고 있다. 그의 앞쪽 순백색 인테리어와 흰색 시트에서 연료 냄새가 났고, 흰색 가죽 스티어링 휠과 대시보드에서도 연료 냄새가 났다.
그는 성냥을 켰지만, 바람이 불면서 그의 차갑고 붉은 손가락에서 성냥이 꺼지고 만다. 남자는 손바닥으로 성냥갑을 가리고 또 다른 성냥불을 켰지만, 첫번째 시도에서는 불이 붙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로 모터 캐리지에 불을 붙인다. 어두워지는 세상 한가운데 촛불 하나가 켜진다. 흰색 가죽이 딱딱거리며 검게 변하고, 그을음 조각이 벗겨져 올라온다. 뒷좌석에 있던 흰색 여행가방에 불이 붙는다. 그곳에서 그의 여권은 죽어가는 거미처럼 구겨지고, 매린의 편지는 창백의 재가되어 떠오른다.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나머지 모든 기념품들. 그의 눈앞에 그림이 나타나고, 애니의 등에 있던 모반이 사라진다. 남자의 얼굴에 열이 올라오자, 남자는 눈을 감는다. 잠시 동안 점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무슨 색깔인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눈;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얼굴. 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상이 아니었던, 어두운 숲에서 있었던 교사 딸과의 키스. 모든 것이 사라진다.
전직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입을 벌리고 피가 나는 잇몸을 가루로 문지른 후, 남은 코카인을 불타는 모터 캐리지에 던진다. 코카인이 점화되면서 반짝인다. 그런 다음 그는 추진력을 모아 얼어붙은 강 위로 뛰어내린다. 아래 얼음에는 부들 뭉치가 튀어 나와 있고 멀리 숲길이 구불 구불했다. 그 앞에는 건초밭이 있고 그 위로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지그재그로 뻗어 있는 나무들 너머로 톱니 모양의 전나무 벽이 꿈같은 광경을 연출한다. 눈송이는 웨딩 리본처럼 가지에서 펄럭인다.
그의 이마 위에서 금발 한 가닥이 흔들리고 있었고, 바람속의 그의 눈은 촉촉하고 연한 파란색이었다. 그는 눈처럼 하얀 망토를 입고 발에는 흰색 스웨이드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맨틀 칼라의 모서리에는 항해를 모티브로 한 은색 닻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의 실루엣은 희미한 빛 속에서 일렁이고, 서핑보드처럼 가늘었다. 어깨에 맨 가방에 담긴 물병이 달그닥 소리를 낸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서리가 내린 광활한 들판에서 작고 반짝이는 점이 된다. 들판 반대편에서는 숲이 손짓하고, 나무 아래쪽 어둠은 산소로 가득 차서 그의 의식적인 삶 전체를 부른다. 그가 들어서자, 그의 발 아래 땅은 부드러웠고, 솔잎은 가시가 돋아 있었고 바람은 잦아들었으며, 종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편이 더 좋았고, 그게 맞았다.
불에 탄 모터 캐리지가 길가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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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남쪽으로 6천 킬로미터. 지하철 열차가 터널 속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밤이라 객차는 비어 있고 강철이 삐걱거린다. 칸은 배낭을 등에 메고 문에 기대어 섰다. 그는 흔들리는 객차 선로, 지하철의 강철 몸체를 내려다본다. 몇 명의 외로운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이코노미 모드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라드는 전쟁 중이므로 특별 허가 없이는 밤에 외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어느 날 밤, 경찰관들이 기차역에서 고무 곤봉으로 그를 찌르러 왔을 때, 칸은 고무 곤봉을 하나 샀다. 그는 이제 호텔을 피하고 역 벤치와 개방형 카페 테이블 뒤에서 잠을 잔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길을 잃곤 한다. 창문마다 산업공장의 노란 불빛이 빛나고, 지하철 열차는 터널을 빠져나와 다리까지 올라간다. 아래쪽 페레멘나야 베라의 하류는 검은색이었고, 강 위에는 무지개색 얼음 층이 얼어있었으며, 앞쪽에는 가스 저장 탱크의 거대한 실린더가 강둑에 솟아 있었고, 오이 농장 투광 조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수력발전소. 이것은 폴리팩토리(Polyfactory), 티라노폴리스(tyrannopolis), 포스트 메가폴리스(post-megapolis), 인간 정착지의 두 번째 발전이다. 칸이 방문한 도시의 일부는 한때 지엠스크의 수도인 렌카였다. 여기서 용감한 프란티첵이 태어났다. 그리고 테레즈 마체젝도 있었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종양이 렌카를 삼킨 지 오래되었다. 그라드 과학자들은 향후 10년 내에 폴리팩토리 미로바가 교외 지역과 함께 성장하여 인간 정착지의 마지막 발달 정점, 지구권의 사람이 살 수 없는 부분, 생태학적 재난 지역인 묘지를 형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창백이 이 땅을 휩쓸 것이기 때문이다.
만 너머의 지평선에서는 그라드 순양함의 검은 무리가 북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전사의 무리를 씨앗처럼 배에서 투하하고 있다. 그들은 예비군이었다. 오늘 밤, 메스크 해군은 본거지인 그라드의 이솔라를 급습했다. 카틀라나 홀로드나야 젬리야 지역에서는 좋은 소식이 없었다. 선봉대가 북방고원을 가로질러 접근하고 있었다. 3,500만 명의 사람들이 폴리팩토리의 기차 창문 뒤에서 라디오를 통해 전쟁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예였다. 오직 한 사람만이 듣지 않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허무주의자였고, 칸은 그를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는 재킷의 지퍼를 잠그고 역 문 밖으로 나갔다. 플랫폼은 텅 비어 있고 조용했으며, 늦은 남부 겨울은 서늘했다. 포플러나무가 바람에 바스락거리고 산업 분진이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는 소리가 울리는 계단을 따라 거리로 내려와 부분적으로 무너진 오두막 사이를 걸어갔다. 5,000와트짜리 프로젝터의 광선에 빛나는, 천하무적의 기념물인 은색 실린더들 위에 매립지가 흐릿하게 보였다. 거리의 조명은 어두웠고, 길 양쪽에는 목조 주택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의 발 아래 진흙 웅덩이에서는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도로는 포장되지 않은채였다.
칸은 유난히 낡은 2층 아파트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목조 건물이 바람에 삐걱거리며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펜으로 손등에 적은 주소를 확인한 뒤, 어둡고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복도를 지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3동 아파트를 찾는 동안 성냥에 불을 붙이자, 칸의 안경 렌즈에서 두 개의 불꽃이 춤을 추었다.
속옷을 입은 노인이 문으로 다가왔다. 피부가 가슴 위로 늘어져 있어서 마치 방부 처리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조롱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사소한 일들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극단적인 세계관으로 젊고 매력적이었다. 그의 광대짓은 이 코이코에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승리, 즉 북부 여성의 전형적인 사회적 양심을 가진 지기의 어머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결혼은 그에게 희극으로 판명되었다. 게다가 그 여자는 지기의 허무주의 아버지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기의 아버지는 지기를 학대하지 않았다. 그는 지기를 돌보았고, 소년을 바사에 남겨둘만큼 그를 배려했다. 허무주의자는 폴리팩토리로 돌아가 그곳의 체육관에 가서 백 살이 될 때까지 진정한 허무주의자처럼 살기 위해 건강을 지켰으며,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악한 매 시간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이 모든 것은 칸에게 명백했으며, 그 내용은 배낭의 서류철에 들어 있었다. 그는 소녀들이 사라진 지 3년 후 지기가 아버지를 만나러 그라드에 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지기와 소녀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코이코는 그를 씻지 않은 접시가 쌓여있는 부엌으로 데려갔다. 칸은 테이블 위에 100 레알 가치의 보드카 병을 쾅 내려놓았다. 코이코는 뚜껑을 풀어 샷을 붓고 중지와 집게 손가락 끝으로 잔을 잡았다.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칸은 앞에 놓인 채워진 술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로 말한 대로인데…"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보드카를 목구멍에 들이켰다.
"그 아이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난 허무주의자다." 노인은 테이블 위에 유리잔을 쾅 내려놓았다. "오늘 밤 8시에 커뮤니티 센터에서 그 강력한 허무주의자가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보러 와. 죽음은 위대하고 끔찍하지만… 허무주의자는 그렇지 않아… 그는 좀 어때?" 그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는 기억할 수 없었고, 그의 기분은 나빠졌다. 그의 몸은 어깨 위로 축 늘어졌다. "곧 끝날 텐데, 무슨 차이가 있지?" 노인은 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그가 떠났던 대로야."
공책들은 오두막 벽을 따라 탑처럼 솟아 있었다. 칸의 그림자가 공책 무더기 사이 문 앞에 멈췄고, 뒤쪽에서는 주방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남자가 공책 중 하나에 손을 뻗자 나머지 더미가 그 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는 탑을 어깨에 기대면서 지기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경 쓰지 마." 그는 기침하며 말했다. "다 똑같아. 같은 이야기야."
"무슨 뜻이에요?" 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공책은 바닥에 쏟아졌다. 각 표지에는 지기의 엉성한 손글씨로 소녀들의 나이가 적혀 있었다. 다섯, 열둘, 열셋, 열넷.
"같은 이야기야!" 코이코는 칸에게 등을 돌리고 식탁에 앉았다. "이상한 이야기. 우리 모두에게는 다소 이상한 이야기가 아닐까,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칸은 공책들을 스포츠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어깨에 부푼 가방을 걸치고 문 앞으로 가는 동안 코이코는 여전히 작은 부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메스크 놈들은 이 세상을 창백에 빠뜨리고 싶어해. 라디오에서 우리를 요람으로 데려갈 거라고 하더군. 우리 모두 거기 앉아 입을 벌리고 있겠지.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혀에 질식하지 않도록 하면서 우리에게 먹이를 떠먹여 줄거야. 실패는 더 이상 허무주의가 아니야. 그건 희극이야. 나는 그것을 보았어. 그건 로모노소프 영역에 단백질을 격리하는 것이야! 온 지구가 로모노소프의 영역이 되기를 원한다구."
칸은 신발 끝으로 현관 매트를 두드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전 가 볼께요…"
"그 사람은 실망스러웠어, 그 세인트-미로 말이야. 하지만 알잖아, 얘야?" 노인은 보드카에 취해서 말처럼 검고 빛나는 눈으로 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올 것이 더 남아있는 것 같은데..."
칸의 앞쪽에서 객차들은 하나둘씩 사라지며, 터널은 기차를 삼키고 있었다. 그는 압력 변화에 귀를 막은 채 희미한 침묵 속에 창가에 앉아 있었다. 녹색등이 출구를 표시하고 있었다. 객차 안은 어둡고 삐걱거리는 금속 소리만 들렸다. 손전등을 꺼내서 배터리를 채우자, 어둠 속에서 그의 무릎에 놓인 네모난 종이 위에 세상이 나타났다. 칸은 오른쪽에 공책더미를 놓고 앉아서 그것을 읽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공책은 그의 손전등 불빛 아래서 그의 앞에 펼쳐졋다. 모든 세부 사항은 세부 사항에 대한 편집증적 관심으로 수집되었으며, 모든 단어와 움직임이 기록되었다. 기억속의 모형, 기술 도면으로서의 내용은 많지 않았다. 지기스문트 베르그의 잃어버린 세계를 다시 하나로 묶을 미래의 자비로운 세력에 대한 지침이었다. 자르고, 접고, 붙인다. 겨울밤 벽돌의 궤적, 거실 창문의 좌표. 파흐루 정류장 근처의 친숙한 주소, 바사의 소녀들의 집. 펼쳐진 지도에는 소년의 탈출을 점선으로 표시한 교외의 미로가 드러난다.
그리고 페이지 모서리에 기상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기압과 습도. 영하 18도. 다음날 저녁, 벽붙이 소파가 있는 잘생긴 알렉산더의 집에서는 바닥에서 춤을 추는 6단계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 어둠. 자물쇠가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위에서 울리는 하나의 목소리. "너는 지기야. 학교에서 제일 나쁜 놈이지." 칸은 뭔가 안 좋은 느낌을 받고 손수건으로 안경을 닦았다. 그의 위장에서 산이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임박한 질투 공격이었다.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종말, 당신은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입니다."
그러나 가운데에 익숙한 'å'자가 붙은 소녀의 이름은 페이지 반대편에서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 부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그 주변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페이지 아래의 날짜가 새해부터 매주 한두 번씩, 점점 더 자주 바뀌었다. 8월 28일이 될때까지. 그러나 페이지 자체는 비어 있었다. 칸은 다음 공책을 집어 훑어보고, 다음 공책을 배낭에서 꺼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
플랫폼에서 나오는 빛이 객차 안으로 체크 무늬를 그린다. 한 번에 한 창문씩 줄지어 있는 창문을 통해 방출된다. 칸이 고개를 들자 안경이 빛났다. 두 개의 밝은 조명기, 마지막 정지 ‒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밝은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뚱뚱한 바보, 어딘가에 지기스문트 베르그가 있는데,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껍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 테이프가 쉭쉭 소리를 내며 플라스틱 디스크 위에서 그 심장만 회전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세상이 끝날때까지 뗄래야 뗄 수 없는 숫자도 있다. 그는 강철 살구 구멍의 깊고 깊은 창백을 통해 자신을 투석한다. 그러나 칸 자신의 기억은 그의 마음 속에서 왜곡된다. 기억은 차례로 소멸되어 그를 혼자 남겨둔다. 그는 이대로는 견딜 수 없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오늘 밤 그는 역사 화장실의 종이처럼 벽이 얇은 칸막이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는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그의 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레해진 삼색 수의로 덮여 있었다. 남자가 뒤척임에 따라 옷감이 바닥을 스친다. 뭔가가 잘못되었고, 그는 잠을 잘 수가 없다. 뭔가 심하게 잘못되었다. "얘기해 줘... 넌 항상 역사나 자연과학에 대해 멋지게 설명하잖아..." 남자는 눈을 뜨고 타일 바닥에 떨어지는 부드러운 금발 머리의 텅 빈 얼굴을 바라본다. 그의 앞에는 한 아이가 누워서 자고 있다. 숨을 쉬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어디있어?" 낮은 진동에 보이지 않는 동행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칸은 최대한 몸을 웅크렸지만 추위가 그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반복한다. "나는 세상 끝에 있다. 나는 세상의 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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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시골집의 계단을 작은 맨발이 내려오고 있었다. 동지의 밤, 그녀의 투명한 피부 아래 혈관이 흐르고 있다. 각 발톱은 진홍색 보석이며, 발가락은 차가운 계단때문에 구부리고 있었다. 짙은 녹색 눈. 잠옷 자락이 그녀의 발목 주위에서 바람처럼 펄럭인다.
그래서 매린 룬드는 1층의 카펫 위로 올라갔다. 어두운 방에서는 깨진 유리창이 빛나고 있었다. 커튼은 돛처럼 부풀어오르고, 바닥에는 벽돌이 놓여 있고,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 그녀 자신은 거울이었다, 거울! ‒ 세계의 완벽한 사본.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 항상 그랬다. 그녀의 표면은 마치 사춘기의 피부처럼 흠잡을 데 없이 빛나고 순수하다. 잘못된 것은 빛이다. 그것은 세상 그 자체이다.
두 명의 어린 소녀가 어둠 속에서 세 번째 소녀 옆으로 다가왔다. 가장 큰 아이는 요정 대모의 장난감 마술 지팡이로 창문을 가리키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창문은 액자 속에 금이 간 미소처럼 걸려 있었다.
"봐!" 그녀는 말한다. "잘못되고 있어."
[잡담] [신성하고 끔찍한 공기] 19. 난 농담이 아냐
꿈꾸는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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